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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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자라 불러도 되겠소?”
어렵사리 들어선 남궁세가의 가주전(家主殿).
넓은 전각의 안은 휑하다 불러도 좋을 정도로 큰 크기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런 가주전의 중심을 지키는 한 사내.
남궁세가의 가주, 창천검(蒼天劍) 남궁헌이다.
“편하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가주님.”
“흠. 허면, 그리 부르겠소. 만나서 반갑소.”
남궁헌은 짧게 포권하고는 내게 인사를 전했다. 느껴진 첫인상은 헌헌하다는 것.
미중년 그 자체로 보이는 사내의 얼굴은 과연 무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곱디고운 자태를 자랑했다.
정갈한 수염과 깎아지는 턱선, 그리고 깔끔한 눈매까지. 전형적인 중국 부자상의 석두원과는 또 다른 얼굴이다.
“우선, 모든 말을 시작하기 전에.”
지금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서로가 마주한 참이 아니다. 서로 조율한 만남도, 또 갑작스레 바뀌어 대기표를 받은 만남도 아닌 지금.
어떤 말을 꺼내올까. 곧장 전했던 서신에 담긴 본론이 나올 거란 기대와 달리.
남궁헌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이어지는 말로 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석가장에 깊은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소.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남궁이 큰 무례를 저질렀소. 대문까지 나서서 초대한 손님을 맞아야 했던 게 예의임을 모르지 않소. 이에 깊은 사과를 표하고 싶소.”
당황스럽다.
저 말을 듣는 순간 느낀 건 그런 감정.
그렇지 않나. 다른 무림인들과는.
‘목숨을 건 내기에, 금나수 패대기···.’
로 시작되었던 게 지난 첫 만남들.
유명 무림 문파의 인물이 이렇게 정상적이라니.
나로서는 감격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군가 확 낮춰둔 무림인에 대한 기대치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어휴. 왜 매화가···.’
눈앞에 헛것이 보여 손을 조금 휘적거렸다.
“석가장은 남궁의 사과를 받겠습니다. 정중한 사과, 감사합니다. 다만, 자리에 계시지 않은 분들께서 이런 사정을 모르실까, 조금은 겁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사과가 전해진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진심을 담은 사과라면, 체면이나 상황을 따지지 않고 이를 받으면 그만이다.
이 자리에 석가장의 행수로 나선 이상 과례(過禮)는 내가 속한 곳을 낮추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제아무리 중원제일세가라지만, 받아야 할 건 받아야 한다. 물론, 소개한 당문에 대한 사과도 말이다.
내가 덧붙인 말은, 당문을 이르는 말이었다.
“음. 당문을 말씀하시는 거구려. 물론, 당문에도 내 큰 결례를 범했소. 이 역시. 당문에 직접 사과하겠소이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주님.”
뭐, 서로에 대한 인사치레야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잠시간 찾아온 침묵.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석가장과의 일이야···. 나눌 이야기가 적지 않은 걸 알고 있소. 다만, 지금은 이게 먼저일 거 같아 그를 조금 미루려 하오.”
– 휘릭.
곧장 본론이다.
남궁헌은 자신의 앞에 내가 보낸 서신을 펼쳐냈다. 서신에는 단순한 말만이 적혀있다.
위기가 온다면, 주변에 도움을 구하란 일반적인 말. 그게 전부였다.
허나, 내가 보낸 건 서신만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덧붙인 말에 있는 법.
이미 한 번 겪어서 알지 않겠나.
중요한 건 전해지는 서신이나 칙서 따위가 아닌 이를 가져오는 사람.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있다는 걸.
단순한 서신도 치수(治水)란 단어와 비가 와도 젖지 않으면 된다는 말과 합쳐진다면 이는 남궁의 상황과 딱 맞게 된다.
지금 상황에 놓인 남궁헌이라면 이걸 모를 수가 없을 거라 여겼다.
“이 서신에 적힌 말과 들려온 말이 우릴 도울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소만. 그게 옳은 해석이겠소?”
“옳게 보셨습니다.”
“어찌하여? 석가장이 왜 이런 말을 내게 전한단 말이오? 난 다른 무엇보다, 그걸 먼저 묻고 싶소.”
남궁헌은 직설적으로 물어오는 말에 직설적인 답을 들려주니, 곧장 속에 든 말을 꺼내왔다.
사과를 전할 때도, 인사를 건넬 때도 볼 수 없었던 진중한 눈빛.
점잖지만, 힘을 주고 부릅뜬 그의 눈이, 속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난 이럴 때 어떤 답을 들려줘야 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상대가 본론이라면, 나도 본론이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인은 이득을 볼 수 있는 일이라면 나서야 합니다. 석가장의 행수인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 있고, 이득을 볼 수 있다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의 꾸밈도 없이 남궁을 찾아와 도울 수 있단 말을 전한 이유를 들려줬다.
남궁헌은 잠시 굳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쓰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소이까?”
“답이 되었을지요?”
답은 되었을 거다. 오히려 어쭙잖게 무림의 대의를 위한다느니, 관아의 횡포를 참지 못한다느니.
또, 남궁을 존경한다느니. 그런 말을 했다면 믿음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애초에 거짓이고.
차라리 패를 전부 열고 처음부터 속을 보여주는 것. 그게 지금은 옳은 방법이다.
누군가의 위기는 다른 이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이들 역시 이를 모르지 않을 거다.
그렇기에 이럴 때 다가오는 유혹에는 언제나 의심이 짙을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보다는, 애초에 속을 보여주는 게 이런 의심을 옅게 만드는 방법이다.
“충분했소. 오히려 다른 달콤한 말보다 훨씬 담백했고. 그래서 믿음이 가는 말이오. 듣던 대로요. 소정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구려.”
“당 소저께서 그런 말도 전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내 그 아이를 조카처럼 여긴다오. 숙부에게 못할 말이 무엇이 있겠소? 별별 이야기야 다 있었소이다. 그대에 대한, 여러 말도.”
“어떤 말일지, 궁금합니다.”
“그건···. 모든 일이 끝나면. 차차 나눠봅시다. 내 그래서 그대를 청한 것도 있으니.”
남궁헌은 차차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을 전해왔다. 이는, 석가장이 내민 손을 잡겠다는 뜻일 터.
도와달란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았다. 그래도, 의사를 전하기에는 충분한 말이다.
이를 두고, 남궁이 두말을 하진 않을 거다. 제아무리 곤란한 상황이라 해도, 남궁은, 남궁이니까.
이제는 일을 도와주고, 적당히 거래에서 좋은 조건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일이 얼른 끝나야겠군요.”
“해서, 어찌하면 좋겠소? 내 시간이 많지 않아. 이를 바로 듣고자 하오. 사정은, 이미 알 거라고 믿겠소.”
사정이야 알고 있으니, 남궁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한 걸 거다. 남궁헌은 그를 모르지 않았다.
구구절절한 사정을 저 말로 대신하는 그였다. 말 속에는 남궁의 뒤를 알아본 걸 묻지 않겠다는 뜻도 들어 있었다.
“듣기로는 지사 대인께서 제일 많은 행패를 부리는 게 저녁때라고 들었습니다. 맞는지요?”
“흐음···. 밤낮을 가리지 않소. 다만, 술이 들어갔을 때는 더욱 거세지고. 또한, 그 술자리에서 오가는 말도···. 주로, 행패는 거기서 이뤄지고 있는 게 맞소.”
모욕이 오갔을 거다. 이런저런 트집도 있었을 거고.
그걸 그대로 참고 견딘다는 게 이들에게는 큰 곤욕이다. 반대로, 내가 전문으로 다루는 게 이쪽 부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난 이를 노리고 들어왔다.
“혹, 그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면. 그게, 남궁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
“그게, 무슨 뜻이오? 그 시간이 줄어든다니?”
남궁헌은 씨익 웃으며 물은 내 말에 깜짝 놀라며 크게 반응했다.
술자리에는 어쩔 수 없이 세가의 인물들이 함께해야 한다. 옆에서 꾸준히 버티며 모든 걸 받아내야 하는 시간이란 말.
그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괴롭힘을 당하는 게 비약적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된다.
반응을 보아하니, 이건 제대로 찾아온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남궁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들려줬다.
“앞으로 남은 기간, 매일 밤. 제가 지사 대인을 한시진 안에 재워드리겠습니다.”
***
“영몽, 청영, 백주, 설탕, 계피···. 제대로 준비된 거 같군요.”
“흠. 정말 이것들이면 되겠소?”
지사 대인을 매일 밤 빠르게 꿈나라로 보내버리겠다. 그런 말을 듣고는 남궁헌은 한참이나 고민에 빠졌었다.
허나, 답은 정해져 있는 법.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가 한 말이라면, 헛소리라 치부할 수도 있었던 말이다. 헌데, 말을 뱉은 이가 누군가.
술로는 현재 중원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지 않나. 술로 깨달음을 얻게 돕고, 사람을 살리고, 보름을 닷새로 만들고, 거기에 이제는 여름을 지나는 술까지 만든. 그런.
이런 말을 당 소정으로부터 모두 들은 남궁헌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번 일은 남궁세가에 위험성이 전혀 없는 일이다.
실패하더라도 그저 중원에서 유명한 술 장인을 모셔와 지사 대인을 대접하는 것일 뿐.
시도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거래에서 손해야 보겠지만, 며칠의 곤욕을 넘길 수만 있다면, 그건. 이들에게는 손해도 아닐 거다.
“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최대한으로 구해주십시오. 기왕이면 백주가 좋겠습니다.”
“술은 넘쳐나오. 다만, 지사 대인이 두주불사(斗酒不辭)라는 게 조금 걸리오만. 제아무리 백주라도, 통하겠소이까?”
“술을 담는 단지가 크다면, 더 많은 술을 부으면 될 뿐입니다. 그건, 걱정하실 부분이 아닙니다.”
“그게 쉽겠소?”
“어려우니, 제가 나서는 거지요.”
“흐음.”
무얼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다. 술이야 자신이 조절하며 마실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거절하고 행패만 부리면 그만이고.
허나, 이런 것까지 모두 다룰 수 있는 게 바텐더란 이들이다.
남궁헌의 걱정과 달리 지사 대인이란 자는 내가 건넨 술을 제 손으로 술술 넘길 거다.
취해간다는 사실도. 주량이 얼마 남지 않았음도 모르는 상태로 계속.
“알겠소이다. 내, 이 공자를 믿겠소. 더 필요한 건 없겠소? 뭐든 말씀하시오.”
“우선, 하루는 이 정도면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장원에 따로 준비한 것 역시, 이틀이면 쓸 수 있을 겁니다.”
“이걸 위해 따로 준비를 했다는 말이오?”
“마침, 손에 들어온 게 있어 운이 좋았습니다.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정보를 모으며 장원에서 머물 때도 이를 대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건 조금 뒤에 쓸 수단. 첫날은 다른 수로 시작해 보려 한다.
“아. 그리고 얼음이 필요합니다.”
“얼음을? 이 한여름에?”
“합비에는 빙고가 없는지요?”
“음. 빙고는 있소. 다만, 얼음이 남아있을지는 사람을 보내봐야 알 수 있을 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곧장 사람을 보내리다.”
얼음도 꼭 필요한 재료 중 하나다. 바텐더가 자유로우려면 얼음이 왜 필요하지 않겠나.
뭐, 그래도 얼음에 대한 걱정이야 없다. 이건 내가 익힌 무공을 믿는 건 아닌 말.
아직 난 얼음을 얼리는 경지까지는 닿지 못했다.
대신, 내가 믿는 거라곤.
‘저 사람도···.’
초절정의 고수란 사실.
관아에 뚜드려맞아 조금 초라해 보여도 확실히 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도는 진효풍급이다.
그렇다면, 짜내면 얼음이 나온다는 결론은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다.
‘남 좋은 일 시키는 것도 아니고.’
자기 일을 돕는 건데, 그걸 거절하겠나.
얼음에 대한 걱정은 없다.
그렇게 여러 준비를 거치니, 어느덧 남궁에게는 공포스러운 밤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진상을 상대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