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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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간단한 이야기지요. 관은 무림에 불침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무시한 적은 있어도 말이지요.”
“관이···말씀입니까?”
“예. 믿기 힘드시겠지만, 그렇습니다.”
최립은 관무불침이 없다는 말을 하고는 연달아 설명을 이어갔다.
불침은 개입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음을, 무시는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음을 뜻할 터.
말을 뱉는 그의 모습이 제법 자조적인 건, 그도 무림인이기 때문일 거다.
“우물은 강물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강물은 우물 정도야 쉽게 삼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멀리서 지켜보다, 비가 올 때면. 이를 확! 덮쳐버리지요.”
둘의 세력 차이를 간단히 보여주는 최립의 설명. 우물은 무림이요, 강물은 관을 뜻할 것이다.
비야 뭐든 될 수 있지 않겠나. 작은 꼬투리라도 말이다.
“치수(治水)만 잘한다면야, 문제가 있겠습니까만. 지금은, 그 치수가 문제로 보입니다.”
관무불침이 없다면, 제아무리 중원제일세가인 남궁이라도 관에 줄을 대야만 한다.
그게 바로 치수일 터. 유사시에 강물이 우물을 삼키지 않게, 주변을 잘 다듬어야 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
생각해 보면, 석가장 역시 항주부 지부 대인을 주기적으로 만나며 치수를 해내고 있다.
내가 떠나오던 날에도 석두원은 지부 대인을 만나러 가지 않았나.
비록 무가보다는 상가에 가까운 석가장도 말이다.
관무불침이란 개념이 실존하는 거라면, 감히 이런 행동들이 필요할까.
세상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게, 이 시대 다운 거긴 해도.
“치수가 문제란 말씀은?”
“남궁세가에서도 치수 차, 후원하는 당파가 있다고 합니다.”
“후원하는 당파요? 허면, 그들이 범람을 막아줘야 하는 게 아닙니까? 받은 돈, 아니. 치수가 있을 터인데···.”
“이번에 내려온 관리는, 그 반대쪽인 게 문제입니다. 당파야 한둘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
“그럼···?”
“아마, 회유차. 또는 견제차. 그렇게 온 것 같습니다. 통정사라면, 웬만한 칙서에 황상의 도장을 받기는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이는 핑계고, 중요한 건 내려온 사람에 있는 거지요.”
칙서는 핑계다.
대신, 그 칙서를 가져온 사람이 진짜.
칙서가 발이 있어 직접 갈 리는 없지 않나. 칙서를 보내면, 응당 사람도 따라야 하는 법.
이걸 주로 이용하는 게 조정 관리들의 수법인 모양이다. 칙서에 적는다면, 내용은 공개되고 만다.
그저 인편으로, 조용히. 그리고 또 은밀하게. 그게 그들의 방식인 것이다.
“허어. 그렇게 까지들···. 반대쪽 관리가 직접 온 거면, 남궁으로서는 많이 곤란하겠군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테고. 거기에 관이니, 눈치를 안 볼 수도 없고.”
“곤란할 겁니다. 회유를 당하자니, 치수하던 당파에서 불어올 역풍이 두렵고, 견제를 버티자니 중원제일세가로서의 자존심이 문제지 않겠습니까? 바짝 엎드린다고는 해도···. 조정에서 직접 내려온 이상 쉽지는 않을 겁니다. 직접적인 위협은 아니더라도, 행패가 장난이 아닐 겁니다. 오히려, 전문인 자로 보냈겠지요.”
최립은 조정 관리가 내려와, 하는 일을 행패라 표현했다.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황궁을 지상 최대 흑도 방파라 부르는 이도 있지 않나. 단순하게 본다면 삥 뜯으러 온 거나 마찬가지니.
이를 고상하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옳은 표현이다. 저들이 하는 짓이 딱 흑도 방파. 왈패들의 짓이다.
“견디면, 물러갈 비일지요?”
“그럴 겁니다. 군부 출신의 표사에게 듣기로 칙서를 들고 온 통정사 관원이 머물 수 있는 건 이레까지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버티면. 북경에서도 도움이 있겠지요. 또한, 남궁은 남궁입니다. 저들이 일시적인 행패를 부릴 순 있어도. 명운을 좌우하진 못할 겁니다.”
그래도 중원제일세가라는 수식어를 무시할 순 없다. 잘 지어진 집은 못 해도 수대를 가는 법.
가문은 어떻겠나. 그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나.
남궁은 흔들릴 거다. 다만, 쓰러지진 않을 터. 그렇다면, 곤경이란 말이 딱 맞다.
시련이나, 큰일, 흉사가 아니라 잠시의 곤경 말이다.
국법에서 정한 기간이 끝난다면, 저들도 방법을 찾을 터. 물론, 그때까지가 괴롭겠지만.
그건 뭐. 남궁이 견뎌야 할 문제다.
“제가 알아본 건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석가장에는 큰 영향은 없을 이야기지만, 그러합니다.”
“그래도 마중을 나오지 않은 이유는 이제 알겠군요. 말씀처럼 우리와는 무관한 일로 보입니다.”
“역시 그런지요? 일이야 크다지만, 남 일이긴 합니다.”
“예. 남 일이지요. 우리와 거래할 남. 다만, 거래 상대가 곤욕을 치를 때가 가끔은 기회가 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그걸 알아봐야 할 듯합니다. 어떤 곤욕인지, 그걸 알아야겠습니다.”
“표사 몇을 더 풀어 이야기를 모아볼까요?”
“어젯밤 이야기부터, 쭉.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세가 내의 일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최립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자리를 떠나갔다. 듬직하게 맡은 일을 해내는 모습.
오히려 보고를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처음에는 홀대인가 했던 불안감도 잠시.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홀대는 맞다.
다만, 이유가 있는 홀대였고, 그 이유가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란 게 중요했다.
거기에.
관무불침이 없다는 것.
남궁세가란 정도 문파의 기둥이 관아에 휘둘리는 일.
전부 큰일처럼 보일 수 있다.
허나, 그게 뭐 어떤가.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않나.
난 무림인도 아니며 남궁세가에 어떠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과하석황주라는 좋은 술을 거래하러 왔을 뿐.
안타깝긴 하지만, 어쩌겠나. 무림도 상대 못 하는 관이라지 않나. 난 상인에, 조주사일 뿐이다.
홀대가 아니라면, 그거로 된 거다.
하지만.
‘물론, 이걸 기회로 삼을 수만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 역시 없진 않았다.
여기서 남궁의 일을 해결해 줄 수만 있다면야 그들에게 빚을 달아두게 된다.
거래 조건이, 비약적으로 좋아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보다 큰 거래까지도.
근거 없는 예상은 아니다. 들려온 말 중에 짐작 가는 게 있기에 세워본 계획.
허나, 이를 위해서는 조금의 정보는 더 필요한 지금이다. 최립이 모아올 새로운 정보를 조금 더 기다려야겠다.
***
– 씨익.
“호재입니까?”
그날 밤, 최립은 수집한 정보를 내게 건네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비밀에 부친다고 노력은 했다지만, 사람의 입은 초절정의 고수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남궁세가 내에서 소란이 있다는 건 알음알음 주변 지역에 퍼지는 중이었다.
“호재라. 예. 전 그렇게 보입니다.”
지난날 최립과는 깊은 대화를 나누며 남궁세가와 통정사를 둘러싼 일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내가 알 바도 아니며, 나와는 먼일이라고.
그때는 그게 당연한 결론이었지만, 지금은 그 말을 취소하려 한다.
정보를 취합해, 내린 새로운 결론은 그러했다. 이건, 내가 다룰 수 있는 문제로 보였기 때문이다.
“첫 날은 회유로 보냈다고 합니다. 다만, 오늘부터는 그게 견제로 바뀐 모양입니다.”
“남궁이 택한 거겠지요. 견제를 견디는 쪽으로.”
“역시 그런가요.”
“그럴 수밖에요. 회유를 받아들이면 역풍이 붑니다. 역풍은 거셀테지요. 그 역풍을 이제 막 치수에 들어간 이들이 막아줄 리도 없구요.”
“과연. 그렇게 되는군요. 허면, 짧은 견제를 견디는 것. 그게 남궁의 답이군요.”
“예. 그럴 거로 보입니다.”
“견제라지만, 내용은 그저 개진상이란 게 거진 전부입니다. 밥 먹을 때, 술 마실 때 등등 온갖 행패를 부리고 있답니다.”
“예. 진상이 아주 개진상이긴 합니다만. 다루기 어려운 진상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흐음.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남궁이 기분이 안 좋아, 거래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두렵습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이제 그런 건 상관이 없을 듯합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 씨익.
어째서 그렇냐.
물어오는 최립의 말에 난 짙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이쪽은 또, 제 전문이라.”
***
– 탕탕탕!
거칠게 문을 두드리니, 조용하던 세가의 대문에서 사람이 한 명 튀어나왔다.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모습의 세가의 고용인. 당연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세가는, 남궁세가다.
“누구십니까?”
“석가장에서 온 이정환이라 합니다.”
“석가장이라면···? 아. 장원을 배정받으신 분들이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어쩐 일이신지요? 따로 연통을 드릴 예정이 있을 텐데요.”
“조금 급한 일이기에 이리 왔습니다. 들어갈 수 없겠습니까?”
“불가합니다. 가문 내의 사정으로, 한동안 외인을 받지 말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사람으로 줄을 세우던 세가의 풍경이 한적해져 버렸다. 물론, 내부는 무척이나 넓을 거고, 그 안에서는 다른 풍경이겠지만.
어쨌든, 첫날의 풍경은 찾을 수 없는 남궁이었다.
“돌아가시면, 연통을 드리겠습니다.”
고용인은 단호하게, 또 명을 받은 대로 말을 전했다. 그야 무얼 결정할 수 있겠나.
그저, 시키는 말을 할 뿐. 그를 모르지 않아 그에게 떼를 쓰진 않았다.
다만. 내가 전한 건.
“혹, 작은 서신 하나 전할 수는 있겠습니까? 답은 없어도 됩니다. 다만, 가주님께. 꼭 전하고 싶은 서신이 하나 있습니다.”
“서신···이요?”
“예. 전달만 해주시면 됩니다. 대신, 가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꼭이요.”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말씀을 물은 후 돌아오겠습니다.”
고용인은 제 선에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여겼는지, 안으로 들어가 다른 행수에게 말을 물었다.
조금은 더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가신이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가주님께 급하게 전할 서신이 하나 있습니다.”
“말로 전해주시면,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불가합니다.”
미안하지만, 이건 밀봉된 서신이다. 다른 이에게 보일 수도 없고 보여주면 일이 틀어지는 서신.
해서, 난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뒤에서 온 행수 역시 잠시 고민하던 표정을 짓더니.
“전달만이라면 가능합니다. 대신, 답신은 장담 드리지 못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예. 그거면 충분합니다. 치수가 어긋나 비가 와도, 젖지 않으면 그만이란 말을 꼭 함께 전해주십시오.”
“주십시오.”
내게서 서신을 받아갔다.
봉납을 붙인 걸 확인하더니, 그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전해졌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다만, 그랬기를 바랄 뿐.
난 그런 생각으로 문 앞을 잠시 더 서성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문 앞 땅에 발로 그림을 그려가길 잠시.
– 다다다다다다다다!
안에서는 누군가 빠르게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내 서신을 들고는 안으로 향했던 그 행수였다.
– 덜컥!
멀리서 그 행수의 모습이 문틈 사이로 보이길 잠시. 행수는 그대로 육중한 남궁가의 대문을 열어젖혔다.
그대로 무릎을 잡고는 숨을 몰아쉬는 그. 가주전에서 곧장 달려온 모양이다.
“헉. 헉. 헉. 아, 아직 안 가셨습니까?”
“예. 제가 기다린 게, 행수분께 다행이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행수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전하는 그의 말은.
“가, 가주님께서! 얼른! 서신을 전한 분을 얼른 안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남궁가의 가주가 내 서신을 읽었다는 말이었다. 어렵사리, 남궁가로 첫발을 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