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prison guard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이자벨 (2)
이자벨을 쳐다보았다.
아깐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두 눈에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얼굴을 전체적으로 퀭해 보이게 만들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그런데 피곤해 보이는 것에 비해 표정은 밝았다. 뭔가 건수라도 잡은 건지 잔뜩 올라간 입이 살짝 불안했다.
“뭡니까.”
“깜박하고 얘기를 안 한 게 있는데. 레샤 왕국에서 활동하고 싶으면 범죄 단속반이 꼭 동행해야 해. 즉, 나랑 같이 다녀야 한단 뜻이지.”
“임무는 아까 끝났는데.”
이자벨이 눈을 흘겼다.
“혼자 다니려고 수작 부리네?”
“수작?”
“고작 저런 잡범들을 잡으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그걸 누가 믿어. 지나가는 개새끼도 웃겠다.”
아직 추가 임무가 남아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감시라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멘트가 있다.
이자벨을 보며 손에 들린 환상종의 먹이를 들어 올렸다.
“관광도 같이 다녀야 하는 건가?”
“과… 관광?”
“레샤 왕국의 환상의 숲이 그렇게 유명하다 해서 잠깐 보고 가려던 건데. 같이 구경하려면 따라오던가.”
이자벨을 두고 거리를 벌렸다.
혹시라도 따라온다면 귀찮아지긴 하겠지만, 오늘이 안 된다면 내일 와서 처리해도 상관은 없다.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니까.
그래도 떨어트릴 수 있으면 떨어트리는 게 좋으니, 진짜 놀러 왔다는 생각이 들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근처에 음료수 가게로 갔다.
“초코라테 2잔 주세요. 하나는 기본, 다른 하나는 빅 사이즈에 초코 시럽 다섯 번 추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음료를 기다리는 척하면서 이자벨이 있는 쪽을 훑어봤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가오진 않았다.
“음료 나왔습니다.”
돈을 내고 라테 두 잔을 챙겨 이자벨이 있는 곳으로 갔다. 빅 사이즈를 이자벨에게 건넸다.
-난 초코라테가 제일 좋아. 빅 사이즈에 시럽 다섯 번을 때리면, 그 미친 듯한 단맛이 짜릿하달까?
게임에서 나오던 대사 중 하나.
이자벨은 단맛 중독자다.
“이건 뭔데.”
“뇌물.”
“하?”
“여기서 한두 시간 정도 보낼 생각인데, 같이 다닐 거면 안내 좀 부탁하려고.”
“흥.”
이자벨이 콧방귀를 끼며 손에 들린 빅 사이즈 초코라테를 가져갔다.
“그냥 지도 보고 한 바퀴 돌아.”
몸을 돌려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이자벨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밤샘 근무로 피곤해 보이는데.
진짜 관광하러 온 놈을 쫓아다니기보단, 집에서 잠을 자고 싶었을 거다.
이제 맘편히…….
왜 다시 오는 거야?
“가자. 안내해 줄게.”
이자벨이 내 팔을 잡고 질질 끌듯이 앞으로 걸었다. 뭔가 싶어서 뒤쪽을 슬쩍 흘겼더니,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다.
느끼하게 생긴 남자.
복장을 보아하니 동료인 것 같은데.
“스토커?”
“비슷해.”
“잠깐 본 거로 판단하기 좀 그렇지만. 스토커가 붙을 것 같진 않은데…….”
“엿이나 먹어.”
이자벨의 걸음 속도에 맞춰서 빠르게 걸었지만, 뒤에서 남자가 달려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우리 앞으로 온 남자가 숨을 헐떡였다.
“하아… 잠깐 멈춰.”
“샤르아 선배? 여긴 무슨 일?”
이자벨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너… 왜 복귀하라니까 여기 있는 거야.”
“무슨 복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보고서 다 제출하라 했잖아.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만만하게 보여?”
“오늘 일은 귀염둥이가 보고서 쓴다고 했는데? 안 썼어? 내가 내일 복귀하면 한 소리 할게.”
그러자 샤르아란 남자가 심술이 잔뜩 난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네. 가. 쓰. 라. 니. 까.”
뚝뚝 한마디씩 끊으며 이자벨의 어깨를 쿡쿡 찔러 댔다.
광기의 이자벨답게 한바탕 하는 건가?
슬쩍 표정을 살폈다.
웃고 있는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화를 꾹꾹 참는 걸 보면서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오늘 불꽃 여우는 포기하는 걸로.
그 대신 미래의 용사 파티 중 한 명인 이자벨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그것 나름대로 이득이다.
여우는 내일 챙기면 되니까.
“잠시만요.”
이자벨 앞에 서서 샤르아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버닝헬 소속 레딘입니다. 개인적으로 처리할 임무가 있어서 이자벨 님께 동행을 요청했습니다.”
“개인적인 임무? 그게 뭡니까.”
샤르아가 눈을 흘겼다.
“말씀드렸잖습니까, 개인적인 임무라고. 혹시 말뜻을 이해 못 하셨습니까?”
“…교도관 따위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샤르아.
“예예. 교도관 따위는 가 보겠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갑시다.”
이자벨을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초입에서 안쪽으로 이동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움직였다. 슬쩍 봤지만 따라오는 것 같진 않았다.
한적한 개천가.
경치를 즐길 수 있게 개천 앞에 마련된 긴 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선배의 후배 사랑이 좀 거치네.”
“며칠 전에 고백한 걸 깠거든.”
“쫌생이네.”
“쫌생이지.”
이자벨이 초코라테를 한 입 들이키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 달아. 뭐야 시럽 추가한 거야?”
“피곤할 땐 단것만 한 게 없지.”
“뭘 좀 아네. 단걸 마시니까 살 것 같다.”
의자에 축 늘어진 이자벨이 하품을 하며 눈을 껌벅였다.
“그래도 네 덕분에 살았다. 오늘 끌려갔으면 하루 종일 조리돌림 당하면서… 으으. 생각하기도 싫다.”
“참는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잘 참았네?”
“이번에 들이박으면 진짜 위험하거든.”
“이미 들이박았구나.”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고개를 돌린 이자벨과 눈이 마주쳤다.
“근데 왜 도와줬냐.”
“빚이야. 나중에 나 곤란하면 너도 한번 도와 달라고.”
“와. 치사한 새끼.”
그러면서도 이자벨은 웃으며 초코라테를 마셨다. 단번에 많은 양을 들이키더니, 의자에 누웠다.
“난 좀 잔다. 구경하다 가라.”
“그럴 거면 집에 가지?”
“그 새끼, 분명 내 집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을걸?”
“그건 좀 무서운데.”
뭔가 정적이 흘러서 이자벨을 보니, 입을 벌린 채 뻗어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다가.
피로 회복에 좋은 혈도를 짚어 주고 자리를 떴다. 불꽃 여우는 포기했지만, 히든 피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개천 쪽으로 걸어갔다.
초식동물의 형태를 한 환상종들이 물을 마시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눈을 깜박였다.
동시에 자세를 낮추는 환상종.
“뭐지?”
내가 살짝 움직이자 환상종들이 개천 뒤로 물러섰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슬쩍 고개를 내려 심장에 그려진 불사조의 문양을 떠올렸다.
초월종.
사실 초월종도 환상종에 속해 있다.
다만, 그 격이 남다르기 때문에 초월종이라고 분류해서 부르는 것뿐.
“격이 느껴지는 건가.”
환상종의 반응을 보면 그것밖에 없다. 내 심장에 새겨진 불사조의 기운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명령도 내릴 수 있나?
“사라져.”
말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정화의 힘을 몸에 흘리며 사라지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사라져.’
그러자 환상종들이 몸을 움직여 개천을 벗어나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재밌는 능력이네.”
당장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진 않지만,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올 거다.
능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히든 피스나 챙기자.”
한적해진 개천을 따라 걸었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에 작은 물고기들이 보였다. 좀 더 위로 올라가자 곳곳에 고둥 껍데기가 보였다.
대왕 고둥 껍데기.
흔히 소라 껍데기를 귀에 가져다 대면 바닷소리가 난다고 하지만, 이 게임에선 대왕 고둥 껍데기에서도 그런 소리가 들린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삼각형 돌무더기에 있는 푸른 두 줄이 그려진 대왕 고둥 껍데기.”
게임 속 설정을 떠올리며 고둥 껍데기를 하나 찾았다.
개천을 따라 한참 올라간 다음.
붉은 돌이 깔린 곳에서 동그라미가 그려진 고둥 껍데기를 집어 들었다.
양쪽 귀에 하나씩 댔다.
쏴아아아아.
파도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파도치는 고둥 껍데기]-공명이 일치하는 고둥 껍데기 두 쌍이 만날 경우, 거리에 상관없이 고둥 껍데기를 이용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수천 개의 고둥 껍데기 중 단 한 쌍만이 효과를 가지고 있는 히든 피스.
게임에선 그다지 효용이 없는 이스터 에그 같은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철통 보안의 연락책으로 쓸 수 있다.
누구도 도청할 수 없는 아이템.
앞으로 테리를 잡게 되고 이름을 알리게 되면, 여섯 왕국은 물론 7대 조직의 이목을 한 번에 받게 될 거다.
자연스럽게 움직임에 제한이 생길 테고,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힘들어질 터.
그때 큰 도움이 될 거다.
“가 볼까.”
고둥 껍데기를 아공간 주머니에 챙긴 뒤,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갔다.
원래 있던 곳에 도착할 때쯤.
의자에 누워 있던 이자벨이 하품을 내뱉으며 기지개를 켰다. 옆으로 다가가자 이자벨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뭐야. 기다린 거야?”
“그냥 경치 구경하고 왔는데 네가 일어난 거야.”
“근데 왜 이리 개운하지. 평소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얼마 안 잔 것 같은데 기분이 쌩쌩하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구경 좀 시켜 줘?”
“볼 만큼 봤어.”
“뻥 치시네. 따라와 봐.”
앞장서는 이자벨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점심 안 먹었지? 내가 진짜 아무나 밥 안 사 주는데. 영광이라고 생각해라.”
“꼴깝…….”
“뭐? 다시 말해 봐.”
“잘 먹겠다고.”
공원 안에 있는 음식점 중 맛집이 있다며 데려간 곳은 분식집이었다.
“이모, 여기 떡튀순 하나씩이요.”
떡볶이, 튀김, 순대.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자주 먹었는데.
추억이네.
“우리 광년이, 오랜만에 왔네. 옆엔 남자 친구?”
“그럴 리가요. 직장 동료예요.”
“애칭이 광년이?”
“엿이나 먹어.”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환상종을 어루만지며 노는 아이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웃다가 음식이 나와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아라키스의 눈이 발동했다.
아주 연하지만, 세상이 붉게 변했다.
뭐지.
주변을 훑었지만, 수상한 느낌이 드는 이들은 없었다.
“뭐야. 눈빛이 왜 그래.”
이자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게임 속 이자벨의 대사가 떠올랐다.
-아주 맑은 날씨였어. 의자에 앉아서 따듯한 햇살을 느끼고 있으면 절로 눈이 감길 것 같은 기분 좋은 날씨.
동시에 방금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지.
장면을 떠올리기 무섭게.
콰가가강!
마른하늘에서 내려치는 날벼락.
그와 함께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침을 삼키며 이자벨을 바라보았다.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너 패밀리어 있어?”
이자벨이 고개를 저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건 귀찮아서 안 키워.”
이자벨의 얼굴 위로, 게임에서 봤던 5년 뒤의 이자벨이 겹쳐졌다.
-숲에서 변질된 환상종들이 튀어나와 공원에 있는 사람들을 습격한 날.
침을 삼키며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다수의 무언가가 빠르게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살아남기 위해서 처음으로 환상종과 계약을 했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