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69
***
“하아아아.”
낮게 깔리는 호흡을 밖으로 내뱉으니,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도 한기가 입 밖으로 나온다.
입김으로 서리는 기운이 전부 토해질 때 맞춰 발을 내디디니, 이내 풀 위를 걷는 것처럼 몸이 미끄러졌다.
– 사사사사삿!
널따란 석가장의 후원을 가르는 보법은 무흔보(無痕步).
마치 눈 위를 미끄러지듯 발은 빠르게, 또 흔적도 없이 앞을 향해 내달렸다.
– 탁.
무흔보가 내디딤을 끝내자, 단전에 자리한 기운은 다시금 손끝을 향한다.
한기를 가득 담은 열 개의 손가락이 만들어가는 복잡한 투로. 무언가를 부수듯, 낚아채듯.
그렇게 복잡한 보법 사이로 펼쳐지는 손짓은 빙옥수(氷玉手)라 불리는 무공으로, 금나수의 일종이었다.
손끝에서 뿜어지는 한기는 닿는 대상을 얼릴 것만 같고 연달아 이어지는 반대편 손의 초식은 얼린 대상을 부술 것만 같다.
이게 빙옥수의 진정한 원리. 얼리고 부순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그래서 실용적인 금나수법이 빙옥수였다.
– 휘익! 휘익! 휘익!
빙옥수가 허공을 몇 번 가른 후 펼쳐지는 건 화려한 장법이다. 손에서 뿜어지던 한기가 이제는 기운으로 발하는 순간.
대환단 덕에 쌓인 공력이 40년, 거기에 심법을 익힌 후 더욱 빠르게 쌓아간 공력까지 더해지니.
손끝에는 기력이 쌓인 게 보일 정도로 기운이 발해 펼쳐지는 장법이 예사롭지가 않다.
현천한빙심법의 한빙진기. 그 한빙진기를 가득 담은 한빙면장이 화려하게 허공을 때렸다.
– 팡! 팡! 팡!
하는 파공음에는 알게 모르게 시원한 기운이 서려 여름의 더위를 잊게 만들 정도였다.
“후우.”
차오른 한기를 다시금 한번 뱉어내고는 옆에 모셔둔 양검(良劍)을 뽑아 들었다.
진효풍이 화산으로 돌아가며 선물한 양검. 예기는 말할 것도 없고 뻗은 자태는 과연 일류 검수의 안목이 묻어있다.
난 검을 뽑아 들고는 그대로 설진팔검(雪震八劍)의 초식을 펼쳐갔다.
– 휘익! 휘익! 휘익! 쿠릉!
잔잔한 설산처럼 고요히 움직이던 중 쏟아지는 눈사태와 같이 변하는 검로(劍路).
패도적이라 부르기 족한 검로를 모두 펼친 후에야 온몸을 땀으로 적실 수 있었다.
한기를 뿜는 무공이라지만, 몸에서 땀을 뿜기는 마찬가지였다.
– 툭.
마지막으로 검을 바닥에 꽂아두고는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진효풍이 짜준 수련 코스의 마지막이 좌선.
펼친 무공을 복기(復棋)하고 그 사이에서 달라진 점을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단전에는 안정적인 진기가 들어차게 된다.
– 우우우웅!
하는 기운이 단전을 다시 채워갈 즈음. 슬쩍 감았던 눈을 뜨고는 옆에 모셔둔 단지를 하나 바라봤다.
물이 가득 찬 하나의 물 단지. 난 단전에 차오른 기운을 그대로 손으로 모아 그 단지에 집어넣었다.
– 출렁!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조금 튀긴 후.
– 사사사사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단지 속의 물이 점점 형체를 갖춰갔다.
‘살얼음이 끝인가.’
오늘도 여기까지인가. 하던 중 기운을 조금 더 불어넣어 보길 잠시.
– 쩌저저저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형체를 갖춘 물들이 그대 굳어갔다. 조금의 미동도 없는 모습.
“됐다!”
드디어 무공으로 얼음을 얼리는 것에 성공한 참이다.
재빨리 손을 빼내며 빈 곳마저 모두 얼리니 물단지가 하나의 얼음으로 전부 바뀌어 있다.
– 쨍그랑!
하고 단지를 깨어보니 선명히 보이 꽝꽝 언 얼음의 모습. 이리 봐도 또 저리 봐도.
이건 그토록 바라던 그 얼음이 확실했다.
‘크···! 드디어!’
제빙기를 찾아다니던 설움을 잊고 스스로 휴대용 제빙기가 된 순간.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초절정 고수를 찾지 않아도 된다. 물만 있다면야 쭉쭉 뽑아낼 수 있는 게 얼음.
오늘은 개방을 통해서라도, 진효풍에게 서신이나마 한 장 보내야 할 날인 것만 같다.
“이런 날···.”
한잔 안 할 수가 없지.
어떤 술을 마셔볼까.
그런 고민을 하며 땀을 닦아가길 잠시.
– 다다다다다다다.
멀리서 누군가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많이 들어본 소리.
난 어렵지 않게 발소리의 주인공이 초복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초복은 저 멀리서부터 달려온 건지 숨을 잔뜩 헐떡이며 내 앞에서 멈춰선 후 무릎을 잡고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헉, 헉, 헉···. 이, 이 공자님!”
“예. 집사님.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한잔 드릴까요?”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요! 허억, 헉. 대, 대문으로 빨리!”
“대문으로요? 어째서요?”
“와, 왔습니다요! 왔어요!”
“오다니요? 무엇이요?”
“지, 지부 대인!”
정확한 정황을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대충 초복의 말뜻은 전해졌다.
누군가 석가장을 찾아왔고, 모두가 대문까지 나서서 그를 맞아야 한다는 상황.
거기에 찾은 이는 제법 친숙한 이름인 지부 대인이란 자다. 항주부를 담당하는 지방관이며 석호루의 단골인 그.
얼마 전에는 황명까지 가져온 이가 바로, 그였다.
“알겠습니다. 장주께서는요?”
“이미 대문으로 향하셨습니다요!”
“저도 서둘러 가겠습니다.”
수련하는 동안 옆에 벗어둔 옷을 얼른 챙겨입고는 초복을 따라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에 몰려 무언가를 지켜보는 석가장의 고용인들.
그 인파 사이를 뚫고 지나가니, 이내 기다린다던 지부 대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앞에는 이전과 같이 붉은 천이 깔려있고 단마저 하나 쌓여있다.
이건, 황명을 받았을 때 양조장에서 펼쳐졌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앞으로 나서자, 기다리던 가신들과 지부 대인, 그리고 석두원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지부 대인을 등지고는 입을 뻥긋거리며 말을 물어오는 석두원.
‘대체 뭘 한 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걸까.
하고 의아하던 때.
“절강성 항주부 석가장은 들으라!”
지부 대인은 마침 내가 도착한 걸 보고는 근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교지를 펼쳐 들었다.
익숙한 모습. 약 두 달 전쯤인가. 그때 보았던 것과 같은 모습이 이번에는 석가장 앞에서 펼쳐졌다.
“석가장의 장주, 석두원. 명을 받습니다.”
시작되는 근엄한 교지 낭독.
교지는 이전과 같은 미사여구와 아부를 적당히 섞은 말을 지나더니, 이내 곧.
“···한 결과 경사(京師)에서 열린 명주 경연 대회에서!”
잠시 기억 저 멀리 한편으로 밀어두었던 무언가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말을 꺼내왔다.
그제야 머리에 떠오른, 명주 경연 대회였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대석양조장이 출품한 황찬주(皇讚酒)가 천하명주(天下名酒)에 올랐음을 알리는 바이니라!”
지부 대인은 이런 속도 모르고는 설마 하던 그 말을 곧장 내뱉어 버렸다.
듣는 이들은 일시에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뜨는 현장이었다.
속을 모르는 이들은.
– 와아아아아아!
하는 기쁨을 표하는 반응을 나타냈다.
석두원은 얼이 빠진 표정을 하며 지부 대인을 바라봤다.
내 얼굴에서도 혼이 쏙 빠진 건 이때쯤이었다.
***
“···그, 분명 대충 만들었다고···?”
떠들썩했던 교지 수여가 끝나고, 대충 상황이 정리된 석가장. 지부 대인이 돌아간 후 대석당에 모인 가신들 사이로, 석두원은 조심스레 내게 말을 물어왔다.
어느새 석가장에 도착한 주공마저 내 옆에 서서, 이게 다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어가고 있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이들이 원하는 답을 내가 줄 수 없다는 게 지금의 가장 큰 문제였다.
“···대충이라기보단, 구색 정도만 맞춘 술이었습니다. 분명···.”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내 정신이 없군.”
정말 맹세컨대, 난 그 술을 열심히 만들지 않았다. 그래, 술병 정도야 정성은 기울였다.
그건 나도 재미 반 농담 반 식으로 만든 거니까. 하지만, 내용물은 정말이지 대충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
헌데, 덜컥 천하명주에 뽑혀버리다니, 어안이 벙벙해지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영광스러워야 할 순간에도 모두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그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상황이란 게 한몫을 하고 있다.
“장주. 해도···, 우선은 좋은 일입니다. 더없는 영광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오만···. 원인을 모르니, 더욱 머리가 복잡하구려. 이 공자. 출품한 술에 대해 설명을 조금 해주겠소?”
“예. 장주.”
사실 내가 만들어 보낸 술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자세한 설명을 전한 적은 없었다.
그저 적당히 구색 맞추기용으로 하나 만들어 보내겠다. 그런 말에 다들 관심을 껐었기 때문이다.
난 그들에게 어떤 술을 어떻게 만들어 보낸 건지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 이 공자의 말은···.”
적당한 포장을 곁들여 있는 말을 그대로 고하니.
“···그러니까, 주고에 남는 술을 섞어서 처리했다는···그런 말이 아닌가? 황상에게···?”
“미친놈···.”
석두원은 물론, 옆에 서 있던 주공의 입에서도 극찬이 함께 나온다.
정신이 아찔한 건지, 눈을 살짝 감고는 의자에 몸을 기대는 석두원.
결국에는 남는 술을 짬처리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아니다.
“···장주. 그, 이 공자의 설명이야 그렇다지만, 실상은 맛이 있었고 가치가 있었으니 뽑힌 게 아니겠습니까? 재고를 처리···. 아니, 묵힌 술을 섞었다는 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닙니다.”
“옳습니다. 장주. 우선, 금월 말일에 맞춰 북경에서 관원을 파견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만 잘 넘긴다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교지에 따른다면, 명주로 선정되긴 했지만, 아직 모든 절차가 끝난 건 아니라고 했다.
석가장으로 교지가 곧장 날아온 것 역시 이 때문. 북경의 관청에서 관원을 파견해 양조장의 실태까지 본 후에야.
정식으로 명주에 선정되며 황궁에 납품까지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교지는 이를 미리 알리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정확한 명주 선정의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직은 절차가 모두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왜 저 술이 뽑힌 건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결과지라던가, 혹은 선정 이유 같은 건 관원과 함께 내려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행이오만···. 저기, 이 공자.”
“예. 장주.”
“혹, 출품한 그 술이 남은 건 없소?”
“찾아보면 한 병 정도 빼둔 게 있을 겁니다.”
“우리 함께 그 술을 마셔보며, 이유를 찾아보는 게 어떻겠소?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게 관원들이 내려올 때 대응하기 좋지 않겠소이까?”
“그렇긴 합니다, 장주. 미리 알아두는 게 좋겠지요.”
“흠.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게 좋은 핑계로 보였던 걸까.
석가장의 가신들은 명주로 뽑힌 술을 마셔보자며 함께 입을 모았다.
마침 빼놓은 술이 딱 한 병 정도 있던 상황. 난 서둘러 사람을 보내, 양조장에서 그 술을 받아오게 했다.
멋들어진 주병에 담긴 ‘로얄 쌀루트’, 아니 황찬주가 대석당의 중심에 섰다.
이름부터 대충 지은 티가 나지 않나. 대충 황실을 찬미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게 황찬주.
헌데, 아무도 이 촌스러운 이름에 대한 언급이 없다.
“흐음. 이게?”
“과연, 주병은 예술이군요.”
“황실의 위엄이 절로 느껴지는 주병입니다.”
“이걸 이 공자가?”
“크흡. 실은 이 황모가 만들었습니다. 이 공자의 도안을 받아. 다만, 그게 황실에 내는 술일 줄은···.”
“그렇소? 허어. 이 새겨진 용은 마치 황실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 같고 마침 치세를 기념하는 ‘二十一’이란 숫자 역시 금박에 잘 어울리는구려. 허어. 대석이란 글자까지!”
“옳습니다. 황실을 기린다는 황찬(皇讚)이란 글도 아주 멋있군요. 허허허. 대충이 대충이 아니었나 봅니다.”
“주병에는 조금, 신경을 썼습니다.”
가신들은 저마다 놓인 술을 보고는 칭찬을 늘어놓기 바쁘다.
‘로얄 살루트’의 디자인을 그대로 표절한 술병은 중원식으로 어레인지 되어 더욱 특별함을 뽐내는 중이다.
그래, 뭐. 술병에는 공을 들였으니까. 중요한 건 정작 공을 들인 건 이게 전부란 거지만.
‘설마···. 술병 때문이겠어?’
술병 하나로만 명주 타이틀을 따낸 건 분명 아닐 것이다.
술병의 위에는 한자로 21이란 숫자를 박아 넣었다.
이 역시 로얄 살루트의 표절. 본래는 숙성연수인 21년이 로마자로 멋들어지게 그려져 있어, 이걸 꼭 따라하고 싶었다.
난 이를 숙성연수뿐만이 아니라 치세를 기념하는 숫자로 의미부여하며 연신 가져다 붙이기를 시전했다.
석가장의 가신들도 알아보는 걸 보니, 이건 제대로 통했을 거다.
또한, 원래라면 말을 탄 병사나 사자의 두상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용을 그려 넣어 이게 황실을 위한 술임을 나타냈다.
그 모든 문양을 장식하는 건 금박으로 박힌 테두리. 상감법을 이용해 직접 넣은 금박 역시, 황궁을 상징하기에는 모자라지 않았다.
“흠. 다들 마셔보세.”
“이건, 비밀이겠지요?”
“아직은 명주에 완전히 뽑힌 것도 아니지 않나?”
“암요. 다만, 마지막으로 마셔볼 수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일단, 일이라 생각하고 마시세.”
실상은 그저 한번 마시고 싶어 하는 거란 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남는 술이기에 일단은 가져온 것.
나 역시 중원인의 입장에서 이 술을 맛본 감상을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석가장의 가신들은 저마다 잔을 채우고는 채워진 잔에 담긴 주향(酒香)을 맡아갔다.
나도 잊었던 이 술의 맛을 다시금 감상해 보는 지금이다.
“흐음. 이건, 향이?”
“부드럽군.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암요. 오히려 그래서 좋은 걸지도. 잔잔한 향이지 않습니까?”
“애초에 백주는 향이 너무 튑니다. 청향(淸香)이니, 농향(濃香)이니, 미향(米香)이니. 저마다 표현은 달라도 결국엔 향이 세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술이 특별한 건가?”
가신들은 나름 전문적인 의견까지 개진한 후에야 입으로 잔을 향했다.
나 역시 다시금 이를 맛보았지만. 역시나 특별할 게 없는 맛이다.
하지만.
– 호르르륵!
하는 소리가 동시에 가신들의 입에서 난 후.
모두의 표정이 살짝 심각하게 바뀌었다.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하는 고민이 스치기 전.
“이 공자.”
하고, 석두원이 무겁게 내 이름을 불러왔다.
내가 조심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니.
“이게···, 정녕 대충 만든 거란 말인가?”
석두원의 입에서는 믿지 못할 말이 나왔다.
날 바라보는 다른 가신들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
주공마저도,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그제야 난 알 수 있었다.
내가 했던 블렌딩이, 애초에 시작부터 기준점을 잘못 잡았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