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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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 공자···? 설마···?”
딱 저녁 주연을 시작하기 얼마 전. 재료를 하나 더 준비해달란 말에 남궁헌의 얼굴에 큰 당혹감이 드리웠다.
슬쩍 한 발을 뒤로 물리는 모습이 당당한 자태는 아니었다.
“하셔야 합니다.”
“···그게 가능하다는 보장이···”
“이미, 경험으로 확인한 바입니다. 당 소저께 들으신 적이 없으신지요?”
“그런 말은 못 들었소만···.”
“진 대협은 가능하셨습니다.”
임상 경험이라면 충분하다. 두 번이나 짜낸 적이 있으니까. 이쪽도 이제는 내 전문 분야.
당금의 중원에서 한기를 뿜어 얼음을 얼리는 건 나보다 잘 아는 이가 없다.
아니, 애초에 초절정 고수를 데리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없는 걸지도.
“두 번 정도 뽑으셔야 할 겁니다. 집중하시고, 필요하시다면 단약도 드셔두시지요. 처음에는 조금 오한이 들 수도 있습니다.”
남궁헌은 사람을 급히 보내 합비에 있는 큰 빙고 몇 개를 돌았지만 얼음을 구하지 못했다.
남들이라면 포기할지도 모를 상황. 하지만 내 사전에 얼음 없는 바텐딩이란 없다.
단약을 잔뜩 먹여서라도 필요한 만큼, 얼음을 짜내야만 한다.
“남궁에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
뭐, 일가의 가주라면 때로는 원하지 않은 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남궁헌은 세가를 위한 일이란 말에 드디어 앞으로 나섰다.
내가 그에게 내민 물 항아리는 생각보다 컸다. 이건 소주때처럼 단 몇 잔을 만들기 위한 건 아니었으니까.
“하아아앗!”
우렁찬 기합이 들려오고 이내 쩌저정! 하면서 항아리 속의 물이 얼어갔다.
전해지는 기운은 내게 익숙한 한기들. 겉으로야 싫은 척을 했지만, 마음을 먹고 나서니 과연 고수는 고수다.
‘오. 성능 좋네.’
“이, 이쯤이면 되겠나···?”
“충분합니다.”
같은 과정을 두 번 정도 반복한 후에야 남궁헌은 떨리는 다리와 함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가 익힌 무공 역시 명문가답게 한기와는 거리가 먼 쪽. 반대의 기운을 뿜고는 오한이 들린 모습이다.
‘앞으로 매일 해야 하는 건데···.’
그건 말해주지 않는 게 좋겠지. 뭐, 일단 오늘은 이렇게 넘어가기도 했다.
준비는 이제 끝났다. 진상만 자리에 앉으면 그만.
여러 재료도 모두 도착했고 머물던 장원에서 필요한 것 역시 챙겨왔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
연회를 위해 마련된 별채에는 거나한 술상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진수성찬(珍羞盛饌)과 산해진미(山海珍味), 그리고 고량진미(膏粱珍味)가 식전방장(食前方丈)으로 펼쳐지는 모습.
겉으로 보기에야 아무렇게나 음식이 차려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허나, 이는 착각.
화려한 음식 속에도 의도는 숨어 있다.
속을 풀어줄 수 있는 든든한 음식은 빼고, 더부룩함과 느끼함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을 더하도록 했다.
당연히 술을 제외한 차나 물도 치웠고.
음식에서 부담감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손은 술을 향할 거다. 앞서 먹은 음식도 속을 풀어주는 기분은 주지 않을 터.
이건, 마리아주 또는 페어링이라 불리는 술과 음식의 조화를 적절히 반대로 펼쳐낸 거다.
본디라면 잘 어울리는 음식과 술을 매칭하는 게 마리아주이자 페어링.
이번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만을 엮어 오히려 취기를 빠르게 올릴 거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를 재우기 위해서.
그렇게 잘 차려진 음식들 옆으로 자리를 잡고 섰다. 마치, 나도 차려진 음식 중 하나인 것처럼.
오늘은 그래도 된다. 그러기 위해 여기에 온 거니까.
“통정사 지사, 고성방 대인께서 들어오십니다.”
잠시 후, 진상의 입장을 알리는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상을 잔뜩 꾸기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남궁헌.
남궁헌의 주변에 앉은 가신들 역시 표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표정은. ‘드르르륵.’ 하는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일시에 펴졌다.
“흐으으음.”
– 쿵. 쿵. 쿵.
“오셨습니까, 대인.”
거친 발소리와 함께 덩어리의 사내가 입장했다. 보이는 건 배가 잔뜩 튀어나온 하나의 살덩어리.
얼굴에는 잔뜩 찌푸린 인상이 붙어있어, 무언가가 몹시 언짢아 보였다.
아마, 일부러 저런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잘 차려진 상을 한 번 쓰윽 훑고는 인사 대신으로 입을 열었다.
“쯧! 내 음식을 이리 많이 차리지 마시라 하지 않았소? 올해도 북방은 필시 흉년일 터인데 조정의 관리와 명문 세가가 이런 사치를 부린다면 누가 백성을 구휼하겠소? 천하의 남궁가가 이리 안일해서야···. 쯧쯧.”
그는 들어서자마자 곧장 혀를 차며 투정을 부려왔다. 듣기에야 민생을 걱정하는 말로 들려도 진심은 들어있지 않은 말이다.
그의 몸이 사치를 표현하는 그 자체였으니까.
거기에 이건 그저 트집 잡기다. 소박하게 차렸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트집거리가 되었을 터.
남궁으로서는 그저 말이 덜 나올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욕을 먹어도 잘 차리는 게 나았을 거다.
“고 대인. 자리를 준비한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허나, 북방의 흉작을 맞이한 이들도 자신들의 사정을 생각해주는 관리가 배를 곯는 걸 원치는 않을 겁니다. 작은 정성이나마 드셔주시고, 이를 위해 힘을 써주시지요.”
“흠. 뭐. 남궁가의 총관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내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기는 하겠소이다만. 흠. 조심들 좀 합시다. 명문 세가란 이들이. 크흡.”
나오는 트집에 곧장 반응한 건 남궁가의 총관이었다. 가주 대신 일선으로 나아가 모든 걸 받아내는 그.
아마, 이건 정해진 수순이었을 거다. 저런 말을 뱉어야 지는 척 고성방이 자리에 앉을 테고 모든 게 시작이니까.
총관이라고 원해서 뱉은 말은 아닐 거다. 저 말조차 뱉지 않는다면, 더한 지옥의 시작이다.
둘러보니 총관의 대처도 나쁘지 않고 모인 가신들도 받은 모욕을 잘 참아낸다.
가신들의 수가 생각보다 적다고 여겼더니, 남궁가에서 이미 손을 쓴 모양.
다혈질에 손부터 나가는 인사는 모두 배제된 지금이다.
만약, 그런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그때는 남궁도 휘청거릴 테니까.
– 끼익.
– 투웅.
육중한 소리를 내며 고성방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앉은 즉시 차려진 요리부터 살펴보는 그.
입가에는 침이 고여 아래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사치라 부를 때는 언제고.
자연스레 잔을 들어 술부터 찾는 그였다.
“고 대인. 오늘은 대인을 모시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이 자리에 불렀습니다.”
한 손으로는 음식을 입에 집어넣고 다른 손으로는 잔을 들어 남궁헌에게 까딱거리던 고성방.
그런 고성방에게 남궁헌이 살짝 포권하고는 준비된 말을 읊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인물은 바로 날 말한다.
– 탁. 탁. 탁.
“새로운 인물?”
저건, 괴롭히기 위해 무례한 걸 넘어 그냥 버릇이 없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행위가 고성방에게서 펼쳐졌다.
젓가락으로 술잔을 툭툭 치며 한 잔 따라보라는 그의 모습이 나조차 피가 끓을 정도다.
이걸 참아야 한다라. 북경의 당파 사이에 잘못 끼어든 바람에 겪는 일이지만, 남궁의 시련이 생각보다 거세다.
남궁헌은 내게 슬쩍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술을 따라도 되냐고 물어왔다.
이 자리에서 모든 술은 내가 통제하기로 약속된 지금. 한 잔 정도는 괜찮다.
오히려 그대로 들이켠 첫 잔이 내게는 도움이 될 터. 난 그에게 괜찮다는 신호로 답했다.
– 조르르륵.
– 홀짝.
“대인께서도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혹, 화산검협(華山劍俠) 진효풍을 아십니까?”
남궁헌은 온갖 인내를 펼치며 한 손으로 내민 고성방의 잔에 술을 부어갔다.
맑은 백주가 부어져도 여전히 시선은 음식에 고정한 고성방. 그는 입으로 음식을 연신 넣으며 건성으로 말을 듣고 있다.
“진효풍이라면, 아! 그 화산괴협?”
– 와그작. 와그작. 우적. 우적.
“그런 이명으로도 유명하지요.”
“으음. 쩝쩝. 알고 있소. 그자가 왔소? 왜?”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그자가 이번에 항주에서 경지를 넘었습니다. 주루에서 오기조원을 이뤘다고. 그때 깨달음의 계기를 준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한 잔의 술이었다고 합니다.”
– 쿵쿵쿵! 꿀꺽!
제법 흥미 있는 이야기가 나와서일까. 고성방은 자신의 가슴을 치며 음식을 삼키고는 백주를 삼켰다.
알싸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표정을 찡그리는 그였다.
“크흐! 독하군! 아, 내 들어본 적이 있는 거 같소. 공중부양을 시킨 술이라던데. 허. 무림의 인사들도 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가져다 붙이길 좋아하오. 허허. 궁금은 하더이다.”
지저분하다. 입에 음식을 집어넣으며 시선도 맞추지 않고 잔도 부딪히지 않는 고성방.
보는 이들이 표정을 찌푸리기 충분한 모습이지만, 감히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자리의 시련이다.
나오는 말조차 무림인에게 불순해, 가신들이 잔으로 서둘러 입을 가렸다.
“···그때. 검협에게 술을 타 준 신비한 주루의 관리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요?”
남궁헌은 꾹 참으며 애써 말을 이어갔다. 무인의 절제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
난 속으로 그를 응원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다음은 내게 맡기라고.
“설마?”
“예. 대인. 그때, 그 술을 만든 관리인을 제가 이리 데려왔습니다. 이 공자. 나와주시오.”
딱, 원하던 반응이 나오자 남궁헌은 곧장 날 불렀다. 난 그제야 구석에서 몸을 빼 고성방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고성방은 잔뜩 흥미가 차오른 눈으로 날 훑었다.
‘무림을 적대한다고는 해도···.’
관심이 없을 수는 없겠지.
난 그렇게 생각해 일부러 내 소개를 거창하게 할 걸 부탁했다. 이 역시 하나의 작전이다. 어떻게든 저 고성방이란 작자의 관심을 남궁헌이 아닌 내게 돌리려는 작전.
“자네가?”
“예. 대인. 항주, 석호루에서 일하는 이정환이라고 합니다.”
“으음. 석호루. 내 들어본 적이 있지. 음. 자네가 오늘 내게 술을 올릴 건가? 어떤 술을?”
“맛있는 술을 올려야지요, 대인.”
“흠. 맛있는 술이라. 거, 말이 조금 통하는 자로군! 응당, 술이란 맛있어야지. 남궁의 인사들이 술을 몰라, 내 영 불편하던 차에 잘 되었군.”
“그뿐만이 아닙니다. 오직 저만이 만들 수 있는 술들을 올리겠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절대 마실 수 없으실 겁니다.”
“오직 자네만이 만들 수 있는 술···?”
난 달콤한 유혹을 연신 뱉어가며 고성방을 유혹했다. 북경에서 관직에 나간 자가.
또 저런 몸매를 가진 자가. 어찌 진귀하다는 술을 마셔본 경험이 적겠나.
그런 이에게 전할 수 있는 미끼는 여기가 아니면 마실 수 없다는 것.
난 이렇게 잔뜩 밑밥을 뿌려두고는.
“예. 대인. 대신, 술을 섞어야 합니다.”
조금은 위험한 고비를 맞이했다.
여긴, 중원이다. 술을 섞는 걸 극도로 혐오하는 곳 말이다.
하지만.
“흠. 그 정도야. 화산검협이 마셨다는 술도, 당연히 섞은 술이겠지?”
“그렇습니다. 대인.”
이미 달콤한 유혹 속에서 허우적대는 고성방에게는 이는 중요치 않은 일이었다.
진귀하다지 않나.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지 않나. 거기에 이미 섞어 마신 이가 있다는 말까지 들으니.
그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야. 허나, 술을 섞는다는 건 일반적이지 않은 일. 혹여라도 어쭙잖은 술이 나오거든, 경을 칠 각오는 되어있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인.”
참, 쉬운 사람이다. 잠시 손바닥 위에서 굴려보고 느낀 감정은 그것.
찌르면 찌르는 대로 반응이 온다. 어딜 찌르면 어떤 반응이 올지 빤히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남궁 같은 올곧은 곳에는 더욱 힘든 이가 이 고성방일지도 모른다.
정면으로 맞서는 게 늘 능사는 아닌데 말이다.
“준비하겠습니다.”
이제 고비는 전부 넘겼다. 그렇다면, 남은 건 술로 저 덩어리를 재우기만 하면 될 터.
준비도 완벽했다. 차분히 하나씩. 계산하고 계획한 순서에 맞춰 준비한 술을 제공하면 그만.
난 여러 술과 재료를 모두 꺼낸 뒤 늘 가지고 다니는 가죽 가방에서 바툴을 꺼내 들었다.
내가 제일 먼저 준비한 건 셰이커. 오늘의 첫 주자는 이 녀석이다.
“호오? 그건 무엇인고?”
“술을 섞을 도구입니다.”
“술을 도구까지 써가며 섞는 건가?”
“예. 대인. 제가 지냈던 서역에서는 그랬습니다.”
“서역?”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전 서역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물론, 술을 섞는 것도 거기서 배웠습니다.”
“그랬었나! 어쩐지! 중원과는 완전히 다르다 했더니!”
“이제는 대인께서 아시는 것이지요. 북경에서도 아마 이런 경험을 하신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서둘러라! 얼른!”
서역이란 말까지 나오니, 이제 고성방은 내가 뿌린 말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남궁헌은 아마 이때쯤 눈치챘을 거다. 고성방의 행패와 꼬장이, 자신을 향하지 않은 지 제법 되었다는 걸 말이다.
간단한 트릭이다. 바텐더가 자주 쓰는 방법이고.
가끔은 그런 사람들이 있다. 바에서 싸우는 이들. 이들을 다루는 바텐더의 스킬은 뭐가 있을까.
말리는 것? 나가라 쫓아내는 것? 나쁘지 않다. 다만, 이는 최후의 수단.
내가 있는 업장에서는 주로 지금 같은 방법을 썼다. 다른 상대에게 신경을 쓸 틈을 주지 않는 것.
새로운 술을 보여주고 현란한 동작을 보여주고, 또 재밌는 말을 연신 걸어간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누군가의 주의를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말로 시선을 모아, 남궁헌에게서 고성방을 떼어냈으니 이제는 술로 시선을 끌 차례다.
난 일부러 더 빠른 동작을 펼쳐 재료와 셰이커를 준비했다.
– 탓. 탓. 탓.
– 딸각. 딸각.
하며 소리를 내는 셰이커. 고성방은 연신 신기한 눈빛으로 이를 따라다녔다.
남궁을 향해 행패를 부리는 것도 잊고 말이다.
이제 술만 먹이면 그만이다.
간단히 재료 몇 개를 셰이커에 담고는 얼음마저 더했다.
– 턱.
하며 닫히는 셰이커.
셰이커를 딱 내 눈과 인중 사이로 올려 들자, 고성방의 시선 역시 이를 따라왔다.
난 이를 즐기며 곧장 셰이커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