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괜찮아? 나 마왕인데? (1)
‘이번에는 무슨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아르칸은 고민했다.
아무리 꼭 필요한 일이었고, 나갔다 올 때마다 얻은 게 많다고 해도 외유가 너무 잦았다.
이 마왕성의 주인인 만큼 마음대로 굴어도 되겠지만, 그래서야 부하들의 신임을 잃고 다시 망나니짓할 때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고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적어도 자신이 부재중일 때 마왕성을 운영하는 오웬은 납득시키긴 해야 했다.
‘저번에는 오웬에게 인공 마심장을 이식할 기술자를 데리고 온다고 했었지.’
그 기술자가 바로 드워프 브롬이었다.
이식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드워프 왕국으로 데려다준다고 해도 되긴 했다.
다만, 그러기에는 브롬이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뜻밖에도 길리암과 의기투합하더니 여러 연구를 같이 진행 중이었다.
언젠가는 돌아가겠지만, 조금이라도 두고 일을 시키는 게 좋았다.
다만 용사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봐서는 그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엘프를 구하러 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고.’
안 그래도 의심을 피해야 할 상황에 무슨 짓이냐고 오웬이 화낼 게 분명했다.
‘엘프를 구해 주면 얻을 게 있다고 말해야 할 텐데……. 아!’
아르칸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정신없는 와중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서 잠깐 잊고 있던 아이디어였다.
‘이거 잘만 하면 마계에서도 정령술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자신감을 얻은 아르칸은 곧바로 오웬을 찾아갔다.
한창 서류를 작성 중이었던 오웬은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 있었다.
“일이 많아 보이네. 고생이 많아.”
“마왕성 규모가 커지다 보니 전보다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져서요. 그래도 아직은 할 만합니다.”
“사람을 좀 쓰지 그래? 앞으로는 전장에서 활약해야지.”
인공 마심장을 이식받은 오웬의 마력은 현재 5.5성. 하급 마왕들은 쓰러트리고도 남을 정도로 강했다.
집사로서 마왕성에만 머물게 하기에는 아까웠다.
“그러려면 제 일을 대신할 집사부터 구해야죠.”
“그건 그렇지. 혹시 생각해 둔 인재가 있어?”
“있긴 합니다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보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만.”
“불길한 예감이라니…… 잠깐 볼일이 있어 나갔다 올 거야.”
“또 말입니까?”
“필요한 일이야. 내가 자주 나가긴 해도 어디 놀러 다니는 건 아니잖아.”
그 말에 오웬도 납득했는지 펜을 내려놓고 물었다.
“그건 그렇지요.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엘프 마을에 다녀올 거야.”
정확히는 멜스크 후작에게 가는 거지만, 거기 있는 엘프들을 구해 엘프 마을에 데려다줄 테니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예상했던 대로 오웬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르칸 님! 대체 왜 그러십니까? 분명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비밀은 지킬 거야.”
“하지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엘프 마을에 가는 건 확실한 이유가 있으니까. 세계수의 씨앗 알지? 블랙마켓에서 사 온 거.”
“아!”
오웬은 그제야 아르칸이 무슨 이유로 엘프 마을에 가려고 하는지 깨달았다.
아르칸은 이 기회에 세계수를 마왕성에 심을 생각이었다.
마왕성에 세계수를 심으면 여러 가지 이점이 많았다.
마왕성 자체의 방어력도 높아질 뿐만 아니라 세계수를 이용한 독특한 함정도 사용 가능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수를 심으면 정령도 모일 거야. 그러면 내 능력도 쓸 수 있겠지.”
“정령술을 쓰시려고요?”
“만에 하나 마왕성에서 위기를 맞이했을 때 쓸 비장의 카드랄까?”
“음.”
그 말에 오웬은 입을 다물었다.
마왕성 랭킹에 오르면서 상대해야 하는 다른 마왕들도 강해진 데다, 당장 대마왕 제니칼과 대립하는 상황.
대마왕 바리스탄이 계속해서 지켜 줄 수도 없으니 비장의 카드가 하나쯤은 필요하긴 했다.
그리고 그 세계수를 제대로 빠르게 키우려면 엘프가 필요했다.
“그 세계수를 키울 엘프가 필요해서 엘프 마을까지 가시려고요? 돈도 많으신데 차라리 엘프 노예를 사시는 게…….”
“엘프 노예는 돈이 있다고 해도 구하기 어렵잖아. 블랙마켓에서도 못 봤는데. 그리고 전에 들었지? 인간족 성에서 마정석 가져올 때, 엘프도 구했잖아.”
“아, 그래서 엘프 마을로 가시려는 거군요.”
“그래. 그때 은혜를 갚는다고 했으니까, 세계수를 심는 것도 도와줄 거야. 다만, 전에 여행하다가 잡혀서 노예로 팔려 갈 뻔한 만큼 그냥 내가 얼른 가서 데리고 오려고.”
“흐음. 그게 낫긴 하겠네요.”
“피용을 타고 가면 금방 갔다 올 거야. 길어야 2~3일?”
“아, 확실히 피용을 타면 금방이겠군요.”
드래곤으로 성장한 피용은 그 비행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아직 시험해 본 적은 없지만, 피용의 말로는 하루면 대륙을 주파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아르칸은 오웬이 거의 다 넘어온 건 같아 보이자 쐐기를 박았다.
“무엇보다 오웬이 있으니까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다녀올 수도 있는 거고.”
그 말에 오웬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시선을 돌린 오웬은 뺨을 긁으며 대꾸했다.
“그렇게까지 말하시면 더 말리지는 못하겠군요.”
“그럼 됐지?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그렇게 말한 아르칸은 얼른 준비를 마치고 마왕성을 떠났다.
***
아르칸이 떠난 직후.
마왕성 랭킹을 통보하는 그레이드 워커, 데실론이 아르칸 마왕성에 나타났다.
‘이렇게 자주 오게 될 줄이야. 마력 수급이 정말 빠르군.’
거기다가 랭킹에서 빠진 상위권 마왕 때문에 순위가 대폭 상승했다.
89위였던 게 78위가 됐다.
무려 11위 상승.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이 순위도 금방 바뀔 가능성이 컸다.
이건 어디까지나 마왕성 내의 마력을 기준으로 한 거였으니까.
‘이 추세라면 어쩌면 새로운 대마왕성이 탄생할지도 모르겠군.’
데실론으로서는 즐거운 일이었다.
마왕끼리 경쟁을 시켜 강력한 마왕이 탄생하는 건 데실론이 모시는 마신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었으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마왕성 방문을 알린 데실론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마중 나온 게 마왕인 아르칸이 아니라, 오웬이었기 때문이다.
오웬은 굉장히 난감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현재 아르칸 님께서는 출타 중이십니다.”
“또?”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저번에도 한 번 허탕을 쳤는데, 또 허탕을 치다니.
데실론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차라리 랭킹 갱신 날짜를 정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네.’
***
“야호!”
아르칸이 탄성을 내질렀다.
현재 아르칸은 빠르게 다녀오기 위해 말 그대로 날아가고 있었다.
바로 드래곤이 된 피용의 위에 탄 거였다.
‘내가 드래곤을 타고 날다니!’
그것도 어찌나 빠른지 전투기를 탄 기분이었다.
“피피! 나도 신나!”
피용도 기쁘게 울었다.
덩치가 커진 탓에 아빠의 어깨 위에 올라가지는 못하지만, 아빠를 태우고 함께 하늘을 나는 게 즐겁다고 했다.
‘그래도 어떻게 폴리모프 마법을 배우긴 해야 할 텐데 말이지.’
폴리모프는 이 세계에서는 드래곤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마법이라, 마법서로도 잘 남아 있지 않다고 들었다.
드래곤들도 부모가 자식에게 전수해 준다고 했는데, 피용의 부모인 마룡 크세트카흐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다행히 이 세계에는 살아 있는 드래곤이 아직 있긴 했다.
‘가능하면 엮이기 싫지만……. 그래도 피용을 위해서라면 하는 수 없지.’
당장은 엘프를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르칸은 지도를 펼쳐서 주변 지형을 확인했다.
‘이대로라면 금방 도착하겠는데.’
멜스크 후작의 성은 남동부 지방 끝.
직선 거리상으로는 대륙의 절반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빠르게 달려도 열흘은 걸릴 정도의 거리.
그런데 이 속도라면 피용이 처음 장담한 것처럼 하루 만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어 보였다.
‘차라리 일찍 알았으면 드워프 왕국에 갔을 때 구출했을 텐데.’
드워프 왕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멜스크 후작의 영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멜스크 후작은 엘프왕의 후예를 자처하는 만큼 드워프들에게 아주 적대적으로 굴었다.
그리고 멜스크 후작의 영지에서 조금 떨어진 북쪽 숲에는 심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세계수와 그를 둘러싼 엘프 마을이 있었다.
“그래도 엘프 마을까지는 멀지 않아서 다행…… 으악!”
빠르게 날던 피용이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아르칸은 튕겨 나갈 뻔했다. 안장이 없었으면 추락하고 남았을 상황이었다.
물론 지금의 아르칸이라면 추락한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깜짝 놀라긴 했다.
“피용아, 무슨 일이야?”
“이상한 것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이상한 것들?”
피용의 말에 눈을 끔벅거리면서 보니 바람의 정령이었다.
“기분 나빠. 그냥 힘으로 뚫고 갈게.”
“아, 잠시만. 이거 정령이야.”
“정령?”
피용은 아무래도 안 보이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보이십니까? 역시 정령술사이시군요.”
‘정령술사? 아직 정령술을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는데……’
아마 정령 친화력이 높은 걸 보고 정령술사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저는 바람의 정령 제피로스라고 합니다. 부탁이 하나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을 들어주시면 당신과 계약하겠습니다.”
정령은 정령왕 밑으로 상중하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피로스라면 중급 정령이었다.
말이 중급이지, 전력을 발휘하면 어지간한 마왕에 견줄 정도는 됐다.
게다가 이런 자아와 실체를 가진 정령과 계약한다는 건 아주 희귀한 일이었다.
엘프들도 정령과 계약해서 부리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부탁하는 거였으니까.
‘그래도 어지간하면 부탁은 다 들어주니까 크게 차이는 없나?’
아르칸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계약까지 해 준다고 그래?”
“멜스크 후작에게 사로잡힌 엘프들을 구해 주십시오.”
“앗, 아빠?”
“쉿, 조용히 좀.”
피용이 깜짝 놀라 부르는 걸 아르칸이 얼른 막았다.
마침 멜스크 후작에게서 엘프들을 구하러 가는데, 또 멜스크 후작에게서 엘프들을 구해 달라는 정령이 나타난 거였다.
만약 아르칸이 이미 구하러 간다는 걸 알면 계약은 없던 일로 할지도 몰랐다.
“아빠?”
정작 제피로스는 블랙 드래곤이 정령술사더러 아빠라고 부르는 데 혼란을 느꼈다.
정령술사가 처음부터 블랙 드래곤이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이긴 했는데, 오랫동안 도움을 청할 이를 찾던 제피로스의 처지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블랙 드래곤이 아빠라니.’
제피로스는 이해가 안 됐지만, 정중하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 드래곤이십니까?”
“어? 아닌데. 입양아라고 할까.”
아르칸은 솔직히 말했다.
어차피 피용도 외형 때문에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깨달은 지 오래였다.
‘그러고 보니 애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할 뻔했네.’
아르칸은 제피로스에게 솔직하게 밝혔다.
“사실 나도 엘프를 구하러 가는 길이야.”
“어, 정말입니까?”
“그래, 용사에게 부탁받았거든.”
“오옷, 그렇습니까.”
제피로스는 기뻐했다.
블랙 드래곤을 입양하고 용사로부터 부탁을 받을 정도라면 그 실력이 뛰어나다고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바로 계약을 맺지요.”
“어, 그래도 돼? 엘프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용사의 부탁으로 구하러 가실 거라면서요. 이미 구하신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계약하는 편이 더 구하는 데 수월할 겁니다.”
그 말대로긴 했다.
‘이게 솔직히 말해서 보답을 받는다는 건가?’
하지만 계약 전에 한 가지 더 밝힐 사실이 있었다.
“괜찮아? 나 마왕인데?”
“괜찮습니다. 네? 뭐라고요?”
놀란 제피로스가 있지도 않은 귀를 의심하면서 반문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