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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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도주가 죽었다···는 말이오?”
당신들이 알던 풍화도주가 유명을 달리했다. 산목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일동이 표정을 무겁게 만들었다.
들려온 말은 그저 왜구 하나가 죽었다는 간단한 말이 아니다. 항주 및 중원 바다 일대를 지배하던 왜구의 수장이 죽었다는 말.
즉, 그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사라졌다는 뜻이 된다.
“왜구들이 기승을 부린 이유가 그 때문이었나···.”
“손 단주의 보고에 의하면 얼마 전부터 왜구들이 기승을 부린 시기와 얼추 맞아떨어지긴 합니다.”
“그 뒤에 이런 사정이 있었군요.”
“허어. 어찌 이걸 몰랐다는 말인가?”
“당장에 중원 땅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르는 일이 태반입니다. 바다 건너의 소식이야 어찌요? 새외(塞外)가 괜히 새외가 아니지요.”
석가장의 가신들은 들려온 말이 가지는 무게를 모르지 않았다. 본디 풍화도주가 나타나기 전 왜구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모르지 않는 이들.
나 역시 지나가며 듣기로는 풍화도주의 등장 이전은 말 그대로 왜구가 왜구했다는 말이 어울렸었다.
수적이나 녹림처럼 일정한 규율을 갖춘 세력의 풍화구는 그의 등장으로 나타난 양반 왜구.
이전의 왜구는 양민이며 어촌이며 가리지 않는 무법천지의 왜구였다는 게 들려온 말이었다.
그가 사라졌다면.
어쩌면, 규율이란 게 잡혀버린 풍화구는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란 거다.
항주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그리 기쁜 소식은 아닐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구려. 언젠가 터졌어야 했던 일이 이번에 터진 느낌이고.”
“···풍화도주님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반대도 있지요. 지금의 문제는 그 때문입니다.”
“후계는 어떻게 되었소?”
걸출한 한 명의 위인이 잡아놓은 터전이라면, 기본만 해주는 후계자가 있어도 평탄하게는 흘러갈 수 있다.
석두원은 수장다운 생각으로 이를 떠올리며 풍화도주의 후계자를 물어갔다.
말을 들은 산목, 야마키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없지는··· 않습니다.”
“없지는 않다라. 말씀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오.”
“내분···입니까? 후계를 둔 내분. 풍화도에는 그게 일어난 거군요.”
나오는 건 애매한 답.
난 그런 애매한 답과 앞서 들었던 개방의 정보를 종합해 어렵지 않게 풍화도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들려준 추측에 산목의 눈이 내 눈과 마주했다. 그는 어찌 알았냐는 표정을 지어준다.
“소문이 돈 모양이군요.”
“이 공자. 알고 있었나?”
“개방에서 짧은 추측으로 들려주긴 했습니다. 요즘, 들려오는 풍화도의 소식이 두 개라고.”
“허어. 어찌.”
“확실하지 않다는 첨언이 있어, 따로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니네. 개방이 확실하지 않다는 말을 할 정도면, 그럴 수밖에. 해도, 이제는 명확해진 참이군.”
뱃길과 발길이 끊긴 풍화도의 소식은 쉽사리 뭍에 닿지 않는다. 개방 역시 넌지시 던지기만 할 정도.
헌데, 그곳에 살던 현지인의 입을 타니, 정보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산목은 계속해서 아는 바를 읊어갔다.
들려온 말은 단순했다. 풍화도의 도주가 후계자를 지목했지만, 부 도주가 반기를 들었다는 것.
풍화도가 지어질 때부터 세력을 이끌었던 부 도주를 따르는 무리가 적지 않다는 말이다.
후계자는 전 도주의 뜻처럼 온건적으로 나갈 생각이며, 부 도주는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의 전부였다.
걸출한 우두머리가 사라진 세력이라면 어느 세력이나 한 번쯤은 겪을 만한 일이었다.
“···예상할 수 있는 건 우리 범선을 나포한 이들이 부 도주 쪽이란 것이겠군요.”
“흐음. 그렇게 볼 수밖에. 어떻소, 산목?”
“저 역시 그렇게 생각 중입니다. 아마, 내전이 붙으며 서로 자금줄이 막혔을 겁니다. 덕분에 빠르게 돈이 될 수 있는 술을 노린 것이겠지요. 사람은 아무래도 여러모로 쓸모도 많고요.”
역시나.
술을 가져간 이유야 빤했다.
돈으로 바꾸기 쉽다는 게 그 이유. 안 되면 마실 수도 있고. 너무도 해적다운 이유에 절로 쓴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거기에 사람 장사까지 하는 듯한 말이니, 이건 걸려도 제대로 잘못 걸리고 말았다.
“우선은 연통을 보내어 어느 쪽인지를 확실히 파악하겠습니다. 만약 부 도주 쪽이라면···.”
“그대도 협상의 여지가 없는 건가?”
“송구합니다. 석가장이 육지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셨기에 보답하고 싶습니다만···. 부 도주 쪽은 저랑도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산목. 야마키는 전대 도주의 사람으로서 전해지는 말 속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부 도주 쪽이 배를 나포한 것이 분명한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그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뱃길···. 풍화도로 들어가는 뱃길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기억하시는지요?”
!
일이 꼬이고 꼬여 석가장에게는 악재가 쌓이고 쌓여갈 때. 난 슬쩍 풍화도 출신이란 그에게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아냐고 물어봤다.
이유야 단순했다.
“협상의 여지가 없다면야, 가서 찾아오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사람도, 술도.”
찾으러 가기 위해서.
그게 전부였다.
“···석가장의 은혜에는 감사합니다만, 주인이 바뀌었어도 고향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석가장의 길잡이가 되어 상륙을 도우란 말씀이면, 불가합니다.”
“대대적인 상륙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럼?”
산목은 생각보다 굳건한 의리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고향을 배신할 수는 없다는 말. 나 역시 그를 의도하고 뱉은 말은 아니었다.
내전 중인 상태에서 섣불리 개입하면 둘이 하나로 힘을 합칠 수가 있다.
이는 유고했던 역사의 오랜 반증. 난 그를 모르지 않기에 이번 일에는 전면적이 옳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유격전 또는 특수전. 말 그대로 인질을 구출하고 물건만을 탈환하기 위한 작전이 필요해 보였다.
“소수가 잠입해 인질과 물건만을 빼 오는 겁니다. 그게 어떨지요?”
난 그를 조심스레 석두원을 바라보며 건의했다. 말을 들은 석두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면전이 아니라, 구출과 탈환을 노리자는 건가?”
“예. 둘로 나뉜 세력은 외부에 적이 있으면 합칠 수 있습니다. 항주 상가로서, 이는 좋은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현재 들리는 말을 들어보면, 부 도주 쪽이 더 세력이 커 보입니다. 그가 대권을 잡는다면, 이런 일이 빈번해질 겁니다.”
“저분은?”
“양조장을 담당하는 이 공자라고 하오. 이번에 잃은 술을 만든 이가 이 공자요.”
“흐음.”
조심히, 그리고 조목조목. 전면전이 아닌 구출전을 주장하자, 산목이 손목건에게 내 이름을 물어본다.
내가 뱉은 말이 크게 틀리진 않은 모양이다.
“저 공자의 말처럼, 지금 세력을 합친다면 부 도주 쪽이 유리합니다. 그자의 무공이 조금 더 우세하기에. 또한, 저 역시 그걸 바라진 않습니다. 그가 대권을 잡는다면, 풍화도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허면, 도움을 주실 수 있겠소?”
“전대 도주 쪽에 줄을 대어보겠습니다. 그쪽과 연계하여, 인질을 구출하고 탈환할 수 있도록.”
!
“산목! 그리 해주겠나? 허면, 풍화도까지도?”
산목이 돕겠다는 말을 전하자, 손목건은 눈에 광명이 찾아와 앞으로 나선다.
산목은 살짝 단호한 표정을 지어주고는.
“섬에 연통을 보내 그쪽의 의견을 먼저 묻겠습니다. 대신, 도움을 받는다면, 이쪽도 성의는 표시해야 할 겁니다.”
“음. 사람만 무사히 구할 수 있다면야, 내 무엇이든.”
우선은 자신의 소속이 풍화도임을 확실히 했다. 석두원은 이를 흔쾌히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주인 그가 봐도, 지금은 전면전을 펼칠 때는 아니었다. 인질들의 목숨도 달려있고.
“사흘이면 연통이 올 겁니다.”
산목은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대석당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 기다리던 소식이 항주에 닿은 건 사흘이 지난 날이었다.
***
“어찌 되었나?”
“소식이 닿았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곧장 대석당을 향해 들어온 산목을 둘러싸고 어제와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오늘 물어가는 말은 풍화도에서 전해져 온 말을 묻는 말. 그에 산목은.
“돕겠다고 합니다.”
!
라며, 긍정적인 소식을 들려준다.
다만, 그저 선의로만 나서는 건 아닐 게 분명한 상황. 석가장의 가신들도 그를 모르진 않았다.
“조건은?”
“식량과 금전을 요구했습니다. 범선이 아닌 작은 수송선으로 한 척 분량을 요구해 왔습니다.”
“흠. 못 줄 것도 없는 조건이오. 그게 전부였소?”
“또 하나가 있긴 했습니다만···.”
“어떤?”
“섬에 들이는 인원수를 제한했습니다.”
“어, 얼마나?”
“···다섯입니다.”
!
“다섯···.”
“허어.”
“이건···.”
들려온 조건은 생각보다 구체적이었다. 입도(入島)를 허하는 게 고작 다섯이란 말.
앞에 들려온 금전도 식량도 줄 수는 있다. 다만, 다섯만으로 나머지 인원을 구출하라는 건.
어쩌면, 저들에게 도울 의지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산목. 들으시게. 그대가 풍화도 사람인 건 알고 있네. 또한, 그대가 풍화도를 생각하는 것만큼 나 역시 석가장 사람을 생각하고 있네. 만약, 그대들이 이번에 전한 조건이 잃을 게 없다는 생각에 나온 조건이라면, 그때는.”
석두원은 흥분하지 않았다. 과하게 차분한 음성과 어조로 자신의 뜻을 전해가는 그.
그렇기에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석가장의 인자한 장주, 석두원이 아닌 풍운권장(風雲拳將)의 모습이.
“내 석가장의 모든 저력을 동원해 풍화도와 전면전을 일으킬 거네. 이건 협박이나 농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줬으면 하네.”
“···물론입니다, 장주. 풍화도 역시 그런 의도로 전한 말이 아닙니다. 외지인이 많으면 의심을 받는 곳이 풍화도입니다. 다섯이란 숫자는 적당히 눈에 띄지 않을 숫자입니다.”
산목은 뿜어지는 석두원의 기운에 조금 뒤로 물러서며 얼른 그런 게 아니란 의사를 표했다.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이다. 고립된 섬에서는 외지인을 배척하고 또 쉽게 알아보지 않겠나.
다섯 외에는 그들이 돕겠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전대 도주의 사람들이 나서서 도울 겁니다. 물론···.”
“장기적인 관계를 트고 싶다는 속내도 있겠구려.”
“그렇습니다.”
말하기 조금 부끄러운 의도와 함께.
‘밀리는 모양이네.’
말을 들으니 알 수 있는 건 명확했다.
전대 도주의 세력이 불리한 상황이란 것. 그렇다면, 저들이 나서줄 거란 것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외부의 보급이나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라면, 석가장의 손길을 거절할 수 없을 거다.
“그런 거라면. 흐음.”
“누굴 보낼지 정해야겠군요.”
“선단에서 직접 추리겠습니다.”
“표사 중 정예를···”
“무사대도···”
방향이 정해지니, 저마다 나서며 풍화도로 사람을 보내겠다는 말을 전해온다.
사지(死地)로 보일 수 있는 곳임에도 나서는 모습이, 석가장이 얼마나 충성을 받는 곳인지를 증명하는 듯했다.
진심이 가득 묻은 말들 사이에서 석두원과 다른 중진들이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장주님.”
난 조심히 손을 들고는 한발 앞으로 나서며 나지막하게 석두원을 불러갔다.
일시에 조용해지는 대석당.
“이 공자. 왜 그러시나?”
적당한 타이밍을 잘 보고 들어온 것만 같다. 대화가 시끄럽게 이어지다가 찾아오는 잠시의 침묵에 잘 파고든 건 바텐더의 기술.
난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힐 때.
“제가 가겠습니다.”
눈에 힘을 주고는 준비한 말을 들려줬다.
풍화도로 가는 일에 자원하겠다는 것. 그 말이 들려오자, 장내가 조금 조용해졌다.
이건 섣부른 생각은 아니었다. 일이 진행되며, 속으로 계속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을 뿐이다.
“이 공자가?”
“이건, 표사나 무사대에 맡기는 게 옳지 않겠나?”
“그렇네. 자네가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일시에 다시금 말을 쏟아내는 가신들.
난 그런 이들에게, 조금 실례가 될 수 있지만.
–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갈무리하던 단전을 열고는 약간의 기운을 뿜어주기 시작했다.
석두원부터 무사대 대장 호상박, 공 총관이 차례대로 눈썹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허어···. 언제?”
“진 도장인가? 대체 무얼 만드신 게야? 허어.”
“······.”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 역시 서늘하게 뿜어지는 기운에 팔을 비비기 시작했다.
한공은 작정하고 기운을 뿜으면, 주변을 차게 만들기도 하는 무공이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제 무공이 석가장 내에서도 약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 왜어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기세를 몰아서 던져보는 특기들.
일본어라. 이건 내게 거의 모국어나 마찬가지였다. 난 일본에서 바텐더란 직업을 시작했다.
“왜어를 할 줄 안다면 큰 도움이 되긴 할 겁니다.”
산목은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다 넌지시 한마디를 던져 내게 도움을 준다.
간다면 그 역시 함께 갈 터. 난 가볍게 눈으로 인사하고 그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조건만 본다면야 나쁘지는 않은데···.”
“일이 잘못된다면야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네. 알고 있나?”
“그건 다른 분들 역시 마찬가지지요.”
그래도 나오는 건 여전히 남은 불안들.
이해는 할 수 있다. 여기서 내 역할은 이런 곳에 나서는 역할이 아니니까.
그저 양조장에서 술을 빚고 주루에서 술을 파는 게 나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번에 나서야 하는 것도 맞았다.
‘술···.’
과하석황주가 표마차로 100대 분량이다. 이걸 앉아서 잃을 수는 없다.
사람을 구하는 것. 그게 우선임을 안다. 다만, 난 술도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난 이어지는 불안한 말들에 아예 쐐기를 박아보기로 한다.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조건으로.
“또한, 제가 간다면···.”
내 입이 조금은 불확실한 무언가를 뱉어가려 할 때.
대석당에는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만다. 기운을 뿜을 때부터 다가오는 걸 느꼈던 다른 이의 기척.
난 그 기척에 말을 거두고는 홀로 웃기만 했다. 내가 하려던 말은.
“나도 가겠지.”
!
어느새 대석당에 떡하니 나타나 기둥에 몸을 기댄 이가 완성해 준다.
매화향을 뿌리는 도사, 진효풍. 한쪽 눈만을 찡긋거리는 그의 모습이 든든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