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prison guard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정리 (2)
드넓은 대전.
창문에서 쏟아지는 달빛이 대전을 비추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 붉은 카펫을 따라 중년의 사내가 걸음을 옮겼다.
라비노 왕국의 왕.
비욘드 폰 라비노.
쓸쓸해 보이는 걸음걸이로 비욘드 국왕은 금색 왕좌 앞에 섰다. 손을 뻗어 왕좌를 쓸어내리다가 두 눈을 감았다.
“……프리실라.”
비욘드의 목소리가 떨렸다.
프리실라 왕비.
라비노 왕국의 공주였던 여인.
일개 기사였던 비욘드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건, 프리실라의 남편으로 선택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프리실라 왕비는 오랜 시간 아이를 갖지 못했다.
몇 년째 후사가 없었던 둘.
왕권을 이어 나가기 위해선 후계자가 있어야 했고, 귀족들의 성화에 비욘드는 루펜 공작가의 딸을 후궁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아이를 가지게 된 후궁.
그녀가 낳은 자식은 남자아이였다. 유일한 후손이었던 아이였기에, 왕세자로 키우기 위해 모든 지원이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좋은 것들을 먹이고.
왕국의 뛰어난 자들이 달라붙어 교육을 진행했다.
데릴사위였던 국왕.
공주였지만 자식이 없는 왕비.
권력의 중심이 왕비에게서 루펜 공작가의 여식인 후궁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프리실라 왕비는 아이 가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왕세자가 태어난 5년 뒤 파비안을 낳게 되었다.
오랜 시간 마음고생을 했던 터일까.
몸이 워낙 약해진 프리실라 왕비는 파비안을 낳으며 목숨을 잃고 말았다. 두 눈을 감기 전, 프리실라는 비욘드를 보며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파비안이 오래 살 수…… 있게…….
감겨 있던 비욘드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욘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몸을 떨었다.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오.”
파비안.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프리실라 왕비를 닮은 얼굴에 머리는 똘똘했고, 재능도 뛰어난 아이였다. 성품도 좋아서 왕세자의 자질이 충분했다.
밝고 활기찬 모습.
그런 모습을 볼 때면 항상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그리고 왕비가 함께 있었다면.
정말 좋은 왕세자가 되었을 텐데.
그러나 라비노 왕국은 루펜 공작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욘드는 아무 힘도 못 쓰는 허수아비와 같았다.
“미안하오…….”
힘이 없는 비욘드가 파비안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관심을 끄고 내버려 두는 것밖에 없었다.
다가오면 밀어내고.
재능을 싹 튀우기 전에 잘라 냈다.
루펜 공작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후궁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그리고 첫 번째 자식인 왕세자 세페토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비욘드는 파비안을 철저하게 배척했다.
파비안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들의 눈에 뜨일 거고, 그럼 그들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파비안은 혼자가 되었다.
그런 파비안에게 찾아온 한 명의 여인.
비비안 아네트.
파비안은 비비안의 곁에서 상처를 위로받았지만, 그마저도 루펜 공작은 가만두지 않았다.
아네트 가문에 연락해 세페토와 약혼식을 잡아 버렸다.
밝고 활기찼던 아이는 깊은 상처와 함께 변해 버렸다. 폭력을 서슴지 않게 되었고, 술과 마약, 여자에 찌들어 살기 시작했다.
비욘드는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제 더는 루펜 공작가에서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파비안은 오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비욘드의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옥 대전에 나가겠습니다.’
‘불허한다.’
‘그럼 죽겠습니다.’
비욘드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속으로는 금방 떨어지길 빌었고,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옥 대전을 지켜보았다.
‘지옥 대전의 우승자는 파비안입니다!’
모든 왕국에 파비안의 이름이 알려지는 순간, 비욘드의 몸에 흐르던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이대로면 파비안은 무조건 죽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프리실라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파비안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킬 필요가 있었다. 루펜 공작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으면서 이유가 합당한 곳.
“케르베로스…….”
그러나 선택의 결과는 파비안의 죽음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난 뒤,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어떻게 행동을 했어야 했던 걸까.
끊임없이 차오르는 자괴감 속에서 비욘드는 폐인처럼 살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
“정말…… 미안하다.”
조용한 대전에 울린 비욘드의 독백.
적막함이 찾아왔고.
비욘드는 왕자의 앞에 주저앉아 프리실라와 파비안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대로 죽으면 그 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미리 준비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마음을 다잡은 비욘드가 단검을 역으로 쥐고 심장을 겨누었다.
침을 삼키고 검에 힘을 주려고 할 때.
“죽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낯선 이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뜨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붉은 카펫을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
버닝헬의 검은 제복.
허리에 차고 있는 하얀 검집.
남자의 얼굴을 보니 떠오르는 자가 있었다. 지옥 대전에서 파비안을 꺾었던 버닝헬의 교도관.
케르베로스의 부단장.
레딘.
“자네는…….”
비욘드의 앞에 선 레딘이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레딘이라고 합니다.”
“여긴 어떻게……?”
“정식으로 폐하를 만나 뵙길 요청했으나 기사들에게 거절당해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비욘드는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내려놓으며 침을 삼켰다.
“내가 그리시켰네.”
“혼자 조용히 죽으려고 말입니까?”
“그건 자네가 상관할 바가 아닐 텐데.”
“거두절미하고. 파비안의 죽음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레딘의 입에서 나온 파비안이라는 단어에 비욘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내 아들의…… 죽음?”
“조직 내에 첩자가 있었습니다. 그 첩자가 저희에 대한 정보를 넘겼고, 작전이 전부 들통나면서 파비안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첩자? 왜 나를 만나자고 했을 때 그런 얘기를 먼저 하지 않았지?”
“제가 말하는 걸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조직에 침투해 있었던 첩자는 신성 제국의 신성 기사였던 루크였습니다. 풀 네임은 루크 폰타라.”
비욘드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폰타…… 라?”
라비노 왕국에 있는 다섯 명의 백작.
그중 한 곳이 폰타라 백작가였다.
“예. 폰타라 백작이 마그네스와 손을 잡고 있었고, 루크를 통해 정보를 마그네스 쪽으로 넘기고 있었습니다.”
“……까드득.”
“그 녀석을 잡기 위해선 폐하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걸 부탁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무 말도 없는 비욘드.
그의 주먹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분노로 얼룩진 비욘드가 몸을 떨면서 입을 열었다.
“무슨 도움이 필요한가?”
“폐하를 가장 잘 따르는 기사단을 보내 주시면, 폰타라 백작을 잡아 기사단에게 넘기겠습니다.”
“알겠네.”
비욘드의 수락에 레딘이 몸을 돌렸다. 떠나려는 레딘의 등을 쳐다보며 비욘드가 물었다.
“파비안은 고통스럽게 죽었나?”
“유품을 잘 확인해 보시죠.”
그 말과 함께 레딘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비욘드는 단검을 내려놓고 품에 지내고 있던 목걸이를 꺼냈다.
어린 시절 파비안에게 주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큰 피해를 한번 막아 줄 수 있는 아티팩트이자, 파비안이 죽었다면 빛이 들어올 수 없는 목걸이.
우웅!
“……!”
그 아티팩트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 * *
라비노 왕국에 있는 텔레포터.
그 앞에 케르베로스 2조 인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세리아, 휴고, 아델라.
처음에 있었던 다섯 명의 인원이 이번 사건으로 셋이 되었지만, 임무를 진행하는 데 큰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들 준비는?”
“다 됐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자.”
앞에 있는 직원에게 신분증을 보여 주고, 텔레포터를 이용해 폰타라 백작이 있는 영지로 이동했다.
우웅!
조금 떨어진 곳에 저택이 보였다.
주변엔 기사들이 저택을 지키고 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는 얼추 30명.
저게 전부는 아닐 테고, 체포하기 위해 움직이면 더 많은 인원이 몰려나와 막으려고 들 거다.
“가자.”
“그냥 쳐들어가?”
세리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막는 놈들 있으면 전부 제압해.”
“알겠어.”
조원들을 이끌고 저택으로 움직였다.
발소리를 듣고 반응한 기사들이 이쪽을 쳐다보더니,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검을 뽑아 들면서 다가왔다.
“멈춰라.”
손을 들며 막아서려는 기사에게 다가갔다.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녀석의 가슴을 후려쳤다.
갑옷이 뭉개지고 기사가 뒷걸음질을 쳤다.
“컥!”
숨을 몰아쉬는 녀석을 옆으로 밀면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주변에서 달려드는 기사들을 조원들이 정리했다.
퍼벅!
퍽!
저택 입구에 도착할 때쯤.
“침입자를 잡아라!”
“삐이이이이익!”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며 세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많은데?”
“곧, 왕실 기사단에서 올 거야.”
“알겠어.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넌 먼저 가 봐.”
저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에 있는 기사들을 정리하고, 감시자의 눈을 사용해 폰타라 백작의 위치를 찾아냈다.
2층 복도 끝.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몸을 꺾었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폰타라 백작이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
책상에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폰타라 백작.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도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담담하게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네.”
“절 아십니까?”
“내 아들이 케로베로스에 있는데, 모를 리가 있나.”
폰타라 백작이 눈을 흘겼다.
“그런데 이 밤에 여긴 무슨 일로 찾아왔나?”
“일주일 전에 루크가 보냈던 편지. 기억나십니까?”
폰타라 백작의 눈이 살짝 떨렸다.
대답을 하지 않고 눈치 보는 걸 보면 편지를 읽은 게 확실했다. 내가 루크의 필적을 훔쳐서 보냈던 편지를.
“기억이 나질 않는군.”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읽어 드리죠. 아버지, 제가 첩자인 건 들키지 않았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입꼬리를 올리며 수갑을 꺼냈다.
“그럼 기억나게 해 드리죠.”
앞으로 다가가자 폰타라 백작이 검을 뽑아 들었다.
실력은 나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준.
그대로 걸어가서 폰타라 백작이 휘두른 검을 피하며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다음 머리를 잡고 책상에 내리꽂았다.
콰앙!
“가…… 감히!”
“당신 아들이 다 불었어.”
“뭐라는 거야!”
“발뺌하지 마, 어차피 증거는 다 있으니까.”
“크윽…….”
“거래를 하는 건 어때? 네가 알고 있는 마그네스에 대한 정보를 전부 불어. 그럼 나도 체포하지 않고 넘어가 줄게.”
“뭘 믿고.”
파비안과 계약할 때 사용했던, 또 다른 피의 계약서를 꺼내 폰타라 백작의 눈앞에 내려놓았다.
“이러면 믿겠어?”
“……정말이냐?”
“그렇다니까.”
폰타라 백작이 피의 계약서에 자신의 피를 묻히면서 계약서과 활성화됐다.
수갑을 풀어주자 폰타라 백작이 눈치를 살피다가 정보를 술술 불었다.
자잘한 것들도 있었지만.
아주 큼직한 것도 하나 있었다.
불개미 아지트의 위치.
“좋은 거래였어.”
피의 계약서를 흔들며 집무실을 빠져나가려는데, 누군가가 들어왔다.
라비노 국왕이 보낸 기사단.
그들을 보며 고개짓으로 폰타라 백작을 가리켰다.
“체포하시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체포하지 않고 넘어가 준다며!”
“아. 그건 버닝헬 이야기고.”
폰타라 백작과 기사단을 두고 1층으로 내려왔다. 저택 입구 쪽으로 걸어가며 세리아에게 아지트 위치를 알려 주었다.
“단장님에게 바로 정보 넘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