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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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제갈(雜技諸葛)···?’
신기제갈(神機諸葛)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기로 결심했다. 말을 뱉어온 이의 얼굴에는 악의가 가득하지 않나.
이건 물었다가는 더 큰 말이 나올 것만 같아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대신, 내가 살짝 얼빠진 표정을 지어 보이니, 옆에서는 진효풍이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설명을 들려줬다.
옆에서는 당소정이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지, 연신 홧술을 들이키고 있다.
“그,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네···.”
이야기는 장황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이들이 무림인이되 무림인답지 않은 무림인이기 때문이란 말. 그게 모든 증오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검을 쓰는 남궁과 도를 쓰는 팽(彭)가, 그리고 관(官)의 창법을 익힌 악(岳)가는 무림에서도 그 뿌리가 깊기로 유명하다.
반대로 당문과 제갈은 어떤가. 이들은 독과 암기를 쓰고 기문진법과 필법을 쓰지 않나.
무림인이지만, 조금은 결이 다른 무림인이라는 것.
보통 이런 이유 때문에 두 가문이 가까울 거라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허나, 이는 인간의 본질을 모는 이야기. 인간이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를 보면 옆에 있는 이보다 앞서고 싶어 한다.
호전성이 본능이라는 무림인은 어떻겠나. 그런 감정이 더욱 거셀 터.
해서, 당문과 제갈은 서로보다 자신들이 낫다며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다는 게 진효풍의 말이었다.
“신기제갈? 웃기고 있네! 잡기제갈이란 말이 딱이죠! 무향후의 후예? 흥! 손오의 후예겠죠!”
거기에 시조를 사천 촉한의 무향후로 잡은 제갈세가는 사천을 차지한 당문과는 필연적으로 자존심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런 자존심 싸움이 쌓이고 쌓여 세가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은 것.
당문은 그들을 손오의 후예라 욕하고 그들은 당문을 남만출신이라 욕하는 지경까지 왔다고 하니.
뒤에서 오가는 말이지만,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에는 충분한 말들이다.
“···저어. 당 소저, 우선 진정을 하시고···.”
– 벌컥!
연달아 홧술로 술을 삼키는 당소정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홧술은 바텐더가 가장 싫어하는 것.
술의 맛은 잊고 취기만을 찾는 걸 바텐더는 볼 수가 없다.
“아무튼! 제갈은 안 해요! 절대!”
“예. 물론이죠.”
“남궁으로 해요. 남궁세가에 제가 전서를 보내둘게요!”
“감사합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몰랐던 이야기지만, 얽힌 관계 덕분에 판로가 한쪽으로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펼쳐져 나갈 곳은 남직예의 남궁세가 쪽. 나쁘지 않은 판로다.
남직예는 절강과 면을 맞대고 있어 움직이기도 편하지 않나. 거길 발판으로 사천이나 북경으로 뻗어 나가기도 나쁘지 않은 위치다.
“같이 갈 수 있으면 좋지만, 사천에 돌아가는 게 급해서요. 그것까지 못 해드려요. 괜찮죠?”
“그럼요. 거기까지 바라면, 심보가 고약한 거지요.”
“좋아요! 오늘 당장 보내죠! 사흘이면 답이 올 거예요! 대신, 알죠? 편도즙!”
시원시원한 성격의 당소정 덕분에 판로가 조금 더 쉽게 잡혔다.
***
“판로는 남직예로 정했습니다.”
“남직예? 음. 나쁘지 않네. 다른 곳으로 건너가기에 딱 좋은 위치가 아닌가. 상단은? 살펴봤고?”
“예. 여러 상단을 살폈습니다만, 규모가 저희랑 맞을 곳이 많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건 알겠지?”
“물론입니다. 해서, 한 곳을 정했습니다.”
당소정에게 확답을 들은 다음 날.
구동해를 찾아 확정된 판로를 보고했다.
석가장의 빵빵한 지원 덕에 상단주가 직접 나서서 총괄하는 과하석황주의 판로 찾기.
전적으로 내게 선택권을 줬다지만, 상급자인 구동해의 검토는 한 번 거쳐야 하는 게 세가의 일이다.
“어딘가? 어디로 정했나?”
“남궁세가와 거래를 터볼 생각입니다.”
!
“나, 남궁세가 말인가? 우리와는 연이 없을 터인데? 혹, 아는 이라도 있는 건가?”
남직예에, 그것도 남궁세가와 거래를 트겠다는 말을 듣자 구동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아무리 석가장이라도 오대세가와 거래를 트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당문이나 화산과 첫 거래를 틀 때만 해도 석가장이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최근 그런 거래가 늘어나 이름값이 가벼워진 느낌도 있지만, 상단의 단주인 구동해는 그 무게를 모르지 않았다.
“당 소저께 부탁드렸습니다. 어제 전서를 보냈으니, 내일 중으로 답이 올 겁니다.”
“오호라. 그런 방법이 있었군. 혹, 무리하게 부탁한 건 아니겠지?”
“설마요. 대신, 과하석황주를 한 단지 대접했습니다. 편도즙 만드는 법도 알려드릴 예정이구요.”
“흠. 이거, 양조부터 판매까지 모두 자네 손에서만 이뤄지는 거 같아 미안하네.”
“많은 걸 도와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섭섭합니다.”
“사람, 말하는 것하고는. 남직예라면, 쉽게 상행을 꾸릴 수 있을 걸세. 표사들도 경험이 충만할 거고. 내 표국에 연통을 넣어, 언제든 출발할 준비를 해두라 이르겠네.”
“감사합니다. 혹, 가능하다면 최립이라는 표사도 표행에 넣을 수 있을지요?”
“최립? 아는 이인가?”
“예. 친하게 지내는 분입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이라, 가능하면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음. 그 정도야. 내 장 행수에게 꼭 말해두겠네.”
“감사합니다.”
“술은, 잘 나오고 있는 거겠지?”
“경과가 좋습니다. 판로만 열리면 대량으로도 팔 수 있을 정도입니다.”
“좋네, 좋아. 허허. 자네는 이제 출근하는 길인가?”
“아뇨. 오늘은 소개 값을 치르러 가야 합니다. 당 소저께 편도즙 만드는 걸 알려드리기로 해서요.”
“아. 그래. 중요한 일이지. 뒷일은 내가 처리해 두겠네. 걱정하지 말고, 편히 다녀오게.”
구동해에게 약간 사적인 부탁을 곁들이고는 밖으로 나와 당소정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석가장 내에서 내원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한 당소정의 처소. 석가장에서 중요한 인물이 머물던 전각이라고 하던데.
지금은 주인이 석가장을 비워 이렇게 귀빈을 모실 때만 쓴다고 한다.
미리 준비해둔 재료를 챙겨 그곳에 닿으니, 마당에 나와 주변을 살피던 당소정이 보였다.
기다린 걸까. 알 수는 없었다.
“당 소저.”
“아. 이 공자!”
“지금,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요? 저야 너무 좋죠!”
“그럼.”
맷돌과 솥, 간단히 불을 피울 수 있는 도구를 준비해 당소정이 머무는 곳 마당에 들어섰다.
당소정은 어느새 의원으로 일할 때 쓰는 앞치마까지 꺼내 입고는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간은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간을 아예 하지 않는다면, 본연의 맛이 사라지니 잊으셔선 안 됩니다.”
“소금이 들어가는 줄은 몰랐어요. 짠맛이 없던데요?”
“의외로 소금이 고소한 맛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편도즙의 고소함은 소금 덕분이죠.”
“어쩐지!”
“자. 간을 맞췄으면, 맷돌을 돌려볼까요?”
“저한테 맡겨요!”
무거운 맷돌을 가볍게 돌려가는 그녀. 편도라 불리는 아몬드는 쉽게도 갈려가며 예의 그 즙을 토해냈다.
벌써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당소정의 입가다.
“여기를 잡고 이렇게 돌리죠.”
“좋아요.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돌리는 거예요!”
“예. 하나.”
“둘.”
“셋!”
– 쫘아아악.
– 푸슉!
갈아낸 편도즙을 면포로 싼 다음 당소정과 한쪽씩 잡고는 이를 세차게 짜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쭈욱! 하고 튀어 오르는 한 줄기 편도즙.
편도즙이 서로의 얼굴에 묻어 당소정과 나는 한참이나 서로를 보며 웃어댔다.
얼굴에는 누런 편도즙이 가득한 둘이었다.
“푸흡! 이 공자 얼굴에 편도즙요!”
“당 소저도 묻으셨습니다.”
“여기요?”
“조금 더 아래.”
“그럼, 여기?”
“아뇨. 여기.”
어디에 묻었는지 모르는 편도즙을 닦아주려 하니 편도즙이 또 번지고 만다.
우린 그걸 보고 또 꺄르륵 웃고 말았다.
한낮의 햇살이 내려와 더욱 청량해 보이는 마당의 풍경.
편도즙은 그런 여름의 향기를 머금은 채 오래지 않아 완성될 수 있었다.
너무 빠르게 완성된 것만 같아 아쉬움이 돌았다.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쉽지요? 제가 따로 만드는 법을 적어뒀으니, 편하게 보시면서 만드시면 될 겁니다.”
“그럼, 이제 시식할 차례인가요? 드디어!”
“그전에.”
– 사사사사삭.
난 잠시 그녀를 멈추고는 잔을 차게 식힌 후 이를 건넸다. 편도즙도 차게 마시면 더욱 맛이 좋다.
“음-! 최고예요! 시원하니, 더 맛있네요! 제가 이 맛을 못 잊었다니까요!”
이를 들이켠 당소정은 곧장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가를 소매로 스윽 닦고는 밝게 웃는 그녀.
그 모습이 보기 좋아 한참을 보고 있길 잠시.
난 위에서 아래로. 당소정은 아래에서 위로. 두 사람의 눈이 가운데서 마주치니, 작은 정적이 마당을 감돌았다.
잔 하나를 든 손 정도만 떨어진 두 사람의 거리. 시선이 교차하며 어색함과 아련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치 꽃잎이 날아와 주변을 장식하면 딱일 것만 같던 그때.
“여어! 여기들 있었군!”
어디선가 꽃이 하나 날아오긴 했다. 다만, 날아온 꽃이, 또 그 빌어먹을 매화다.
진효풍은 담을 펄쩍! 뛰어 넘어와 우리 둘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흩날리는 도포 사이로 보이는 선명한 매화 문양.
난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도끼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뿜어졌다.
조금은 살벌하고 강한 기운이.
“응···? 어디서 미세한 살기가···? 어허! 그나저나 독화! 자네, 어디 아픈 게 아닌가? 얼굴이 빨갛다네! 열이 있는 거 같군! 의원이 제 몸을 먼저 돌봐야지!”
“저,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이, 이 공자도 가보셔야죠! 그, 선, 아니. 편도즙! 잘 마실게요! 어디로 가야 하더라? 아. 참. 나, 나중에 봬요!”
당소정은 진효풍의 말을 듣더니 휙! 하고는 몸을 틀어 재빠르게 전각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지만, 정말 붉게 물든 것만 같았던 그녀의 볼. 손을 뻗었지만, 잡기에는 무리였다.
“어···.”
“아픈 게 확실하군.”
속 편한 양반은 또 옆에서 이상한 소리다.
마당에는 그와 내가 단 둘이 남은 지금.
이번에도 그와 있을 때 이런 말이 나와 참으로 아쉽다.
그래도.
여름이었다.
‘왜 매번···.’
***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장주님.”
“아. 이 공자.”
편도즙을 만든 다음 날.
양조장으로 나서던 길에 석두원의 부름을 받고는 대석당으로 향했다.
석두원은 손에 하나의 서신을 들고는 날 반갑게 맞아줬다.
“남궁에서 답신이 왔네.”
“예?”
“당 소저가 보낸 서신이 있지 않았나? 그 답신 말일세.”
남궁에서 답신이 왔다.
그런 말에 서둘러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당소정은 보이지 않았다.
“···답신의 내용은 어떤지요?”
“음. 우선은 물건을 보고 싶다는군. 정말로 여름을 버티는 술인지, 또 남직예까지 운반이 가능한 술인지를 보고 싶다는 말이네.”
“역시 확답은 없었군요.”
“그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보통, 상계에서는 물건을 보고 싶다는 말이 이상만 없다면 거래를 트겠다는 말이니.”
당문과 남궁의 사이도 나쁘지 않고, 거기에 물건까지 상품성이 있는 물건이다.
남궁으로서는 거절할 필요가 없었던 제안. 거래는 물 흐르듯 흘러갈 것처럼만 보였다.
“다행입니다. 허면, 이제 표행단만 꾸리면 되겠군요.”
“음. 그렇긴 하네만. 뭐, 다른 조건들이야 다들 완벽도 하고. 헌데, 그, 실은 말일세···.”
하지만, 이내 말끝이 조금 흐려지는 석두원.
석두원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공 총관이 나선다.
“아무래도 남궁과는 첫 거래이지 않나? 이쪽에서도 조금의 성의는 보여줬으면 한다는 게 남궁의 의사로 보이네.”
“성의라면, 이익률 말씀입니까?”
“상계가 아니라, 그저 세가로서의 성의 말이네.”
“그게 무슨···?”
들려오는 말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이쪽 출신이 아니기에 어렵게 느껴지는 속뜻.
연신 고개를 갸웃하자.
“음.”
석두원은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안에 든 말을 풀어줬다.
“남궁세가로 자네가 직접 와줬으면 한다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