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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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내려온 관원은 무난히 양조장 안을 둘러보고는 합격점을 내려줬다.
당연히 이는 미리 잘 꾸며둔 덕.
구석에서 빼내온 술이란 게 티가 나지 않도록 광을 내고 새롭게 단장한 술 단지에 술을 모두 옮겨둔 덕이었다.
짬처리인 걸 들키면 안 되지 않나.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뒀던 술인 것처럼.
아주 귀한 술인 것처럼. 그렇게 꾸며두니, 그는 연신 감탄을 표하며 손뼉을 치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보여준 건 그의 앞에서 술을 섞어 앞서 진상한 술과 맛이 같다는 걸 보여주는 과정.
주공이 직접 섞길 은근히 바라는 그였으나, 적당히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내가 나설 수 있었다.
남은 술의 양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하나의 관건이었지만, 이내 그마저도 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기로 했다.
많지 않은 술이기에 그만큼 귀해지는 느낌이 있지 않나. 대신, 양조장의 남은 술 역시 일부를 가져가고 올해는 그걸로 끝.
남은 술은 차차 남은 기간 동아 적당히 시기에 맞춰 북경으로 올려보내는 거로 합의를 끝마쳤다.
관원은 양조장을 나서며 일부의 대금과 함께 작은 목패를 양조장에 내리고는 북경으로 올라갔다.
용사비등(龍蛇飛騰)하게 적힌 ‘대석양조장’이란 간판 옆을 장식하게 된 황궁에서 내린 목패.
이름하여 ‘황반패(皇盤牌)’라는 게 수여된 것이다.
이는 황제의 밥상에 올라가는 재료를 진상하는 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패로, 이 시대의 ‘로얄 워런트’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거래에 임할 때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가격을 받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난 비싼 값어치를 해줄 그 황반패를 바라보며 내심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황반패라···. 이것도 제법 멋이 나는군요. 이렇게 붙여두니.”
“흥. 네놈이 타온 걸 그리 감상하더냐? 아주 잘났구나.”
“예? 제가 타오다니요? 이건 전적으로 주공께서···.”
– 빠악!
물론, 황반패를 타고서 마냥 좋은 일만 생긴 건 아니다. 주공에게 부쩍 구박을 받고 있다는 것.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벌린 일이 있으니, 수습은 내 몫인 것.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다. 당장에 관원이 다녀간 그 날은 주공이 술을 섞을 때 쓰는 커다란 주걱을 들고는 석가장까지 날 쫓아왔었다.
무흔보가 아니었다면, 그에게 잡혀 술이 되고 말았을 거다. 영감님, 기력도 좋지. 아직은 정정하다.
‘쓰읍. 북경까지 한번 다녀오셔도 되겠는데?’
“네놈. 또 무언가 일을 꾸미는 눈빛이로다?”
“예? 눈치도 빠르십니다.”
“뭐, 뭣? 또 뭘 하려고?”
“뭘 하긴요. 이제 생긴 돈이 조금 많지 않습니까? 일전에 남궁세가에서 받은 돈도 전부 양조장으로 돌렸고.”
“해서?”
나라에서 명주란 이름을 내리며 하사금 역시 생각보다 많이 내려줬다.
거기에 이제는 쌓일 만큼 쌓인 양조장의 예비비까지 충분한 지금. 아마, 거래도 생각보다 더 많이 늘어날 거다.
난 그때를 대비해, 쌓인 돈으로.
“양조장을 증축할 예정입니다.”
양조장을 조금 더 넓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건, 명주에 선정되지 않았더라도 진행할 예정이었다.
거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시설은 확충되어야 할 테니까. 또한, 내가 자신 있는 분야는 양조보다는 증류쪽이다.
증류소 부분도 넓히고, 또 새로운 증류기도 들이고. 그러려면 지금의 양조장은 너무나 좁았다.
“증축? 양조장을 말이더냐?”
“예. 옆에 부지를 전부 매입해 달라고 구 단주께 부탁을 드려뒀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흠. 얼마나?”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넓혀야지요. 과하석황주도 계속해서 잘 팔릴 테고, 기포 생강차도 계속해서 뽑아야 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네놈이 매일 끓여보는 그 술들도 팔아야 하고?”
“그건 아직 이르지만. 예. 그렇게 해야지요. 허허.”
텅텅 빈 옆 부지를 사모아 이를 트고 새로운 건물을 올린다. 구조 역시 내가 원하는 구조로 맞출 수 있을 터.
남궁에서 받은 돈을 양조장으로 돌릴 때부터, 내 계획은 이러했다.
조금은 현대적인, 초기형태의 증류소가 중원에 먼저 생길지도 모른다.
‘쓰읍. 이거 또 고고학자들 머리가···.’
아플 수도 있겠는데.
뭐. 역사야 안 이어져 있는 시대일 수도 있으니,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다.
양조장의 문밖으로 나아가, 옆에 곧 들어설 증류소의 터를 바라봤다.
딱 좋다. 앞으로는 물이 흐르고 뒤로는 석산(石山)이 자리해 음기가 드는 곳.
예로부터 증류소는 딱 이런 곳에 자리했다. 빈손으로 닿은 중원에서 이제는 내가 증류소까지 세운다니.
‘모든 게···’
잘 풀리는 것만 같다.
행복하지만, 위험한 생각이 머리를 채우던 날이었다.
***
– 조르르르륵.
널따란 방 안에서 한 사내가 잔에 술을 부어갔다.
잔은 딱 한 잔 분량.
옆에 자리한 사람도 있거늘, 사내는 그렇게만 술을 부어두고는 술병을 옆으로 밀었다.
술병에는 거침없는 표정을 지닌 한 마리의 용이 그려져 있다. 그 위로 새겨진 숫자는 ‘二十一’.
황금색 수가 아름드리 놓인 술병의 모습은 고급스러움, 그 자체였다.
“석 학사.”
사내는 식탁에 앉아 마시지도 않는 술병을 한참을 노려보더니 옆에 앉은 젊은 학사를 불렀다.
조용히 몸만을 틀어 사내를 바라보는 젊은 학사. 그의 모습이 항주에서 본 제법 있다는 누구와 닮아, 풍채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골(武骨)이라 부르기에 모자라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의 앞에 붙은 수식어는 학사(學士)란 말.
어울리지 않은 수식어가 재미난 모습이다.
“술이란 게 참으로 재밌지 않소? 때로는 칼처럼, 또 때로는 상처럼. 아버님께서는 이 술을 그리 쓰시지 않소?”
“소문의 그 황찬주로군요.”
“흐음. 이 술은 그대에게는 익숙한 술일 수도 있겠구려.”
“···처음 보는 술입니다.”
“역시 그렇소? 그대가 올린 보고서에는 그리 적혀있긴 하더구려.”
“송구하옵니다.”
“그대는 거짓에 영 서투르오. 허허.”
사내는 잔에 부었던 술병을 가져와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다. 명주로 선정된 대석양조장의 ‘황찬주’.
보통 술을 담는 병은 그저 그런 자기인 경우가 많을 텐데. 이건 술병부터가 묵직해 고급스러움이 더 해진다.
“처음 진상(進上) 받은 술이 네 홉짜리 병으로 총 스무 병. 2차로 나간 조사에서 받은 술이 서른 병. 도합 오십 병이 전부요. 이 술이 세상에 나와 있는 건. 또한, 이 술을 건넬 수 있는 자는 천상천하에 오로지 한 사람. 과연, 이게 그냥 술일지는. 허허.”
“처음 진상 받은 술 중 딱 다섯 병만이 풀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중 한 병이 주군께 나와 있으니, 이 역시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석 학사의 눈에는 영광으로 보이시오?”
“······.”
“여덟의 아들 중 넷에게만 술을 하사하셨소. 한 병은 조정 만찬에 뿌리셨고.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거겠소?”
“미천한 제 생각으론 답을···.”
“그대는 내게 장자방이요, 순문약이니. 말을 숨기지는 말아줬으면 하오.”
“···아뢰옵기···”
“말은 편하게.”
“제 생각에는, 후계 구도의 초안을 잡으신 거로 보입니다. 여덟 아드님 중 명주를 받은 네 분께 기회를 주신 게 아닌지. 이제부터···”
“본격적인 후계 싸움의 시작이란 말이겠지.”
“그렇게 보입니다. 벌써, 명주를 하사받은 분들 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중이라 합니다. 서두르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서두르라···.”
사내는 서두르란 학사의 말을 듣고는 손을 뻗어 술잔을 들어 올렸다.
이를 마시려는 걸까. 향을 맡더니 잠시 멈칫하던 사내. 하지만, 사내는 결국 잔을 들어 입으로 향했다.
– 호륵.
유독 짧게만 들려오는 술을 당기는 소리.
술은 그렇게 가볍게 입술을 타고 난 후 곧장 아래로 향했다.
다행히, 뱉지는 않고 전부 삼킬 수 있는 사내였다.
“후우.”
“삼키신···겁니까?”
“허니, 신기하지 않소? 내, 백주를 조금이라도 이리 삼킬 수 있었던 건 처음이었소. 그게, 이 술이고.”
“그게, 어찌 술의 조화겠습니까? 노력의 산물일 것이옵니다.”
“허허. 그대는 술의 조화를 인정하지 않는 구려.”
“송구하옵니다. 허나, 예로부터 변화는 사람의 것이오, 물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 했으니. 이 모든 게 주군의 노력이 발한 탓이라 여겨지옵니다.”
“허면, 한잔 들어 보시겠소?”
“···제가 어찌 감히···.”
“드시오. 이건, 명이오.”
– 조르르륵.
귀하디귀한 술이 잔에 담겨 풍채 좋은 학사의 앞으로 향했다. 이를 받아드는 학사.
영광스러움이 가득 묻은 표정으로 학사가 고개를 돌린 후.
– 호르르륵.
하고는 술을 삼켰다.
편안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워 부드러움이 극에 달한 맛이 표정을 아늑하게 만들었다.
백주라 불리지만, 백주가 아닌. 개성이 없어 더욱 돋보이는. 그런 술의 맛이 간단히 학사를 스치고 갔다.
평소 독주는커녕, 일반적인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내가 한잔이나마 술을 삼킬 수 있었던 이유를 학사는 단 한 잔 만에 알 수 있었다.
“어떻소? 처음 드시는 맛이 확실하오?”
“···예. 확실히 제가 알던 대석의 맛은 아니옵니다.”
“듣기로는 대석의 장인인 장태산. 주공이라는 자가 이 술을 만들었다고 하오.”
“거짓이라 판단되옵니다.”
“허허허. 거짓이라? 괜찮겠소? 그대의 본가(本家)가 황가를 상대로 거짓을 고한 것이 될 터인데?”
“허나, 사실이옵니다. 사사로이는 본가이나, 공적으로는 거짓을 고한 곳이 맞사옵니다.”
“어째서 그리 확신하시오?”
“주공, 장태산의 술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술은 개성이 강하되 좋은 개성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리 약하고 흐린 맛은 더더욱 아니었지요. 대석의 백주가 오래도록 좋은 평을 받지 못한 이유는 그러했습니다. 그런, 주공이 갑작스레 이런 맛을 만들었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대가 못 본 사이에 변화가 있었을 수도?”
“바뀌었다면, 새로 뽑은 술을 자신 있게 내밀었을 겁니다. 제가 아는 주공은 그런 사람입니다.”
“봤으니 평할 수 있다라.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주공이란 자가 이 술을 만들었다고 믿었을 거요. 과연. 그대는 내게 천복(天福)이니. 딱 필요한 때에, 덕분에 인재를 찾은 느낌이오.”
“망극하옵니다.”
학사는 제법 날카롭게, 또 잘 안다는 듯 앞에 놓인 술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설파해 나갔다.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말 그대로 대쪽같은 발언에 듣던 사내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래서, 이 학사를 더욱 곁에 두는 사내였다.
“허면, 이 술을 만든 장본인은 역시 그 이 공자라는 이겠군.”
“제 생각 역시 그러합니다. 이 백주 역시 섞은 술이라 들었습니다. 주공이 만든 술을, 그가 섞은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렇다면, 영 거짓을 고한 건 아니구려. 만든 이는 주공, 장태산이 맞을 테니. 섞은 이가 이 공자란 이려나. 허허. 재치요. 재치.”
“······.”
“그대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좋은 연막이었고. 참, 그대는 이 사실을 나 말고는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사내는 애써 학사의 본가를 두둔하는 말을 하며, 이를 조용히 묻겠노라, 온건한 태도를 보였다.
황가를 상대로 거짓을 고한 게 알려지면, 아무리 작은 거짓이라도 큰 풍파를 몰고 온다.
비단, 그 거짓을 말한 자뿐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곳과 그가 속한 곳에 핏줄을 둔 이들까지 모두.
거짓이 아니란 사내의 말이, 따스하게 내려와 학사에게는 작은 은혜가 되었다.
“이 공자란 이는 잘 아시오?”
“아는 바가 없습니다.”
“본가에 속한 이가 아니오?”
“제가 있을 때는 석가장에 없었던 자이옵니다. 본 적이 없고 만난 적이 없으니 가늠할 수 없고, 가늠해서는 아니 된다고 여깁니다.”
“그대는 한결같구려.”
“송구하옵니다.”
여전히 대쪽같은 말만이 나온다.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본가와 자신의 사이에 커다란 선을 그어가는 학사.
이게 한 방향에서만의 일이 아니라 사내도 입을 댈 수가 없다.
그렇기에 곁에 두는 것이니까.
“그대의 말처럼 다른 형제들이 서둘러 움직이고 있소. 이제는 잠룡(潛龍) 노릇도 그만할 때. 나 역시. 움직이려 하오. 해서, 내게는 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가 필요하오. 누구에게는 검처럼. 누구에게는 상처럼. 또, 내게는 ‘물’처럼. 그렇게 술을 다뤄줄 이가. 지금은 누구보다, 내게 필요한 게 그런 자요.”
“북경으로 그를 부르겠습니다.”
“아니.”
온갖 연막 속에서도 진실을 알아본 사내는 연막을 피운 이를 가지고 싶어했다.
그렇게 북경을 피하려던 누군가 결국은 부름을 받나 하던 때.
“스스로 연기를 피워 모습을 감춘 이요. 이유가 무엇이겠소?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말일 거요. 그런 이를 애써 또 북경으로 부른다면, 어디로 도망갈지 어찌 알겠소?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하는 법. 불러올리는 건 방법이 아니외다.”
“그 말씀은···?”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이야 누구보다 잘 아는 그.
그런 그의 눈에 하나의 욕망이 아린다. 누군가, 또 뛰어난 사람을 가지고 싶다는 그런 욕망.
그는 그런 욕망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준비를 마친 표정이다.
“항주에 다녀와야겠소. 조용히, 그리고 또 조심히.”
“······.”
“항주에 길이 밝은 이가 필요하오. 그대가 함께 가 주시겠소?”
“어디든, 모시겠습니다.”
단호하게 나오는 답에 만족스럽게 웃어가는 사내.
사내는 학사를 한번 보고 짙게 웃은 후에야 방을 나섰다.
연막 속에서도 누군가는 진실을 알아보는 법이다.
그게, 연막을 피운 이들이 때로는 간과하는 점.
연막 속에서 웃는 이의 앞으로, 또 다른 이가 웃으며 다가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