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
1화 오늘부터 마왕
연재가 중단되는 것보다 어설프게나마 완결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즐겨 읽던 소설이 황당하게 끝나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와! 정말 이렇게 끝이라고?”
고된 알바가 끝난 후, 좁은 고시원 방에 누워 소설을 읽던 임시현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가 읽던 소설의 제목은 ‘마계정벌기’.
제목대로 이세계로 소환된 청년이 용사가 되어 세상을 혼란에 빠트린 마신을 퇴치하기 위해 마계를 모험하는 이야기다.
먼치킨인 용사는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거침없이 해치워 나갔다.
그 통쾌한 전개에 푹 빠진 시현은 연재를 기다리며 몇 번이나 정주행했을 정도.
그런데.
오늘 막 올라온 최신화에 상상도 못 한 전개가 펼쳐진 게 아닌가?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인 용사가 죽어 버린 거였다.
용사가 약해서는 아니었다.
먼치킨이라 불릴 만큼 아주 강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일개 마왕 따위는 쉽게 해치울 정도였다.
‘문제는 마계에 마왕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는 거지.’
마계에는 마왕성 랭킹이라는 게 존재한다.
최종 보스인 마신을 포함해, 일신의 무력과 마왕성의 마력을 종합해 100위까지 순위를 매긴 거였다.
그것만 봐도 마왕이 최소 100명 이상!
실제로 랭킹 밖의 마왕까지 헤아리면 수백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마왕을 상대로 용사가 혼자서 싸우는 걸 고집하다가 이 사달을 낸 거였다.
용사가 아무리 강해도 대마왕들이 협공하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설이 끝나 버린 거다.
‘하아, 정말 이대로 끝인가?’
숨겨 둔 아이템으로 부활한다든가, 사실은 가짜 용사였다든가 하는, 개연성 없는 전개로라도 이어졌으면 할 만큼 안타까웠다.
그만큼 마계정벌기를 즐겨 봤기 때문이다.
‘앗! 이러면 댓글도 난리가 났겠네.’
댓글창을 열어 보니 예상대로 독자들이 작가를 성토하고 있었다.
>투럼프 : 이걸로 끝이라니 미쳤네. 미쳤어.
>닉네임은몇자까 : 갑자기 주인공이 뒈지는 게 말이 돼?
>흑생 : 어떻게 이따위로 찍 싸고 튈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감.
시현도 작가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작가는 블로그는커녕, SNS도 하지 않았다.
소통이라고는 가끔 남기는 짧은 작가 후기가 전부였다.
그러는 사이 독자들은 성토를 넘어서 육두문자까지 날리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시현이 한마디 남겼다.
>아침마다정주행 : 저도 이렇게 끝난 게 아쉽긴 한데, 욕은 자제하죠. 무슨 사정이 있으실지도 모르는데.
>투럼프 : 와! 이 와중에도 쉴드 쳐? 쉴드로 맞고 싶어?!
>닉네임은몇자까 : 이거 작가 부계정 아니야?
>흑생 : 양심 있으면 본계로 오셈.
‘작가 부계정이라니, 나 때문에 괜히 작가님만 더 욕먹는 거 아니야?’
걱정된 시현이 해명하려 할 때였다.
>fakenews : 아니, 저거 절대 작가 아님. 최근 전개가 불안하다는 성지글도 저 님이 쓴 거야.
>투럼프 : 오, 그래? 그럼 차라리 작가 대신 네가 써.
‘휴, 다행이다.’
오해가 풀린 것 같은 분위기에 시현은 안도했다.
거기다 그동안 썼던 추천 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기뻤다.
‘이래서 작가를 하는 건가? 그래도 나보고 대신 쓰라니, 말도 안 되지.’
그때였다.
>작가 : 대신 쓴다고?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닉네임은몇자까 : 작가? 어, 진짜 작가잖아!
>투럼프 : 잘 왔다! 왜 이따위로 완결한 거야? 할 말이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봐.
>작가 : 허무하게 끝난 건 나도 아쉬워. 근데 주인공이 저렇게밖에 못 하는데 어쩌겠어?
>fakenews : 이 미친!!!! 작가 맞아?!
>투럼프 : 시바, 너무 당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시현도 황당했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알아서 움직인다니 하는 말은 들어 보긴 했지만, 작가가 그걸 핑곗거리로 쓰다니.’
>닉네임은몇자까 : 주인공 혼자 안 될 것 같으면 동료를 붙이든가, 아님 부하라도 붙였어야지.
>작가 : 나름대로 붙여 준다고 했는데 걔가 혼자 한다고 다 팽개치는 걸 어쩌라고.
‘뭐, 그건 틀린 말은 아니지.’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공은 솔플을 고집했다.
거기에도 이유가 있긴 했지만, 쓸 만한 동료가 될 만한 캐릭터들을 내치는 건 아쉬웠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생각해 뒀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침마다정주행 : 직접 도와주는 게 안 먹히면, 간접적으로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요?
>작가 : 호오?
작가가 관심을 가졌다.
>투럼프 : 그럴싸한데.
>fakenews : 역시 아침마다정주행 님이야!
>흑생 : 근데 주인공 마계로 넘어가면 고립무원이잖음. 거기서 간접적으로 어떻게 도움받음?
>아침마다정주행 : 마계의 인물이 도와주게 해야죠.
>투럼프 : 에이, 난 또 괜찮은 방법이라도 있나 싶었네. 개연성 박살 날 듯.
>작가 : 쉽지 않을 거 같아도 해 볼 만할 것 같은데, 임시현. 네가 도와줄래?
순간 흠칫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거지?’
>작가 : 왜 말이 없어? 도와줄 거야? 말 거야?
>아침마다정주행 : 뭐, 도와드리죠.
찜찜했지만, 작가가 채근하기에 도와준다고 해 버렸다.
‘어차피 쪽지나 메일로 전개를 상의하는 정도겠지. 그 정도쯤이야 뭐…….’
>작가 : 오, 정말? 승낙한 거다.
>아침마다정주행 : 네.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릴게요.
>작가 : 당연히 그래야지. 어차피 목숨 걸고 하게 될 테니까.
‘목숨?’
의문을 품는 순간, 시현의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시현은 작가가 말한 목숨 걸고 하게 된다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소설 속 캐릭터에 빙의되어 버린 거였다.
* * *
“크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두통에 신음이 삐져 나왔다. 이어 타는 듯한 갈증이 엄습했다.
“무, 물…….”
임시현은 손을 뻗어 더듬거렸다.
어제 분명 마시다 남긴 생수병이 있을 텐데.
그러나 딱딱한 플라스틱이 잡히기는커녕 믿기 힘들 정도로 푹신푹신한 감촉만이 느껴졌다.
‘내 이불이 원래 이랬나? 아닌데……. 설마 내 침대가 아니야?’
그걸 깨닫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이 떠졌다.
“어?”
낯선 풍경에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눈에 들어온 건 영화 속 중세 유럽의 귀족이나 쓸 법한 고풍스러운 침실.
원래 자신이 사는 고시원과는 천양지차였다. 아니, 비교하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때 슬그머니 피어오른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윽, 뭐야.”
코를 움켜잡으며 냄새의 진원지인 침대 아래를 봤던 시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게 다 술병이야? 많이도 처마셨다.’
대충 봐도 빈 술병 수십 개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또 거기서 나는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머리가 띵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렇게나 마셨으니 숙취가 안 올 수가 없지. 물은 없나? 아, 저기.’
두리번거리던 시현은 테이블 위의 주전자를 발견하고 침대 밖으로 나왔다.
주전자를 잡자마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들이켰다.
푸웃!
한 모금 마신 즉시 그대로 내뿜었다.
“악! 이것도 술이잖아!”
그것도 아주 독했다.
시현은 괴로워하며 주전자를 내팽개쳤다.
독주를 들이킨 탓인지 머리가 방망이로 두들겨 대는 것처럼 아팠다.
그러다 옆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웬 미남자가 서 있었다.
연한 잿빛에 멋대로 뻗은 머리카락.
그 아래 흑요석 같은 검은 눈.
무채색의 피부에 선이 고우면서도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
무엇보다 어디서 본 얼굴이었다.
‘아, 삽화! 마계정벌기 삽화에서 봤어. 아마 이름이 마왕 아르칸이었지? 근데 어째서 내가 이 모습이……. 설마 소설 속 캐릭터에 빙의한 거야?’
시현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꿈이라기에는 빙의되기 전 상황이 뇌리에 생생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설 쓰는 데 도와준다고 했다고, 소설 속 캐릭터에 빙의시켜 버리다니.’
터무니없는 상황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왜 하필 이 몸에 빙의시켜?’
마계에서 도움을 주기로 했으니 마왕에 빙의시킨 건 이해했다.
문제는 아르칸이 마계에서도 유명한 망나니 마왕이라는 거였다.
아르칸은 마왕성 랭킹 5위까지인 4명의 대마왕 중 바리스탄의 막내아들로, 대마왕 바리스탄에게 받은 마정석을 비어 있는 마왕성에 장착해 마왕이 됐다.
그러나 마왕이 되고 난 뒤, 아르칸은 마왕성을 키워 나가기는커녕 주야장천 술만 퍼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위에서도 이해했다.
대마왕이자 엄격한 아버지의 품에서 겨우 벗어났으니 잠깐 자유를 만끽하고 싶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한 주가 지나고.
달이 넘어가도록 아르칸이 벌인 술판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를 넘기자 당연히 아르칸의 추태는 마계 전역에 소문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같은 마왕뿐만 아니라 마족, 일개 마인에 이르기까지 아르칸을 비웃었다.
부모 잘 만난 것 하나로 마왕에 오른 주제에 아비 얼굴에 먹칠하는 망나니라고 말이다.
소문은 당연히 바리스탄에게까지 흘러갔지만, 정작 바리스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주위에서는 아르칸을 내다 버린 자식이라고 여겨 더욱 조롱했다.
그럴수록 자괴감을 느낀 아르칸의 음주는 심해졌고, 주위에 행패 부리는 일도 잦았다.
‘뭐, 속상할 만도 하긴 하지.’
마왕이라면 무력과 마력 외에도 으레 한 가지 권능을 가진다. 그러나 소설 속 아르칸은 아무런 권능이 없다고 나왔다.
심지어 절대적인 건 아니나 마력을 가늠하는 잣대인 뿔마저도 없었다.
이마나 관자놀이 어디에도 뿔 흔적도 없이 매끈했다.
혹자는 그걸 두고 바리스탄의 친자식이 아닌 것 같다고 떠들기도 했다.
‘그자는 며칠 안 되어서 숯덩이가 됐지만.’
바리스탄이 자신의 권능인 지옥불로 불태워 버린 거였다.
그 이후로 그 소문만은 입에 담는 자가 없었다.
어쨌거나 아르칸은 자신의 무능력을 비관하다 비뚤어진 덕택에 망나니가 됐다는 설정이었다.
고아인 시현이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했지만.
‘좌절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지, 술만 퍼마시다니. 얼굴이 아깝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투덜대던 시현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이제 내 몸인데, 잔소리해서 뭐 하겠어. 그보다 지금이 언제지?’
스스로 묻자 자연스레 아르칸의 기억 속에서 날짜가 떠올랐다.
다만 밤낮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신 탓인지 정확한 날짜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일단 살아 있다는 건 용사에게 죽기 전인가.’
시현이 투덜거린 건 아르칸이 망나니기도 했지만, 초반에 용사에게 살해당했기 때문도 있다.
심지어 용사는 아주 강했다.
여신의 힘에 온갖 기연까지 얻은 덕분에 그 무력은 초반부터 대마왕에 필적할 정도.
어지간한 마왕성도 단신으로 분쇄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마왕을 증오하는 만큼 보이기만 하면 막무가내로 공격한다.
소설 속 아르칸도 단칼에 몸이 반으로 갈라져서 처참하게 죽었다.
반갈죽…….
그 상황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주인공을 돕기 전에 내가 살아날 방도부터 찾아야겠네. 뭐가 좋을까?’
시현은 소설 속 내용을 떠올렸다.
다행히 지금은 소설 초반.
앞으로 일어날 일이나, 소설에 언급된 여러 가지 정보도 알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바탕으로 주인공이 대마왕들에게 죽는 결말을 피하도록 유도하고, 마신을 쓰러트리면 되는 건가?’
그리고 그걸 성공시킨다면?
이런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작가에게 어마어마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무슨 보상을 요구하지? 돈? 특수한 능력? 아니면…….’
시현은 문득 거울에 비친 아르칸의 모습을 보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차피 자신은 고아.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채 시설에서 자랐다. 커서도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도 고시원에서 사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떤가?
망나니라고 무시당하긴 해도 대마왕의 아들.
대마왕 수저를 물고 태어난 셈이다.
심지어 아르칸 자신도 무려 마왕이다.
어떻게 비교해 봐도 현실보다 이 세계가 훨씬 나았다.
‘그래, 이대로 아르칸으로 살게 해 달라고 하자.’
새 인생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게 안 되면 성공하기 전에 엎어 버려야지!’
아니면 그게 준하는 보상이라도 받을 작정이었다.
작가만 좋은 일을 해 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앞으로의 일이 기대됐다.
‘좋아! 지금부터 마왕 아르칸으로 살아 보는 거야.’
마음을 굳게 먹은 시현. 아니, 마왕 아르칸은 마왕실을 나섰다.
잠시 후.
마왕성의 상태를 확인한 아르칸은 절망했다.
“이거 왜 이렇게 개판이야!!”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