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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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倭船)은 조용히 파도와 안개를 뚫고는 우리가 탄 수송선에 닿아 서로의 배를 연결했다.
연결된 다리 사이로 모습을 나타내는 건 칼과 갑주를 두른 왜인의 행색을 갖춘 무사들.
제일 선두에는 칼을 두 개나 찬 젊은 무사가 머리를 질끈 묶고는 다른 이들을 이끌고 있었다.
무사 계급의 상징이다.
‘뭐···.’
칼을 세 자루나 찬 게 아닌 게 어딘가. 초록 머리도 아니고. 우선은 거기서 안심하기로 한다.
다행히 앞으로 다가선 젊은 무사는 생각보다 우호적인 눈빛으로 우릴 바라봤다.
“석가장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
그리고 나오는 건 익숙한 말.
중원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우리 네 사람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유려한 중원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중원어를?”
“풍화도야, 뿌리는 동령(東嶺)이라지만 가지는 중원에 닿은 곳이 아닙니까? 응당할 수 있어야지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풍화도야 일본보다 중원에 훨씬 가까운 곳.
그들의 문화와 복색이 일본과 닮았다고 해서, 그들이 곧 일본인이란 건 편견이 될 거다.
또 영업에 나서려면 중원어를 조금 할 줄 알아야 영업이 편하지 않겠나.
삥도 말이 통해야 뜯는다.
예컨대, 흑인을 앞에 두고 ‘니가 가진 거’ 어쩌고 하다가 감정싸움이 되는 건 내가 있던 곳에선 상식이었다.
그래도, 앞에 나선 젊은 무사를 제외하고는 중원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실례지만, 말씀하시는 분께서는?”
“제가 일전에 말씀드렸던, 새로운 풍화도의 도주가 되실 분입니다.”
!
반갑게 맞아주는 건 고맙지만, 선행되어야 할 건 통성명이다. 간단히 물어본 이름에 나오고 마는 커다란 이름.
나름 대우를 해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한쪽 세력의 수장이 직접 마중을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석가장에서 온 이정환이라고 합니다. 술을 다루고 왜어를 통변하러 왔습니다.”
해적이라지만, 그래도 일군의 수장이지 않나. 난 가볍게 포권하며 곧장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중원식 포권이 나온다.
“중원식으로 말하자면 무길(武吉)이 됩니다. 반갑습니다.”
성이야 알 수 없지만, 이름은 타케요시.
난 무길이란 한자에서 그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흔한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더더욱.
“함께 오신 분들은?”
“표사 가패운이오.”
“짐···꾼. 구홍이올시다.”
“갑열. 상인이오.”
친근하게 물어오는 무길의 말에 뒤에 선 다른 이들이 차례대로 인사를 내뱉었다.
갑열을 제외하고 뱉는 이름들은 모두 가명. 가패운은 진효풍이며 구홍은 홍구다.
둘의 이름이야 워낙에 크지 않나.
화산의 장로며 초절정 고수. 거기에 개방의 후계자. 이런 이름은 풍화도에도 부담일 거다.
뭐, 이쪽이야 다섯만 오래서 추리고 추려 다섯을 뽑은 경향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저쪽이 내건 조건은 하나도 어기지 않은 참이다. 양을 줄이면 질이 높아져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저들은 그걸 모른다.
“다들 기도가 정순하십니다. 과연, 석가장이군요.”
무길은 생각보다 친절한 모습으로 하나씩 뒤에 선 이들과 눈을 맞췄다.
우리가 그리던 왜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
진효풍과 홍구는 기도를 최대한 감추는 중임에도 보이는 게 있는 모양이다.
“우선, 짐을 옮기고 모두 이선(移船)하시지요. 야마키. 아니, 산목은 수송선을 끌고 우릴 따라오면 될 겁니다. 여러분은 저희와 함께 가시면 됩니다.”
무길은 살짝 길을 터주며 자신들의 배에 오를 걸 권했다. 듣기로는 이미 중원 쪽 연안이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고 한다.
풍화도 출신인 산목이 섬까지 배를 몰고 가지 못한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다.
“산목. 잘 보고 따라오게. 저들의 감시가 삼엄하네. 우리가 출항한 것도 알고 있을 테니.”
“예. 도주.”
왜선에 올라 선상으로 나아가니, 널따란 왜선 특유의 모습이 반겨준다.
아래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 분주히 움직이는 선원들 사이로 난 찬찬히 왜선의 구조를 살펴봤다.
‘불이···’
붙지 않는 목선이라.
손목건은 풍화도의 배를 가리켜 그렇게 말했었다. 나무에 불이 붙지 않는다니.
쉽게 믿기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準備ができました。”
“始めろ。”
그렇게 배를 한참이나 둘러보고 있을 때 익숙한 일본어가 들려온다.
준비가 끝났으니, 가자는 말. 배는 그대로 노를 내리고는 다시금 풍화도를 향해 나아갔다.
작은 수송선에 비해서는 흔들림이 덜한 커다란 왜선. 홍구도 갑열도, 또 나도.
이전보다는 훨씬 편하게 배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뒤에는 산목이 모는 작은 수송선이 유유히 따라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배가 안정적으로 나아감을 느끼자, 난 조금 전 살펴보던 배의 원목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배의 난간 부분에 다가서 원목을 쓰다듬어보길 잠시. 익숙한 질감이다.
목공(木工)에 조예가 깊지 않아 단박에 원목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
더욱 특이한 건 중원의 범선과는 달리 배의 재료가 된 원목이 생각보다 짧게 짧게 연결되었다는 거다.
기다란 나무를 판으로 가공해 배를 만드는 중원식과는 다른 방법임이 분명했다.
“저어, 실례지만 말씀을 좀 여쭙겠습니다.”
요즘은 계속해서 나무를 보러 산을 타는 중이다. 오크통을 만들기 위해. 덕분일까. 슬쩍 궁금해지는 이 목선의 원목.
눈으로 보지 않았기에 아직 나무가 불타지 않는다는 걸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가는 선원을 붙잡고는 일본어로 말을 붙여봤다.
“무엇이오?”
“이 배. 어떤 나무로 만든 건지 알 수 있습니까?”
“허허. 배 말이오? 배야, 늘 만들던 나무로 만드는 게 아니겠소? 풍화도 지천에 널린 게 이 나무니.”
“그저 섬에서 자라는 나무로 만들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만. 별걸 다 물으시는군. 중원은 아니 그런 모양이오?”
“아니, 뭐···. 비슷은 합니다.”
중원은 아니다.
적어도 땅덩어리의 크기가 몇 배는 차이가 나니까. 배를 한 척 만들 때도 나무를 고르고 고르는 게 중원인들.
그렇기에 주변에서 나는 나무로 만들었다는 말은 이쪽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말일 거다.
“그, 나무의 이름이···?”
“敵だ! 敵!”
!!!
그 나무의 이름이 무엇이냐.
딱 그걸 물으려 할 때. 선두에 서서 뱃길을 바라보던 해적 중 한 명이 복압을 끌어 올려 큰소리를 외쳐갔다.
순간, 빠르게 변하는 배 위의 분위기. 중원인들이야 저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이건, 적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 부우우우웅!
적을 알리는 신호가 길게 퍼지자, 선박 안에서는 저마다 활을 하나씩 등에 찬 병사들이 빠르게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무림인보다는 군조직에 가까운 이들의 모습이다.
“무슨 일인가? 갑자기 이들이 왜?”
“고, 공격인가? 대, 대비를?”
“시련?”
진효풍과 홍구, 갑열은 깜짝 놀라며 서로의 등을 맞대고는 주변을 살핀다.
땅에서라면 몰라도 배 위에서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난 서둘러 그들에게.
“적습이랍니다.”
적이 나타났음을 알려줬다.
“아. 난 또 뭐라고. 응? 저, 적습? 이 공자! 이거 심각한 거 아니오? 풍화도에 닿아보지도 못하고 죽는 건!?”
“이 거지 새끼가! 불길한 소리 작작 못하겠느냐?”
“시련은 극복하는 겁니다! 그분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셋은 저마다 잠시 안도하다가도 얼른 기력을 끌어올리며 적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때마침 무길이 급하게 우릴 향해 달려왔다.
“적습입니다! 다들 안으로!”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선박이니 밖이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대비는?”
“물론, 전투에 들어갈 겁니다. 밖이 편하시면 밖에 계셔도 됩니다만···”
“다들 제 몸 하나 정도는 챙길 수 있는 분들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전투태세에 들어가시지요.”
“···알겠습니다. 부디 보중(保重)하십시오. 또한, 제 곁에만 있으시길 권고드립니다.”
필요한 말을 전해주는 게 앞서 반겼던 모습이 가식은 아닌 모양.
그는 괜찮다는 우리의 말을 듣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지(死地)라 보일 수 있는 땅이 아닌가. 이곳까지 올 정도의 위인들이면 아무나 온 건 아닐 거란 게 그의 결론인 모양이다.
“戰鬪態勢!”
무길은 곧장 투구를 쓰고 선두로 향하더니, 어디선가 색이 다양한 짧은 깃발을 몇 개 가져와 이를 흔들었다.
그의 외침과 깃발의 색에 맞춰 곧장 대열을 정비하는 왜구들. 우린 선수에 선 그의 곁에서 조용히 이를 지켜봤다.
– 착! 착! 착!
빠르게 준비가 끝나니, 보이는 건 궁수들이다. 난간을 엄폐로 삼아 몸을 숨기고는 활을 쏠 준비를 마치는 궁수들.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세, 세 척?”
멀리서 다가오는 왜선 세 척이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배 한 척, 한 척이 모두 지금 타고 있는 배와 맞먹는 크기다.
“젠장. 내 말이 씨가 되었군! 세 척이라니! 여긴 한 척뿐이지 않나!”
“풍화도 사람들의 배 모는 솜씨가 있으니 믿어 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거, 저쪽은 같은 풍화도 사람이 아니오? 이 공자. 이거, 죽는 거요! 죽는 거!”
“이놈아! 호들갑 떨 시간에 죽봉이나 제대로 쥐거라! 백병전이다! 백병전!”
“이교도가 몰려옵니다! 제게 저들을 벌할 힘을!”
땅이었다면야 왜구를 실은 배가 세척이 보이건 서른 척이 보이건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일 리는 없다.
홍구만 해도 그렇지 않겠나. 혼자 왜구 수십은 간단할 터. 다만, 여기는 해상이다.
잘 싸우다가도 배가 가라앉으면 모두 죽고 마는 망망대해. 그게 저 거지가 호들갑을 떨어대는 이유다.
풍화도의 해적들이 제아무리 배를 모는 것과 해전에 능하다지만, 적도 풍화도 해적이지 않나.
이럴 때는 머릿수가 많은 쪽이 이길 거라.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 씨익.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같은 풍화도 사람이라고.”
선수에서 깃발을 들고는 해적들을 지휘하던 무길은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바쁜 와중에도 이쪽의 대화를 모두 들어둔 그. 그는 짙게 한 번 웃고는.
“보여드리지요. 같은 풍화해군(風花海軍)이라도 실력이 다르다는 걸.”
이내 깃발의 색을 교체하며 이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배의 방향이 바뀌더니 곧장 속도마저 빨라지기 시작했다.
흔들거림이 조금 더 심해져만 갔다.
“さいこう速力!”
방향을 바꿔 적선의 옆으로 비켜 가듯 틀어선 우리 배는 그대로 속력을 올려 그들에게 다가섰다.
최고속력! 이란 말이 허언이 아니다.
– 쉬쉬쉬쉬쉬쉿!
– 차차차차차착!
날아드는 화살비 속에서도 풍화도 해적들은 차분하기만 했다.
“이쪽으로.”
“예.”
– 챙! 챙! 챙!
“흥.”
– 깡! 깡! 깡!
갑열과 난 진효풍과 홍구의 곁에 붙어 날아드는 화살을 피해냈다.
진효풍은 검으로, 홍구는 죽봉이란 이름의 철봉으로. 그렇게 날아드는 화살을 쳐낸다.
해적들은 갑옷으로, 또 배의 난간으로 화살을 피하는 모습이다.
– 푹! 푹! 푹!
‘생각보다···?’
화살은 배에 잘만 박혀 들어간다. 불이 붙지 않는 원목이라더니 강도가 강한 건 아닌 모양.
진효풍이 만들어준 검막(劍幕)이 제법 넓어 이런 것까지 보일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 척!
“いっせいしゃげき!”
무사히 화살을 막아내는 우리 모습을 보고는 무길이 그대로 깃발을 바꿔 들었다.
일시에 푸른 깃발이 오르자, 고개를 드는 궁병들. 내가 들은 말이 맞다면 일제사격이란 뜻이다.
그들은 그에 맞춰 정확히 한 배만을 조준해 활을 쏘기 시작했다.
– 슈슈슈슈슉!
하늘을 뚫고 날아간 활이 그대로 선상에 선 다른 해적들을 향해 날아가 꽂힌다.
푹! 푹!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이들. 일제사격은 그렇게 두 번 정도 더 이어지더니, 이내 한 척의 배를 선단에서 이탈시키고 말았다.
주변으로 돌아서 방향을 바꾼 건 밖에서부터 선단을 파훼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일제사격을 맞은 배 위에는 잔잔한 고요함만이 남아 있다. 인적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 스스스스스!
한 번의 공격에 한 척의 배가 거의 무력화된 탓일까. 나머지 두 척의 배가 서로의 거리를 벌리며 대형을 무너트렸다.
이렇게 된다면 일제사격도 이제는 통하지 않을 터. 해전의 묘미를 눈으로 바라보며 불안한 시선을 띄울 때.
“ひっかかった!”
무길은 이를 보며 화색을 띄운다. 걸렸다는 말. 즉, 앞선 일제사격은 모두 함정이었다는 말이다.
그의 깃발이 색을 바꾸자, 배는 곧장 남은 두 척 중 한 척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추, 충돌한다! 어! 어?”
“이런 젠장. 옆으로 옮겨탈 준비를!”
배는 곧장 적선을 향해 달려가더니, 이내 적선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까지 간다.
육지인들의 호들갑이 절정에 달할 때.
“櫓を取れ!”
노를 거둬라. 그런 말이 들려왔다. 일시에 척! 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회수되는 우리 배의 노.
노와 노가 얽힐 뻔한 상황 속에서 우리 배는 노를 거두고는 그대로 적선의 옆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적선의 노가 모두 작살이 나버리고 만다.
범선이 아닌 왜선은 노를 젓지 않는다면 기동이 매우 느려질 터. 그게 한쪽이라도 이는 마찬가지일 거다.
적은 망망대해에서 기동력을 잃고 말았다.
– 와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두 척의 적선을 무력화시킨 우리 배에는 승전에 가까운 기쁨이 찾아왔다.
정신없이 흘러간 해전에 영문도 모르는 우리와 달리 승리를 확신하는 이들.
무길은 여전히 잔잔한 웃음만을 가지고는.
“最後の一つ。”
마지막 하나. 라는 말을 들려준다.
검은색으로 바꾼 깃발에 맞춰 남은 한 척을 추격하는 이들. 이들은 기어이 남은 한 척을 잡고는 그들과 백병전에 돌입했다.
– 챙! 챙! 챙!
– 와아아아아아!
줄과 줄로 배를 연결하고 사다리와 판자를 놓고. 그대로 왜도를 뽑아 든 왜구들이 서로를 향해 돌격했다.
– 챙! 챙! 챙!
– 서걱!
– 챙! 챙! 챙!
우린 그저 이쪽으로 다가오는 이들만 간단히 몇 명을 쓰러트리며 그렇게 사태를 관망했다.
유혈이 낭자한 풍경 아래에서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겠다고.
기선이라는 게 있지 않나. 이미 두 척이 무력화되며 저들은 기선마저 제압당했을 터.
아니나 다를까. 백병전은 일방적인 토벌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도쓰케키!”
– 푹!
“코노야로!”
하며 일본 사극에서 정겹게 듣던 대사와 함께 달려들던 이들은 어느새 적들을 말끔히 베어가는 참이다.
어두운 밤 중에도 왜도만이 붉은빛을 머금어 갔다.
‘반자이는···’
그래도 안 외치네.
‘풍화도주 사마 반자이!’를 내심 기대했던 마음으로는 아쉬울 따름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백병전이 끝나고는 무길의 해적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칼을 높이 들고 함성을 지르는 모습이 상상하던 해적의 모습 그대로.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는 무길의 앞으로 적선에 타고 있던 대장급 인물이 잡혀온다.
무길은 그를 향해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 스륵. 서걱!
하고는 그대로 목을 베어 버렸다. 배신자. 라는 말이 분명했다.
현천한빙심공 덕분일까. 튀어 오르는 붉은 선혈에도 철렁하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저, 검술이 참으로 깔끔하다. 그런 생각만 들던 순간. 어쩔 수 없다.
졌다면 이쪽이 당했을 꼴이니까.
무력화된 두 개의 배는 어느새 선원을 합쳐 한 척만 몰고 열심히 달아나는 중이다.
두 척의 선박을 나포하고, 한 척의 대장을 잡았다. 완벽한 이들의 승리였다.
– 와아아아아아!
쏟아지는 함성 속에서 무길이 뒤를 돌아 우리를 바라본다. 중원식이 아닌 일본식으로 손을 허리에 올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오는 그.
“첫 만남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뭐. 재밌었소.”
“아주 잘 싸우시는구려. 허허. 내 좀 나서보나 했더니.”
“부디 좋은 곳으로들 가시길. 성부와 성자와···”
무인이 세력 다툼에 나서면 목숨이 오가는 건 당연한 말이다. 정파인이라도 이를 모르지 않을 터.
이들은 유려하게 강 건너 불을 보듯 그저 고개만을 끄덕였다.
풍화도 해적의 싸움을 본 건 그래도 값진 구경이었을 거다.
“이 공자···께서는 괜찮으신 건지요?”
무길은 시선을 약간 옆으로 옮겨 바닥에 앉아 무언가를 바라보는 내게 다가왔다.
쏟아지는 함성 속에서 내가 지켜보던 건 조금 다른 무엇. 내가 보고 있던 건 별다른 게 아니었다.
스치며 이곳저곳 튀어버린 배의 조각난 파편들. 노만을 스치고 갔다지만, 이쪽 배도 약간의 타격은 있다.
그런 사이에서 떨어진 나무 조각을 난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아. 별다른 건 아닙니다. 목재가 눈에 익숙해서요.”
“그럴 수밖에요. 허허. 흔한 목재로 만든 배입니다. 강도가 약해 충돌에는 좋지 않지요. 그래도 가볍고 불도 붙지 않습니다. 덕분에 해전에 능하지요.”
“불이 붙지 않는 게 사실이군요?”
“예. 해전 중에 화공(火攻)이 오가지 않는 해전은 풍화군 사이의 싸움이 전부입니다. 저들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목재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흐음. 신기한 목재군요.”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중원에도 없는 재료는 아닐 겁니다.”
“예? 그럼?”
신기한 목재라.
오가며 본 해전보다 다른 곳에 꽂힌 내 모습에 무길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오는 목재의 이름.
“흔하지 않습니까? 미즈나라.”
!!
“아. 중원식으로 말한다면, 물참나무가 되겠군요.”
나온 이름은 내가 그토록 산을 오르게 만든, 그 나무와 같은 이름이었다.
‘물참나무를 가공해서 배에···?’
풍화도에서 가져가야 할 게, 사람과 술만은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