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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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황반이 문을 열고 내가 부탁한 재료를 가지고 들어오자, 삼황자가 그를 알아봤다.
“어제 그 점소이로군? 허허.”
“예. 손님. 안녕하셨는지요? 오늘도 뵙게 되었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표정의 삼황자.
전날 석호루의 1층을 이용했던 삼황자와 석 학사의 식탁을 담당했던 게 황반이기에 둘은 이 아이를 몰라보지 않았다.
황반은 조심히 고개를 숙여 쑥스러운 듯 인사만 전하고는 내가 부탁한 물건을 조심히 식탁 위로 올려두기 시작했다.
“내 그렇지 않아도 어제 무언가를 깜빡한 것 같아 마음에 걸렸었네.”
그런 황반의 모습을 보고는 삼황자가 품을 더듬거렸다. 윗도리 깊숙한 곳에서 묵직한 전낭을 하나 꺼내오는 그.
“어제, 자네가 만들어준 잔이 무척이나 맛이 좋았네. 오랜만에 술을 시원하게 들이켰음이야. 접객 역시, 더할 나위 없었고.”
그는 품에서 꺼낸 묵직한 전낭을 황반에게 건네며 인자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앞서 술을 타주지 않은 점소이에게도 큰 전낭을 건넸던 만큼, 지난날 기억에 남은 점소이를 챙기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 모양.
어제는 존재감을 숨겨야 했기에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못한 만큼 아쉬움이 남았던 그였다.
황반은 슬쩍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이,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손님.”
“부디 받아주게. 내 어제는 사정이 있어, 이런 걸 건넬 수가 없었네.”
“그래도···.”
당황하던 황반의 눈빛이 내게 향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관리인인 내가 지켜보는 앞이지 않나.
난 그런 황반과 눈을 마주치자,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이를 받아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니, 기왕이면 꼭 받으라고.
저 사람에게는 이런 거 몇 개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다. 또, 얼굴도 한 번 더 익혀둬 보라고.
난 머리에 스치는 무언가 때문인지, 황반을 싫어하지 않는 삼황자의 모습이 눈에 그대로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황반이 집이···’
일단은 그저 머리에만. 그래, 구석에만. 그 생각을 밀어두기로 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제는 고마웠네. 허허. 내, 이런 주루는 처음이기에 더욱 재밌었고 신선했네.”
“모두가 이 공자님께서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겸손까지. 허허. 보기 좋군.”
황반은 그제야 눈을 빛내며 양손을 벌리고는 삼황자가 건넨 전낭을 받아들었다.
이걸 건넨 사람이 누군지 안다면 어떤 반응일까. 아이는 그런 생각도 없이 그저 기쁜 마음에 입꼬리만 잔뜩 올라가 있다.
재료를 서둘러 준비한 황반이는 그렇게 들뜬 걸음으로 객방을 떠나갔다.
난 한동안, 총총거리며 아래층으로 향하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자꾸, 머리에 걸렸기 때문이다.
“점소이들을 아주 잘 키우셨소, 이 공자.”
“저 아이가 특히 잘 따라주는 편입니다.”
“그렇소?”
“일머리도 나쁘지 않고, 배우는 게 빠른 아이입니다.”
“보기에는 술을 섞는 기술도 가르친 모양이었소만?”
“하나씩 가르치는 중입니다. 지금은 오기조원주와 기포주 정도만 가르친 상태입니다.”
“과연. 이 넓은 석호루를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을 테니. 그나저나, 오늘 내게는 어떤 대의를 나눠주시겠소? 허허. 재료가 모이니, 내 점점 기대가 되는구려.”
재료가 모두 모이자 삼황자의 관심이 자신에게 줄 잔으로 향한다.
어떤 잔을 보여 줄 거냐 물어오는 삼황자. 그의 식탁 앞에는 백주와 함께 여러 재료가 놓여 기대감을 잔뜩 높여갔다.
앞서 다른 점소이가 만든 잔을 마시며 이미 섞은 술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그는 내 잔에서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나. 그런 기대도 함께인 것만 같았다.
“듣기로는 공자께서 백주에 특히 약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올라갈 수는 없지만, 때로 도움이 될 술을 하나 보여드릴까 합니다.”
“하하. 함께 갈 수는 없지만, 도와는 주겠다라? 내게는 조금 희망적인 말로 들리오만.”
“언제나 앞에서 제 잔을 받으시는 분께는 최선을 다합니다. 지금은 공자께서 제 손님이니, 저 역시 공자의 고민을 조금 덜어드릴까 합니다.”
“좋소. 내 그걸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소만. 한 번 봅시다.”
“허면, 공자와 석 학사께 한 잔씩 올리겠습니다.”
어떤 술을 만들어 줄지는 이미 머릿속으로 구상이 끝난 상태였다.
여기서 보여줄 건 조금 신기한 재주. 술자리가 이어질 거고 또 그런 자리에 계속해서 참석해야 하는 삼황자란 손님.
그런 손님을 위해 보여줄 잔은 작은 재롱이 담긴 잔이다.
– 스윽.
난 옆으로 돌려둔 가죽 가방을 앞으로 꺼내며 잔을 만들 준비에 들어갔다.
가죽 가방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삼황자.
“신기한 모양이구려. 아까 그 어린 점소이도 비슷한 걸 차고는 있었소만.”
“술을 섞는 도구를 담는 가방입니다.”
“호오.”
이제 이어질 반응 역시 방금과 비슷할 거다. 내가 꺼낼 건 중원이란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물건이니까.
난 가방에서 셰이커를 꺼내 들었다.
“흐음?”
이 역시 삼황자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쭉 내밀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게 삼단으로 분리된다는 걸 알 때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크게 뜨기까지 하는 모습.
생각보다 권위적인 모습도 없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호기심은 덤이고.
– 땅. 땅. 땅.
얼음이 소리를 울리며 셰이커에 쌓였다. 여기서 더할 건 간단한 백주 한 잔.
그리고 이어지는 건.
“청영즙입니다.”
조금의 청영즙.
황족이지 않나. 입에 들어가는 게 무엇인지는 미리미리 알려두는 게 좋을 거다.
청영즙에는 조금의 설탕도 들어가 있다.
– 탓, 탁.
난 가볍게 재료가 모두 들어간 셰이커를 닫고는 이를 올려 들었다.
올라가는 셰이커를 따라 움직이는 두 사람의 시선. 둘은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신기하게 바라보더니.
– 샤카! 샤카! 샤카!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걸 처음 보는 중원인들은 저마다 같은 표정이다.
– 샤카! 샤카! 샤카카칵!
평소보다는 조금 더 빠르고 격정적이게. 마치 끊어치듯 오늘은 다른 셰이킹이 한 번에 이어졌다.
두 사람은 청아한 소리에 고개를 들고는 마치 음악을 감상하듯 이를 즐겨갔다.
“아아. 좋은 소리로군.”
– 촤아아아아아!
연녹색으로 변한 술이 셰이커에서 뿜어지며 잔으로 향했다. 빠르고 강하게 흔들어준 덕에 얼음이 조각나 잔에 같이 담겨가는 모습.
난 미리 잘라둔 라임 조각을 잔 테두리에 가볍게 두르고 가니쉬로 이를 더한 후 이를 삼황자의 앞으로 밀어냈다.
내가 있던 곳에서 ‘김렛’이라 부르던 칵테일의 중원판 버전이었다.
“과연···.”
“시큼하면서 마시기 편하실 겁니다.”
“헌데, 어찌 내게만 주는 건가? 석 학사에게도 한 잔을 주겠다더니?”
“석 학사께 드릴 잔은 지금 다시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잔을 삼황자에게 내밀고는 셰이커에 다시금 재료를 채웠다. 이건 이전과 같은 과정.
그리고 또 시작되는 건.
– 살각! 살각! 살가가각!
하는 평범한 셰이킹 소리다.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소리지만, 아직 두 사람은 이를 알아챌 정도는 아니다.
– 촤아아아아아.
비슷하지만 건더기가 이전 잔보단 덜한 김렛이 석 학사의 잔에 담겼다.
삼황자는 차분히 잔을 뜯어보며 이를 기다린 후에야 자신 앞에 놓인 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영롱한 색이구려. 내, 마셔봐도 되겠소?”
“적당히 다섯 모금 정도로 나눠 드시면 됩니다.”
“백주가 들어간 술이라. 허허. 이걸 내 손으로 이리 거침없이 들게 될 줄이야.”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이미 기포주를 통해 백주가 들어간 술에 부담감이 사라진 덕분일까.
삼황자는 거침없이 잔을 입으로가 이를 벌컥이기 시작했다. 석 학사야 그런 부담도 없어 보였고.
– 호르르륵.
하며 가볍게 입을 타고 들어가는 중원판 김렛.
입술을 적신 술이 혀에 닿는 순간이 오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갔다.
아마 송곳처럼 찌르는 시큼함이 기분 좋게 입안을 채웠을 거다. 그게, 김렛이란 칵테일의 맛이니까.
뜻부터가 ‘송곳’이란 뜻의 김렛. 하지만, 그 송곳의 찌르는 느낌이 싫지 않아 물처럼 목을 넘어갈 것이다.
“흐음!”
적당히 술을 흡입한 삼황자가 눈썹을 교차하며 입에서 잔을 떼어냈다.
그리고 잔을 한참이나 바라보는 그.
“말도 안 되는 맛이군···. 정말이지. 허허. 이게 백주가 들어간 술이라니. 보지 못했다면 절대 믿지 못할 맛이오. 잔잔히 박힌 얼음 조각 역시 입안을 채우며 기분을 좋게 만들었소. 과연···!”
그는 자신이 입으로 느낀 걸 소상히 말해주며 느낀 걸 모두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지어갔다.
얼굴에 저런 표정을 지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 그래, 그게 내 대의란 거다.
“···저는 감상이 조금 다릅니다, 공자.”
잔잔한 술맛이다. 술맛이 약하다. 그런 뜻을 담은 삼황자의 말이 나오자, 석주선은 조금 반대되는 말을 들려준다.
조심스레 말을 치고 나오는 모습이, 앞에서 들은 주군의 말에 무작정 따르는 모습은 아니다.
“다르다면?”
“적당히 술맛이 느껴지며 묵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속에서 잔잔히 청영의 맛이 느껴지며 중간중간 파고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떤 백주인지 알 길은 없으나···, 본래 백주의 맛도 적당히 들어간 기분이었습니다.”
“그랬소? 허어. 내가 느낀 맛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소만. 재료는 석 학사도 보지 않았소? 분명 같은 술이었고.”
“그랬습니다.”
같은 재료로 섞은 술을 마신 두 사람의 입에서 다른 평이 나온다.
이건 어떻게 된 걸까. 둘 중 한 명은 거짓을 말하는 걸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건 아니다.
이건 내가 피운 하나의 재롱일 뿐이다.
“실은, 두 분 앞에서 제가 작은 재주를 부려봤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두 분께서는 잔을 바꿔 드셔보시겠습니까?”
“서로의 잔을 말이오···? 같은 술이 아니란 말인가?”
“드셔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잔을, 공자께 드리겠습니다.”
황자가 마시던 잔을 받을 수는 없다. 석주선은 그런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이 마셨던 잔을 삼황자에게 건넸다.
괜찮다며 손으로 만류하고는 자신의 잔도 석주선에게 건네는 삼황자.
석주선은 거듭된 삼황자의 권함을 받은 뒤에야 그가 마셨던 술을 다른 잔에 덜어 마시는 쪽으로 합의를 본다.
– 호르르륵.
두 사람이 바뀐 잔을 다시금 입으로 털었다.
그리고 나오는 건.
!!
“이, 이게···?”
“······?”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반응.
삼황자는 조금 독했다는 듯한 반응이지만, 이번에도 믿기지 않아 재차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앞서 뱉은 감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말 그대로 조금은 더 독한 술을 마신 표정이었다.
“···어찌 된 일이오, 이게?”
“맛이 다르신지요?”
“분명 다르오!”
“이건, 제가 처음 마셨던 맛이 아닙니다.”
“재료는 분명 같았는데···?”
– 씨익.
“다만, 만드는 방법이 조금 달랐지요.”
영문을 모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재밌지만, 오래도록 재롱을 피울 수는 없다.
황자지 않나. 난 그런 생각에 얼른 답을 들려주며 그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셰이커를 다시금 보여줬다.
“이 도구 때문이란 말이오?”
“정확히는 도구를 쓰는 법 때문입니다. 강하게 흔들면 술맛이 약해지고, 적당히 흔들면 술맛도 살릴 수 있습니다.”
“허어. 그게 신물(神物)이었소?”
“아닙니다. 이건 그저 도구지요. 다만, 들어간 건 기술일 뿐입니다.”
“······.”
셰이킹이란 게 그렇다. 술맛을 흐리고 술을 희석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법.
그렇기에 이 셰이킹의 강도를 조절함으로 인해 술맛 역시 다룰 수 있는 게 바텐더란 이들이다.
앞서 황자에게 건넨 건 조금 강하게 흔드는 일명, 하드 셰이킹 기법.
반면, 석주선에게 건넨 건 평소와 같은 셰이킹 기법이었을 뿐이다.
김렛이란 칵테일 자체가 맛이 순하기만 한 칵테일은 아니다. 이걸 어떻게 맛을 정하는지는 바텐더의 손에 달린 법.
내가 이 칵테일을 택해 삼황자에게 보여준 이유 역시 이런 효과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술이라···. 허허.”
삼황자는 재차 잔을 들어 입가를 가리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과연 신묘한 기술이오. 다만···, 이런 기술이 있다는 걸 알아도···이를 쓸 수 있는 이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할 뿐이외다. 허허.”
그리고 나오는 아쉬움의 말.
같은 재료와 같은 술을 같은 용량만큼 넣어도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이건 앞서 내가 말한 것처럼 삼황자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기술일 터.
그렇기에 그의 말에 묻은 아쉬움이 조금 더 짙게만 들려왔다.
알고는 있다.
저 말이 은근하게 날 한 번 더 잡아보려는 말인걸.
하지만, 난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다른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이제야, 딱 아까부터 내 머리를 스치던 말을 꺼내야 할 때란 걸.
“공자.”
“어찌 그러시오?”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를 부르자, 삼황자는 살짝 기대감이 아린 얼굴로 날 바라봤다.
생각이 바뀐 건가. 하고.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다.
이건, 조금 다른 결의 제안일 테니까.
난 이 방에 누군가 들어온 후. 또 그 누군가를 본 후.
계속해서 머리에 떠다니던 생각을 그의 앞에서 차분히 전해갔다.
“혹, 방금 제가 보여드린 기술을 쓸 수 있는 다른 이가 있다면. 그자를 품으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
전해진 말을 들은 삼황자의 표정이, 조금 다르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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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렛
(진 + 라임즙 + 설탕)
– 셰이킹 칵테일의 대명사! 김렛입니다.
– 대부분 바의 메뉴판에도 걸려 있는 네임드 칵테일이죠.
– 스터에는 마티니, 셰이킹에는 김렛! 이렇게 둘이 하나의 대명사처럼 엮입니다.
–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입니다. 작중 나오는 것처럼 ‘하드 셰이킹’ 스타일로 만든 김렛을 정말 좋아합니다.
– 톡 쏘는 맛 속에서 잔잔히 깔리는 진의 묵직함이 일품입니다!
– 추리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 에 나오는 칵테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