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0
10화 군주의 권능 (2)
‘드디어 권능을 써 볼 수 있겠네.’
아르칸의 기대를 읽은 듯 게티아에 새로운 글이 써졌다.
[군주의 권능을 사용해 오웬을 신하로 임명하시겠습니까?]계약자인 아르칸의 능력까지 읽어 내 쓸 수 있도록 선택지를 만든 거였다.
“이러면 편하지. 잘했어.”
“크르릉, 크릉.”
아르칸이 칭찬하면서 쓰다듬자 게티아가 우쭐대면서 가르릉거렸다.
‘그나저나 조건만 달성하면 마음대로 신하로 삼을 수 있나 보네.’
아르칸은 오웬을 슬쩍 쳐다봤다.
‘그래도 오웬에게는 신하가 될 건지 한번 물어봐야겠군.’
그간 아르칸의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만큼 배려해 주고 싶었다.
“오웬.”
“네, 아르칸 님.”
오웬은 똑바로 서서 지시를 기다렸다.
처음 봤을 때 보였던, 아르칸을 한심하게 여기고 의심하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르칸도 거기에 맞춰 최대한 진지하게 말했다.
“게티아가 내게도 권능이 있다 알려 주더군.”
“궈, 권능! 정말입니까?”
“그래.”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깜짝 놀랐던 오웬은 이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경사스러운 일입니다만, 당분간은 비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인들도 마법을 권능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니까요.”
유명한 마왕은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 마왕은 자신의 권능을 가능한 한 숨기려 했다.
그래야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결정적인 한 수로 써먹을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비밀로 하고 있었다.”
“아! 잘하셨습니다.”
오웬은 바로 깨달았다.
아르칸 님이 게티아를 얻은 것도 벌써 일주일가량. 그걸로 자신의 상태를 파악했으니 아르칸 님의 능력도 당연히 확인한 지 오래라고 봐야 했다.
“그래도 그대에게는 알려 주고자 한다.”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오웬이 결연한 표정으로 다짐했다.
아르칸이 믿는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내 권능은 군주의 권능이다.”
“군주의 권능입니까…….”
오웬이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무슨 능력인지 알기 어려운 탓이었다.
“신하를 임명하면 그 신하의 마력으로 내 마력도 강해진다더군. 권능의 힘으로 신하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단순히 군신 관계를 맺은 것 정도로는 권능에서 일컫는 신하가 되진 않는 모양이군요.”
마왕이 된 아르칸을 모신 지 제법 됐지만, 권능의 영향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하는 말이었다.
“그래. 충성도가 높아야 신하로 임명할 수 있거든. 지금 보니까 되던데, 임명하기 전에 네 뜻이 어떤지 물어보려고. 그간 속 많이 썩였으니 질렸을 수도 있잖아.”
“…….”
잠깐 고민하던 오웬이 입을 열었다.
“그건 제 뜻을 물을 일이 아닙니다.”
“……?”
“지금껏 아르칸 님의 권능이 발현하지 못했다는 건, 제 충성심이 부족했던 탓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스스로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망나니한테 맹목적인 충성심을 가지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제 신하로 임명할 수 있다고 의향을 물으시는 건, 그만큼 충성심이 높아졌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지.”
“그러니 물으실 필요도, 허락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마음껏 권능을 발휘하십시오.”
“그래, 네 말이 옳다.”
오웬의 충심 어린 말에 감동한 아르칸은 그에 부응하기 위해 바로 권능을 발휘했다.
“오웬을 신하로 임명한다.”
그러자 오웬으로부터 미세한 마력이 흘러나오더니 아르칸에게 흡수됐다.
동시에 게티아에 새로운 글자가 쓰였다.
[오웬이 새로운 신하로 임명됐습니다.]“됐다.”
“음? 별로 달라진 건 없는 듯합니다만.”
“그래? 나는 좀 달라진 것 같군. 내 몸 안에 마력이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지금까지는 마력의 존재만 간신히 인식하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미약하나마 마력의 흐름이 감지됐다.
다만, 권능 레벨은 아직 0이었다.
‘아마 오웬의 마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라서 그렇겠지.’
“허, 마력 말입니까? 아르칸 님, 감축드립니다.”
“고맙다. 그래도 아직 뿔은 안 났지?”
물어보며 이마를 만져 보니 아직 평평했다.
“네, 그래도 곧 나실 겁니다.”
“응.”
이대로 신하를 차근차근 늘려 가면 마력이 계속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마력의 상징인 뿔도 나고 점점 커질 게 분명했다.
사실 물어본 건 뿔이 크게 나기 전에 할 일이 있어서였다.
“그나저나 하인들더러 계속 싸우게 할 수는 없으니 경비병부터 어떻게 해야겠는걸.”
“네, 그러려면 그들을 통솔할 경비대장부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경비대장이라, 안 그래도 고블린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그 이야기를 했었지.”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웬이 드물게 아르칸의 눈치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
“그 경비대장 말입니다만, 센시아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센시아, 아. 그런 캐릭터가 있었지.’
아르칸은 기억을 더듬어 센시아에 대해 떠올렸다.
센시아는 얼마 전까지 아르칸 마왕성의 경비대장이었던 마족.
아르칸과 자주 다툴 정도로 사이가 나쁜 데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제 발로 나가 버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오웬이 추천하면서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경비대장이 탈주하다니 평소라면 무책임하다고 비난했을 테지만, 빙의되기 전 자신이 한 짓을 아는 아르칸은 이해했다.
무엇보다 센시아의 최후도 알기에 가능한 한 부하로 부리고 싶은 인재 중 하나였다.
‘문제는 센시아가 돌아올 마음이 있냐는 거겠지만. 오웬이 부르면 돌아오려나? 돌아온다면 무조건 받아들여야지.’
“사이가 나쁘신 건 압니다만, 기회를 한 번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지 뭐. 센시아를 불러 줘.”
“저, 정말입니까?”
아르칸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권유하던 오웬이 도리어 놀라서 되물었다.
“왜 그리 놀라. 그보다 둘이 연락은 하고 있었나?”
“아, 가끔 서신을 주고받는 정도입니다만, 제가 서신을 보내면 올 겁니다.”
그렇게 말한 오웬은 당장이라도 서신을 쓰러 달려갈 것 같았다.
“서신은 무슨, 마왕성 밖으로 나가서 한번 불러 봐.”
“네? 그게 무슨 소리…….”
“부르면 나올 거야.”
“허허, 아르칸 님이 이제 농담도 다 하시는군요.”
웃고 넘기려고 하는 오웬에게 아르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진담인데?”
“……?”
* * *
그 시각 아르칸 마왕성 입구를 주시하는 한 인영이 있었다.
2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체구와 거기에 걸맞은 두꺼운 뿔이 이마에 난 마인족 여인, 센시아였다.
복잡한 눈빛으로 마왕성 입구를 쳐다보는 센시아의 곁에 부관인 트릴이 조용히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대장, 복귀했습니다.”
“고생했다.”
“포그밀 상단은 대마왕 제니칼 파벌의 영역 쪽으로 향했습니다. 아무래도 그쪽 파벌을 끌어들일 셈 같습니다.”
“낭패로군.”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알아 둬야 할 거 같아서 부하들에게 좀 더 추격하라고 해 뒀습니다.”
“잘했다.”
센시아가 무뚝뚝한 얼굴로 트릴의 어깨를 두드렸다.
트릴도 체격이 큰 편이었지만, 센시아는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그보다 마왕성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제 괜찮다.”
“다른 침입자가 더 오진 않았나 봅니다. 다행이네요.”
헬하운드가 마왕성 입구를 공격하고 있다는 경계병의 보고에 허겁지겁 달려왔다.
도착하니 이미 마왕성 입구는 뚫린 데다 헬하운드뿐만이 아니라, 고블린 라이더에 고블린까지 다수 들어갔다고 했다.
이번에야말로 마왕성이 끝장난 줄 알았다.
뒤늦게 쫓아 들어가려고 했는데, 도리어 오웬 님이 멀쩡히 나오는 게 아닌가?
어찌 됐든 마왕성은 무사한 모양.
그 후 몬스터 유도석을 설치했다던 포그밀 상단이 도망치자, 트릴에게 추격하라고 지시했다.
추가로 몬스터가 공격해 올까 걱정된 센시아는 이곳에 남아 주변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근데 어떻게 막아 낸 걸까요? 싸울 수 있는 건 오웬 님 정도뿐인데, 정작 그 오웬 님은 몸도 성치 않으시잖아요.”
“몰라. 돌아가자.”
무뚝뚝한 얼굴로 지시를 내린 센시아는 몸을 휙 돌렸다.
트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왕성이 공격받는다는 말에 큰일 났다고 제일 먼저 달려온 게 센시아였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다시 마왕성에 들어가든가.’
트릴도 망나니 마왕이 못마땅하긴 했다.
그러나 미련이 남아 이 주위를 맴돌며 떠돌이 용병 생활을 할 바에는 차라리 복귀하는 게 나았다.
투덜거리며 마왕성 입구를 보던 트릴이 변화를 감지했다.
“어? 대장, 오웬 님이 또 나오셨는데요?”
“뭐?”
센시아가 고래를 획 돌렸다.
정말로 오웬이 마왕성 입구가 앞에 있었다.
“무슨 일이시지?”
“글쎄요.”
의아해하며 쳐다보는데, 오웬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센시아!”
“……!”
놀란 센시아와 트릴이 서로 마주 봤다.
그러는 사이 오웬의 외침은 계속됐다.
“센시아! 여기 있는가?”
“…….”
“센시아! 있으면 나오게!”
그 모습에 트릴이 감탄했다.
“역시 오웬 님이시군요. 최대한 은밀히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지켜보고 있던 걸 알고 계셨나 봅니다. 하긴 오웬 님 정도 고수라면 당연한 일인가.”
“그보다 왜 날 부르지?”
“글쎄요, 가 봐야 알겠죠. 어떡하실 겁니까? 저렇게 계속 부르실 거 같은데.”
“……갔다 오겠다.”
센시아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대꾸하고는 수풀 밖으로 나왔다.
“나왔습니다.”
“……정말 마왕성을 지켜보고 있었나.”
“네.”
센시아의 단답에 뒤따라 나온 트릴이 추가로 설명했다.
“센시아 님이 마왕성이 걱정된다고 지켜보자고 하지 뭡니까.”
“트릴!”
“거짓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보다 마왕성에 침입한 몬스터들은 오웬 님이 해치우신 겁니까?”
“반 정도는. 최근 몸이 좀 괜찮아졌거든.”
‘반? 그럼 나머지는?’
센시아의 머릿속에 잠깐 의문이 스쳤다.
“오, 몸이 괜찮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무사한 것도 다행이고요. 그런데 무슨 일로 센시아 님을 찾으셨습니까?”
“아, 그렇지. ……아르칸 님이 부르시는데 잠깐 가서 이야기하지 않겠는가?”
“네? 그 망나니 마왕이 부른다고요??”
트릴이 놀라자 오웬이 정색하며 꾸짖는 게 아닌가?
“어허, 말을 조심하게!”
“……!”
트릴은 당황했다.
‘지금까지 망나니 마왕이라 불렀어도 못 들은 척만 하셨지 화내신 적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마왕님 앞이 아니라도 그런 언행은 용납 못 하네.”
“……죄송합니다.”
오웬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라 트릴은 즉시 사과했다.
오웬은 더 나무라지 않고, 잠자코 있던 센시아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떡할 텐가? 아르칸 마왕님의 부름에는 응하기 싫은가?”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그래야지. 따라 들어오게.”
“…….”
오웬은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고 앞장섰다. 센시아는 그 뒤를 말없이 따랐다.
트릴은 지휘를 위해 남았지만, 궁금하긴 했다.
‘대체 무슨 일로 부르는 거지?’
* * *
아르칸이 마정석 앞에 앉아 있는데, 오웬과 센시아가 통제실로 들어왔다.
‘역시 있었군.’
“아르칸 님, 분부대로 데려왔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한편 센시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나저나 이제 어쩐다?’
아르칸도 센시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아무래도 소설에서 비중이 작은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건 마왕 아르칸이 용사에게 살해당한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센시아도 용사에게 죽어 버렸다는 것.
그런데 이 이유가 기가 막혔다.
센시아가 먼저 마왕 아르칸의 복수를 하겠다며 용사에게 덤빈 거였다.
아르칸과 심하게 다투고 마왕성을 뛰쳐나갔는데도 복수를 하겠다니,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혹시 아르칸에게 마음이라도 있나?’
다만,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 봐도 그럴 만해 보이진 않는다.
소꿉친구는커녕 마왕이 되고 경비대장으로 처음 만났으니까. 심지어 보자마자 거인의 혼혈이라 유난히 큰 센시아를 귀엽다고 놀리기까지 했다.
‘그때 엄청나게 충격받은 표정이었지.’
빙의 전 아르칸의 기억임에도 그 표정이 생생했다.
다행히 그 일은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는데, 막상 마왕성에 와서는 사사건건 부딪치기만 했다.
빙의 전에 딱히 연애해 본 건 아니지만, 호감 가질 만한 부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얼굴 때문인가?’
확실히 아르칸은 남자인 자신이 봐도 조각 같은 아름다운 얼굴. 거기에 꽂혔을 가능성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긴 하지.’
아르칸의 망나니짓 때문에 틀어진 사이를 되돌리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 그리고 재발 방지를 약속할 필요가 있었다.
그 첫 단계로 아르칸은 센시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센시아, 미안하다. 내가 다 잘못했어.”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