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전투준비 (1)
아르칸은 마왕성에 도착하자마자 오웬을 찾았다.
“오웬, 다녀왔어. 마왕성에는 별일 없었지?”
“나가신 지 얼마 안 지나지 않습니까. 약속하신 대로 일찍 돌아오셨군요.
오웬은 아르칸의 귀환을 반겼다.
잦은 외유에 찔렸는지 출발하기 전부터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한 아르칸은, 드래곤이 된 피용을 타고 가면 금방 다녀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근데 정말 며칠 만에 돌아온 거였다.
오웬은 이 정도면 다음에도 외유 나간다고 할 시 흔쾌히 허락해야겠다 생각하며 물었다.
“목적하신 건 다 이루셨습니까?”
“어.”
아르칸의 이번 외유는 마왕성에 세계수를 심을 엘프를 데려오기 위한 것.
예전에 인간족에게서 구해 준 엘프들이 도와줄 거라 했는데, 정말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그 말인즉 엘프들이 아르칸 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의리 있는 엘프들이로군.’
오웬은 속으로 엘프들을 높게 평가했다.
아무리 은혜를 입었다고 할지라도 엘프가 마왕성에 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웬은 여기 머무는 동안 불편한 일이 없도록 신경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말했다.
“그럼 제가 대접할 테니 소개해 주시지요.”
“아, 여기서? 여기는 좀 그런데.”
아르칸이 주변을 둘러보며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현재 이야기 중인 곳은 통제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그럼 자리를 옮기지요.”
“어, 4계층에 넓은 공터가 있었지? 거기로 가자.”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장섰다.
최근 마왕성은 5계층으로 확장했다.
1계층도 유지 못 해서 반지하 상태였던 것에 비하면 하천이 바다가 된 격.
오웬은 아르칸 마왕성의 집사로서 뿌듯함을 느꼈지만, 계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리 늘어나는 것도 문제였다.
새롭게 늘어난 계층에 맞춰서 마왕성 내부의 시설을 조정하고, 거기에 맞춰 하인들을 재배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적해서 가끔 한가로운 옛날이 그리울 정도였다.
‘아르칸 님 말대로 집사를 따로 두긴 해야지. 적어도 일을 나눌 사람이 필요해.’
오웬이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둘이었다.
하나는 바로 센시아의 부관으로 오래전부터 봐 왔던 트릴.
무뚝뚝한 센시아를 대신해 여러 복잡한 일을 꼼꼼하게 처리해서 신뢰가 갔다.
두 번째는 백호 수인족 볼가와 함께 왔던 인간족 노예인 데시무스.
깐족거리는 성격이긴 해도 머리 회전이 빠르고, 일을 맡기면 기대했던 것보다 뛰어난 결과물을 가져왔다.
‘둘을 합치면 좋겠지만……. 지금은 후계자를 생각할 때가 아니긴 하지.’
적어도 아르칸 마왕성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자리를 잡은 뒤에야 인수인계를 할 생각이었다.
‘그보다 왜 넓은 공터로 가자고 하시는 거지?’
잠자코 아르칸의 뒤를 따라가던 오웬은 문득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길함 예감은 사실이 됐다.
아르칸이 소개하겠다면서 아공간 주머니에서 엘프를 꺼내는데, 하나둘만 꺼내는 게 아니였다.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계속해서 아공간 주머니에서 엘프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의 엘프가 나오는 걸 멍하니 보던 오웬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아르칸을 붙잡았다.
“아, 아르칸 님. 엘프들을 대체 얼마나 데려오신 겁니까?”
“2백 명 정도?”
“2……. 2백 명이요?”
상상도 못 한 숫자에 오웬은 기겁하며 물었다.
“엘프 한둘을 데려온다더니 이렇게나 많이 데려오다니요!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말하자면 좀 길어.”
뒤통수를 긁으며 대꾸한 아르칸은 이 엘프들의 사정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했다.
멜스크 후작에게 세뇌당하거나 잡혀 있는 걸 구해 엘프 마을로 갔더니, 세계수와 마을이 불타 버렸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고 있던 호문쿨루스 엘프왕을 쓰러트리고 엘프왕의 부하로 세뇌된 엘프까지 구했다.
그런데 엘프들이 마왕성에 세계수를 심는다고 했더니, 거둬 달라고 해서 데리고 온 거라고 설명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오웬은 엘프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르칸의 설명을 들은 탓인지 엘프들은 생기 없고 초췌한 게, 불쌍해 보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엘프들이 애원했다.
“오웬 님, 저희를 내치지 말아 주십시오.”
“여기서 하라는 건 다 하겠습니다.”
“사정 좀 봐주십시오.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이어서 아르칸도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정 안 되면 하는 수 없지. 근처에 나가서 살라고 해야지, 뭐. 이미 카퓨 산맥 쪽에 난민촌도 하나 있잖아.”
그걸 보며 오웬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왕성의 주인께서 결정하신 일에 어찌 토를 달겠습니까? 그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놀랐던 것뿐입니다.”
“그러면 허락한 거지?”
“물론입니다.”
“자, 다들 들었지?”
아르칸이 엘프들에게 말하자 어느 순간 아공간 주머니 밖으로 나온 2백 명의 엘프들이 일제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오웬 님.”
“별말씀을요. 그러면 지시가 있을 때까지 여기에 머물러 주십시오. 하인들에게 일러둘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요청하시고요.”
오웬은 쓴웃음을 지으며 엘프들에게 말하고는 아르칸을 돌아봤다.
“일단 구조 변경부터 다시 해야겠네요. 통제실로 가시죠.”
“어, 그래.”
대답한 아르칸은 이번에는 오웬의 뒤를 따라갔다.
잠자코 있던 오웬이 입을 열었다.
“제가 꼼짝 못 하게 받아들이도록 작전을 짜셨군요.”
“들켰어?”
“네, 처음 보는 제 이름을 다들 알지 않습니까? 저렇게 한목소리로 부탁하고 감사 인사를 하도록 미리 말씀해 두셨겠네요. 물론, 들킨 것까지가 작전이고요.”
“역시 오웬, 예리한데?”
“은근슬쩍 칭찬하면서 넘어가려고 하면 곤란합니다. 그보다 아르칸 님의 비밀은 어찌 지키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을 알아?”
아르칸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오웬이 입을 열었다.
“처음 들어 보는 말입니다만……. 엘프들이 많으면 만에 하나 정령술을 써도 의심하지 않을 거라는 겁니까?”
“그렇지.”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만, 나무가 워낙에 많아진 만큼 제 일도 늘어나겠네요.”
실제로 현재 마왕성의 인구는 하인과 병사들을 모두 합쳐서 4백 명가량.
그 절반에 이르는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면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당장 머물 곳과 먹을 것부터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건 정말 미안하게 됐어.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어?”
진심 어린 말에 오웬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잠깐 푸념했을 뿐입니다. 제게 새 심장까지 주셨는데, 더 원하는 게 있을 리가요.”
그렇게 말한 오웬은 저 멀리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엘프들을 바라봤다.
“그보다 저 엘프들이 마왕성에 잘 적응할지가 걱정이군요.”
“난 걱정 안 해.”
“……?”
“오웬이 잘 적응하도록 도와줄 테니까.”
아르칸의 말에 의아해하던 오웬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겠군요.”
의욕이 생긴 오웬의 대답에 안심한 아르칸은 엘프들을 보며 생각했다.
‘엘프들도 힘내서 적응할 거야. 그만큼 절박하니까.’
***
아르칸의 예상대로 엘프들은 마왕성에 잘 적응했다.
일단 트릴을 비롯해 기존에 있던 경비병들은 엘프들의 합류를 반겼다. 카퓨 산맥 너머에서 공성을 벌일 때, 엘프 리트가 바람의 정령을 부려서 활약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엘프라는 종족은 평화주의자라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들은 사정이 다르지.’
비록 멜스크 후작에 세뇌당했다고 할지라도 그동안 벌인 일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었다.
무기를 휘두르고, 피를 보는 일에 익숙했다.
그런 엘프가 대략 80명.
세뇌가 통하지 않아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엘프와 나머지 마을의 엘프들은 싸우기를 꺼려 했지만.
대신 하인을 자처하며 솔선수범해서 일했다.
덕분에 엘프에 익숙하지 않은 부하들도 그들을 마왕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크에 이어 엘프까지 포섭했다며 아르칸의 포용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평가를 받을 줄이야.’
적어도 마왕성 내에서는 이제 아르칸더러 망나니 마왕 운운하는 건 완전히 사라졌다.
유일하게 아르칸이 걱정했던 건 엘프와 오크가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거였다.
엘프와 드워프가 사이가 나쁜 거라고 유명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앙숙 관계.
엘프와 오크들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런 아르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일단 오크들은 엘프들이 아르칸의 부하가 되었다는 소리에 정중하게 대했다.
엘프 중에서는 오크와 싸운 기억이 있는 이가 드물었는데, 그들도 오크가 정중하게 나오자 오히려 안도하면서 넘어갔다.
그렇게 며칠 동안 마왕성 내부를 정리해 나가고 있는 와중에, 손님이 아르칸을 찾아왔다.
그 손님은 저번에 아르칸이 또 외유를 나가는 바람에 허탕 친, 마왕성 랭킹을 통보하고 다니는 데실론이었다.
“마왕 아르칸, 오늘은 있군.”
“죄송합니다. 얼마 전에 오셨는데 제가 없어서 헛걸음하셨다고요.”
“죄송할 것까지야. 그보다 축하한다. 또 랭킹이 올랐다. 이번에 69위가 됐다.”
“감사합니다. 20위가 오른 거 맞나요?”
“정확히 계산하면 내가 저번에 왔을 때, 78위로 11위가 상승했고, 이번에 추가로 9위가 상승한 거다.”
“아, 그렇군요.”
아르칸은 속으로 놀랐다.
꾸준히 마력을 흡수시켜 드디어 5계층이 된 만큼 랭킹이 다시 올랐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또 9위나 오를 줄이야.
예상보다 순위 상승이 빨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본앰브로스가 제시한 10위 안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아르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오만하다고 할지도 몰랐지만, 마신까지 노리는 아르칸 입장에서는 거쳐 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데실론이 평소와 미묘하게 다른 게 기분이 조금 좋아 보이네.’
아르칸의 짐작대로 데실론은 여전히 무심한 얼굴임에도 기분은 아주 좋았다.
아르칸이 그간 별 변동 없는 마왕성 랭킹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헛걸음한 뒤에, 다시 마왕성 랭킹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기대했던 대로 새로운 대마왕성이 탄생할 것 같았다.
‘마신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지.’
너무 기분 좋은 나머지 데실론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상승세라고 너무 풀어지지 말도록. 움직이는 산이 그대를 노리고 있다.”
‘움직이는 산이라……. 제니칼이 공격해 오려는 건가?’
아르칸은 곧바로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소설에서 대마왕 제니칼을 부를 때, 종종 움직이는 산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아르칸은 곧장 제니칼의 동향에 대해 알아봤다.
고블린들은 물론이고, 나미라를 움직여 마수들에게 대마왕 제니칼과 그 직속 부하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바리스탄 대마왕성 내에 들어온 정보도 확인했다.
저번에 토피아스에게 아르칸이 수고했다고 금화를 준 덕분에 열정적으로 정보를 수집해 보내 줬다.
그 결과는 확실히 심상치 않았다.
‘이거 얼마 안 있으면 정말 쳐들어오겠는데?’
제니칼 대마왕성에 여러 부하가 모이고 병력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아르칸이 결정적으로 쳐들어올 거라고 여긴 건 다른 대마왕들의 상황이었다.
대마왕 제니칼의 영역과 인접해 있는 건 대마왕 바리스탄과 본앰브로스.
제니칼이 아르칸을 공격하려고 움직인다면, 그 둘이 그 틈을 노릴 게 분명하기에 견제가 됐다.
그런데, 최근 제니칼의 영역 반대편에 위치한 악마족 대마왕 키클로테스가 직접 바리스탄과 본앰브로스 두 영역에 걸쳐서 공격해 오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 했지.’
다들 키클로테스가 왜 저러는지 이해 못 했지만, 여러 정보를 수집한 아르칸은 키클로테스가 두 대마왕을 묶어 제니칼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만들기 위한 거라고 추론할 수 있었다.
특히 아르칸과 키클로테스와의 악연을 생각하면 충분히 제니칼을 위해 나서고도 남았을 테니까.
‘어떡한다.’
아르칸은 고민이 됐다.
다행히 제니칼이 쳐들어온다는 걸 미리 알게 됐지만, 맞서 싸울지 포기하고 물러날지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물러난다고 하면 아르칸은 이 마왕성을 포기해야 한다. 일단 마정석의 마력부터 반 토막 나기에 그것만으로도 피해가 심각했다.
맞서 싸운다고 해도 문제인 게, 승산이 아주 낮았다.
아르칸의 랭킹이 올랐다고 해도, 대마왕에게 견주기에는 한참 약했으니까.
한참 동안 뭔가를 쓰며 계산하던 아르칸은 펜을 내려놓았다.
‘이러면 확실히 승산이 있어. 좋아, 이 기회에 제니칼을 잡는다.’
일개 마왕이 무려 대마왕을 잡기로 결정한 순간이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