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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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우우웅!
커다란 박도가 파공음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이를 두 발 정도 차이로 피해낸 후 뒤로 물러서 자세를 잡길 잠시.
난 곧장 무흔보를 펼쳐 그대로 그의 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건 현천한빙심공의 묘리를 담은 장법.
– 팡! 팡! 팡!
하는 소리를 내며 장법이 박도를 떨어트린 거구의 산적을 그대로 쓰러트리고 만다.
마치 사지가 마비된 것처럼 굳은 채 곧장 땅으로 떨어지는 사내.
이게 내 인생에 한 번이나마 묘사될 일이 없을 것 같은 풍경이지만.
이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처음보다 훨씬 늘었군! 암! 좋네, 좋아!”
바로, 저.
화산개협. 아니, 괴협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워낙에 친하게 지낸 탓에 잠시 깜빡한 것.
진효풍이라는 이의 앞에 붙은 별호에는 ‘괴(怪)’자가 들어간다는 걸 말이다.
이제는 써볼 때니 어쩌니 하며 잔뜩 수상한 눈빛을 객잔에서 보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무공의 성취가 올랐다는 것도 말하지 말았어야 했고. 특히나 이렇게 강호에 나온 중에는 더욱 말이다.
진효풍은 손으로 얼음을 얼려가는 내 모습을 보고는 진득하게 웃어 보였다.
그 후로 한 며칠은 괜찮았다. 하지만, 이는 이창(宜昌)이란 도시를 벗어나며 조금은 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관도가 끝나며 사천이 가까워짐을 알리는 산세가 나타난 것.
그런 산세에 어울리는 건 당연히 녹림이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다만, 그들이. 지금처럼 찾아가며 만날 이들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어, 언제까지 이걸 해야 하는 겁니까?”
“한 명 더 오네! 피하게!”
– 슈우우웅!
– 콰앙!
진효풍에게 따지듯 말을 물어갈 때, 또 다른 거구의 산적이 나타나 커다란 쇠 방망이로 땅을 때려갔다.
누가 보아도 산적 중 두령처럼 생긴 사내. 그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네 이놈들! 감히 나 낙호필살(落虎必殺) 육강의 낙호채(落虎砦)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누가 들어도 산적 같은 대사를 뱉어왔다. 진효풍은 얄밉게도 산채의 전각 지붕에 올라서 이를 지켜만 보고 있다.
손에 팝콘만 쥐여준다면야, 영화관에 온 것 같은 모습이다.
“네놈! 어디의 누구더냐?”
“서, 석호루의 이정환이라고 하오!”
“석호루? 그런 문파가···?”
“주루요!”
“주루!? 이 미친놈이!”
– 푸하하하하!
진효풍은 낙호채의 채주와 내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더니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이게 재밌나. 무림인의 유머는 따라갈 수가 없다.
“오냐! 내 헛소리하는 네놈의 머리통을 부숴주마!”
“······.”
– 슈우우우웅!
잔뜩 화가 오른 육강은 그대로 쇠 방망이를 들어 다시금 내게 달려들었다.
맨손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상황. 난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고는 그의 공격을 맞이했다.
– 쾅!
거칠게 내려온 몽둥이는 그대로 땅을 때렸다. 내가 간발의 차이로 피했기 때문. 솔직히 말하자면, 느리게만 보인다.
내가 빠른 건지, 저들이 느린 건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저들이 느리고. 내가 빠른 게 맞다.
난 그 차이를 이용해 곧장 무흔보로 달려들어 설진팔검을 펼쳐냈다.
– 휘리리릭! 스릉!
– 촤아아악!
눈사태처럼 빠르게 펼쳐지는 하나의 검로.
검로는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는 강맹함을 가지고 그대로 육강의 허벅다리를 베어갔다.
솟구치는 핏물에도 내 눈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을 본 풍경인 탓도 있다. 지금 털고 있는 이 낙호채가 처음은 아닌 상황.
진효풍은 관도가 끝나는 산세를 맞이하자, 제대로 된 중원의 풍경을 보여주겠다며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은 산채만 지금 벌써 세 번째.
그리고 거기서.
난 실전이란 명목으로 산적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잘 짜인 진효풍의 판에 그대로 걸리고 만 것이다.
처음 피를 봤을 때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던 게 당시의 심정.
싸이코패스. 딱 그런 말이 떠올랐다. 현대에서는 몰랐던 성향을 이제야 알아가나 하는 기분도 잠시.
진효풍은 이게 전부 내가 익힌 무공 때문이라 말했다.
– 심법(心法)은 본디 마음에 영향을 미치니 심법이라 부르는 걸세. 현천한빙심공은 말 그대로 얼음처럼 냉철한 판단을 내리게 해주는 심법. 자네가 처음임에도 차분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일세.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내가 싸이코패스 같은 건 아니었던 모양.
앞서 여러 상황에서도 남들보다 침착할 수 있었던 건 심법 덕분이었단 게 그의 설명이었다.
북해빙궁 출신의 이들은 누구보다 냉철하다나 뭐라나. 전부 이해가 가는 말은 아니지만, 몸으로 느꼈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주한 게 벌써 세 번째인 지금의 풍경.
한쪽 다리를 당한 육강은 무릎을 꿇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알고 있다. 곧 일어설 것이란 걸.
이제는 세 번째니 짬밥이란 게 조금은 쌓일 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지 않겠나.
난 그가 일어서기 전에 일을 끝내려 곧장 그에게 다가섰다.
“젠장! 이대로는 안 당한다!”
“미안하오!”
– 슈우우웅!
– 슈슈슛! 촤아악!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던 육강은 그대로 중심을 잃고는 내 옆으로 쓰러졌다.
검이 베어간 건 그의 하복부. 그리 깊게 베이진 않았다. 다만, 정신을 잃게 하기에는 충분한 깊이였다.
“크흑!”
– 쿵!
“헉···. 헉···. 헉.”
– 툭.
“고생했네. 오늘도. 나머지는 내가 하지.”
채주가 쓰러지자, 진효풍은 전각의 지붕에서 내려와 곧장 다른 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매를 몇 번 휘날리니 허공에 뜬 후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산적들.
이리 간단한 것을. 그의 무공은 보면 볼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진짜. 언젠가는 크게 복수할 겁니다.”
“이제는 제법 잘하는구만, 뭘!”
“다치면 어쩌려고···!”
“내 그걸 지켜만 보고 있을까?”
“······.”
“중원을 제대로 돌아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이게 중원의 민낯이네.”
– 펄럭!
진효풍은 슬쩍 원망을 내비치는 내 앞에서 소매를 펄럭이며 자신이 올라있던 전각의 문을 날려버렸다.
그러자 나오는 건 이미 몇 번을 목격한 풍경. 문 안에는 겁에 질려 온몸을 떨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팔과 다리에는 육중한 구속 구가 붙어 있다. 산적들이 내다 팔기 위해 잡아 온 이들이다.
“어떤가? 항주와는 많이 다르지 않나?”
“···이번 휴가 동안만입니다.”
제대로 된 중원을 보고 싶다. 그런 말을 했던 게 이렇게 돌아온다.
언제나 낭만과 현실은 다른 법.
여긴 야만과 낭만의 시대고, 일전에는 그저 표행을 나가며 스치듯 지났던 게 녹림이란 이들이었다.
상인으로 마주했을 때는 적당히 푼돈을 써가며 어르고 달랠 수 있었던 게 그들.
다만, 이들은 돈이 없는 양민들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존재 그 자체였다.
진효풍의 말처럼, 제대로 된 중원의 민낯을 이렇게 마주하고 만다.
억지 같은 이런 산채 습격을 세 번이나 말없이 따라오게 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간다고 한다면. 진효풍 이 사람 역시 함께 갈 테니까.
이 사람이 간다면. 해결이 될 테니까.
‘···딱, 이번 휴가만.’
소시민적으로 살았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하지만, 눈앞에서 마주한 악행을 외면하기 힘든 것도 소시민의 사정이다.
차라리 몰랐다면. 조금만 더 멀었다면. 그렇게 안타까워만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
그래, 이건 휴가니까. 이때만. 그렇게 진효풍의 장단에 맞춰주는 척을 하며.
난 그와 이렇게 산채를 습격하는 중이다. 마치, 강호행을 나온 무림 문파의 제자처럼.
대환단도 내가 익힌 무공도 무시하지 말라던 진효풍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난 어렵지 않게 산채의 채주도 잡고, 몸 역시 상한 곳이 없다.
– 챙! 챙! 챙!
– 뚝! 뚝! 뚝!
진효풍과 함께 잡힌 양민들에게 다가가 구속 구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진효풍은 가볍게 검으로 이를 풀어냈고, 난 이를 한기로 얼린 후 부수는 방식을 택했다.
벌벌 떨던 양민들은 진효풍의 소매에 새겨진 매화를 보고는 안심하는 모습이다.
‘역시···’
협은 협이구나. 화산이란 이름도 크고. 괴이해도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 사실이 화를 누그러뜨리게 만들고 만다.
그래도 마냥 당할 순 없으니. 다음번 술에는 조금 이상한 걸 타주고 말 거다.
진효풍 덕분에 도보로 즐기며 적당히 풍경이나 보려던 여행이 강호행처럼 바뀌어버렸다.
그것도 진효풍식 강호행. 산채를 습격하고 그들을 잡은 뒤 거기 잡혀있던 사람을 풀어준다.
그리고 그 산채에서 하루 묵은 후 거길 태워버리길 몇 번. 산채가 쌓아둔 재산은 진효풍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잡혔던 이들에게 모두 나눠주는 그의 모습이 새삼스레 정파인처럼 보였다.
“정파인이···맞으셨군요?”
“그거, 굉장히 실례되는 발언이네.”
그렇게 낙호채에서 하루를 보내고 또 그 산채를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산적들은 모조리 관아행. 진효풍이 인상을 한번 쓰니 다들 스스로 손과 발을 묶고 차례대로 관아를 향해 나아갔다.
죽는 것보다야 이게 낫다며.
도보로 항주를 떠날 때는 어떤 중원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무한에서는 일반적인 객잔과 주루의 모습도 보았고, 또 지금은 다른 민낯도 만났다.
힘들다. 예상하지 못했고. 다만, 이 역시 하나의 여행이자 중원의 모습일 터.
바텐더는 할 수 있는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다. 그렇게 배웠고.
잔을 드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바텐더가 어찌 좋은 잔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난 중원에 어울리지 않은 바텐더였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그게 조금은 달라질까.
조금은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사천이 점점 가까워져만 갔다.
***
“자. 다들 모이셨소?”
“흠. 얼추 그런 것 같소만.”
“삼화양방?”
“왔소.”
“철가장?”
“전원 출석이오.”
“청화루?”
“당연히.”
늦은. 아니, 이르다고 불러도 좋을 새벽.
사천성 성도(成都)의 끝자락에 있는 용화산의 아래에는 수십에 달하는 사람이 모여 작당 모의를 마치고 있다.
저마다 하나씩 병장기를 손에 든 이들. 누구는 칼을 누구는 박도를. 또 누구는 철사로 짠 그물까지 들고 있다.
무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잘 다루지 않는 활과 화살까지. 이건, 생각보다 다양한 무장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동이 틀 때를 노려야 하오. 이레에 한 번. 기회는 흔치 않소.”
“알고 있소. 허니, 다들 이리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모인 게 아니오?”
“작전은 있소?”
“삼화양방에서 온 호위들이 퇴로를 막을 것이오. 철가장이 미끼가 되어 절벽 아래로 향할 것이고.”
“흠. 허면, 청화루와 그대들 촉운객잔(蜀雲客棧)이 추격조겠군.”
“그렇소. 청화루의 무사들이 모두 활과 화살로 무장했고 우린 이렇게 그물까지 준비해 왔소. 이미 발이 빠른 자들을 선별해 뒀으니, 문제는 없을 거외다.”
“잡은 후에는? 그 후에는 어쩔 거요?”
“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오? 나온 술은 정확히 등분해서 가져가는 거로.”
“흠. 나중에 다른 말을 하진 않겠지?”
“그때는 여기 모인 이들이 함께 응징하면 될 일이오.”
이들은 조용히 모여 목소리를 속삭이며 추격 대상을 체포할 준비를 마쳐갔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양방(釀幇)부터 이런저런 사업을 하는 가문, 그리고 주루인 청화루와 객잔까지.
저마다 발을 댄 분야는 달랐지만, 하나로 통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술.
이들이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 역시, 그 술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술 하나 때문에 모인 건 조금 비약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요소도 하나 끼어있을지도.
아마, 욕망. 그런 감정이 이들의 눈에는 동시에 아려갔다.
달빛과 풀숲은 그런 걸 보고 싶지 않은 걸까. 달과 숲이 만나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이들의 얼굴을 가렸다.
짙게만 보이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다짐하는 이들.
이들 중 가장 경험이 많고 노련하다는 촉운객잔의 호위장이 앞으로 나섰다.
준비한 병장기를 슬쩍 옆으로 눕히며 그는 비장하게 말을 꺼냈다.
“시작해 봅시다. 원숭이 사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