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72
***
“그러니까. 지금 북경은 아주 황찬주(皇讚酒) 때문에 난리란 말이오. 사실, 명주 경연이 열릴 때부터 예상된 일이기는 했지.”
– 호르륵.
석호루 뒤로 난 작은 포구.
그런 포구에 걸터앉은 채로 한 명의 거지가 술을 들이켜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석호루 영업이 시작되기 전 잠시 허락된 거지의 출입. 그것도 딱 뒤쪽 포구까지만.
그래도 거지는 이게 감지덕지라며 서호의 풍경과 술로 풍류를 즐겨가는 모습이다.
“이미 한차례 술을 풀었다던데요?”
“암. 풀었지. 그것도 딱 다섯 병만. 일, 삼, 오, 팔. 황자들에게만 딱 한 병씩. 그리고 조정 만찬 때 한 병. 반응은 굉장한 편이오. 중원에야 없던 맛이니.”
“쓰읍. 평은 좋다지만, 그래도 생각보단 많이 아끼는 편이군요.”
“글쎄올시다. 이 공자는 그게 그렇게만 보이오?”
“다른 의미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하. 정말이지 술밖에 모르는 사람이군.”
거지는 내가 건네는 술을 마시며 자신이 모아온 정보를 마음껏 풀어간다.
건네는 술의 값은 그가 풀어가는 세상의 이야기들. 이제는 이런 정보로 술을 바꿔먹는 게 자연스러워, 거지도 만족하는 중이다.
그의 허리에 걸린 일곱 개의 포대가 조금은 초라해지는 것만 같았다.
“애초에, 명주를 뽑은 이유부터가 이렇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겠소? 그것도 적재적소에 말이오. 이게, 어디 가서 풀면 경을 칠 이야기이긴 하오만···.”
홍구는 자연스레 목소리의 높낮이까지 조절해가며 맛깔나게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북경의 이야기. 얼마 전 술까지 보낸 곳이라 그리 먼 곳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황상의 치세가 21년을 넘어가지 않소? 이제 슬슬 불안한 거지. 언제 응? 무슨 말인지 알겠소?”
“건강을 염려해, 후계 구도를 잡으려 한다는 말씀이군요.”
“암. 그렇지. 해서, 명주를 뿌린 것도 일, 삼, 오, 팔 황자라 하지 않았소? 여덟 황자 중 딱 넷. 이제 그렇게 넷을 정해두고 너네끼리 싸워보라. 이 말이지! 그 말이! 승자에겐, 응. 딱! 후계를 내어주겠다! 하면서.”
“냉정하군요. 그래도 자기 자식들일 텐데.”
“허허. 그런 게 황궁 아니겠소. 지금의 황상도 어렵게 올라간 자리니.”
“흐음.”
“원래 그런 거요. 북경에서는 꺾어진 나뭇가지 하나도 정쟁에 이용된다고 했소. 술이니, 오죽하겠소? 그렇지 않아도 술을 받은 네 황자 옆으로 줄을 대려는 이들이 몰리는 중이라오. 원래부터 그런 움직임이야 있었지만, 지금은 더한 와중이지.”
술이란 건 원래부터 이런 식으로 쓰여왔다. 이건 유구한 역사를 가진 술의 쓰임.
정치와 통치. 그 둘과는 언제나 분리될 수 없었던 게 술이란 녀석의 슬픈 숙명이었다.
그건 이 낭만과 야만의 시대라고 다른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북경이 한동안 시끄럽겠군요.”
“암. 이 공자도 잘 아시지 않소? 얼마 전 남궁세가에서 있었던 일도 이런 일의 한 가지라오. 당파들이 이제 줄을 대야 하는데, 돈은 딸리니 이곳저곳을 쥐어짜는 게 아니겠소.”
“그때 그 일이요? 몰랐습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을 줄은.”
“아무런 이유 없이 치수(治水)가 실패하진 않소. 바람이 불어야 강물도 출렁이는 법. 그때 그 일은 일황자 쪽에 줄을 대려던 당파가 꾸민 일이라 하더이다.”
“일황자요?”
“제일 유력하지. 세력으로만 본다면야 그렇단 말이오. 천심(天心)이야 팔황자에 있고. 아무래도 늦둥이니 제아무리 천자라도 아픈 손가락이 아니겠소? 거기에 오황자도 분발하고 있는 편이오만. 가능성은 없어 보이오. 뭐, 삼황자는 존재감이 없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인데. 민심이야 좀 따른다는 것 같소. 다만, 요즘 세상에 어디 민심이 천심에 비교가 되겠소? 일과 팔. 둘 중 하나가 유력하다는 게 중론이외다.”
“복잡하군요. 그 후계 구도란 것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암. 허허. 뭐, 우리 같은 것들이야 이럴 때는 몸을 바싹! 숙이고 있는 게 최선이지.”
– 호르르르륵.
“아 맛 좋다! 다 필요 없소! 이거면 그만이지!”
홍구는 전해준 소식 값으로 받은 술을 모두 비워내며 만족스러운 듯 배를 두드렸다.
황찬주의 반응을 묻다가 듣게 된 우연한 황궁의 소식. 그저 뉴스에서 보던 정치 이야기 정도라.
내게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뭐. 팔아치운 술이 어떻게 쓰이는 건···.’
크게 상관없으니까.
대신, 오늘은 홍구를 부른 김에 다른 것도 묻기로 했다.
“저, 식개. 혹, 진 대협 소식은 조금 없습니까?”
“진 대협? 화산개협을 말하는 거요?”
“괴···협. 정도로 합의를 보시죠.”
“허어. 내게 그 말코의 소식을 묻다니, 참 신선하오.”
일전에 둘의 악연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다.
둘 모두 후기지수였던 시절, 배분은 달랐지만, 나이는 비슷했던 둘 사이에 비무가 있었고 진효풍이 신나게 홍구를 두드렸다는 말.
덕분에 홍구는 화산 근처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실상은 누구보다 진효풍의 소식을 잘 알고 있을 게 홍구로 보였다.
‘이 사람이 안 보이면···’
진효풍이 항주 근처에 있다는 말이겠지.
이렇게 천하태평인 걸 보니, 아직은 진효풍이 돌아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대충 듣기로는 화산에서 여러모로 감금 생활 중이라고 하더이다.”
“감금이요?”
“풀어놓으면 온갖 사고를 치니 그런 게 아니겠소? 누가 초절정의 경지에 올려둔 덕에 이제부터 칠 사고는 그 크기부터가 다를 거고. 허니, 장문인 입장에서야 어찌 그를 함부로 산문 밖으로 보내겠소?”
“그렇게 되는 건가요···.”
“걱정하지 마시오. 세상에 제일 쓸데없는 게 그 말코 걱정이니.”
“그렇긴 하지요.”
“그래도, 정이 많이 든 모양이외다?”
“예. 많이 들었지요. 물론, 식개께도 정이 들어가는 중입니다.”
“허. 참.”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서신 몇 개만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화산과 당문에 보낼 서신입니다.”
“그, 개방이 서신이나 전하는 곳은···”
“오기조원주에 기포주. 두 잔씩.”
“해동응(海東鷹)을 띄워 급보로 보내두리다. 크흡.”
개방이랑 관계를 맺은 후 모든 일이 편해졌다.
서신을 전달하는 것도 석가장의 전서각보다 빠르고 가만히 있으면 신문처럼 중원 각지의 소식이 날아들지 않나.
여러모로 편리한 곳이 개방이란 곳이며 홍구란 이다.
“천천히 드시고 가십시오.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아. 또 봅시다.”
적당한 가격에 흥정을 마치고 석호루 안으로 돌아오니, 영업 준비로 안이 분주하다.
그러던 중 밖에서 보이는 건 또 다른 거지의 모습. 무리만 지어 다니지 않는다면야 또, 영업 중에 보이지 않는다면야.
크게 상관은 하지 않는다. 다만, 개방의 거지가 석호루 근처에 또 보이는 게 신기해 이를 잠시 바라봤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건.
“이번에도 북경 성외에 있는 노서촌(蘆絮村)이란 작은 마을입니다. 북경에서는 걸어서 두 시간 정도면 닿을 겁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인편으로 전하면 못할 일은 아니오. 다만···.”
“기포주에 오기조원주 한 잔씩이면 어떨지요?”
“크흡. 뭐. 그렇다면야. 열흘 정도 걸릴 거요. 받았다는 답신을 가져오면, 그때 계산합시다.”
“감사합니다.”
내가 홍구와 나눴던 대화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는 점소이, 황반의 모습이었다.
대화의 흐름이 어찌 너무도 비슷하다. 난 그 모습이 재밌어, 살짝 웃고는 거지가 떠난 후 황반에게 다가섰다.
“흡, 흡?”
!
“이, 이 공자님!”
“황반아. 뭘 하냐?”
나이는 이제야 열여덟.
하지만, 석호루에서는 에이스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아이가 이 황반이란 아이였다.
일을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흡수하고 또 그 이상을 해내니, 벌써 주임에 올라 메이킹에도 나서고 있다.
실력도 나쁘지 않아, 전부터 눈여겨보던 아이였다.
“그, 그게···.”
“개방과 거래를 튼 모양이구나? 그것도 술로.”
“···저, 절대! 석호루의 술을 빼돌린 적은 없습니다! 전부 제 월봉으로 산 술로만···!”
황반에게 다가서 뒷짐을 지고 은근하게 물어가니, 양손을 내저으며 변명부터 나온다.
추궁하려던 모습으로 보였던 걸까. 어린 마음에 깜짝 놀랐을 것만 같아, 얼른 다독이기로 했다.
“안다. 알아. 석호루에 술 한 방울이라도 사라지면, 그걸 내가 모를까 봐.”
“···호, 혹, 오해하실까 하여···.”
석호루의 술 관리는 철저하다. 거기에 황반이란 아이가 그럴 아이가 아닌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뒷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교무실에 끌려온 학생처럼 보여 앳됨을 더해가는 황반이다.
“이야. 그래도 대단한걸? 언제부터 이렇게 거래를 다 트고?”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이 공자님께서 홍 대협과 거래하시는 걸 보곤 제가 살짝 부탁을 드려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성외(城外) 구석 마을에는 전서도 보낼 수 없어서···.”
“잘했다. 대신, 너무 후하게 쳐주진 말고. 석호루 점소이면, 그 정도는 알겠지?”
“무, 물론입니다! 매번 적당히. 예. 그러고 있습니다. 절대! 손해는 보고 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직접 배운 기술을, 또 자기가 번 돈을. 그렇게 써서 무언가를 활용하는 것에 입을 댈 생각은 없다.
정식으로 술도 사서 따로 만들어준 거라지 않나.
이걸 경쟁 업체 같은 곳에 넘긴 거라면 몰라도, 이 정도면 굳이 혼낼 부분도 아니다.
‘개방을 쓰는 법도 다 알고. 역시 얘가 일머리가 있단 말이지.’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아이였다.
한번은 제대로 키워봐도 좋을 터.
현대에서 만났었다면, 제법 괜찮은 바텐더가 되었을 재목으로만 보였다.
이참에 조금 더 알아나 볼까. 하는 마음에 말을 더 붙여보기로 했다.
그러니.
“서신은 어디에 보낸 거냐?”
“고향집에 보냈습니다. 노모(老母)께서 병에 드셨다기에 걱정이 되어서···. 요즘 부쩍 자주 연통하는 이유입니다.”
“그래? 가봐야 하는 건 아니고?”
“집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게 접니다. 약값을 대려면, 일을 해야지요. 어머니께서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집에 갔던 건?”
“3년 정도 되었습니다···.”
나오는 건 기구하고도 평범한.
한 중원인의 사연이다.
무슨 말을 전해야 할까. 책임질 수 없는 동정도 의미 없는 위로도 건넬 수 없는 지금.
둘 사이에서 입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어쩔 수가 있나요. 그래도 항주에 와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해 다행입니다. 북경에서는 성내로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었으니까요. 거기에 일자리가 석호루라니요. 전 만족합니다. 공자님이 오신 뒤로는 부쩍 벌이가 더 좋지 않습니까. 기술도 배우고. 집에 보내는 돈도 늘었습니다. 공자님께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나오는 건 내게 감사하다는 말이다.
이러니 중원을 싫어할 수가 있나.
난 그저 밝게 웃고는 황반에게 다가섰다.
“짜식. 말하는 거 하고는···. 내가 뭘.”
“정말입니다. 이 공자님 덕에 이런 기술도 배워 소식도 전하지 않습니까. 늘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주, 월봉까지 올려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구나.”
“올려주시는 겁니까?”
“됐다, 이놈아. 가자. 형이 대신 시원한 기포주 한잔 말아줄 테니.”
술을 섞으며 무림인과도 엮이고 관원, 부자, 황실까지 거창한 이름과 제법 엮이며 많은 걸 바꾸고 이뤘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 스쳐 지나가며 알게 모르게 바뀐 또 다른 가려진 이름들.
그래, 중원이란 곳은 그런 곳이다. 거창한 이름 뒤로 더 많은 평범한 이름이 있는 곳.
무림인도, 관원도, 부자도, 황실도. 그런 거창한 이름이 아닌 이들에게서도 난 제법 많은 걸 바꾼 걸지도 모른다.
그걸 이 황반이란 아이가 알게 해줘 더욱 어깨가 올라만 간 지금.
오늘 만들 술은 유독 맛이 더 좋을 것만 같다.
***
대나무를 엮어 만든 흑립을 눌러쓴 두 사내가 항주의 외곽 길을 걸으며 서호를 향했다.
둘의 걸음이 향하는 곳은 달이 걸린 하나의 탑처럼 생긴 곳. 사람들은 그곳을 석호루라 불렀다.
“저기 보이는 저곳인가.”
“그렇습니다. 주군.”
“오늘은 천천히 분위기만 둘러봤으면 하오만.”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니 인파 속에 숨으면 가능할 것입니다.”
“흠. 겉은 정말이지 소문처럼 화려하구려. 그대는 들른 적이 있소?”
“듣기만 했지, 실제로 와본 건 처음입니다. 제가 떠날 때는 아직 완공되기 전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들리게 해 미안할 따름이오.”
“말씀 거두시지요. 주군을 모시고 들를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저···, 모시는 게 부족할까, 걱정일 뿐이옵니다.”
“부담가지지 마시오. 내 그대에게 바라는 건 다른 게 아니니. 무얼 하든, 선택은 내 몫이오. 그대는 언제나처럼. 내게 옳은 말만 해주면 되는 거요. 한결같이.”
“그리하겠습니다. 주군.”
“안에 들거든, 그 주군이란 말은 빼고. 보자. 음. 그래, 공자. 공자 정도가 좋겠구려.”
“예···. 공자.”
서로 말을 맞춰간 두 사람의 걸음이 석호루라 불리는 화려한 탑 앞에서 멈췄다.
잠시 석호루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던 둘.
“그럼, 가서 확인해 봅시다. 과연, 내가 품을 수 있는 사람일지.”
둘은 공자라 불리게 된 사내의 말과 함께 인파 속으로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