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진짜 엘프왕(?)의 등장 (1)
엘프 마을이 불타고 있다는 건, 엘프 마을의 중심이 되는 세계수도 불타고 있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마을 중앙의 불길은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재해와 같은 화염에 끌 엄두도 안 나는지 마을에 있던 엘프들은 피신해서 망연자실한 눈으로 불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르칸과 함께 온 엘프들도 그 참혹한 광경에 그대로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아르칸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다른 나무도 아니고, 세계수가 불에 타?’
아직 어리다고 해도 생명력이 넘치는 세계수는 불이 붙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생명력에 몰려든 정령들도 세계수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불로는 세계수에 불붙이는 것부터 불가능했다.
“미네, 정신 차려!”
“크흐흐흑.”
아르칸이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도 미네의 울음은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멜스크에게 세뇌에 고문 등 별의별 짓을 다 당하다가 겨우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고향 마을이 불타고 있다니.
‘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하지.’
다른 엘프들도 마찬가지인지, 절망적인 상황에 하염없이 오열하고 있었다.
아르칸은 하는 수 없이 혼자 마을에 가까이 들어갔다.
마을 안의 몇몇 엘프는 아르칸을 보고도 자포자기한 듯 별다른 반응을 하지도 않았다.
이 와중에도 분주한 엘프들이 있었다.
“다들 뭐 해요! 이대로 있으면 위험해요!”
“불이 더 번지기 전에 대피해야죠!”
아르칸은 저 엘프들이라면 말이 통하겠다 싶어서 다가갔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아닌가?
“리브? 리트?”
“아, 진짜. 지금 저 부를 때가 아니라고요.”
“언니 말대로 어서 대피하기나 해요. 어? 언니, 이쪽 좀 봐.”
“응? 앗! 여길 어떻게?”
차갑게 쏘아붙이던 리브, 리트 자매는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저 멀리 카퓨 산맥에서 자신들을 구했던 아르칸이 대뜸 이곳에 나타난 거였다.
아르칸은 자신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멜스크에게 붙잡혔던 엘프들을 구해 왔는데, 날이 안 좋았나 보네.”
“멜스크로부터요? 헛.”
“이거 정말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놀라는 자매를 보고 아르칸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대피시키기부터 하자.”
“맞다.”
“근데 다들 도통 안 움직여서요.”
그때였다.
화르륵!
갑자기 불어온 돌풍에 거대한 불길이 아르칸과 두 자매가 있는 쪽으로 휘었다.
“꺄악!”
“이크.”
“제게 맡겨 주십시오.”
두 자매가 비명을 지르고, 아르칸도 깜짝 놀랐을 때, 제피로스가 나섰다.
맹렬한 바람을 일으켜 화염을 차단한 거였다.
그걸 본 리브와 리트는 더욱 놀랐다.
“바람의 정령?”
“그것도 중급 정령인데? 아르칸 님이 소환하신 건가요?”
“소환한 건 아니지만, 나랑 계약해서 온 거야.”
“계약이요?”
아르칸의 정체를 아는 두 자매는 더욱 놀랐다.
정령이 마왕과 계약했다는 사실은 지금껏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서였다.
“그보다 이대로 있다가는 위험할 것 같으니까. 대피시키려면 강제로라도 정신 차리게 해야겠어. 너희 둘이 나중에 잘 설명 좀 해 줘.”
“아, 네.”
“염치없지만, 부탁드립니다.”
두 자매의 대답을 들은 아르칸은 일단 피용과 용아병들을 소환했다.
“피용아, 드래곤 피어를 조금 약하게 써 볼 수 있어?”
안 그래도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엘프들에게 드래곤 피어를 썼다가는 기절하는 걸 넘어서 더 충격을 받을까 걱정해서 물은 거였다.
“피? 안 될 거 같은데. 한번 해 볼까?”
“아니야.”
하긴, 드래곤 피어를 조절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이번에는 내가 나서 봐야겠네.”
아르칸은 마력 공유로 피용에게서 마력을 끌어모았다.
일전에 멜스크의 방어막을 깨트린다고 마력 소진을 많이 하긴 했지만, 어떻게 6성급 마력은 모을 수 있었다.
‘여기에 그 정도로 강한 엘프는 없어 보이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아르칸은 권능 스킬, 군주의 위엄을 사용했다.
쿠쿵!
아르칸에게서 묵직한 존재감이 퍼져 나오자 통곡하고 있던 엘프들이 모두 움찔했다.
다들 순간적으로 슬픔을 잊고 아르칸을 집중한 거였다.
엘프들이 주목하는 걸 본 아르칸이 위엄 있게 외쳤다.
“자! 다들 뒤로 물러서!”
위엄 어린 외침에 다들 주춤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무슨…….”
“당신은 누구요?”
엘프들이 묻는데 리브와 리트 자매가 재촉했다.
“지금 그게 중요해요? 어서 도망쳐요.”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다 불에 타 죽을 거예요.”
그 말에 뒤늦게 현재 상황을 깨달은 엘프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도 굼뜬 게 아무래도 세계수에 미련이 잔뜩 남은 듯했다.
답답해도 이해는 됐다.
세계수는 엘프들의 삶의 터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겨우 뒤로 물러난 엘프들은 아르칸이 데려온 엘프 무리를 발견했다.
아르칸은 그걸 보며 한숨을 돌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떨어진 형제자매를 만나는 거니까 조금 위로가 되겠지.’
미네는 울다가 진이 빠진 몸을 힘겹게 일으켜 인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미네에게 한 엘프가 나서서 삿대질했다.
“너희 때문이야. 너희 때문에 마을이 불타 버렸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미네도 예상 밖의 방황에 당황한 듯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다행히 리브와 리트가 나섰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멜스크한테 붙잡혀 있다가 겨우 돌아온 형제자매들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
두 자매가 쏘아붙이자 비난했던 엘프는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를 떨궜다.
자신이 생각해도 좀 말이 심했다 싶었던 모양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게…….”
아르칸의 물음에 리트와 리브가 설명을 시작했다.
사건이 벌어진 건 오늘 오전.
웬 왕관을 쓴 엘프가 서클릿을 쓴 엘프 무리를 잔뜩 이끌고 나타났다.
동족이 나타나 기뻐하던 마을 엘프들에게 서클릿 엘프들이 일제히 외쳤다.
‘엘프들의 왕이 나타나셨으니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경배하라!’라고 말이다.
‘엘프들의 왕?’
그 말에 아르칸과 미네는 서로 쳐다봤다.
엘프의 왕을 자처하고 서클릿을 한 엘프들을 부리고 있는 한 인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게 확실했지만, 확인차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멜스크는 아니겠지?”
“멜스크를 본 적은 없지만, 아닐 겁니다. 확실히 엘프였으니까요.”
“정령도 불러냈었어요. 그것도 정령 이그니스를요.”
“이그니스라고?”
아르칸이 놀라서 되물었다.
이그니스는 불의 상급 정령으로, 어지간한 마왕보다 강했다.
“설마, 이그니스가 세계수를 불태운 거야?”
아르칸의 물음에 아까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는지 리브가 간신히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엘프왕이라는 건 없다고 다들 꼼짝하지 않고 있으니, 세계수 믿고 반항하는 거라고 화를 내며 이그니스에게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불의 상급 정령인 이그니스 정도는 되니까 세계수가 저렇게 불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정령에게 명령했다고?”
“네. 이그니스는 처음에는 거부했는데, 엘프왕이라는 자가 다시 명령하자 세계수에 화염을 내뿜었어요.”
“미안하다고 하면서요.”
‘엘프왕 정도 되면 상급 정령에게 명령도 할 수 있는 건가?’
아르칸이 의아해하는데, 미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우리 탓이라고 하는 건 왜…….”
“엘프왕이 자신이 움직인 건 멜스크 후작을 죽이고 탈출한 엘프들 때문이라고 했거든요.”
아무래도 멜스크 후작과 연관이 없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엘프왕이라는 작자는?”
“곧 다시 데리러 올 테니, 이주할 준비를 하라고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순순히?”
아르칸의 물음에 리브가 허탈한 얼굴로 대꾸했다.
“어차피 도망쳐도 갈 곳도 없으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 대륙에서 엘프들은 값비싼 사냥감에 불과했으니까.
그렇다고 숲속에 무리 지어 있으면 그 엘프왕이라는 게 또 찾아올 게 분명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감시도 안 시키다니 이상하네.’
“그래도 일단 여길 떠나야지.”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다들 저래서야 안 움직일 것 같은데…….”
미네의 말에 리트가 대꾸했다.
그 말대로 다들 불길은 피하긴 했어도 여전히 좌절해서 주저앉아 있었다.
‘저걸 보면 도망칠 생각을 못 했을 거라고 여긴 건가. 여기서는 내가 의욕을 불어넣어 줄 수밖에 없겠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아르칸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엘프왕을 잡을 테니까.”
리브와 리트는 아르칸을 걱정했다.
“아무리 아르칸 님이라도 이그니스를 상대하는 건 무리예요.”
“저희 때문에 무리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때 미네가 아르칸을 거들었다.
“아니야. 이그니스가 강하다고 해도 아르칸 님이 데리고 계신 블랙 드래곤이면 상대할 수 있을 거예요.”
“브, 블랙 드래곤?”
“음, 확실히 그거라면 되겠네요.”
두 자매는 놀라긴 했지만, 빠르게 납득했다.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마왕인 아르칸이라면 블랙 드래곤을 데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피용이면 상대하고도 남지.’
마력 공유로 강화시키면 쓰러트리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엘프왕이 데리고 있는 엘프들은, 미네와 정령 기사단. 용아병으로 대응하면 됐다.
‘하지만 상대도 그 전력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뭔가 추가 전력이 없을까 고민하는데, 게티아가 펄럭이며 아르칸에게 펼쳐졌다.
그걸 본 아르칸의 눈이 커졌다.
[호감도 : 100]‘갑자기 호감도가 100이 되다니, 대체 누구?’
아르칸은 엘프들을 바라봤다.
리브와 리트는 엘프라 딱히 호감도를 측정하지 않았지만, 딱 봐도 높아 보이긴 했다.
게티아를 통해 확인해 보니 둘 다 99였다.
‘아니면, 이번에 구해 온 미네?’
멜스크가 만든 지옥에서 미네뿐만 아니라, 동족을 다 구했다. 호감도가 높을 만도 했다.
하지만 미네도 90으로 높긴 했지만, 100은 아니었다.
‘대체 누구지?’
주변을 빠르게 훑던 아르칸의 눈에 한 바람의 정령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중급 바람의 정령 제피로스였다. 제피로스는 뜨거운 시선으로 아르칸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정령도 신하로 삼을 수 있는 거야?’
아르칸의 의문에 게티아가 새로운 글자를 보여 줬다.
[대상을 신하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 [군주의 권능을 사용해 제피로스를 신하로 임명하시겠습니까?]아르칸의 의문에 게티아가 고개 대신 몸체를 끄덕였다.
***
“어서 들어가라. 어서!”
늙은 마법사가 엘프왕을 재촉했다.
왕에게 하기에는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주변에 서 있는 엘프는 물론, 엘프왕까지도 별소리하지 않고 따랐다.
이들이 들어간 곳은 지하로, 내부는 여러 조명으로 대낮처럼 밝았는데, 그 광경은 대낮에 봐도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한쪽에는 뼈와 피부 껍질과 근육조직이, 다른 한쪽에는 안구부터 온갖 신체 일부분이 분리되어 유리병에 들어가 있거나 혹은 매달려 있었다.
이곳은 멜스크 후작을 위해 일하던 마법사 몰드락이 따로 만든 생체 실험실.
저택 지하의 생체 실험실과 별개로 멜스크 후작 몰래 빼돌린 물건과 엘프들로 따로 꾸린 곳이었다.
‘덕분에 목숨도 건질 수 있었지.’
하지만 멜스크 후작이 죽은 이후 조사가 들어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왕국에서는 생체 실험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엘프들을 이끌고 나만의 왕국을 새우는 거다.’
그럴 생각으로 엘프 마을로 쳐들어갔지만, 문제는 급하게 움직인 덕분에 엘프왕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점.
만약 문제가 생기면 엘프들의 세뇌도 풀리기에 황급히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자, 어디 상태를 보자꾸나.”
엘프왕을 옥좌 대신 실험용 의자에 앉힌 몰드락은 엘프왕의 신체를 꼼꼼히 살폈다.
이 엘프왕은 엘프의 신체를 기반으로 만든 마법 생명체 호문쿨루스의 일종.
거기다가 영혼석에 담아 둔 멜스크 후작의 사념으로 움직이게 했다.
엘프를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니 정령술을 쓸 수는 없지만, 멜스크 후작이 가진 정령의 반지로 정령술을 쓰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엘프왕만 완벽해지면 다들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변수라면 멜스크 후작을 죽인 것들의 저항 정도.
하지만 그것도 정령의 반지들이 있는 이상,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았다.
“저항한다면 잘됐어. 그동안 멜스크에게 받은 게 많으니, 멜스크의 복수를 해 주는 셈 치면 되니까.”
몰드락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사악하게 웃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