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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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공자 되시오?”
날 찾아온 거지는 사뭇 근엄한 자세로 나무에 기대어 내 이름을 불러왔다.
허리에 보이는 포대는 일곱 개. 어제 석호루를 찾았던 오삼이 말했던 그 칠결개로 보였다.
‘천수식개(千手食丐).’
분명 그런 이름으로 불렸었다.
별호에 ‘식(食)’자가 들어가는 거지라니.
어떻게 살아왔을지는 안 봐도 훤할 정도다.
적당히 큰 덩치에 큰 머리. 그리고 험악한 인상이 짧은 머리에 잘 어울려 현대로 치면 조폭 정도는 되어 보이는 인상이다.
“그렇습니다. 누구십니까?”
“나, 개방의 천수식개(千手食丐), 홍구요.”
홍구라 자신을 소개한 거지는 죽봉으로 바닥을 짚고는 어깨에 한 손을 올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어제 오삼이 보여준 것과 같은 모습. 철환에게 듣기로는 개방 고유의 인사법이라고 했다.
표정은 떨떠름하지만, 할 건 다 하는 그다.
“석호루 관리인, 이정환입니다.”
상대가 인사를 전해오니, 여기서도 초장부터 나쁜 말이 나갈 필요는 없다.
난 가볍게 포권하며 그에게 인사를 전했다. 여전히 떨떠름한 눈빛이 날 향하고 있었다.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라.’
난 홍구를 바라보며, 그가 날 찾아온 시기를 살폈다. 어제가 아닌 오늘. 그것도 석호루와 석가장이 아닌 지역에서 날 만나러 그.
이건 많은 걸 시사하는 행동이다. 적어도 내가 전했던 말에 숨은 뜻을 홍구가 알아들었다는 것이며, 전한 으름장 역시 제법 통했다는 뜻일 거다.
흥분을 감추지 못해 달려온 거라면, 전날 밤이 딱 알맞았지 않겠나.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저들도 적극적으로 나올 상황은 아닐 것이다.
‘양심이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난 그렇게 파악하기로 했다.
“어제 개방의 제자가 과한 선물을 받아왔기에 내 인사차 들렸소.”
“과한 선물이요?”
“아주 비싼 소금을 듬뿍 뿌려주셨다던데.”
“예. 그랬지요. 잘 전해졌다니, 다행입니다.”
“어찌 그러셨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기에 그리하였습니다. 제가 있던 곳에서는 말도 안 되는 걸 쫓아낼 때 소금을 뿌리곤 합니다.”
“허어.”
전해지는 말은 날카롭진 않아도 고운 말들은 아니다. 그저 어이가 없는 사람처럼 말을 전해오는 홍구.
실제로 어이가 없는 건 이쪽인데, 저들의 상식은 이쪽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모양이다.
홍구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교차했다.
“개방은 거지들의 방파요. 거지가 동냥에 실패하면 어찌 되는지는 아시는 거요?”
“어찌 됩니까? 자존심이라도 상하는 겁니까?”
“설마. 거지에게 그런 게 어디 있다고. 침도 맞고 매도 맞고 소금도 맞는 게 거지란 이들이오. 그런 것쯤이야.”
전해지는 말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말. 홍구는 자신들이 전했던 말이 동냥임을 인정하며 내게 말을 건네왔다.
자존심이라도 상하냐는 말에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 그였다. 너무도 당당해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허면, 어찌 이리 저를 찾아오셨는지요?”
“내가 찾아온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란 거요. 내 이 공자께서 서역 출신이라 중원 거지를 잘 모르는 거 같기에 미리 알려드리러 온 거요.”
“무엇을?”
“중원의 거지는 한번 동냥이 실패하면 밥줄이 끊긴다는 걸 말이오. 그러니 어찌해야겠소? 줄 때까지 쪽박을 들이미는 수밖에.”
“그 말씀은?”
“앞으로 우리가 쭈욱. 그것도 자주. 볼 수 있다는 말이오. 그대의 대처에 따라. 내 그걸 알려드리러 왔소.”
“예컨대, 석호루 앞에서 드러누우면서 말씀이지요?”
“이미 우리 영업 방식에 대해선 들으신 모양이구려.”
하.
이것 봐라.
전해지는 말은 가슴이 옹졸해지는 협박이다. 이제야 제대로 대화할 마음이 있나 했던 생각도 잠시.
눈이 감기고는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이게 통할 거라 생각한 걸까.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난 곧장 그렇게 해보란 말로 그의 졸렬한 협박을 받아쳤다.
“뭣, 뭐요? 방금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이오? 중원 말을 못 하나···?”
“다 알아들었습니다. 석호루 앞에 드러눕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매일. 그것도 사람을 바꿔가며. 그렇게 하시란 말입니다.”
!
“······.”
단호한 반응에 홍구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만다. 사람이 저렇게 얼굴에 반응을 곧장 표하기도 쉽지는 않을 텐데.
그의 얼굴에 당혹감 그 자체가 아렸다.
‘어디서 뻥카를.’
솔직히 말하자면, 저 가슴이 옹졸해지는 선언은 내게 아무런 타격이 되질 않았다.
물론, 준비한 한 수가 있긴 하지만, 그걸 빼고 보더라도 오늘은 그랬다는 말이다.
만약 천수식개가 어제 찾아와 저런 으름장을 놓았다면. 또, 어제 바로 방도를 끌고 와 석호루 앞에 누웠다면.
그랬다면, 조금은 두려워하고 조금은 어려워했을 수도 있다.
헌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상대가 정해준 말을 다 지키며, 또 상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알려주며 겁을 주는 법은 없다.
저런 식으로 겁을 주며 나서는 이들은 허장성세인 게 대부분이다.
‘하루 동안 고민하고 움직인 사람이다. 절대 감정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란 말이겠지.’
정말이지 생존이 걸린 문제였고 개방이 본격적으로 나설 생각이었다면 협박할 필요 없이 그대로 드러누우면 그만이다.
관도 무섭지 않고 석가장과 껄끄러워질 것도 걱정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건 이유가 있을 터. 지금은 알 수 없어도 내게는 유리한 상황인 게 분명했다.
“···관을 믿고 그리 당당하신 거 같소만. 십만 방도의 개방을 관이 함부로 건드릴 수 있을 거라 보시오?”
“예. 저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서역 출신이라 중원의 생리를 모르는군···.”
“잘 압니다.”
“못해도 칠주야는 영업을 못 할 텐데?”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가 관병을 부르면, 하루에서 이틀. 그 사이에 개방도는 싹 다 잡혀갈 거 같습니다만?”
“허.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였나!”
홍구는 나오는 내 말을 듣고는 세상 물정을 모른다며 혀를 찼다. 반대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 거지들이다.
“아뇨. 잘 압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시죠. 제가 언제 십만의 개방 방도를 모두 상대하겠답니까? 항주에 있는 개방 거지만 잡아들여도 석호루는 편할 게 아닙니까?”
“그건 가능할 거 같소?”
“가능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거지들이 석호루에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전 양조장 문을 닫아버릴 겁니다.”
“허. 그게 그거 아니오!”
거지가 나타나는 순간 양조장의 문을 닫겠다. 그런 엄포에 홍구는 그렇게 영업을 못 하나 안 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전한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뭐, 내가 나서서 이해시켜 줄 필요는 없다.
난 입을 닫고 그가 방금 들은 말을 곱씹을 때까지 기다렸다.
“···잠깐. 양조장? 석호루가 아니라, 양조장?”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는 홍구.
행패야 석호루에서 부리겠다는데, 어찌 양조장의 문을 닫는다는 걸까.
그는 또 눈알을 굴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양조장이야 오가는 손님이 없으니, 거지가 드러눕기에 좋은 곳도 아니지 않나.
오히려 석호루를 닫고 양조장에서 수익을 뽑겠다는 말이 더한 엄포처럼 그에게 보일 수도 있다.
허나, 이건 저들이 거지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가진 게 없고 그렇기에 백성이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사는 삶의 무게를 모르기에 그런 것.
아마 백날을 던져줘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찌, 양조장이란 말이오?”
“그게, 더 효과적일 테니까요.”
“효과적?”
– 씨익.
영문을 알 수 없다며 재차 묻는 그에게, 난 진득한 웃음과 함께 이유를 들려줬다.
“양조장이 문을 닫으면, 관병은 개방의 방도를 하나도 남김없이 잡아들일 겁니다. 이건, 제가 장담하죠.”
“그게 무슨···?”
“주세(酒稅)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내가 가진 최후의 수단은 간단했다. 직장을 폐쇄하는 거다. 여기서 폐쇄할 직장은 석호루가 아닌 양조장.
양조장은 술이 나오는 곳이다. 술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품목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양조장은 나라에 세금이란 걸 낸다. 그리고 이 당시 중원의 주세(酒稅)는.
‘술을 만드는 양에 따라 세금이 달라졌지.’
술을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세금이 계속해서 쌓이는 구조였다.
“주, 주세···?”
“항주 전역을 뒤져보십시오. 대석양조장보다 세금을 많이 내는 곳이 있는지. 대석양조장이 칠주야만 문을 닫아도 항주의 세수(稅收)는 크게 떨어질 겁니다. 그걸, 지부 대인이 보고만 있겠습니까?”
!!!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세는 무겁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무거운 세금이었는데, 이는 술의 특성 때문이었다.
술이란 건 ‘나라’의 틀이 갖춰진 이후로는 철저히 국가의 통제를 받았던 물품이다.
이건 서양, 동양을 막론하고 같았던 것.
이유야 간단했다.
술의 재료가 무엇인가. 다름 아닌, 곡식이기 때문이다.
곡식은 곧 군량미요, 군량미는 곧, 국방력이다.
즉, 양조란 나라에서 다른 식으로 쓰일 수 있는 귀중한 곡식을 쓰는 것이기에 세금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
비상시에는 금주령(禁酒令)을 내려 곡식을 아껴 군량고를 채우고, 그렇지 않은 평상시에는 양조장에 강한 주세를 먹여 국고를 채우고.
국가는 그런 식으로 양조사업을 직접 관리해 왔다.
허나, 이런 관리법이 낳은 또 다른 결과도 있었으니.
풍작이고, 또 나라 주변이 어지럽지 않을 때는 반대로 양조업자의 입김이 무엇보다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주세라는 만만치 않은 세금을 국가에 내는 이가 치세라 불리는 기간에 사업이라도 접는다면 어떻게 될까.
군량미가 생겨서 기뻐할까. 아마, 그렇진 않을 거다.
오히려 세금으로 걷어 다른 곳에 쓰던 지출이 크게 줄어들게 될 거다. 당연히 이는, 국가에게 뼈아픈 손실이고.
때때로 나라가 양조업자들의 눈치를 보곤 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한때 중동 지역에는 이런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난세(亂世)는 양조업자의 지옥이요, 치세(治世)는 양조업자의 세상이니. 처음 보는 나라에 가거든, 양조장의 상태부터 확인하라. 그 나라의 상황이 보일 것이다.’
라고.
당연히 저 거지도 알겠지만, 지금은 더할 나위 없는 치세에 해당했다.
강남 지역이야 늘 미곡이 넘쳐나서 문제였고. 남아도는 쌀을 아끼는 것보다야, 우리가 내는 주세가 관에는 더욱 매력적일 것이다.
“글쎄요. 전 아닐 거라고 봅니다만. 세금 하나 안 내는 개방과 마찰을 피하느니, 지부 대인이야 세수를 늘리는 게 훨씬 나은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야 무가보다 상가에 가까우니, 명분도 저희 쪽에 있군요. 관이 참견할 명분도.”
간단히만 살펴봐도 관의 인물들이 어찌 나올지는 빤히 알 수 있다.
돈도 안 되는 거지들의 눈치를 보느라, 짭짤한 세수를 놓친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양민 백이 죽어 나가도 관무불가침 뒤에 숨는 게 관일 수 있다. 허나, 세금이 한 푼이라도 비는 순간 칼바람이 부는 게 관이란 곳.
명분도 좋지 않나.
사회 정화 사업도 되고.
양조업자가 휘두를 수 있는 칼이란, 이런 것이다.
“미, 미친 소리! 그, 그렇게 된다면! 서, 석가장의 손해도 만만치 않을 터···!”
“아. 아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석가장은 다른 도시에 팔기 위해 이미 만들어둔 술이 많습니다. 칠주야야 버티지요. 한 달도 버틸 겁니다. 허허. 혹시 일이 잘못되어 양조장과 주루가 문을 닫더라도, 뭐. 석가장이 망하기야 하겠습니까? 항주제일세가가?”
게다가 지금의 대석양조장은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다른 지역에 팔기 위해 쌓아둔 술도 많고.
당연히 그 술 덕분에 내어둔 세금 역시 적지 않다. 가만히 두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거늘.
관이 이 배를 거지들이 가르도록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성실 납세자는 응당, 보호받아야 하지 않겠나.
“그···그런···!”
세금도 안 내는 저 거지들로부터 말이다.
“그러니, 가서 원하는 대로 다 해보시라는 겁니다. 저도 그에 맞게 대처를 할 것이니.”
“그, 그···!”
머리가 나쁜 이는 아니다. 상황을 보는 눈 역시 있으니, 저 자리까지는 갔을 거고.
무공만으로 갔다면야 할 말은 없다. 허나, 그렇지는 않을 거다. 적어도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전부 이해했다고.
그는 떨리는 눈동자와 함께 어느새 내게서 몇 발치나 뒤로 물러선 모습이다.
“더 하실 말씀이 남았습니까?”
“······.”
쉽게 물러날 수 없는 일이란 건 이해한다. 거지니까. 그래, 거지들만의 세계도 있겠지.
한번 물러나면야 그게 또 저들에게는 만만하게 보이는 걸 테니까.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저들이 사는 세계에서의 이야기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맞춰줄 수는 없다.
“가보겠습니다.”
뭐, 무림인이고 고수니 열이 받아 이 자리에서 내 목을 뎅강-! 해버리겠다면야 이건 나도 방법이 없다.
그러나 어젯밤부터 보여준 모습은 그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오진 않고 있다는 것.
그래서 조금 더 으름장을 놓아봤다. 그게, 아주. 잘 먹혔고.
난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그의 곁을 스치듯 지나쳤다. 그를 지나 넓게 난 거리를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정도를 걸었을 때.
“자, 잠깐···!”
‘그러면, 그렇지.’
훨씬 유해진 목소리의 홍구가 내 옷깃을 잡았다.
눈동자는 여전히 떨리는 중.
그는 날 바라보며.
“허, 허면! 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거지 쪽박도 지키고···, 석가장과 관계도 상하지 않게 하려면 말이오.”
이제 다른 걸 물어온다.
세법(稅法)만으로는 부족한 걸까.
뭐, 뭐든 알려주지 못할 건 없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묻는다면, 가르쳐줄 수밖에.
대신, 오늘은 출근이 조금 늦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