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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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에 와서 처음으로 신청한 휴가는 어렵지 않게 승인이 떨어졌다.
오히려 푹 쉬고 오라며 두둑하게 휴가비까지 챙겨주는 좋은 직장이 석가장.
주는 돈을 마다할 이유가 있나. 난 석두원이 건네는 휴가비를 받아들고는 감사히 대석당을 나왔다.
휴가가 승인되었다지만, 당장에 떠나는 건 아니다. 현대에서도 그렇지 않나.
장기 휴가를 앞둔 이라면 당연히 업무 이관 정도야 기본 예의일 터.
거기에 호위로 데려갈 술 좋아하는 괴상한 도사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난 양조장부터 들러, 주공을 마주했다.
“한동안 자리를 비울 겁니다. 주공.”
“응? 어디를 가더냐?”
“좀 쉬려고 합니다. 여기저기 둘러도 보면서 공부도 새롭게 하고요.”
“공부?”
“당연히, 술 공부지요.”
“허허. 미친놈. 공부할 게 그리 없더냐?”
“늘 주공에게 배운 술들이 실제로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습니다. 이참에 가서, 마셔보려 합니다.”
“어디로 가는고?”
“사천으로 갑니다.”
“흠. 사천이라. 좋지. 물 좋고 공기 좋아 술맛이 절로 좋아지는 곳이니.”
사실, 과학적인 근거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물이 좋다고 해서 술맛이 좋아지는 건 낭설이다.
서양의 놈들이 어떤 놈들인가. 술과 과학에 미친놈들이 아닌가. 그들이 밝혀낸 의미 있는 연구 결과에 의한다면.
물맛이 술맛에 영향을 미치는 건 1프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래도···.’
이건 비밀로 하자.
우리도 물 좋은 곳에 자리해 좋은 술을 만들고 있다고 열심히 홍보하고 있지 않나.
업계의 관례라는 건 이렇게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잘 다녀오거라. 양조장이야 무난하게 흘러가는 중이니. 내, 잘 감독하고 있으마.”
“새 전각이 올라가는 것도 한 번씩 들여다봐 주십시오. 사람이 드나들어야, 저들이 신경을 씁니다.”
“오냐. 내 그러마.”
동료와 일정 조절은 휴가에 있어서 제법 중요한 요소다. 주공이야 무난하게 오케이.
이제는 석호루 차례였다.
딱히 사람에는 더 입을 델 곳이 없다. 황반이가 나가며 빈자리가 하나 생긴 주임만 채워 넣으면 끝.
나머지는 철환도 있고 홍악도 있으니, 공 총관에게 한 번씩 들여다봐 줄 것만 부탁하면 된다.
다만, 문제는 서류 작업. 발주량도 맞춰둬야 하고 미리 대금이 나갈 곳도 내가 신경을 써둬야 한다.
돈이란 건 쓰이면 책임이 생기지 않나. 이것까지 미루기에는 다른 이들의 부담이 늘어난다.
그렇게 하나둘 서류를 처리하며 오랜만에 집무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때.
– 똑똑.
누군가 집무실에 찾아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죠.”
“접니다.”
“아. 철 대협. 앉으시죠. 차라도 한잔하러 오신 겁니까?”
“좋지요. 다만, 나중에요. 지금은···전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이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얼굴을 마주하는 철환이다. 오늘만 해도 몇 번째 마주하는 것.
헌데, 철환이 전할 말이 있다? 이건 누군가 영업이 시작도 하지 않은 석호루에 찾은 걸 말할 거다.
“수상한 사람이 왔습니까?”
“예. 이 공자님을 뵙고 싶다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저를요?”
“영업이 시작된 후에 오라는 말을 전해도 꼭 그 전에 봬야겠답니다.”
“무림인입니까?”
“···아닙니다.”
차라리 무림인이라면 철환의 말이 잘 먹힌다. 으름장이란 게 있지 않나.
여긴 그런 시대고. 철환이 어디에서 꿀리는 무인은 아니니까.
반대로 무림인이 아니면 철환이 더욱 이렇게 당황하고 만다.
이걸 확 쥐어팰 수도 없고. 란 말이 어울리는 상황일 테니까.
“젊은 상인이라는데, 나름 귀한 집 출신처럼 보였습니다. 나이는 이 공자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거래를 트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거래라면, 모두 대석상단에 일임했을 텐데요? 어찌 여기 와서?”
술 거래에 대한 부분까지 내가 맡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중요한 쪽만 적당히 내가 거래를 맡고 나머지는 대석상단에 일임한 지금.
거래를 트기 위해 석호루까지 찾아왔다? 이건 조금 수상한 부분이 있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철환이 일반인이라도 눈에 힘을 한번 줬을 테지만.
“이 공자와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 합니다. 해서, 한번 여쭤보러 왔습니다.”
그러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다 있다.
“저랑요?”
나랑 아는 사이라는 말에 오히려 되물음이 나가고 만다. 왜 그걸 자신에게 묻냐는 철환.
아니, 애초에 내가 중원에 와서 연을 맺은 이들 중 젊은 상인, 그것도 제법 있는 집 상인은 없다.
한 명 있기는 한데, 그라면 이미 거래를 트고 있는 소하상가의 소가주 하주량일 터.
그라면 차라리 석가장으로 찾아오지, 석호루에서 이러진 않을 거다.
“기도도 딱히 느껴지지 않고 수상한 점이 없긴 합니다만, 어찌할지요? 혹, 아시는 분인가 해서 한번 보고를 드렸습니다.”
“제가 확인하죠. 어디에 있습니까?”
“문 앞에 대기 중일 겁니다.”
“1층에서 맞이하겠습니다. 안으로 모셔주시지요.”
“그러겠습니다.”
철환과 함께 집무실을 나가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을 마주했다. 철환과 호위 무사의 안내를 받아 텅 빈 석호루로 들어오는 젊은 공자 한 명.
‘딱 봐도···.’
있어 보이는 집안의 자제처럼 보였다. 못해도 제법 이름 있는 가문의 자제인 건 확실한 상황.
그렇다면 더욱 정체가 오리무중이다. 내가 여기서 아는 사람 중 저런 이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선 젊은 공자마저 석호루 가운데 앉아 자신을 기다리던 내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아는 사이라며? 표정이 아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다.
“저를 아신다고···?”
한마디.
딱 한마디를 내뱉자, 변하는 그의 표정.
“아! 역시!”
그는 그제야 턱까지 들고는 그래, 이거라는 표정까지 지어가며 내게 달려왔다.
손을 뻗어 내 두 손을 맞잡는 그였다.
“누, 누구십니까? 왜···?”
“접니다! 저! 혹, 얼굴이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예?”
“허어. 이런! 전 이 공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이러면 조금 알아보시겠습니까?”
단박에 알아본 그와 달리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자, 그는 갑작스레 인상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어딘가 불편해서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 특히나 눈을 질끔 감는 모습이.
‘어···?’
어디서 본 모습이다.
“접니다! 저! 이 공자께서 항주 시내 객잔에서 가짜 술을 마시고 쓰러진 저를 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때, 그분!?”
결국, 그의 입을 통해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야 기억이 떠오른다.
찡그린 인상을 보니 확 불어오는 그 날의 기억. 철환은 턱으로 그때 그 사람이 맞냐는 물음을 던졌고.
난 맞다는 표정을 지어줬다. 이제야 그가 확실히 기억난 참이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눈은요? 눈은 괜찮으신 겁니까?”
“예. 멀쩡합니다. 그 뒤로 꼬박 몇 달을 병상에만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안력(眼力)이 조금 흐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앞은 보입니다! 멀쩡합니다!”
“다행입니다. 다행.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너무 바빠 추후를 살핀다는 것이···.”
“무슨 말씀을요. 이렇게 살려주신 것만 해도 어딥니까? 그때 의원에게 급한 치료를 받은 이후 다시 고향으로 실려 갔습니다. 그때는 다들 송장을 치우는 줄 알았다지 뭡니까! 하하하!”
“그랬었군요. 소식이 너무 없더라니, 어쩐지! 잘 되었습니다. 정말요.”
중원에서 모든 일의 시작이 이 사내와의 인연 덕분이었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은 건 스치듯 만났기 때문.
항주의 한 객잔에서 소면을 먹던 중 우연히 밀주를 마시고는 쓰러진 사내를 발견했었다.
백주를 먹여 응급처치하고 그를 보낸 게 벌써 한참 전. 그때 쓰러졌던 사내가 바로 지금 앞에 있는 이 사람이다.
“이 공자님이 해주신 처치가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목숨도, 시력도 잃지 않았지요.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이 인사를 전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너무 늦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눈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 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무사하셔서 더 감사하구요.”
솔직히 한동안 잊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때 그일 자체를. 다만, 이렇게 당사자를 마주하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
지금 내가 이룬 모든 것의 시작이, 그날부터였다.
“자자. 안으로 드시지요. 안으로. 안에서 술···은 조금 그렇고 차를 한잔하실까요?”
“좋습니다. 저는 이제 술은 더는 쳐다도 안 봅니다. 허허.”
“암요. 이해합니다. 가시지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내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철환도 표정을 풀고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철환 역시 그날의 이야기를 모르지 않았다.
“드시죠.”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아 잠시 그와 대화를 나누며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백웅이란 이름의 이 사내는 광동과 광서의 사이에 있는 뢰주(雷州)란 지역 출신으로 그쪽에서는 제법 큰 백가상단(白家商團)의 후계자라고 한다.
“헌데, 거래를 트고 싶다는 말씀은?”
“물론, 이 공자님의 의중이 있다면 그러고 싶다는 말입니다. 듣기로는 다른 지역으로 판로를 찾으시는 중이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지역까지 운송해도 상하지 않는 술이 있어 이를 파는 중입니다.”
“혹, 광동이나 광서로도 판로를 찾으셨는지요?”
“아직, 그쪽까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잘되었군요! 허면, 제게 맡겨주십시오. 저희 집안이 광동과 광서에서 술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저희 판로를 그대로 사용하시면 될 겁니다!”
!
“판로를···전부 말입니까?”
한 개의 상단이 가진 판로를 다른 이에게 개방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은 거래를 맺을 때도 일부만 열거나 몇 개의 다리를 놓아주는 게 최선인 법.
판로는 곧 술을 유통하는 사업을 가진 집안의 재산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걸 이 작자가 내게 통으로 넘기겠단다. 중간에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수익은 떨어지겠지만.
이건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아버님께도 허락을 받고 오는 길입니다. 제 목숨값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그래도···.”
“제 체면을 봐서라도. 꼭 부탁드립니다. 물론, 중간에 다른 명목으로 돈을 더 챙기려는 건 절대. 절대 아닙니다. 이는 몇 번이고 검토하셔도 좋습니다.”
백웅은 몇 번이고 자신들이 이문을 남기려 이런 제안을 가져온 게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건 아닌 상황. 온전히 받기는 그렇다. 난 그에게 반대로 수익률만 적당히 조절해 판로를 받는 거로 결론을 지었다.
“저도 그때 이후로 이렇게 석가장에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일방적인 수익은 받기 힘듭니다. 상단에 말해 수익률을 조정하라 이르겠습니다.”
“흠. 어쩔 수 없으시다는 말씀이군요. 예. 적당히라면, 저희도 제안을 받겠습니다. 다만, 많이는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도 꼭 말해두겠습니다.”
“훨씬 마음이 놓입니다. 무어라도 꼭. 꼭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현물 같은 거야, 단순한 게 아닙니까? 언제든 드릴 수도 있는 것이구요. 허허허. 제가 살아 있으니, 언제든 선물을 가지고 다시 오겠습니다!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어디요. 이보다 값진 선물이 없습니다. 하하하. 선단에 이야기해 일정을 잡아달라 하겠습니다. 광동과 광서면, 뱃길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예. 물류는 뱃길이 훨씬 빠르지요.”
광동과 광서를 향하려면 강도 많이 건너야 하고 산도 넘어야 한다.
직선으로 길을 그으면 쉽다지만, 실제는 다른 게 현실.
그래서 항주의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해 물류를 광동과 광서로 옮긴다.
이는 석가장의 선단이 맡으면 될 일이다.
‘손 단주가 노났네.’
선단의 단주 손목건의 입이 찢어지는 게 벌써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휴가 직전에 일이 하나 늘어난 것 같지만, 괜찮다. 벌 수 있는 돈이 얼마겠나.
이런 건 언제나 환영이다.
“그나저나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길이 엇갈릴 뻔했습니다.”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당장은 아니지만, 곧 떠날 예정입니다. 잠시, 휴가를 냈습니다.”
“그래요? 제가 제 때에 찾아왔군요. 어디로 가십니까? 가까이는 소흥도 좋고, 멀리는 북경이나 개봉이 역시 최고지요.”
“이번에는 조금 더 멀리 가보려 합니다. 사천으로 정했습니다.”
“사천이요? 이야. 이거, 정말이지 먼길을 가시는군요. 사천이라. 역시, 그 술 때문이겠지요?”
시기가 엇갈릴 뻔했음에도 운이 좋게 조우했다. 그런 말을 하던 중 백웅의 입에서는 ‘그 술’이란 단어가 나왔다.
사천이야 유명한 술이 넘치는 지역. 난 그 술이 어떤 술을 뜻하는 건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검남춘부터 노주노교에 오량액까지. 많지 않나. 그의 말이 향한 그 술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 술이라면···?”
“아. 여기까지는 아직 소문이 나지 않은 모양이군요. 으음. 생각해보니 그렇긴 합니다. 저도 광서에 있을 때나 마지막으로 들은 이야기라.”
거기로 본다면야 사천이랑 광서의 거리가 사천과 절강보다 훨씬 가깝다.
거리가 먼 항주에서는 사천의 풍문을 듣기란 어렵다. 어디 가서 수소문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사천에 얼마 전부터 재미난 술이 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뭐. 그런 이야기야 워낙에 많아서요. 허. 참. 저도 이걸 믿어야 할지. 허허.”
“재미난 술이라. 오히려 재밌군요. 그 수식어가. 어떤 술인지요?”
맛있는 술. 좋은 술이 아니라 재미난 술이란다.
이건 어떤 술에 붙는 수식어일까.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후아주. 원숭이가 빚었다는 술이 사천에서 돌고 있다고 합니다.”
백웅의 입에서는 정말이지 재미난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