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정글 속에 숨겨진 마왕성 (5)
아르칸이 엘로라 마왕성을 나오자마자 정령들이 접촉해 오기 시작했다.
마계에는 정령의 힘이 저하되기에 실체를 이룰 정도의 정령들은 마계에 잘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정령 친화력이 8성쯤 되니까 몇 안 되는 정령들도 모인 거였다.
약해진 만큼 전투에는 못 써도 쓸 곳은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처럼 바람의 정령이 소리를 옮겨 주는 거였다.
그것도 아르칸이 요청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르칸이 언급됐다고 달려와서 알려 줬다.
“고마워.”
아르칸이 허공을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바람의 정령 몸을 부르르 떨며 기뻐해서 날아다녔다.
‘칭찬만으로 저렇게 기뻐하다니, 과연 정령 친화력 8성!’
인간계로 나가서 다른 정령들을 만날 때가 기대됐다.
하지만 당장은 아르칸 마왕성으로 돌아가는 게 먼저였다.
아직 정령을 다룰 수 있다는 걸 밝히지 않은 아르칸은 선두에 선 나미라에게 넌지시 말했다.
“저 한참 앞쪽을 정찰해 봐.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낌새요?”
“아르칸 님의 직감은 예리하시니 한번 잘 살펴보는 게 좋을 겁니다.”
나미라가 의아해하자 오웬이 거들어 줬다.
그러자 나미라도 군말 않고 주변의 마수와 동물들에게 정찰을 부탁했다.
성장의 샘물에 들어가 그 효과로 마심장이 5성이 된 것도 좋았지만, 권능이 유혹으로 바뀌자 전처럼 식량을 주거나 해서 길들일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미소 지으며 부탁만 하면 됐다.
잠시 후.
새들과 소동물이 와서 나미라에게 주변 상황에 대해서 조잘조잘 떠들어 댔다.
“악! 시끄러워.”
미소 지으며 듣고 있던 나미라가 짜증 내자 새들과 소동물이 움찔했다.
그제야 놀란 나미라가 다시 실실 웃으며 달랬다.
“정신없어서 그런데, 조금만 조용히 차례대로 말해 줄래?”
그렇게 이야기를 듣던 나미라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칸 님, 저 앞에 적들이 잔뜩 있는 거 같아요. 넓게 펼쳐서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우리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듯한데요.”
“그래? 적의 전력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어?”
“마왕이 둘에 마족들만 수십에 달한다는데요. 사자 수인족이 있다는데, 그자가 대장 같다네요.”
“사자 수인족이라면 아마도 레오녹스일 겁니다.”
“레오녹스?”
오웬이 아는 체했지만, 아르칸은 딱히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레오녹스는 대마왕 제니칼 님의 심복 중 하나예요.”
나미라의 말대로라면 오웬 정도의 포지션인 모양.
그 말을 들은 아르칸이 의아해했다.
“그런데 왜 다들 걱정해? 박살 내면 되지.”
현재 아르칸 원정대의 전력은 대마왕 제니칼의 영역으로 넘어올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화됐다.
나미라는 4성에서 5성으로.
볼가는 무려 4성에서 6성으로 올랐다.
오웬은 성장의 샘물 효과를 못 봤지만, 5.5성급의 인공 마심장을 이식한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비장의 카드도 하나 있으니까.’
수적으로 밀린다고 해도 전혀 걱정할 일이 없었다.
다들 그제야 깨달았는지 한결 여유로운 표정이 됐다.
그걸 본 아르칸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 보자고.”
***
‘준비는 완벽해.’
레오녹스가 주변을 살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모두 나무와 바위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목표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표물은 바로 마왕 아르칸.
참고로 기다리고 있는 건 부하들만이 아니었다.
인근에 자신의 입김이 미치는 마왕 둘을 끌어들였다.
바로 87위인 흑표범 수인족인 페리디아와 호랑이 수인족 83위 카사이였다.
둘 다 89위가 된 아르칸보다 상위 랭킹이었다.
공을 나누게 될지도 모르지만, 굳이 다른 마왕을 부른 건 여기서 아르칸을 놓치면 끝장이어서였다.
그보다 상위 랭킹의 마왕이 도와주겠다고도 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자신보다 높은 급을 불렀다가는 그건 공을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빼앗겨 버릴 테니까.
어쨌든 두 마왕군은 만에 하나 아르칸이 다른 곳으로 향할 걸 대비해 포위망을 넓게 펼친 채였다.
다만, 두 마왕과 휘하의 마족들은 이곳에서 도와주기로 했다.
레오녹스가 부하에게 물었다.
“아르칸의 현재 움직임은?”
“별다른 위장 없이 그냥 오는 중입니다.”
그 말에 마왕 페리디아와 마왕 카사이가 실실 웃었다.
“방심하고 있는 건가?”
“잘됐군. 도망치면 귀찮은데 말이지.”
그런 둘에게 레오녹스가 주의를 환기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르칸은 죽이지 않도록 조심해 다오. 단, 팔다리 하나둘 정도 부러트리는 건 괜찮아.”
“알았다니까.”
“그래, 몇 번을 말하는 거야?”
“바리스탄도 성격 더러운 거로 유명하잖아. 우리 마왕들만 돌려받으면 되니까 좋게 좋게 가자는 거지.”
레오녹스가 달래는데, 부하가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저기 마왕 아르칸이 오는 게 보입니다.”
아직 수백 미터는 떨어져 있었지만, 확실히 보고받은 대로 네 명이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레오녹스가 마왕들에게 다시 한번 설명했다.
“제일 앞에 있는 여우 수인족이 제니칼 님을 배신한 마왕 나미라다.”
“어차피 랭킹에도 못 든 하급이라며. 별문제 안 되겠네.”
“그 뒤의 백호 수인족은 제법 강해 보이는데.”
귀찮아하는 페리디아와 달리 카사이가 흥미를 보였다.
“저 녀석은 이름은 모르지만, 분명 제니칼 님을 습격했다는 녀석이 분명하다.”
“아, 들었지. 근데 생채기조차 못 냈다면서?”
“그래? 실망이로군. 그나저나 아르칸과 같이 있다니, 혹시 그 습격도 아르칸이 사주한 걸지도…….”
“그건 잡아 보면 알겠지. 아마 잡아가면 제니칼 님이 기뻐하실지도 모르겠군.”
레오녹스는 말하다 보니 문득 볼가도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처럼 느껴졌다.
그때 페리디아가 세 번째 인물을 가리켰다.
“저 노인은 누구야?”
“그러게. 뿔도 없는데, 하인으로 데리고 다니는 건가.”
“흐흐, 저 노인? 바리스탄의 검 오웬이다. 마심장을 다쳐서 저 꼴이지.”
“그래? 저 망나니 마왕은 볼 것도 없겠고, 용케 저 둘만 믿고 이곳을 다녔나 보군.”
“일이 쉽게 끝나겠어.”
두 마왕의 말에 레오녹스는 살짝 후회했다.
‘정말이네. 이 녀석들 없어도 됐을 거 같은데.’
그때 흑표범 수인족 마왕 페리디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럼 내가 먼저 공격하지.”
그 말과 동시에 페리디아의 주위로 흑표범 수인족 여덟이 나타났다.
“어느 틈에……. 역시 마계의 암살자답군.”
레오녹스가 감탄했다.
흑표범 수인족이 모두 그림자 속에 은밀히 숨어 있던 거였다.
흑표범 수인족은 절대 침묵을 지키며 은밀히 접근해 상대를 제거하는 암살자들로 유명했다.
‘근데 대놓고 가다니, 숨어서 기습할 필요도 없다는 건가?’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아르칸 측의 반응이었다.
페리디아와 그 부하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뒤에 자신을 비롯해 수많은 병력이 포위하고 있는데도 별로 당황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나미라가 혼자서 앞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혼자서 페리디아와 그 부하들을 상대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흥. 무슨 용기인지 모르지만, 그게 만용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마.”
페리디아가 분해하면서 부하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일제히 덮치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부하들이 덤비기는커녕 갑자기 드러눕는 게 아닌가? 심지어 개처럼 배를 까고 꼬리를 흔들었다.
나미라는 그런 부하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
“어머, 다들 너무 말을 잘 듣네. 착한 아이들이구나.”
“뭐, 뭐야.”
페리디아는 충격적인 장면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갑자기 저런 추태를 부리다니.
페리디아는 주먹을 꽉 쥐며 소리쳤다.
“대체 내 부하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이라니? 다들 나를 보고 한눈에 반한 것뿐인데.”
그렇게 말한 나미라는 눈을 크게 뜨며 페리디아를 바라봤다.
페리디아는 그 커다란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도 내가 사랑스럽지 않아? 목숨까지 바치고 싶을 정도로?”
가당치도 않은 물음이었지만.
순간 ‘네.’라고 대답할 뻔했다.
페리디아는 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저항하는 데 성공했다.
“나한테 그런 장난은 안 통한다.”
“그래? 비슷한 급에는 안 통하나 보네.”
“내가 너 따위랑 비슷하다고?”
모욕을 느낀 페리디아는 권능을 발휘했다.
순간 이동의 권능으로 순식간에 나미라의 지척에 나타난 페리디아는 그대로, 나미라의 목을 움켜쥐려고 했다.
“꺄악, 살려 줘!”
간신히 피한 나미라가 비명을 질렀다.
그걸 본 볼가가 웃으며 말했다.
“괜히 약한 척하지 말라고. 재미없으니까.”
하지만 볼가도 더 웃고 있을 수가 없었다.
호랑이 수인족 마왕 카사이가 그 틈을 노리고 볼가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치사하게 갑자기 덤비기냐, 재미없게.”
“전투 중에 방심하는 놈이 잘못이지.”
그렇게 외치며 신나게 볼가를 공격하던 카사이는 잠시 후, 난입한 걸 후회했다.
‘이 자식, 왜 이렇게 강해? 마왕인 나보다도 더 강한 거 같잖아.’
분명 자신보다 아래인 것 같았는데, 막상 몸을 맞대고 보니 확연히 강했다.
‘그렇다는 건 이 녀석 마심장이 6성급이라는 소리야?’
믿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당장은 막아 내는 것조차 급급했으니까.
‘하는 수 없지.’
권능을 발휘해 신체를 강화하고서야 조금 살 만했지만, 여전히 패배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믿을 건 레오녹스뿐이었다.
“젠장! 어서 아르칸을 잡아. 그 녀석만 잡으면 다 끝나잖아!”
레오녹스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훗. 다행히 이 내가 승패를 결정짓게 되는군.”
카사이가 밀리는 걸 보면서도 레오녹스는 자신만만하게 아르칸에게 다가갔다.
예상대로 오웬이 나와 가로막았다.
“오웬, 성치 않은 몸으로 내 앞을 가로막다니, 충성심이 갸륵하군.”
“레오녹스, 아직 소식을 못 들었나 보군. 지금은 회복했네.”
“그래? 그러면 마음 놓고 싸울 수 있겠군. 안 그래도 실력을 겨뤄 보고 싶었거든.”
레오녹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부하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자기가 싸우는 동안 아르칸을 붙잡으라는 신호였다.
자신이 오웬이 싸우는 것과 별개로 다른 마왕들이 못 버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아르칸만 잡으면 끝난다.’
레오녹스는 오웬의 주의를 끌기 위해 손바닥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먼저 덤벼.”
“사양하지 않겠네.”
오웬이 달려오면서 검을 휘둘렀다. 레오녹스는 이 정도면 충분히 피할 간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웬의 검에서 예리한 마기가 뻗어 나왔다.
마력검을 쓴 거였다.
마력검은 레오녹스의 이마를 아주 미세하게 베고 지나갔다. 벤 자국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렀다.
레오녹스는 전신의 털이 곤두선 것 같았다.
뿔을 봐서는 다쳤다가 제대로 회복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이 정도 공격을 펼치다니.
‘이 정도로 강했었나?’
솔직한 심정으로는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단 한 수로 느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부하들이 아르칸을 잡길 기대하는 수밖에.’
카사이는 레오녹스가 선전하기를.
레오녹스는 부하들이 선전하기를 기대했지만.
그 기대도 금방 무너졌다.
아르칸이 레오녹스의 부하 마족들이 덤벼드는 걸 보며, 용아병들을 소환한 거였다.
용아병들마저 마족들을 압도했다.
“이, 이럴 수가.”
레오녹스는 자신이 준비한 것들이 모두 실패하자 절망에 빠졌다.
그때, 머리 위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쯔쯧, 역시 이럴 줄 알았지. 그러기에 내 도움을 받지 그랬나.”
“앗! 아스트리아 님!”
위를 올려다본 레오녹스가 기뻐서 소리쳤다.
독수리 수인족 마왕 아스트리아가 나타난 거였다.
아스트리아의 마력은 6성급을 넘어서 7성급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었다.
마왕성 랭킹 순위도 무려 49위.
실제로는 그 이상도 노릴 수 있다고 세간에서는 떠들 정도였다.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할 구세주가 나타난 거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최악의 상황은 면했어.’
레오녹스가 안도하는 순간.
아스트리아 위로 더 짙고 큰 그림자가 생겼다.
“음? 뭐지?”
아스트리아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드는 순간.
웬 블랙 드래곤이 아스트리아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덥석.
아르칸 일행을 제외한 모두가 그 충격적인 광경에 입을 떡 하고 벌렸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