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prison guard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시니스터 (4)
“공주님, 준비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시녀의 말에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녀들이 이끄는 대로 거울 앞에 섰다.
머리를 묶고 옷을 다듬어 주는 것이 보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시녀들을 보다가 거울에 집중했다.
어머니를 닮은 붉은 머리카락.
그것과 똑같은 붉은색의 가죽 갑옷.
애드리안 왕국의 장인들이 만든 갑옷으로, 단단하기는 강철보다 뛰어나고, 움직이는 것은 천 못지않게 부드러웠다.
손을 올려 왼쪽 가슴을 쓸어내렸다.
심장이 있는 곳에 애드리안 왕국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왕국을 심장에 품으라는 의미.’
예전이었다면 절대 입지 않을 옷이었지만,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이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공주님.”
시녀가 가지고 온 검을 들었다.
스승님이 주신 검.
새하얀 검집을 허리에 차고, 스승님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것을 덜어 내라.’
마음, 생각, 육체.
검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게 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검을 바라보라며 스승님이 매일같이 내뱉었던 말.
후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잡생각을 덜어 냈다.
가슴 깊은 곳에 있는 복수심까지 덜어 내진 못했지만, 무거웠던 마음가짐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공주님, 출정식이 곧 시작될 겁니다.”
“내려가자.”
레베카는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따라 걷다가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자 많은 이가 보였다.
왕실 기사단장의 주도 아래.
기사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시종과 시녀들이 보좌하며 출정식 준비를 마무리 지었다.
걸음을 옮겨 거대한 발코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출정식을 위해 후계자들은 이곳에서 따로 모이기로 했다.
레베카는 창가로 다가갔다.
발코니 아래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왕국 근방에 있는 귀족 가문부터, 수도에서 자리 잡고 있던 백성들까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계자를 위해 검을 뽑아 들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애드리안 왕국을 지탱하는 귀족들을 상징하는 문양이 펄럭였고, 애드리안 왕국의 깃발이 곳곳에 섞여 있었다.
저들이 모인 이유는 애드리안 왕국 서쪽에 나타난 마물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엄청난 마물.
영상 구슬을 신성 제국에 넘겨본 결과, 마물의 정체는 마신교가 데리고 있는 가장 강한 존재.
시니스터라는 답변을 받았다.
마신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마물로써 가지고 있는 능력이 뛰어났다. 녀석을 잡기 위해선 신성 제국의 손꼽히는 기사단이 필요했다.
‘삼 일.’
삼 일 동안 버티면 신성 제국에서 기사단을 파견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냥 우리끼리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강해 봐야 마물인데, 사제 몇몇의 도움만 받아도 될 것 같은데.”
“막타 치고 네가 잡은 척하려고?”
“내 실력이면 혼자 잡고도 남을걸.”
“대련에서 져 놓고 아직도 입이 살아 있네?”
“닥쳐, 오빠.”
둘째 왕자와 첫째 공주가 발코니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고, 얼마 있지 않아 셋째 왕자가 도착했다.
출정식을 위한 준비는 끝이 났다.
왕실 기사단장이 확성 마법을 통해 병사와 기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애드리안 왕국의 백성으로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나?”
“예!”
거센 함성과 함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장이 신호를 주었다. 신호에 맞춰 왕자와 공주들이 발코니로 나섰다.
후계자들을 본 기사와 병사들이 함성을 한층 더 끌어 올렸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둘째 왕자가 후계자들의 대표가 되어 가벼운 연설을 진행했다. 그것을 조용히 듣고 있던 첫째 공주가 레베카를 보며 물었다.
“넌 혼자서 출정하려고?”
표정은 활짝 웃고 있지만, 말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레베카는 슬쩍 시선을 돌려 발코니 밑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 세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 기사와 병사들.
각자 지지하는 후계자에 맞게 병력이 모여 있었다.
둘째 왕자가 가장 많았고, 첫째 공주와 셋째 왕자가 비슷비슷한 수준.
레베카를 지지하는 세력은 다른 후계자들의 행렬 가장 끝에 조금 모습을 보일 뿐 아예 없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언니보단 나을지도.”
“뭐? 싸가지 없는 거 봐라? 네 천한 어미가 그렇게 가르치던?”
레베카는 상대의 날 선 말투에도 코웃음으로 대처했다.
“어디서 썩은 냄새가 나나 했는데. 언니, 입 좀 닦고 다니세요. 입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니까 결혼도 못 하고 혼자…….”
“야!”
첫째 공주가 소리를 지르려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코를 벌렁거렸다.
‘후우.’
레베카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순간 울컥했던 기분을 가라앉혔다. 첫째 공주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마음이 무거웠다.
스승님은 모든 것을 덜어 내라고 했지만.
막상 지지하는 세력의 차이를 보니,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저 적은 인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럼 다 같이…….”
둘째 왕자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연설을 마무리 지으려 할 때, 굳게 닫혀 있던 왕궁의 문이 열렸다.
활짝 열리는 문 사이로 갑옷을 입은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젊어 보이는 사내가 큰 목소리와 함께 행렬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여러 가문의 깃발이 휘날렸다.
가장 앞에는 왕국의 문양이, 뒤로는 왕국을 지탱하는 두 공작 중 한 명의 문양부터 여러 백작, 자작의 깃발이 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상상 이상이었다.
가장 많은 둘째 왕자의 세력의 두 배 정도 되는 병력이 왼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막내 공주님의 힘이 되고자 찾아왔습니다. 저희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낯선 사내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레베카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내가 웃으며 어깨를 툭툭 치며 케르베로스만 아는 비밀 신호를 보내왔다.
-어깨 펴고. 당당하게.
이렇게 정체를 숨기고 찾아올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레딘.
레베카가 복잡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펴며 웃었다.
“받아들이겠다.”
“공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 *
오베르크 제국.
황제는 꼭두각시고, 사실상 재상인 로드웰이 다스리고 있는 곳.
제국의 궁전은 아침부터 바빴다.
네 명의 공작이 초췌한 모습으로 궁전에 들어섰고, 시종과 시녀들은 공작과 재상의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대접했다.
“재상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공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로드웰을 맞이했다. 로드웰은 가장 상석에 있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짜증이 섞인 듯한 눈빛.
공작들은 전부 로드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 싸늘한 로드웰의 시선이 언터쳐블의 수장 제프에게 향했다.
“제프 공작.”
“예. 재상님.”
“애드리안 왕국이 있는 동쪽은 자네 소관 아니었나?”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 일에 대한 보고가 이리 늦은 거지?”
분노가 섞인 말투에 제프가 몸을 움츠렸다. 로드웰이 이렇게까지 분노한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제프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물은 게 아닐 텐데? 어째서 보고가 이리 늦었는지 묻고 있잖은가.”
어물쩍거리던 제프가 입을 열었다.
“중간에 있는 연락책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가 생겼다?”
“조직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녀석이 연락책을 죽이고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긴…….”
쾅!
로드웰이 식탁을 내리치자 탁자가 부서졌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음식이 쏟아지고, 접시가 깨지며 난리가 났다.
제프가 다급하게 자세를 낮췄다.
바닥에 엎드린 채로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 내뱉었다.
“듣기 싫으니 꺼져라.”
“죄송…….”
“꺼지라니까!”
사색이 된 제프가 고개를 숙이며 다급하게 식당을 빠져나갔다.
남아 있는 세 명의 공작.
로드웰은 시선을 돌려 블러드의 수장이자 서쪽을 담당하고 있는 파비안을 쳐다보았다.
“파비안 공작.”
“예.”
“제국 기사단의 단장이 자네가 데리고 있던 자였지?”
“예. 맞습니다.”
“그자에게서 연락 온 적이 있는가?”
“재상님이 불러들인 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뒤론 얼굴도,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잠시 분을 삭히던 로드웰이 세 명의 공작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돌아가게. 나중에 다시 부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공작들이 식당을 빠져나가고, 시종과 시녀들이 안으로 들어와 부서진 식탁과 음식을 치웠다.
일부는 로드웰의 손에 흐르는 피를 닦아 냈다.
툭!
시녀의 손을 쳐 낸 로드웰은 재상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무도 들이지 말거라.”
조용한 집무실에 가만히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애드리안 왕국에 나타난 시니스터.
그건 분명 제국 기사단에게 명령을 내렸던 일이었다. 누가 어떤 시니스터에게 갔는지 모르겠지만.
기사단은 시니스터를 깨우는 데 성공했다.
다급하게 연락을 돌렸지만, 기사단장에게서만 답이 오질 않았다.
‘실력이 가장 뛰어난 놈이긴 했지.’
연락이 오질 않은 이유는 시니스터를 부활시키고, 그 자리에서 죽었기 때문일 것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부활시킬 줄은 몰랐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일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뿐더러 운이 좋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 화가 난 이유는 시니스터에 대한 보고를 지금에서야 받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구지?”
애드리안 왕국에 일을 맡긴 언터쳐블의 연락책을 전부 끊은 것도 모자라서, 왕실 내부에 심어 놓은 비밀 첩자마저 처리한 녀석.
그 녀석이 의도적으로 애드리안 왕국에 대한 정보를 차단시켰다.
정체 모를 녀석이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 쉽게 식질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화만 내고 있을 순 없었다.
곧, 그분의 귀에도 이 이야기가 들어갈 테니.
그전에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똑똑!
집무실 문이 아닌 창문 쪽에서 들리는 맑은 노크 소리. 고개를 돌린 로드웰이 창밖에 있는 남자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긴 창문을 열자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다크니스 세븐 소속.
한.
레딘의 뒤를 밟다가 검을 가져왔던 자이자, 현 케르베로스 조직을 이끌고 있는 데이론의 팀에 있던 전직 교도관.
“무슨 일이야. 얼굴에 화가 잔뜩 났네.”
“맡아 줘야 할 일이 있네.”
“재밌는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시시한 건 이제 질려.”
“재밌을 거야.”
로드웰은 애드리안 왕국을 떠올렸다.
시니스터부터 시작해서 많은 일로 인해 계획이 꼬여 있었지만, 단 한 명만 제거하면 실타래를 풀 수 있었다.
원래의 계획엔 존재하지 않던 인물.
애드리안 왕국의 막내 공주이자, 버닝헬 소속 교도관인 레베카.
그녀만 없앤다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은 헤프닝으로 넘기며 원래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뭔데, 그 재밌는 일이.”
“지금 당장 애드리안 왕국으로 가서 막내 공주의 목숨을 거두어 주면 되네.”
“조용히? 아니면 화려하게?”
“상관없네.”
시니스터와 전쟁을 일으키며 출정식까지 한 마당. 어떻게 죽어도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죽이기만 하면 되네.”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