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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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자! 진 아저씨!”
멀리서, 저 멀리서.
작은 신형 하나가 열심히 손을 머리 위로 들고는 흔들어갔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낭창하며 당찬 목소리.
흐릿하게 보이는 신형에서도 알 수 있는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당문의 차녀인 당소정이다.
“여어-! 독화!”
“또, 또 독화래! 하여튼!”
진효풍은 오랜만에 만난 당소정을 나보다 더 반기며 어린애처럼 손을 흔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당소정의 뒤로 보이는 커다란 키의 한 사내. 녹색 장포를 거친 이는 진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진한 수염과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눈에는 가득한 독기.
현대를 기준으로 보아도, 엄청난 미중년이라 불리기에 모자라지 않은 사내.
거기에 멀리서도 느껴지는 기도는 진효풍 이상 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
당문의 가주이자, 독왕. 또한, 당소정의 아버지가 바로 저 사내일 것이다.
“천악 형님!”
아니나 다를까. 그의 정체는 당문의 가주가 맞았다. 진효풍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는 그.
어떤 성격의 사내일까. 풍기는 인상만 봤을 때는 일가의 가주다운 면모가 그대로 묻어나 조금은 압도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효풍 아우님!”
이내, 진효풍을 맞이하는 건 친근한 목소리와 비슷한 결을 가진 어투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자네 소식이야 여기까지 떠들썩하네! 깨달음을 얻었다지!? 술을 마시고! 이런 괴협을 봤나!”
“하하하! 형님도 솔직히 말씀해 보십시오! 독을 먹고 깨달음을 얻으셨던 거 아니셨습니까?”
“실없는 소리 하기는! 어쨌든 반갑네!”
마치 오래된 연인이 마주한 것처럼 두 사람은 가볍게 몸을 포개어갔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의 진심은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어휴! 그만들 좀 해요! 보는 사람도 있구만!”
당소정이 둘 사이를 갈라놓고 나서야 둘의 몸이 떨어졌다. 친하다는 말이 다소 과장일 줄 알았던 것도 잠시.
진효풍은 그래도 허언은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아, 아니! 반가움을 표현하느라···.”
“손님이 있잖아요! 체통을 좀 지켜요!”
“아. 그렇지. 손님.”
생각보다는 널널한 사람인 것 같다. 보이는 인상이 역시나 전부는 아닌 법.
보기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당천악이란 이는 당소정의 말에 쩔쩔매며 이제야 내게 시선을 보낸다.
“항주에서 온 이정환이라고 합니다. 당가주님을 뵙습니다.”
“반갑소, 이 공자. 나 당천악이오! 말씀은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들었소! 소정이 얘가 하루종일 그대가 만들었다는 편도즙을 아주 입에 달고···”
“아 쫌! 필요한 말만 해요! 필요한 말만!”
“넌 내가 무슨 말을 못 하게···”
최대한 절도있게, 이제는 완벽히 중원식 예법에 맞춰. 그렇게 당천악에게 인사를 건네니, 나오는 말이 생각보다 많았다.
당연히 그런 말을 제지하는 건 그의 딸, 당소정. 그녀는 눈치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말에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그래도···’
보기는 좋다. 딸과 아버지가 막역하게 자란 게 서로 오간 정이 많다는 증거.
당소정의 당찬 성격은 집에서 받고 자란 사랑 때문일지도 모른다.
“크흡! 어쨌든···, 이야기 많이 들었소. 당문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효풍 아우도 신세를 졌다고. 남궁가에서 일 역시 우리가 덕분에 면이 살았소이다. 내 한 번은 꼭 인사를 하고 싶었소.”
“무슨 말씀을요. 당문에서 놓아준 줄 덕분에 석가장이 큰 이득을 봤습니다. 도움도 서로 주고받았고요. 또한, 진 대협도···”
어.
이건 생각을 조금 해봐야 한다.
화산으로부터 받은 거야 많지만, 요즘은 당한 게 적지 않아 상쇄도 되려는 지금.
그래도, 일단은 그냥 넘어가고 본다.
“예. 그, 이렇게 뵐 수 있어, 반갑습니다. 가주님. 그리고 말씀 편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진 대협께서도 제게 말씀을 낮추십니다.”
“흠. 그래도 되겠나?”
“훨씬 편합니다.”
“알겠네! 그럼! 허허허! 나도 실은 이게 더 편하네!”
당천악은 슬쩍 옆에 선 당소정의 눈치를 보더니, 얼른 말을 놓아 버린다.
아무래도 당소정이 신신당부를 해둔 모양이었다.
“자자. 여기들 있지 말고 들어들 가세. 얼른!”
딸의 입에서 또 잔소리가 쏟아지기 전에 당천악이 먼저 손을 쓴다.
안으로 진효풍과 날 안내하는 당천악. 그를 따라 성벽 같은 당가타의 대문을 넘으니 안에는 명불허전 멋들어진 풍경이 펼쳐진다.
석가장의 풍경이 최고라 여겼다. 남궁세가를 둘러봤을 때도 변함이 없었고.
헌데, 여기를 둘러보니. 절경이 사천에 모두 모여있다는 말이 과연 허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산세와 어우러져 자리 잡은 장원은 그야말로 하나의 동산, 그 자체였다.
“자자. 앉읍시다! 내 아우님이 오신다기에 안에 술상을 봐두라 일렀네!”
당천악은 그대로 가장 큰 전각. 즉, 가주가 쓰는 전각의 연회장을 통으로 채워 진효풍과 날 대접하기로 했다.
앞에 펼쳐지는 건 사천이 자랑하는 다양한 요리들. 석호루에서도 제법 많은 요리를 다루는 편인데.
여기 펼쳐진 요리 중에는 처음 보는 것들도 많다.
“허어. 입 벌어집니다! 입 벌어져! 역시 요리는 사천이지!”
진효풍은 그대로 자리를 잡고 앉더니, 제집처럼 젓가락을 움직이기 바쁘다.
난 천천히 앞에 놓인 음식들 사이를 채운 술병에 시선을 던졌다.
‘검남춘에 오량액···.’
펼쳐지는 라인업은 예사롭지 않았다. 다만, 바라던 술은 보이지 않는 상황.
먼저 이를 언급할 수는 없다. 그래도 손님이고 대접하기 위해 준비한 술이라지 않나.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난 차분히 앞에 놓인 잔만을 들었다. 못해도 30년은 넘은 검남춘이 부드럽게 목으로 흘러들었다.
‘크흐.’
그렇게 한참을 술을 마셔가며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당소정이 떠난 후 이야기부터 여기 닿기까지 유려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들.
다들 남궁의 일에는 혀를 찼고, 개방과 황찬주에서는 웃음을, 그리고 오면서 산채를 습격한 이야기에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흠. 후아주라.”
그렇게 이야기는 결국에 후아주까지 닿았다. 당천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딱 지금 사천의 여론이 어떠한지를 알려준다.
적어도 이곳의 소식은 그가 가장 정통할 것이다.
“용화산에 모인(毛人)이 산다는 말이야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돌던 이야기이긴 했네. 처음에는 다들 그러려니 했네. 헌데, 후아주라니. 허허. 원숭이가 술을 빚어? 그런 걸 믿는 바보가 어디에 있다고.”
“······.”
당신 바로 앞에요.
난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겨우 삼켜갔다.
어떤 도사가 이를 진지하게 믿었다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얼마 전 있었던 원숭이 사냥 이후로는 다들 믿는 눈치이기는 하네. 직접 본 사람마저 있다고 하지 않나. 다친 이도 있고.”
“그, 그렇지요?”
“뭐. 설왕설래야 많네만, 정해진 결론은 없는 상황이라네. 그래도 들려온 말들이 제법 구체적이긴 하고. 서로 다른 이들의 말이 겹치기도 하지.”
“역시! 결과야 모르는 게 아닙니까? 이 친구는 그런 원숭이가 없다고, 없다고!”
“허허. 이 사람아. 정해진 건 없다지 않나? 무공에도 조법(爪法)이 있지 않나? 정, 궁금하면 자네가 직접 용화산에 올라보게나. 허허. 시간도 많으니.”
“이 공자는 어때요? 술은 그래도 이 공자가 최고잖아요!”
이미 당소정이 후아주를 구매해 둔 걸 난 모르지 않는다. 헌데도 후아주 이야기가 나왔을 때 모른 척 말을 물어오는 당소정.
난 어렵지 않게 그녀가 날 놀라게 해주려고 저러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치미를 뚝 떼고는 그녀의 준비를 망치지 않기로 했다.
“글쎄요. 의심되는 정체야 있습니다. 물론, 술을 마셔본다면, 직접 알 수도 있지만···, 워낙에 귀하다고 들었습니다.”
“소문을 들으셨군요! 맞아요! 그 술이 요즘 얼—마나 귀한데요!”
“응? 그 귀한 걸 자네가 이미 구해뒀다는 게 아닌가? 안 그렇나?”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망치는 건 우리의 매화돌이다. 순간, 슬쩍 변하는 당소정의 표정.
잠시 잊고 있었다. 진효풍이 도사라는 걸. 여자의 마음을 하나도 모르는 모태솔로라는 걸 말이다.
알았어도 들뜬 마음을 챙겨줘야 한다는 걸.
‘하.’
“뭐에요? 알고들 있었어요?”
“그···, 오는 길에 개방 형제를 마주해서···.”
“내 다 알 거라고 하지 않았더냐?”
“아버지는 알고 있는 걸 알고 있었구요?”
“이 공자의 목에 걸린 저 목패가 개방의 천수식개 홍구의 표식으로 보이더구나.”
“쳇! 거지들 이야기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김샜어요!”
“죄송합니다. 전 모르는 척하려고···.”
아무래도 화산의 무인들은 무공을 익히면 익힐수록 눈치를 잃어가는 페널티를 가진 게 분명하다.
진효풍을 보면, 그런 확신이 든다.
“그래도 감동이었습니다. 절 위해서 구해주셨다지요?”
“에이. 눈앞에서 짜잔! 해주려고 했는데···!”
“진심입니다. 듣는 순간, 기뻤습니다.”
“정말이죠?”
“그럼요.”
“좋아요! 기분이에요! 한 번만 넘어가요! 여기!”
– 턱.
다행히 적당한 포장에 당소정의 기분이 빠르게 풀어진다. 출가한 도사와는 다른 바텐더의 말솜씨 덕분.
진효풍은 여전히 이해를 못 하며 못마땅한 표정이니, 당소정의 눈빛이 독하게 진효풍을 훑었다.
한동안 그와 겸상을 피해야만 할 것 같다.
“오! 이게!?”
“아저씨는 그냥 제가 술을 직접 빚어서 만들어 줄게요, 그냥!”
“흥. 그게 술은 맞고?”
“아닐 가능성이 크죠!”
둘은 그립던 만담을 잠시 주고받고는 곧장 술 단지의 밀봉을 뜯었다.
진하게 풍기는 과실주의 주향(酒香).
첫 노즈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상당히 투박한 과일을 썼다는 것이다.
이건 야생의 과일을 쓴 건 분명한 상황. 다만, 아직 확실한 건 입으로 향해 봐야 알 수 있다.
술 단지 안에서는 붉은빛을 가득 머금은 홍주(紅酒)가 꿀렁이고 있었다.
“흠. 나도 향은 처음이군.”
“가주님도 말씀입니까?”
“암. 저 아이가 어찌나 저걸 아끼고 돌던지! 구할 연줄은 내가 대었네만, 구경도 못 했다네!”
“함께 드시지요. 술맛이 더욱 좋아질 겁니다.”
“암. 암. 그러세! 오늘을 위해 내 오래 참았네!”
“당 소저.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뭘요! 맛있게만 마셔줘요! 그리고, 모인의 정체도 알려주구요!”
“예. 제가 한번 제대로 파헤쳐보겠습니다.”
– 조르르륵.
술은 당소정의 성격처럼 시원하게 잔을 채워갔다. 단지에서 나오니 본래의 색을 찾아가는 후아주.
진한 포도색이 딱 와인과 닮아있다. 누가 만든 건지는 몰라도 향과 색만 보았을 때는 잘 만든 술이 분명한 상황.
난 코를 잔에 박고 조금 더 자세히 향을 맡아갔다.
‘달콤함 속에 시큼함이라.’
향을 제대로 맡으니, 딱 의심되는 재료가 있다. 자연에서도, 중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재료.
‘머루···.’
산머루라는 게 내 예상.
자연에서 자라는 포도의 일종인 산머루는 일반적인 와인을 담그는 포도에 비해 신맛이 강한 게 특징이었다.
이 술은 그 신맛을 살리면서도 달콤함을 끌어낸 하나의 머루 와인으로 보였다.
“드시죠!”
“그럼, 잘 마시겠네.”
“허허. 딸 덕에 호강하는군!”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가볍게 나오는 당소정의 말을 구호로 네 사람이 동시에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방을 울리는.
– 호르르륵.
하는 네 개의 소리.
술이 그대로 입술을 적시고 네 사람의 혀를 때리자.
!!!
모두는 같은 표정을 지어갔다.
아무도 말을 뱉지는 않았지만, 입에 술을 머금은 순간 느껴진 감상은 같았을 거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며 명료한.
‘맛있다.’
는 감상.
혀에는 연달아 또 다른 감상이 찾아왔다.
제일 먼저 명확해지는 건 이건 술이란 것이다. 혀에 닿는 순간 느껴지는 도수는 못해도 10도 이상.
또한, 첫맛에서 느껴지는 타격감은 드라이하다고 부르는 그 텁텁함이었다.
이건, 포도류를 술로 담그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이다.
다만, 그 텁텁함이 뒷맛과 잘 어우러질 때는 이를 잘 만든 술이라 부를 수 있다.
이 후아주가 딱 그러했다. 텁텁함이 오히려 혀를 예민하게 만들어줘 치고 오르는 뒷맛을 키워주는 느낌.
난 계속해서 혀에 집중했다.
‘다음은···.’
신맛이 치고 오며 한껏 민감해진 혀에 신선함을 공급해준다. 이게 과하면 맛을 잃는 법.
후아주는 역시나 신맛을 길게 가져가지 않고 적당히 끊으며 다음 맛을 안내했다.
연달아 이어지는 맛은 달콤한 맛이다. 헌데, 그 달콤함이 이상하게만 여겨졌다.
‘재료가 분명···’
산머루였는데.
맛에서 느껴지는 재료의 흔적 역시 그러했고.
이런 달콤함은 조금 수상하다. 이건, 머루만으로 술을 만들었을 때 낼 수 있는 달콤한 맛이 아니었다.
– 꿀꺽.
아쉽다. 조금 더 맛을 느껴보고 싶지만, 이제는 혀 뒤로 술을 보내야 할 때.
난 잔향과 함께 올라오는 끝 맛을 보려 아쉬움을 안고 술을 뒤로 삼켰다.
“후우.”
그리고 불러오는 잔향과 따라오는 아련한 뒷맛.
잔잔하다. 부드럽고. 포근하게 입을 씻어 주는 맛에 나도 모르게 턱이 들렸다.
이건, 산머루 본연의 맛은 아닐 터.
그제야 난 이 후아주를 만든 이의 윤곽이 명확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찬찬히 턱을 내리고 눈을 뜨자.
“어때요?”
“알겠나?”
곧장 후아주를 만든 모인의 정체를 물어오는 진효풍과 당소정.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마주했다.
그들 역시 표정에서 많은 걸 읽어낸 눈치다.
“역시, 사람인가···.”
“그렇죠? 이건, 동물이 만들 수가 없는 맛이에요.”
“암. 또한, 이 공자의 말로는 자연에서 만든 술은 이렇게 강할 수가 없다더군. 이건 밍밍하지가 않으니.”
“밍밍은커녕 맛이 진하기만 한 걸요?”
“허니, 사람이라는 거겠지.”
침묵으로 그저 고개만을 끄덕인 게 생각보다 많은 답이 된 모양이다.
두 사람은 그대로 사람이 만든 술이란 결론을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도수가 강한 이상, 불변의 진리니까. 나 역시 같은 결론이고.
하지만.
술을 마셔봄으로써 오히려 명확해진 새로운 결론도 있었다. 허무하게 밝혀진 모인의 정체와는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
“저어. 여러분.”
난 이를 여기 모인 이들에게 들려주고 작은 도움을 받기로 했다. 부르는 말에 조용히 시선만 따라오는 세 사람.
난 그들에게 내가 내린 새로운 결론을 들려줬다.
“아무래도 이 술을 만든 사람. 제가 꼭 좀 만나 봐야 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