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prison guard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8)
8화 수상한 움직임 (1)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모든 것을 지켜보던 세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레딘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컥!”
단번에 두 녀석이 제압됐다.
마나를 억제하는 수갑을 찼다.
거기다 체력도 완전히 고갈된 상태.
“끄아아악!”
그런데도.
체력 포션을 마신 4명이 밀리고 있었다. 뒤이어 두 명이 달려들었지만, 레딘에게 단검을 뺏기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저게 가능해?’
단호한 움직임.
주저함 없는 칼질.
완벽에 가까운 전투를 보여 주었다.
혹시 체력 포션을 마신 건 아닐까. 다른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아니라면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상을 뛰어넘는 끈기.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정말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전투를 했다는 걸 지금의 레딘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지금 처리해야 해.’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완전히 체력이 빠진 지금이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세리아는 손에 있는 수갑을 풀었다.
한번 끼면 쉽게 뺄 수 없는 수갑. 그러나 훈련을 받은 세리아에겐 시간만 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몸 안에 차오르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
뭔가 섬뜩한 기운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호흡이 가라앉은 레딘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두 눈.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짙은 싸늘함.
세리아는 숨을 죽였다.
기척을 완벽하게 숨기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위치를 알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든 순간, 빠르게 움직였다.
촤라락!
특수 제작 한 소형 단검 수십 자루를 허공에 뿌렸다. 마나가 담긴 단검이 세리아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레딘의 숨통을 끊기 위해.
수십 자루의 단검이 쇄도했다.
두려워하지 않는 레딘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리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와 함께 세리아의 몸이 멈춰 섰다.
한순간의 정적.
침을 삼키며 정신을 다잡은 세리아가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레딘이 한 발짝 다가왔다.
“아리스.”
부드러운 음성에 세리아가 두 눈을 부릅떴다. 처음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레딘의 입에서 나올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리스.
아빠가 어린 시절 불러 주었던 애칭이자, 오직 아빠만이 알고 있는 애칭이었다.
근데 어떻게…….
“너… 뭐야… 대체…….”
“웬만하면 모르는 척 넘어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죽이려고 드니까 어쩔 수가 없네.”
“정체가 뭐냐고!”
레딘이 손에 있던 단검을 바닥에 던졌다.
싸울 마음이 없다는 표시.
세리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휙!
손에 쥔 단검을 레딘의 목에 겨누었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냐니까?”
“이안 그레이스.”
아버지와 함께 감옥에 갇힌.
브라셀의 2인자이자, 세리아에게 있어선 삼촌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가 내 아버지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삼촌에겐 자식 따위 없었어.”
“당연히 그렇겠지. 난 사생아니까.”
레딘의 눈은 떨림이 없었다.
세리아는 그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빛이 없는 곳에서도 피는 그림자.”
브라셀의 간부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암호 중의 하나였다.
외부인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말도 안 돼…….”
“믿든 말든 네 자유야.”
레딘이 손가락을 들어 세리아의 단검을 옆으로 밀어냈다.
몸을 돌려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세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진짜라면… 너도 이안 삼촌을 구하러 온 거야?”
“아니.”
“그럼?”
“죽이러 왔어.”
드르륵!
문을 연 레딘이 잠시 고개를 돌렸다. 충격을 받은 세리아를 보며 툭 던졌다.
“그러니까 서로 갈 길 가자.”
드르륵!
탁!
문이 닫히고 훈련장에 적막이 찾아왔다.
“…….”
세리아의 머릿속엔 온통 레딘의 말들로 복잡했다. 아리스라는 애칭부터 이안 그레이스의 사생아란 이야기까지.
‘녀석이 했던 말들이 전부 진짜일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레딘은 조직의 비밀 암호까지 알고 있었다. 너무 섣부르게 움직였단 생각에 머리가 뜨거웠다.
‘좀 더 차분하게 움직였어야 했는데…….’
세리아는 고개를 들어 문쪽을 바라보았다. 닫힌 문을 보니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레딘은 적군이라기보단 아군이었다.
각자의 목표는 다르지만, 지하로 내려간다는 목적은 같았다. 힘을 합친다면 목적을 이룰 확률이 훨씬 높아질 텐데.
왼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레딘을 범죄자로 몰아 감옥에 넣었던 일부터, 오늘 죽이려고 했던 일까지. 이미 레딘과의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후회라는 감정이 전신에 퍼졌다.
그러나 이대로 절망에 빠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아빠를 구하기 위해선 레딘의 도움이 필요하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레딘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해.”
* * *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쐬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긴장감이 단번에 풀려서 그런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숨을 깊게 내쉬었다.
방금 전, 훈련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세상이 붉게 변한 순간, 활로를 보여 주는 푸른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걸 보고 느낀 감정은 당황이었다.
뭐지?
아라키스의 눈은 만능이 아니었다. 떠올려 보면 함선을 빠져나갔을 때도, 시전자의 수준에 맞춰 발동된다고 했다.
그만큼.
세리아와 나의 격차가 크다는 뜻일 거다. 세리아가 진심으로 죽이려고 들면, 난 꼼짝없이 죽어야 할 정도로.
후우.
망했다 싶었던 순간, 차가운 심장이 발동되면서 잡생각이 사라지고,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다.
“이안 그레이스…….”
그에겐 사생아가 없다.
게임 속 설정에서도 없었고, 가장 친하게 지내던 세리아도 직접 없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들킬 위험은 없다.
어차피 지금 지하 10층에서 살아 있는 건, 세리아의 아버지뿐. 이안 그레이스는 이미 목숨을 잃었다.
브라셀의 비밀 암호까지 말했으니.
세리아가 아무리 냉철하다고 해도 이젠 쉽게 의심하지 못할 거다.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려 들 거다.
낯선 세상에서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목표는 달라도 목적은 같은 동료가 있다는 건 큰 힘이 되니까.
처음에 세웠던 계획과는 틀어졌지만, 결과적으론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내 실력이다.
오늘 얻은 검성의 전반부 3초식.
그것만 제대로 익혀도 몸을 지킬 수준은 되겠지만,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선 심득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마나 단련법이 담겨 있는 세 번째 심득.
“곧…….”
세 번째 심득을 얻으러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제국력 104년. 함선이 폭발하고 10일 뒤. 마그네스 조직이 버닝헬에 갇혀 있던 조직원 전부를 탈옥시키려고 시도함.
혼란이 찾아오는 그 순간.
그때가 기회다.
* * *
세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체력 포션과 집단 폭행 시도로 퇴소 처리 당했다.
그 뒤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밤에는 신고식, 낮에는 훈련.
부족한 수면 시간과 체력적인 부담감이 증가하면서 탈락자들이 속출했다.
일주일간 이어졌던 신고식.
마지막까지 버텨 낸 훈련생은 나를 포함해서 총 29명이었다.
“그동안 고생했다! 후배들아.”
“근데 그거 아냐? 아마 앞으로 이 일주일이 그리워질걸?”
“너흰 지옥에 제 발로 들어온 거야.”
선배들의 거친 환영과 함께.
신고식은 끝을 맺었고, 본격적인 직무 실습 전에 이틀이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나니 선배들이 식당으로 불렀고.
그곳에 도착하니 테이블에 쫙 깔린 음식들과 온갖 술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오늘만큼은 맘껏 즐겨라.”
“감사합니다!”
헤더와 함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와… 이거 뭐야? 진짜 맛있는데.”
양념치킨과 맥주를 마시면서 헤더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크레인 왕국 출신이니 모를 수도 있다.
이 게임의 설정상.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고, 그조차도 크레인 왕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니까.
나도 다리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었다. 갓 만들었는지 튀김이 바삭했고,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양념이 기가 막혔다.
거기에 수제 맥주까지 곁들이니.
그간의 피로가 절로 씻기는 기분이다.
천국이 있다면 지금이 아닐까.
“우와… 우와… 진짜 너무 맛있어. 이거 뭔데 이렇게 맛있어?”
헤더의 감탄사 연발에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치킨을 먹고 감탄하는 걸 직관하는 기분이다.
“치킨.”
“치킨?”
“그 음식 이름이야.”
“매일 치킨만 먹으면서 살고 싶다…….”
치킨 외에도 다양한 음식들이 많았다.
스파게티나 피자 등등.
적당히 음식을 먹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헤더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었다.
“어디가?”
“훈련.”
“으으으으… 진짜 독한 놈. 오늘 하루는 쉬면서 나랑 같이 맥주나 마시자!”
취했네.
“맛있게 먹어라.”
“매정한 놈…….”
식당에서 나왔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쌀쌀한 바람에 몸을 떨었다. 못 버틸 정도는 아니라 훈련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밤하늘에 뜬 밝은 달 때문에 훈련장으로 가는 길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조용한 밤거리를 걸었다.
게임 세상에서 눈을 뜬 지도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처음 며칠 동안은 작은 희망을 품기도 했다.
혹시나 깊은 자각몽이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희망조차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래도 완전히 미련을 털어 버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릴 수 있게 됐으니까.
“상태창”
[상태창]이름: 레딘
직업: 신입 교도관
육체: 일류
마나: F
운: F
재능: F
보유스킬 – 복사(EX), 차가운 심장(A), 아라키스의 눈(S), 강인한 정신력(B), 하룬겔의 검술(S), 불굴(A), 혈통(?)
육체의 경지를 한 단계 올리면서, 몸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피부가 조금씩 단단해졌다.
처음엔 칼날을 대기만 해도 피가 났다면, 지금은 힘을 주어야만 피가 흘렀다. 계속해서 경지를 올리면.
도검불침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류의 경지에 오르면서 ‘?’ 등급의 혈통이란 스킬이 생겼다.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설명 한 줄 없다.
게임에서도 보지 못했던 스킬.
저것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봤지만,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레딘의 배경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뿐.
당장은 혈통에 대해 알아낼 뾰족한 수가 없었다.
“후우.”
시간은 많으니까.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
가볍게 움직이면서 몸을 풀었다. 그렇게 훈련장 앞에 서니,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세리아가 보였다.
평소에 연기하던 천진난만한 모습이 아닌,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세리아와는 단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먼저 다가오지도 않았고,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드디어 마음의 정리를 마쳤나?
“무슨 일이지?”
“제안할 게 있어.”
“그때 얘기했던 것 같은데, 서로 각자 갈 길 가자고.”
“너도 지하로 내려가길 원하잖아. 나도 그래. 그러니까 서로 힘을 합치자.”
“난 네 도움이 없어도 되는데?”
세리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대가를 지불할게.”
“내가 뭘 요구할 줄 알고.”
“뭐든.”
마음가짐을 단단히 먹은 것 같지만.
내가 요구하는 것을 바로 넘기진 않을 거다.
“그림자를 다루는 법. 그걸 주면 널 도와줄게.”
세리아의 아버지인 헨리 바스커반이 브라셀을 만들고, 그림자 군도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힘.
다섯 번의 복사 기회.
그중 하나를 사용해서 얻으려고 했던 스킬이다. 성장형 스킬이기에 미완성인 세리아가 아니라 완성된 헨리 바스커반에게 바로 사용하려 했는데.
공짜로 익힐 수만 있다면.
복사 스킬을 아낄 수 있고, 그걸 다른 스킬을 얻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건 안 돼.”
세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
확실하게 못 박기 위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만 더 가면 얼굴이 부딪칠 만큼 가까운 거리.
세리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시간 싸움이다. 세리아는 결국 내 제안을 수락하게 될 거다.
“난 그게 아니면 힘을 합칠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실습 끝날 때까지 잘 고민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