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97
***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왜인지 그럴 것만 같았을 뿐.
내가 간다면 진효풍도 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반신반의가 들어간 말이긴 했다.
서로 오갔던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다만, 진효풍은 풍화도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며 석가장에도 한 발을 걸친 인물이었다.
내가 나선다면 그도 따라주지 않을까. 그저 속으로만 가지고 있던 작은 믿음을 그가 제대로 채워줬다.
알고는 있다. 이건, 사람들 앞에서 내 체면을 세워준 거란 걸. 제법 복잡하게 오갈 뻔했던 논쟁이 그의 말 한마디에 모두 잠재워진 지금이다.
“···솔직히 진 도장께서 가시는 거라면 따로 할 말이 없긴 합니다.”
“옳습니다. 다른 대안을 내어놓기 힘드니···.”
이유는 간단하다.
그 어떤 표사도 무사도 선원도. 진효풍보다 더 효율이 좋은 이는 없을 테니까.
내가 간다는 말에 조금은 불안함과 걱정을 내비치던 석가장의 가신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눈치다.
“허면, 제가 가는 거로 알겠습니다.”
난 그들의 모습을 천천히 둘러보고는 말에 쐐기를 박았다. 당연히 이어지는 반론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머지 인선은 어찌할 생각인가? 총 다섯의 입도를 허가받았네만.”
“한 분은 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기 계신 산목. 저분이 있어야 귀환도 쉽지 않겠습니까?”
“산목을 말인가? 어찌?”
“목표는 인질의 구출과 술, 범선의 탈환입니다. 풍화도에서 나오려면 주변의 뱃길을 알려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흠···. 전대 도주의 사람이 돕는다고는 해도 무리는 있을 터이니. 옳은 말이네. 산목, 도와줄 수 있겠나?”
진효풍이 가면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 덕분일까.
제일 먼저 내가 던진 말에 동의하는 듯한 말을 들려준 건 선단의 단주, 손목건이다.
그에게 짧은 답으로 산목을 데려가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산목은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석가장과 풍화도. 두 곳 모두에 발을 담그며 살아왔습니다. 이번 일이 불미스럽게 끝나지만 않는다면야, 제가 못할 건 없습니다. 예.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네! 산목!”
대화가 여기까지 이어질 때까지.
다른 가신은 물론 석두원까지 누구도 내가 가는 걸 반대하는 말을 꺼내오지 않았다.
이제 내가 가는 게 기정사실이 된 상황. 인선을 짜서 대석당에 올리는 것으로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출항일로 잡힌 건 이틀 후. 난 그때까지 사람을 모아야 하고, 석가장은 풍화도에 건넬 돈과 식량을 챙기기 시작했다.
“누굴 데려갈 참인가?”
대석당을 나와 곧장 사람을 구하러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귀신처럼 따라붙은 건 우리의 의리맨 진효풍.
진효풍은 걷는 건지 나는 건지 알 수 없는 신묘한 신법으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산목이란 분과 진 대협,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은 정해졌습니다.”
“아, 그러니 나머지는?”
“진 대협도 아는 사람들일 겁니다.”
“아는 사람? 독화라도 오는 건가?”
“위험한 곳에 당 소저를 모시고 갈 수는 없지요.”
“난 데려갈 수 있고?”
“꼭 같이 가야 하고.”
“쳇.”
아까는 그렇게 멋있게만 보이더니, 지금은 또 장난기가 가득하다. 무엇이 이 사람의 진짜 모습일까.
알 수가 없어 그저 포기하고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뿐이다. 몇 걸음을 더 나서니, 진효풍도 이내 목적지를 알아본다.
“양조장? 주공인가 하는 그 영감님이라도 데려갈 작정은 아니겠지?”
걸음이 향한 곳은 익숙한 길이었다. 석가장에서 매일 아침 출근에 나서는 길.
대석양조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진효풍이 말을 물어왔다. 난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난 떠날 때도 돌아올 때도 다섯이서 함께 하고 싶을 뿐이다. 주공은 뭐랄까.
음. 그래. 나이가 있지 않나. 올 때는 넷이 될지도 모른다.
“설마요. 주공께서는 무공도 익히지 못한 분이 아니십니까? 무리가 되실 겁니다.”
“흠. 술 다루는 장인이 필요한가 했지. 헌데, 양조장에는 왜?”
“거기에도 제법 쓸만한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발도 빠르고 산도 잘 타는.”
“······?”
영문을 모르겠다는 진효풍을 데리고는 그저 평소처럼 양조장으로 들어섰다.
문 앞에서.
“오늘도?”
하며 억울한 표정을 짖는 진효풍.
비상시국에도 어쩔 수는 없다. 양조장에는 외인을 들일 수가 없다.
그를 잠시 세워둔 후 곧장 양조장으로 들어선 후 누군가를 데려왔다.
굳건히 닫혔던 양조장의 문이 열리니, 그가 진효풍이 반가운 얼굴에 웃음을 지어본다.
“자네였나?”
“오랜만이군요. 도사님. 요즘도 안나랑 잘 놀아주신다지요? 늘 감사합니다.”
내가 양조장에서 데려온 이는 모인, 갑열이었다.
“음. 은밀하게 움직이는 거야 모인을 따라갈 자가 없겠지. 눈에 보이는 곳에서야 힘들겠지만, 숨어서 다니는 것에는 제격일 테니.”
“풍화도도 산지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형제님께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거들 수 있어서 기쁠 뿐입니다. 아직 후아주가 나오려면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전부터 밥값을 할 수 있겠더군요.”
산을 타는 거로는 진효풍과 당문의 무사대마저 쫓지 못했던 게 갑열의 실력이었다.
산지가 많고 내전이 한참인 풍화도라면 갑열에게는 제집처럼 드나들기 쉬울 터.
모습이 조금 눈에는 띌 테지만, 그 역시 풍화도라면 괜찮다. 바다에는 오가는 이들이야 많고 양이(洋夷)도 적지 않으니까.
“안나는? 자네가 자리를 비우면?”
“공 총관께 부탁을 드려놨습니다. 자리를 비운 동안, 석가장에서 돌봐줄 겁니다. 당연히 정성 껏.”
“치료는 괜찮은 거겠지?”
“물론입니다. 한동안 한기를 넣어주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럼 됐군. 저 친구의 실력이라면야 다른 무사들에 뒤지진 않을 테니. 허면, 이제 하나 남은 건가?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진효풍은 사람을 모으는 게 재미가 난 듯 들뜬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쉽게도 다음 행선지는 없는 참. 그저 여기가, 마지막 동료를 모으는 마지막 행선지일 뿐이다.
“여기 있으면 나타날 겁니다.”
“여기?”
“곧 올 겁니다.”
– 다다다다다다다.
곧 올 거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쪽 골목 끝에서 커다란 모래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거지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
진효풍마저 놀랄 정도의 기백이 느껴져, 그는 살짝 뒤로 몸을 물리는 추세다.
“개, 개방이 견벽진(堅壁陣)으로 날 핍박하려는 것인가!”
그는 일시에 습격이라도 받는 것처럼 놀란 모습이다.
‘개방과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정파끼리 조금 친하게 지내지.
알 수가 없는 둘이다.
– 다다다다다다다.
다행히 다가온 거지들은 진효풍을 습격하진 않았다. 애초에 습격하러 온 것도 아니고.
뭐랄까. 자세히 설명하자면 습격을 끝내고 왔다는 게 맞는 말일 터.
이들은 그들의 어깨 위로 올려 든 사람의 신형 하나를 내게 툭! 던지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아. 가기 전에 하나 더 하고 간 건 있었다. 내가 미리 고용인에게 말해 꺼내둔 커다란 술 단지를 가져간 것.
이들과의 거래는 이걸로 끝이었다.
이들이 바닥에 내려둔 건.
“걸신들린 거지 놈?”
개방의 후계자, 천수식개 홍구였다. 그는 사지가 결박된 채 입까지 막혀 몸을 버둥거리는 중이다.
“읍읍읍!”
“풀어드리겠습니다.”
“이 공자! 이게 다 무슨···!”
“저도 이렇게 모셔올 줄은 몰랐습니다. 용서하시지요.”
홍구는 진효풍과 껄끄러운 관계로 그가 항주에 닿자 곧장 항주를 떠나있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게 세상의 법칙. 요즘같이 그가 필요한 때에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분타주와 작은 거래를 했다. 매달 주는 술의 주기를 한 번 더 늘리는 것.
처음에야 술에 자기들의 상급자를 팔라는 거냐며 거지들도 불편해했다.
다만, 내가 두 번을 늘리겠다는 말을 하자, 이내 이렇게 홍구를 이렇게 산 채로 잡아 온 그들이다.
술을 배급하는 게 매달 두 번이나 늘어나는 건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횟수였다.
“허어. 마지막 인선이 이놈이었나?”
“미친 도사···? 네놈은 또 왜?”
“두 분 오랜만에 인사 나누시지요. 이제 함께 풍화도로 가셔야 할 분들입니다.”
!!
“푸, 풍화도? 설마, 술을 찾으러 가는 거요?”
옆 동네로 피신을 떠난 주제에 소식은 또 훤하니 꿰고 있다. 듣자마자 무슨 말인지 아는 그.
강한 거부감을 내비치는 그에게.
“이미 개방과 거래가 끝난 이야기입니다. 거절하시면, 예. 앞으로 개방과 거래는 할 수가 없겠지요. 물론, 다른 분들의 원성이야···홍 대협의 몫이구요.”
!
작은 협박을 들려줬다. 개방과 맺었던 거래를 모두 끊겠다는 말.
이건 내가 휘두를 수 있는 작은 무기다. 술을 칼처럼 휘두르는 것.
모양새야 안 좋지만, 명분은 이쪽에도 있다. 과하석황주를 표마차로 100대나 잃지 않았나.
속이야 홍구 때문이라고는 해도 겉으로 이 핑계를 대면, 개방은 홍구에게 원성을 표할 수밖에 없다.
“젠장···이거, 오지게 걸려버렸군···.”
홍구는 협박을 들은 후에야, 일이 되돌릴 수 없음을 직감하는 눈치다.
어쩔 수 없다. 풍화도 같은 곳에 데려갈 내 주변 인물 중에는 진효풍 다음으로 그가 최고다.
못해도 개방이란 곳의 후계자가 아닌가. 무공이며 생존법이며. 그보다 적임자는 없어 보였다.
거래와 생존이란 이름으로 채워뒀던 술이란 족쇄가 이제야 개방을. 아니, 홍구를 옥죄어 간다.
“푸하하하하! 거지놈이 아주, 제대로 걸렸구만! 암!”
“···미친 도사 놈이···.”
“뭐라?”
“···아니, 아무 말도.”
진효풍의 앞에서 기를 펼치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러운 그였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뭐.
개방은 협의지문이라지 않나.
왜구 잡는 건 좋은 일이고.
난 그렇게 좋게 해석하기로 했다.
협의에 함께할 기회를 주는 거라고.
***
“이렇게···떠나는 겁니까?”
“천수식개까지?”
“허어. 이보다 좋은 인선은 없겠구려.”
“이거, 어쩌면 모두 찾아오는 게 아닙니까?”
“그러길 바라야지요. 암요.”
항주에서 풍화도로 떠나는 날.
항주항에 모인 이들은 함께 풍화도로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저마다 감탄을 내뱉는다.
진효풍에 홍구, 모인과 나 그리고 산목까지. 제법 괜찮은 라인업이 무언가를 기대하기 좋은 모습이다.
무려 화산의 장로와 개방의 후계자이지 않나. 술이 모아준 이들이 이렇게 든든하다.
산목은 어느새 왜구스러운 복장을 갖추고 허리에는 왜도(倭刀)까지 하나를 달고 나왔다.
두 개가 아닌 하나가 스스로 해적이란 인식을 담고 있어 보였다.
‘무사 계급은 아니란 말이지.’
일본에서 살았기에 일본의 문화도 적당히는 알고 있다. 짧은 소태도와 기다란 카타나 두 자루가 무사의 상징일 터.
하나만 찼다는 건 무사 계급은 아니라는 증거일 거다.
“준비되었으면, 출항하겠습니다.”
범선보다는 한참이나 작은 수송선이다. 허나, 안은 꽉 찬 모습. 돈과 쌀을 실은 수송선에 올라탄 산목은 능수능란하게 출항 준비를 마친다.
“이 공자. 부디, 무사히 돌아오게. 사람들 역시 무사히 데려와 주고.”
“사람을 먼저 구하겠습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무리해서는 안 되네. 그것도 명심하고. 술과 범선은 포기해도 좋네. 무사히. 부디, 무사히.”
“예. 장주. 명심하겠습니다.”
몇 번이나 이어진 석두원의 당부를 뒤로 닻을 올리고 배는 출항에 나섰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삐걱거리는 목선의 소리가 제법 낭만스러운 모습.
하지만, 이런 낭만은 역시나 오래가지 않았으니.
“우우우우욱!”
“비, 비키시오! 우우우우욱! 이 아까운···! 우욱!”
“하늘에 계신 아버지···웁! 제게 시련을 웁!”
초절정을 찍은 진효풍과 뱃사람이 산목을 제외하고는 곧장 뱃멀미를 심하게 앓았기 때문이다.
이걸 예상하지 못했다. 장강을 건너며 탔던 평평한 배를 생각했던 게 패착.
거기에 배를 탄 이들 역시 배랑은 거리가 먼 이들이 아닌가.
이 시대의 목선을 안 타본 건 나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거지인 홍구도 마찬가지다.
모인인 갑열은 어떨까. 바다도 항주로 오며 처음 본 그였을 뿐이다.
“쯧쯧. 다들 꼴들이 말이 아니군.”
“진 대협은··· 괜찮으십니까?”
“나야 뭐. 자연스레 경지에 오르니 이런 건 일도 아니라.”
새삼, 초절정이란 경지가 물씬 부러운 참이다.
그렇게 해풍에 배를 실어 파도에 실려. 꼬박 하룻밤을 항해한 후에야 약속 장소에 닿을 수 있었다.
운무와 어둠이 가득한 망망대해 위에서 산목은 그대로 배를 멈췄다.
“여기는?”
“이곳에서 본도(本島)의 이들과 접선할 겁니다. 제가 신호를 보내면 그들이 다가올 겁니다.”
정말이지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과 안개만이 가득한 조금은 섬뜩한 풍경.
그런 풍경 속에서 산목이 선두에 올라 부싯돌을 연신 갉아대니.
– 착! 착! 착!
반대편에서도 부싯돌이 튀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중간 크기의 왜선(倭船)이 조용히 안개를 뚫고 우리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