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1
11화 금주의 위력
‘내,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잘못 들은 걸 거야.’
센시아가 당황하느라 대꾸를 하지 않자, 아르칸이 멋쩍어하며 재차 사과했다.
“아, 용서 못 해도 이해해.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으니까. 그래도 마음만은 알아줘.”
‘정말 사과한 거야? 믿을 수 없어. 저 망나니가 사과를 다 하다니.’
심지어 장난기 하나 없는 진지한 사과였다.
오웬을 쳐다보며 설명을 요구하자 그 반응이 재밌는지 웃으며 말했다.
“센시아, 네가 보기에도 많이 달라지신 거 같지? 최근 마음을 고쳐먹고 술을 멀리하셔서 그렇다.”
‘술?’
확실히 마왕성에 와서는 항상 잔뜩 취해 있었는데, 오늘은 멀쩡해 보였다.
그 얼굴을 유심히 보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제 와서 말뿐인 사과가 무슨 소용이람.’
그동안 당하고 피해 본 게 얼마인데, 사과하는 말만 듣고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르칸이 말했다.
“당연히 사과의 말로만 퉁칠 생각은 없어. 센시아가 병사들의 밀린 급여를 줬다며? 그것도 전부 다 정산해 줄게. 오웬,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럴 만한 여유가…….”
“있어, 안 그래도 최근 돈을 좀 벌었거든.”
아르칸의 말에 센시아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도박?”
“아니다. 아르칸 님이 드리켈라 님과 거래해 이문을 많이 남기셨다. 덕분에 한동안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정말입니까?”
“나도 놀랐다. 아르칸 님께 그런 상재가 있으실 줄이야.”
오웬 님이 흐뭇한 미소까지 짓고 있는 걸로 봐서는 거짓은 아닌 모양.
‘드리켈라 마왕군에 세틱을 판 건가?’
안 그래도 아르칸 님이 이 인근의 세틱을 모두 사들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걸 다 어쩌려나 싶었는데, 최근 패퇴해 이 인근을 지나가는 드리켈라 마왕군에 비싼 값에 판 듯했다.
‘운이 좋았나? 오웬 님이 칭찬하는 거로 봐서는 단순 운이 아닌 거 같긴 한데…….’
의문이 깊어 가는 와중에 아르칸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사과도 사과지만, 다시 마왕성의 경비대장이 되어 줬으면 하는데. 어때?”
“정말입니까?”
너 없이도 고블린 습격을 막아 냈다고 자랑하려고 부르는 게 아닐까 했는데, 다시 경비대장이 되어 달라니.
문득 이렇게 마왕성 근처에 맴돌 거면 그냥 다시 마왕성에 복귀하자고 투덜거리던 트릴의 모습이 떠올랐다.
센시아도 마왕성을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게 아니었다.
아르칸이 마왕성의 돈을 모두 술 사는 데 써 버리는 바람에 병사들에게 급여는커녕 식사도 제대로 못 챙겨 주던 상황. 그대로 버텼다면 반란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센시아는 마왕성을 밖에서라도 지키기 위해 뛰쳐나와 병사들을 수습하며 지켜보던 참이었다.
아르칸이 정신 차리고 마왕성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지금처럼 아르칸 님이 멀쩡하면 돌아가도 괜찮을지도 몰랐다. 마왕성의 재정에 여유도 있다니 부하들이 급여를 못 받을 일도 없을 테고.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긴 했다.
‘또 망나니짓하고 술 마시느라 그나마 번 돈을 탕진해 버리면 어떡하지?’
이번에도 그 걱정을 읽기라도 한 듯 아르칸이 추가로 제안했다.
“아무 조건 없이 돌아오라는 거 아니야. 석 달 치 급여를 미리 주는 거면 어때? 그 뒤로 한 달이라도 밀리면 관둬도 좋아.”
그러면 확실히 걱정은 없었다.
‘근데 어떻게 아르칸 님이 고용인의 입장에서 원하는 바를 알고 제안하시지? 설마 오웬 님이 조언해 주셨나?’
정작 오웬은 그 말을 처음 듣는 듯 감탄했다.
“오! 탁월한 생각이십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으나 아르칸이 그렇게까지 한다는 데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래, 한 번만 더 믿어 보자.’
“어때? 그 조건으로도 부족해?”
“아닙니다. 복귀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센시아의 대답에 아르칸이 기뻐하고, 오웬도 미소를 지었다.
“바로는 복귀할 수 없습니다. 의뢰를 맡은 게 있습니다.”
“아, 그래? 그걸 끝내야 복귀할 수 있겠네.”
‘아르칸 님이 순순히 납득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예전 같았으면 내 일이 우선이니 의뢰고 뭐고 바로 집어치우라고 했을 텐데, 정말 마음을 고쳐먹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슨 의뢰인데?”
“고블린 부족을 찾아 퇴치해 달랍니다.”
고블린이 마계 전역에 볼 수 있긴 해도 근래에 들어 이 일대에서는 고블린을 보기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 고블린들이 마을을 습격했는데, 주변에 새로운 고블린 부족이라도 생긴 것 같다며 그걸 찾아서 없애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몇 번 수색에 나섰어도 찾을 수 없었는데, 마왕성까지 공격한 것으로 봐서는 확실히 큰 부족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고블린 라이더까지 여럿 있을 정도니 고블린이라고 방심하면 안 될 거 같아. 어쩌면 마왕성에 복귀하는 게 오래 걸릴지 모르겠네.’
기껏 복귀하리라고 마음먹었더니 의뢰에 발목 잡히다니.
안타까워하는데 아르칸이 말했다.
“잘됐네. 이렇게 된 이상 같이 의뢰를 해결하자고.”
‘아르칸 님이랑 같이?’
고맙긴 해도 안 될 말이었다.
마왕이 직접 나서기에는 고블린 퇴치는 너무 하찮은 일. 또 반면에 고블린 부족의 규모는 또 크니 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아르칸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에는 함께하지 않는 게 좋았다.
센시아는 곧바로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사양할 거 없어. 내가 도와줄 테니 후딱 해치워 버리자.”
“아르칸 님, 얕보면 안 됩니다. 이번에 공격해 온 고블린 무리는 어떻게 막았지만, 고블린 라이더가 그렇게 여러 마리 있다면 엄청나게 큰 부족을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최소 몇백은 넘을 겁니다.”
다행히 오웬 님도 위험성을 잘 간파하고 경고했다.
그 말에도 아르칸 님은 씩 웃으며 말했다.
“알아. 그러니까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저건 또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그렇습니까? 센시아, 아르칸 님이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거다.”
심지어 오웬 님은 돌변해서 찬성하는 게 아닌가.
센시아는 마지못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음, 알겠습니다.”
* * *
센시아가 고블린 부족을 퇴치하라는 의뢰를 받았다는 말에 아르칸은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고블린들과 한바탕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네.’
오웬의 우려대로 이 근처 산맥에는 고블린이 잔뜩 있다.
다만, 오웬이 추정한 몇백 정도가 아니었다.
소설에 나온 대로라면 그 숫자는 무려 수천.
그것도 단순히 큰 부족이 아니라, 여러 부족을 통합한 작은 왕국이었다.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은 건, 왕국을 세운 고블린 왕이 아주 은밀히 세력을 키워 나갔기 때문이다.
목표는 고블린 최초의 마왕이 되는 것.
‘아르칸 마왕성에 쳐들어왔으면 진작에 마왕이 됐을 텐데, 어차피 용사에게 박살 나니까 상관없나?’
고블린 왕국은 용사가 아르칸 마왕성에 오기 전에 먼저 들르는 곳.
당연히 초토화시켜 버린다.
즉, 가만히 있어도 고블린 왕국은 용사에게 붕괴당할 운명.
하지만 아르칸은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내 편으로 만들어서 써먹을 데가 있거든.’
다만, 지금 마왕성에는 전력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는 상황. 고블린 왕국을 공략하기는커녕 쳐들어오면 막아 내기도 힘들었다.
고블린을 상대하려면 센시아와 그를 따르는 병력이 필요한 상황.
그 때문에 센시아에게 같이 해결하자고 나선 것도 있었다.
‘그나저나 병력이 얼마나 남아 있으려나?’
기억에는 센시아를 따라 나간 병사들이 1백 명은 넘었다.
그간 용병 일을 하면서 숫자가 늘었을 수도 줄었을 수도 있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아르칸의 작전에는 그 절반인 50명만 있어도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잠시 후, 센시아가 데려온 병력을 본 아르칸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적어도 너무 적잖아!’
센시아가 데려온 병력은 부관 트릴을 포함해 8명에 불과했다.
“병력은 이게 전부야?”
“두 명 더 있습니다.”
그래 봐야 센시아를 포함해 11명.
‘너무 적어, 무슨 축구팀도 아니고.’
아르칸의 실망하는 얼굴을 본 오웬이 대신 물었다.
“나머지 병사들은 어찌 됐나?”
“떠났습니다.”
“센시아 님이, 밀린 급여를 정산해 주면서 돌아갈 곳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돌아가라고 보냈습니다. 다 데리고 다닐 여유도 없고요.”
‘고용주인 주제에 급여를 대신 내게 하다니!’
앞서 센시아에게 정산해 준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트릴의 보충 설명에 새삼 가슴이 따끔거렸다.
빙의 전 아르칸에게 쌍욕을 퍼붓고 싶을 정도였다.
“여기 없는 둘은 포그밀에 감시로 붙여 뒀습니다. 몬스터 유도석을 사용한 수작이 실패한 후 도망치길래요.”
“아르칸 님 말대로 역시 그자가 몬스터 유도석을 사용했군요. 일개 상인이 마왕에게 그런 간교한 술수를 부리다니, 증인도 생겼으니 바리스탄 님께 고해 응징해야 합니다!”
“그래 봤자 우리 쪽 증인이잖아. 게다가 쪼르르 달려가서 혼내 달라고 하면 바리스탄 님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시겠어?”
“끙.”
“범인을 확실히 알게 된 것만 해도 만족해야지. 심지어 감시까지 붙여 뒀으니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파악할 수도 있게 됐고. 잘했어.”
“어?”
“헛.”
자신들을 보며 웃으며 칭찬하자, 센시아와 트릴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아르칸이 비꼬는 게 아닌 순수하게 진심으로 칭찬하는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잘했다는데, 표정들이 왜 그래?”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뜻밖이라서 놀랬습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혹시 어디로 갔는지 파악이 됐나? 아마 대마왕 제니칼 영역으로 갔을 거 같긴 한데.”
센시아와 트릴은 다시 한번 놀랐다.
포그밀이 대마왕 제니칼의 영역으로 향한 것까지 맞히다니.
마왕성에서 따로 추적하지도 않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
말문이 막혀 서로 쳐다만 보고 있는데, 오웬이 채근했다.
“다들 왜 대답이 없나?”
“말씀대로 대마왕 제니칼 영역으로 향했습니다. 어느 마왕에게 갔는지는 아직 모릅니다만.”
“그건 감시 보낸 병사들이 와야 알겠군.”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트릴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근데 어떻게 포그밀이 그리 갔다고 짐작하셨습니까?”
“포그밀은 몬스터 유도석을 쓴 걸 뒤집어씌울 겸, 다른 마왕을 부추겨서 우리 마왕성을 공격하려 할 거다. 근데 우리 아버지가 무서워서라도 같은 파벌 마왕은 안 움직일 테고, 포그밀도 그 정도는 알 테니 다른 파벌의 마왕을 찾으려고 할 거야. 바로 옆이 대마왕 제니칼의 영역이니 그리로 가지 않겠어?”
“아.”
납득하는 트릴에게 아르칸이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무엇보다 포그밀이 움직이는 게 수상쩍어서 감시를 붙여 놓은 걸 거 아냐? 다른 파벌 영역으로 간다든지 하는 거 말이야.”
‘이야! 그 의도까지 다 맞히다니, 정말 내가 알던 아르칸 님이 맞나?’
트릴이 감탄하며 눈만 끔벅거리고 있으니, 센시아가 말했다.
“술을 끊으셨다는군.”
‘술 좀 안 마셨다고 저렇게 달라진다고?’
트릴은 진지하게 금주해야 하나 하고 잠깐 고민했다.
“어느 마왕한테 갔는지는 나중에 보고해 줘.”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전투 준비해. 준비 끝나면 고블린들을 부를 테니까.”
“가능한가요?”
“대장이 보기에도 힘들어 보이죠? 지금 반지하 상태인 마왕성에서 마정석으로 몬스터를 불러모은다니, 무리 같은데…….”
“아르칸 님, 이들 말대로 아직 힘듭니다. 당장 마정석의 마력부터 부족하지 않습니까.”
다들 마정석으로 고블린들을 부른다고 생각하고는 걱정했다.
그런 부하들에게 아르칸이 게티아를 들어 보였다.
“괜찮아, 이거로 부를 거니까.”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