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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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열이! 이보게 갑열이! 정신 차리게! 이게 다 무슨 일인가!?”
구수한 이름이 나오며 조 말구는 그대로 모인의 상태를 챙겨갔다.
어설프게나마 맥을 잡는 것이 약재상이라지만 의술도 조금은 익힌 모양.
그런 그의 모습을 뒤에서 당소정을 비롯한 이들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난 그런 조 말구의 모습 뒤로 그가 두고 간 짐들에 시선을 던졌다.
약재상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얼음과 생필품으로 가득 찬 그의 짐 보따리.
예상할 수 있는 건 없지 않았다. 아마, 모인이라 불리는 저 갑열이에게 생필품을 챙겨다 준 게 조 말구로 보였다.
물론, 어디에 쓰이는 건지 모르지만, 얼음도.
어쩌면, 모인이 날 보며 발작한 이유는 한기를 뿜는 내 무공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저씨! 이게 다 뭐예요? 이 모인, 아니. 색목인이랑 아는 사이에요?”
“아, 아가씨가 이러신 겁니까? 해독! 해독을···!”
“진정해요, 아저씨. 기혈이 뒤틀리긴 했지만, 제가 치료할 수 있으니까요! 독은 안 썼어요! 다들 나만 보면 독이래!”
“기, 기혈이? 독이 아니라? 허면, 정말 가능하십니까···?”
“그럼요! 저 당소정이에요!”
말구는 그대로 힘이 빠진 듯 자리에 주저앉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전부 하진 않아도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짐작하는 듯한 눈치.
그는 결국에야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표정이다.
“그러게···, 내 이런 짓은 그만하라고···. 기어이, 경을 치고···.”
“흠. 저치는 대충 모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말구 아저씨! 이제 설명 좀 해봐요!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당문이 나서서 직접 모인을 잡았다. 말구는 그렇게 여기는 모양이다.
“그, 그 전에! 아가씨! 주, 주변에 다른 아이는 없었습니까요?”
“아이요?”
“예! 일곱에서 여덟 정도. 무릎까지 오는 작은 여자아이!”
“아뇨? 전혀?”
“이런···!”
허탈한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던 조 말구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달의 위치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는 그. 그는 달이 기울기 시작한 걸 보더니, 곧장 몸을 일으켰다.
“가야 합니다!”
“어, 어딜요?”
“······.”
“아이···인가요?”
어딜 가냐는 물음에 답이 나오질 않자, 내가 추측하는 걸 들려줬다.
물어온 말이 아이에 관한 말이었고, 시간을 살피는 건 조 말구란 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
성품으로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인이라 불리는 이에게 생필품까지 챙겨줄 정도니까.
그런 그가 무언가에 쫓기듯 저렇게 나온다는 건 급박하게 챙겨야 할 게 있다는 말일 거다.
예컨대, 어린아이 같은.
“···언제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습니다. 같이 가시지요. 갑열이도 어딘가에 두어야 치료를 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따라가면, 설명은 해주는 거요?”
“전부 설명하겠습니다. 아가씨께서 제집도 알고 모든 걸 아시니, 도망칠 생각은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분이에요! 제가 보증하죠.”
“흠. 어찌 생각하나?”
“우선, 저분의 말씀대로 따라보시죠. 무공을 익히지도 않으신 분이니, 크게 걱정할 건 없다고 보입니다. 당 소저의 보증도 있지 않습니까?”
“뭐. 자네와 독화가 그렇다면야.”
말구는 우리의 방향이 그와 함께 하는 쪽으로 정해지자 주섬주섬 땅에 쏟아진 것들을 주워갔다.
얼음에는 흙이 묻어 먹기에는 힘들어 보였지만, 이를 모두 챙겨가는 그였다.
‘하긴···.’
얼음이 여간 비싼 시대가 아니니까.
나 역시 무공을 제대로 익히기 전에는, 여름을 나기 위해 얼음을 대량으로 미리 구매해 둬야 했을 정도였다.
약재상이나 모인이라면, 얼음을 구하기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조 말구는 복잡한 숲길을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이리저리 오가며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조금은 깊어지는 산골. 용화산의 모든 길을 조사했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보니 초행인 길이다.
“이렇게 깊은 길이 있었을 줄은 몰랐어요.”
“약재상들이 다니는 길이야 늘 외진 길이지요. 약재야 사람들 눈을 피해 다니니까요. 허허.”
“고생하신다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허허. 의원님들이 그런 걸 알아서 뭐합니까. 전 좋습니다. 저 역시 이 덕분에 갑열이에게 쉴 곳을 내어줄 수 있었으니까요.”
“그 말씀은?”
“예. 제가 용화산에 갑열이를 데려온 사람입니다. 아가씨나 가주님께는 말씀을 드렸어야 했던 건데···. 결국, 당문이 나서서 모인을 퇴치하려 할 줄은 몰랐지 뭡니까.”
“퇴치는 아니구요···.”
“퇴치가 아니었습니까?”
퇴치가 아니었냐. 그런 말구의 물음에 당소정의 표정이 내 쪽을 향한다.
항주에서 온 이정환이란 이름. 나름 나도 이름이 제법 알려진 덕분에 말구는 날 모르지 않았다.
난 술을 만드는 이로 이름이 제법 알려져 있다.
“허. 술이었습니까?”
“그저, 만나서 대화만 나누려고 했습니다. 저분께서, 너무 흥분하셔서···.”
“참. 너무들 하십니다. 밀주가 합법은 아닙니다만···.”
“거, 먼저 공격한 건 저쪽이네! 이쪽은 칼도 안 찼고!”
“정말이에요! 우린 대화만 하려고···!”
마치 우리를 악당처럼 몰아가는 듯한 말에 진효풍과 당소정이 얼른 손을 내저으며 나섰다.
둘의 지위 때문인지 말을 덧붙이지 못하는 조 말구. 대신, 그는.
“워낙에 경계심이 강해서 그렇습니다. 당한 게 많은지라···”
조금은 무거워지려는 이야기를 꺼내왔다.
“당했다는 건 무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상가는 게 없지는 않았다. 대충 봐도 생김새가 딱 다르지 않나.
인종차별이야 내가 있던 곳에서도 빈번하게 이뤄지던 것들. 중원은 그런 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다.
“딱 봐도 보이지 않습니까? 생긴 것도 다르고. 다들 손가락질하고 돌도 던지고 그랬지요. 살던 곳에서 살았다면 좀 좋았을까. 놈도 불쌍한 녀석입니다.”
“살던 곳이라 하심은?”
“놈이 새외(塞外) 출신이긴 합니다. 그래봤자, 옥문관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긴 합니다만.”
“흠. 어쩐지 중원어가 정겹더라니. 거진, 중원 토박이였군.”
“그래도 그쪽은 나았습죠. 거기야 저놈처럼 하얗고 눈이 퍼런 놈은 없어도 색목인이야 많았으니. 헌데, 옥문관 안으로 들고난 이후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색목인의 눈이 내단이니 뭐니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퍼런 눈이면 분명하다면서···.”
“다들 너무하네요.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색목인이야, 예전에 마교 쪽에 가담한 이들도 제법 있었다지 않나? 그런 이야기가 와전된 거지. 그런 짓을 한 놈들이 몹쓸 놈들인 건 변하지 않지만. 쯧! 내 손에 걸리기만 하면!”
“마교(魔敎)라···. 허허. 마교···. 예. 마교···.”
마교란 이야기가 나오자, 조 말구는 제법 씁쓸한 표정을 지어가며 눈빛을 어둡게 했다.
마교란 말에 일반인이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는 드물 텐데. 난 이전부터 드는 그의 이름과 모인의 이름까지.
무언가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 터벅.
그러던 중 그의 무거운 발걸음이 막다른 길에 닿고 만다. 수북한 넝쿨이 가득한 절벽 아래.
그는 주변의 방위를 잠시 살피더니, 한 넝쿨 속을 지팡이로 헤집고는 얼굴을 집어넣었다.
“여깁니다.”
넝쿨이 모두 걷히자, 생각보다 큰 동굴의 입구가 우리를 맞이했다.
안은 더욱 넓어 보이는 구조의 동굴. 그런 동굴 안에서는.
“워후. 뭐죠? 이 한기는···?”
제법 강한 한기가 불어 나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역시, 저놈의 운명인 게지요.”
“말구 아저씨!”
“어이구. 우리 강아지! 안에 있었구나!”
– 다다다다다!
– 와락!
말구의 목소리가 동굴 안을 채우자, 안에서는 다다다!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신형이 튀어나온다.
모습을 보이는 건 그가 찾던 어린 여자아이. 얼굴은 불그스름함이 가득하지만, 딱 봐도 중원인으로 보이는 아이다.
아이는 날씨에 맞지 않게 얇디얇은 삼베 옷을 소매마저 자른 후 입고 있다.
그 아이는 말구를 잘 아는 듯 작은 체구의 그에게 뛰듯이 안겨 버렸다.
“아이가 왜 여기에···?”
“아저씨! 아빠가 안 왔어요, 아직! 못 봤어요?”
“응? 우리 강아지가 역시나 안 자고 있었구나. 아. 아빠? 아빠는···.”
“여, 여기! 아빠가 잠시 잠에 드셔서, 언니가 데려왔어! 안녕? 난 소정이 언니야!”
당소정은 무사대 조장의 등에 업힌 모인을 가리키며 최대한 친근한 말을 뱉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는 조금 경계하는 듯한 어린아이의 태도. 말구가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주고 나서야, 아이는 모인에게 다가섰다.
모인의 딸이라니. 이거 생각지도 못한 전개의 연속이다.
“아빠, 자?”
“응. 아빠가 피곤하셨던 모양이야. 언니가 잠시 아빠 괜찮은지 살펴볼게. 그보다, 너 정말 귀엽구나? 넌 이름은 뭐니?”
“나? 난···, 안나! 안나라고 해요! 성안나!”
“안···나···?”
“안나였구나! 안녕, 이름이 참 예쁘다. 안나(安拏)? 언니는 소정(紹定)!”
“으으응. 그냥 안나.”
“응?”
“아니, 그냥 안나야. 안나. 그런 거 아니고, 안. 나.”
“그, 그래. 안나야. 반가워!”
모인을 바닥을 내려두는 동안 당소정이 친근하게 말을 붙이니, 아이는 자연스레 대답을 들려준다.
들려온 이름에 고개가 갸웃하길 잠시. 난 모인이 몸을 눕힌 곳 안을 둘러보며 이내 그 정체를 알고 만다.
모인이 몸을 눕힌 바닥 그 위를 장식한 벽면에는.
‘십···자가?’
조금 특이한 모양의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쓰이는 그런 십자가와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마치 크롬하츠라 불리던 악세사리 브랜드와 비슷한 모양새. 하지만, 그와도 조금은 달랐다.
이건 십자가의 끝부분이 뭉툭하고 넓게 퍼져 있으며, 아래에는 연꽃마저 그려져 있었다.
“대진사(大秦寺)···?”
!!!
“예?”
“이건, 대진사의 문양이 아닌가?”
“대진사라면, 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음. 절이라. 사원이라 말하는 거라면, 맞는 말이지. 허나, 불교 사원은 아니네. 물론, 도교 사원은 더더욱 아니고.”
“허면···?”
“경교(景敎). 경교 사원이네. 천존(天尊) 한 명만을 믿는다는 그 경교로군. 몽고 때 이후로는 거의 사라졌다고 들었거늘···.”
“겉으로야 그렇지요.”
!
경교의 문양을 진효풍이 알아보자, 조 말구는 천천히 말을 뱉으며 우리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뒤로 모인을 눕힌 후 진맥에 들어가는 당소정.
“안나야. 언니가 아빠를 치료할 거야. 잠시 괜찮지?”
“치료요? 아빠, 아파요?”
“피곤한 것도 치료가 된단다. 언니가 아빠를 얼른 깨어나게 할게!”
“음. 알겠어요! 그럼, 안나는 기도하고 있을 게요! 이제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응? 기도? 그, 그래!”
당소정이 모인의 여기저기를 짚어가자, 안나라 불리던 아이는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에 들어간다.
두 손을 포개더니, 깍지를 끼고는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그랬던···건가.’
난 그 모든 모습이 겹친 후에야.
이들이 말하는 경교도. 또 이들의 이름에 숨은 사연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들은 적은 있다. 예전. 그러니까 아주아주 옛날에 기독교의 한 분파가 실크로드를 타고 아시아로 넘어온 적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런 이들이 중원 외곽에 자리를 잡으며 이곳저곳 소수민족을 상대로 퍼져나갔다는 말을.
한반도에도 들어왔니, 아니니 하는 말이 많으며 온갖 음모론이 있었던 그 이야기.
아마, 이들이 말하는 경교란 그런 종교 중 하나를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안나라는 이름도. 갑열이란 이름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생각이 여기에 닿자 스치는 건 옛날의 한 기억.
– 헤이, 환. 아시아에서 내 이름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분도. 분도라네? 하하. 정말 재밌어! 분도라니! 어감이 좋잖아!
영국에서 증류소에서 일하던 때 한 친구가 인터넷에서 봤다며 내게 전했던 말이었다.
당시 친구의 이름은 베네딕트. 이는 흔히들 아는 그 세례명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갑열은 가브리엘 정도. 안나는 안나. 말구는···’
마르코?
난 소심하게, 또 속으로만.
당시 키득거리며 친구와 나눴던 대화를 기반으로 이들의 이름을 역으로 추적해갔다.
말구란 이름을 들었을 때 느꼈던 기시감 역시 이 때문일 터. 분명 그때 읽었던 자료에는 저 이름 역시 있었다.
유독 촌스럽고 동양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기억에 남은 이름이다.
“겉으로야 그렇다는 말은, 경교가 아직 살아있다는 말인가?”
진효풍은 내가 이런 생각에 빠진 것도 모르고는 계속해서 조 말구에게 말을 물어갔다.
강호에서 호기심으로 둘째가면 서럽다는 이가 진효풍.
그의 물음에 조 말구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답을 들려준다.
“중원에야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천이나 감숙, 청해와 운남 등 새외와 면을 닿은 곳에는 여전히 경교 신자가 있습니다. 경교 승려들 역시, 적지 않지요.”
“경교 승려?”
“예. 저 갑열이라는 친구 역시···. 한 때는 경교의 승려였습니다. 경교는 조용히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지요. 저와 저 친구는 그 공동체를 나온 자들입니다.”
!!
“허어. 그럼, 그 무공이 대진사의 무공이었나? 내 듣기로 대진사 역시 기본적인 무공을 익혔다더니!”
“전 무공 쪽은 잘 모릅니다. 다만, 저 친구가 집안 대대로 경교에 헌신한 집안 출신이라는 것. 그것까지만 제가 압니다. 몇 대전 대진국(大秦國)에서 중원으로 전도(傳道)를 위해 건너온 승려 집안이라지요. 물론, 저 친구야 대진국 근처에도 못 가본 처지지만. 불쌍한 놈입니다. 그쪽에는 다들 저렇게 생긴 이들이 가득하다던데···.”
대진국이라면 나도 중원에 와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대진국은 로마를 말할 터.
‘그래서!?’
대진사라는 이름은 그 대진국에서 따온 거로 보인다. 로마에서 온 종교의 절이라.
딱히 틀린 이름이 아니다.
“저어, 한때 승려였다는 말씀은?”
“지금은 아니란 뜻입니다. 파계승(破戒僧)이지요. 말씀드린 것처럼, 저와 저 친구는 공동체를 빠져나온 이들입니다. 저야 본디 떠돌던 중 그곳에 잠시 몸담은 거지만, 저 친구는···”
어떤 사정으로 경교 공동체를 나온 걸까. 몇 대에 걸쳐 조상이 지켜온 걸 나올 때는 무거운 이유도 있을 터.
그런 생각에 조 말구의 말에 한참 귀를 기울일 때.
“아, 안나야! 안나야!”
뒤에서 다급한 당소정의 외침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작은 아이의 신형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얼굴이 유독 붉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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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교 비석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