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68
***
“이 공자? 이 공자가 여긴 어쩐 일이시오?”
주고(酒庫)에서 나와 곧장 향한 석가장의 가마터.
연신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가마터에는 공방을 담당하는 장인 황산이 연신 땀을 뿜고 있었다.
하나의 사업체를 맡은 뒤부터는 현장을 떠나는 이들도 많거늘. 여전히 현장을 지키는 황산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다.
“주병(酒甁)을 주문하고 싶어 왔습니다. 혹, 지금도 주문을 받을 수 있으십니까?”
그를 찾아와 물은 말은 술병을 하나 주문하고 싶다는 거였다. 가마터는 온갖 도자기를 굽는 곳으로 양조장의 술병 역시 대부분 이곳에서 나왔다.
“주병? 술 단지를 말하는 거요?”
황산은 소매로 땀을 닦으며 들고 있던 도구를 내려두고는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다른 행수들에 비해 그다지 친분은 없었지만, 서로 나쁜 감정이 있는 사이도 아니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술 단지와는 다른 주병으로 주문하고 싶습니다. 백자 정도가 어울리겠군요.”
“흠. 백자로 된 주병이라. 저기 구석에 놓인 창고로 가보시지 않고, 왜? 저기에 제법 많을 건데.”
“아뇨. 특별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모양이 있어서, 이리 직접 왔습니다.”
“특별하게?”
“예. 제가 생각한 도안이 따로 있어서요.”
“흠. 한번 봅시다. 뭐길래 그러시나.”
도안이나 한번 보자는 그를 잡고는 안쪽에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가진 도안이 없어 이 자리에서 그려 보여줘야 하는 상황.
황산은 한숨을 푹 내쉬었음에도 말없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걸 지켜봤다.
술을 섞는 것보다 술병에 먼저 집착하는 지금.
이번에는 술도 중요하지만, 당연히 이런 포장 역시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지 않나. 이럴 때는 가끔은 내실보다야 겉이 더 중요하곤 하다.
그리고 난 그런 겉치레를 잘 꾸며줄 수 있는 술병을 하나 알고 있다.
황실에 바치기에 딱인 그런 술병을 말이다.
“여기 아래가 조금 넓지만 살짝 각이 있게, 그리고 주둥이는 넓지 않게. 그리고 색은 청자가 좋겠네요. 백자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가능하다면 파란색으로 부탁드립니다.”
“도료를 입히면 못할 것도 없긴 하오. 그거면 되겠소?”
“혹, 금색으로 문양의 테두리를 칠할 수 있겠습니까?”
“흠. 상감(象嵌)이라면 귀찮기는 한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못 만들 도안은 아니오.”
당연한 말이다.
이건 원본 자체가 도자기였던 걸 내가 조금 차용한 것. 만들지 못할 리가 없었다.
대부분 내가 있던 곳에서 쓰던 유명한 술들은 유리병에 담겼었다. 하지만, 예외는 늘 있는 법.
그런 유리병 사이에서도 홀로 도자기로 만들어져 고급스러움을 뽐내던 술도 있었으니.
값비싼 위스키의 대명사로 꼽히곤 했던 ‘로얄 샬루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이름부터가 딱, 왕가를 위한 술처럼 보이지 않나. 이 술 역시 왕실과는 뗄 수 없는 스토리를 가진 술이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기념해 시바스 리갈로 유명한 시바스 브라더스에서 대관식에 맞춰 낸 술이 바로 ‘로얄 샬루트’.
최소 21년 숙성이란 점까지 지금과 닮은 이 로얄 샬루트는 왕가의 행사가 있을 때면 매번 때에 맞춰 특별판을 내어놓으며 한 몫씩을 단단히 잡는 술로도 유명했다.
황실에 올리는 술, 고숙성, 그리고 블렌딩.
내 머리에 이 모든 게 스쳤을 때 떠올랐던 술이 딱 이 ‘로얄 샬루트’였다.
마침 ‘로얄 샬루트’ 역시 블렌디드 위스키. 딱 맞지 않나. 해서, 이 술을 담을 주병 역시 그와 비슷하게 고급스럽게 만들려는 게 내 의도였다.
“흠. 열흘이면 될 거요. 시제품을 만들어 양조장으로 보내면 되겠소?”
“감사합니다. 충분합니다.”
“도안은 괜찮아도, 이 주병에 들어갈 문양은 적당히 손을 좀 봐야겠구려. 내 아는 화공(畫工)에게 말해 적당히 손 보리다.”
그림에는 영 재능이 없었다.
비슷하게만 살려준다면야 이는 상관없는 일.
전문 디자이너를 붙여준다니, 더욱 좋지 아니한가.
난 그런 황산을 믿고 가마터를 가벼이 떠날 수 있었다.
***
“크흐.”
지하에 자리한 서늘한 주고(酒庫).
그런 주고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안쪽에 앉아 술을 퍼 입으로 향했다.
옆에는 펼쳐진 빈 서책과 붓, 그리고 작은 잔이 함께하며 지금이 단순한 술자리가 아님을 표하고 있다.
한잔이라 부르기도 미안할 조금의 술을 마신 후 잡는 건 붓이다.
빈 서책에 방금 마신 술에 적힌 정보를 옮긴 후 그대로 테이스팅 노트를 채워갔다.
‘치는 향은 없고 스파이스랑 과실향, 꽃향까지···.’
지금 하는 건 황궁에 진상할 술을 만들어 가는 과정.
처음 계획한 ‘블렌딩’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 지금의 테이스팅 과정이다.
붓을 놓은 후 곧장 옆 단지로 향해 또 조금의 술을 퍼왔다. 많이는 마실 수 없다. 속으로 그걸 원해도, 지금은 일하는 중이니까.
난 여러 술 단지를 오가며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중이다.
“후우.”
블렌딩이란 건 별다른 게 아니다. 여러 원액을 맛보고 그 원액의 배합을 찾아내 최고의 맛을 정하는 것.
이는 현대에는 여러 술에서도 쓰이는 기법으로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을 ‘마스터 블렌더’라 불렀다.
블렌딩이란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경험과 시간이란 요소다.
경험은 블렌딩에 대한 경험과 여러 술을 접한 경험을 말할 터.
다행히 난 여러 술을 접한 경험은 물론, 블렌딩에 대한 경험 역시 있었다.
일본에서 바텐더 생활을 하던 중 술에 관심이 깊어져 잠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었다.
당시 일했던 곳은 여러 양조장과 증류소. 양조장에서는 와인을 배웠고, 증류소에서는 위스키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증류소에서 중점적으로 배웠던 게 바로 이 블렌딩.
블렌딩은 비단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에서만 생기는 과정은 아니었다.
단일 증류소에서 나오는 싱글 몰트라도 같은 증류소 원액끼리 블렌딩은 꼭 필요한 과정.
또한, 브랜디나 럼, 심지어 와인까지. 다양한 주종에서 이뤄지는 게 이 블렌딩이었다.
당연히 그 이유는 일관된 맛을 가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런 일관된 맛의 기준을 잡는 사람이 ‘마스터 블렌더’.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과정이 바로, 마스터 블렌더의 일이다.
증류소에 일할 때는 그래도 마스터 블렌더까지 올라가진 못했었는데.
아쉬웠던 경력이 중원에서야 꽃을 피우고 만다. 중원 라이프를 아주, 제대로 즐기는 중이다.
다행히 대석양조장의 백주는 그리 일관된 맛을 가진 녀석들이 아니다.
이게 중원에서야 말도 안 되게 안 좋은 점일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나름 이점일 터.
여러 튀는 맛이 가끔은 서로를 보완하기에 생각보다는 괜찮은 블렌디드 백주가 나올 것만 같다.
마침 모티브로 삼은 술인 ‘로얄 샬루트’ 역시 블렌디드 위스키지 않나.
위스키와 백주는 다르다지만, 그래도 이건 닮은 점이 제법 있는 술이 될지도 모른다.
쌀로 만든 백주, 또 그걸 블렌딩해 짬처리라도 황궁으로 보내는 술.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로얄 쌀루트?’
정도.
나만 아는 이름이지만, 딱 그 정도의 이름이 알맞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서책을 가득 채우도록 몇 날 며칠을 테이스팅 노트만 작성했다.
다음으로 이어진 건 직접 배합을 해보는 일.
“웩.”
때로는 정말이지 먹어주지 못할 맛도.
“쓰읍?”
때로는 애매한 맛도.
“엥?”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맛까지.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음. 이 정도면.”
이라는 다소 안일할 수 있지만, 딱 적당한 맛이 하나 나올 수 있었다.
튀지도 않고 뛰어나지도 않지만, 나쁘지는 않은 술. 말 그대로 특징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들어간 숙성 년수만 보자면 고급 중에도 이런 고급은 없을지 모른다.
숙성 년수가 못해도 21년은 넘는 술들만 들어갔으니까. 그게 뭐, 맛을 보장하는 건 아니어도 말이다.
어디까지나 짬처리지만, 이 정도면 어디 내어놓기 부끄러운 술은 아니라.
난 그렇게 판단하며 블렌딩을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경연에 참가할 술에 정성을 쏟은 건 이게 끝이었다.
***
“아! 그, 명주. 경사(京師)로 진상할 술은?”
처음으로 교지를 받고 한 달이 넘었던 어느 날.
주공은 집무실에서 어제 만든 황주를 기록하던 중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갑작스레 이야기를 꺼내왔다.
최근 남직예에서 크게 호응이 일어나 호북과 하남, 산동까지 과하석황주의 주문이 물밀 듯이 들어와 바빴던 와중.
맡기란 말을 전해 잠시 이를 잊었던 주공의 머리에 갑작스레 그 술이 스친 모양이다.
“완성한 지 오래지요. 이미 병입까지 마쳐서 지부 대인께 보낸 참입니다.”
“벌써 말이더냐?”
“기한이 두 달이었지 않습니까? 적어도 보름 전에는 줘야 경사로 보낼 수 있다기에 미리 줘버렸습니다.”
나 역시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열흘 정도. 딱 그 정도의 시간만을 들여 만들었던 게 ‘로얄 쌀루트’.
블렌딩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주문했던 술병들이 도착했고 난 그대로 거기에 술을 담아 이를 고급스러운 궤짝으로 넣어 구석에 밀어 두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관원이 이를 물으러 양조장을 찾았었고, 마침 잘 되었다며 수레에 그 술 궤짝을 들여보낸 게 며칠 전의 이야기였다.
“거, 어찌 한번 보여주지도 않고?”
“바쁘셨지 않습니까? 저도 정신이 없었고.”
“흠. 그렇긴 했지. 해도, 한번은 봤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찌, 술은 잘 나왔더냐?”
“그저 그렇습니다. 구색만 맞추라시기에. 대충 술병은 고급스럽게 만들어서 적당히 포장한 후 보냈습니다. 어디 가서 욕을 먹진 않을 정도입니다.”
“흠. 네놈이 그렇다면야. 뭘 만들었든 기본은 했겠지. 그, 술에 덧붙이는 말은?”
주공은 술과 함께 동봉해서 보내야 하는 술 설명에 대해 물어왔다.
경연이란 게 그렇다. 실제로 사람은 안 부르고 술만 모이는 만큼 술에 대한 미사여구 역시 글로 붙여야 하는 법.
이 역시, 내가 처리한 부분이다.
“적당히 있는 말 없는 말 붙여서 보냈습니다. 나쁜 말은 없으니, 그 역시 큰 문제는 안 될 겁니다.”
“흠. 그래?”
“그럴듯한 이야기 잔뜩 붙여서 몇 줄 적었습니다.”
“허허. 그야 그렇지. 허나, 네놈이 중원식에 익숙할까.”
“그래도 주공보다야 제가 낫지 않겠습니까? 아쉬운 말도 잘 못 하시면서.”
“오냐. 잘 처리했도다.”
술은 그 술에 따르는 스토리가 생각보다 중요하다.
생각해 보라.
오기조원주가 히트한 이유는 진효풍이라는 도인과의 이야기가 붙었기 때문이다.
과하석황주 역시 마찬가지. 여름을 난다는, 또 지역을 뛰어넘는다는 그런 스토리가 셀링 포인트가 되지 않았나.
이번에 만든 ‘로얄 쌀루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란 이야기는 전부 가져다 붙여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술과 함께 보냈다.
칵테일에도 이런 경우는 많았다. 때로는 맛보다 중요했던 게 이런 스토리 텔링.
누가 마셨다더라, 어떤 사건에서 나온 칵테일이라더라. 이런 의미가 있다더라.
그런 말이 붙는 칵테일이 어디 한 둘인가.
하지만, 그런 사연의 대부분은 낭설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낭설을 만든 이들은 대부분.
나처럼 바텐더였다.
‘그거야 뭐 전공이지.’
대충 황상의 은덕이 어떻고 치세가 어떠며 이건 어떤 의미고 저건 어떤 의미입니다.
조화도 넣고 평화도 넣고, 우리 황상 짱짱맨하는 그런 글. 아마 저들이 바라던 것도 그런 거였을 거다.
칵테일 대회에서도 항상 요구했던 게 이런 스토리 텔링이었다.
대회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그를 적어 넣는 게 요점.
바텐더로서 경력이 몇 년인가. 그런 대회에도 몇 번 출전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는 어렵지 않았다.
이번 경연의 요점은, 결국 황상을 칭송해야 한다는 것이었을 게 분명했으니까.
“허면, 그건 그대로 두면 되겠구나.”
“예. 장주께서도 별말씀 없으셨습니다. 잘 처리했다고만 하시더군요.”
“흠. 뭐. 혹시 아나. 속으로야 기대하고 있을지.”
“설마요. 전혀 그런 눈치는 없으셨습니다.”
“네놈이 술로야 온갖 요술을 부렸지 않으냐? 말은 그렇게 해도 모르느니라. 내심은.”
“이번은 진짜 아니실 겁니다. 저도 대충했다고 솔직히 고했습니다.”
“허허허. 혹시 또 아느냐? 이렇게 기대 없이 있다가 또 덜컥 명주라 적힌 간판이라도 날아올지.”
“하하하. 설마요. 그래도 황상께 올리는 술을 뽑는 건데, 그리 대충할까 봐서요. 하하하.”
“역시 그렇더냐? 허허허. 내 농이었느니라. 암. 말도 안 되지. 나라님 드시는 술이거늘. 허허허.”
“그럼요.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다. 하하하.”
주공과는 지나간 일처럼 명주 경연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며 하하 웃은 후 이를 신경 저 멀리 한편으로 밀어 버렸다.
이후로도 기포주가 이름을 날린 석호루하며 과하석황주를 주문하는 곳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길 두 달.
이제는 여름의 더위도 그 기승을 줄여갈 무렵.
다시금 그 술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딱 그때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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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얄 샬루트.
고오급 스카치 위스키의 대명사죠.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기념해 만들어진 술이 바로 이 술입니다.
최소 숙성 년수 21년의 원액을 블렌딩해 만들어낸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입니다.
21년의 모티브는 예포로 쏘는 21발의 포성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치와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죠. 더 글로리 라는 드라마에서는 살인 도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ㄷㄷ 비싼 살인이었네, 연진아?
마시고 싶습니다!
2. 안동쌀루트.
정확히는 로얄 안동소주 라는 이름의 제품입니다.
한창 전통주를 알아보던 중 우연히 발견했는데요 ㅋㅋ 참..재밌더라구요!
15년 옹기 숙성의 안동소주부터 제품군이 더 나와 있는 거로 확인됩니다.
유튜브 등지에서도 안동쌀루트로 유명합니다.
코리안 조커 가면이 박힌 게 무언가 광기를 나타내는 것만 같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