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전투준비 (5)
다행히 용사는 확실히 성질이 죽었는지 검까지는 뽑지 않았다.
덕분에 아르칸은 마음 편하게 해명할 수 있었다.
“나한테 화내지 마. 엘프들이 먼저 받아 달라고 했으니까.”
“정말?”
“정말이라니까.”
그렇게 대꾸한 아르칸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멜스크 후작으로부터 엘프들을 구하면서 후작을 죽였더니, 후작을 돕던 마법사 몰드락이 후작을 엘프왕으로 만들어서 엘프 마을의 세계수를 불태워 버렸고.
아르칸이 마법사마저 해치웠더니 엘프들이 먼저 마왕성에서 지내고 싶다고 부탁해 온 거라고 말이다.
“그렇군. 그저 멜스크 후작으로부터 엘프들을 구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생이 많았어.”
용사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만큼 간략히 줄여도 파란만장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웬일이야? 네가 칭찬을 다 하고?”
“정말 고생했으니까. 그보다 엘프들이 걱정이네. 마계에서 적응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괜찮아, 마왕성에 세계수가 있거든. 오히려 다들 좋아하고 있어.”
“그렇군, 다행이다.”
용사가 진심으로 안도하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아르칸은 살짝 놀랐다.
처음 봤을 때는 표정이 어두운 게 우울해 보이더니만, 엘프들을 생각하며 저런 표정을 짓다니.
‘책임감이 강해서 그런가? 그렇다면…….’
아르칸이 용사에게 제안했다.
“엘프로 위장해서 엘프들 틈에서 지내는 게 어때? 혹시 불편해 보이면 도와주면 되잖아.”
“음,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그러자.”
그렇게 용사는 엘프로 위장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름이었다.
“용사라고 부르면 안 될 테니, 다른 이름을 정하는 게 좋겠는데?”
“그건 그렇지. 가명을 써야겠다. 용사가 엘프가 된 거니까. 용프 어때?”
“풋.”
상상을 초월하는 작명 센스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왔다.
그걸 보며 용사가 인상을 썼다.
“왜 웃어?”
“이름이 웃겨서 그래. 발음부터 별로잖아.”
“그럼 네가 지어 봐. 얼마나 잘 짓나 보자.”
그 말에 아르칸은 긴장이 됐다.
소설에서 용사가 마룡 크세트카흐의 해츨링 이름을 용용이라고 짓는 걸, 아르칸이 피용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바꾸긴 했지만.
이번에는 이름을 고민할 시간도 없이 대뜸 생각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아르칸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뒤 말했다.
“음, 엘프 용사니까. 엘사 어때?”
“엘사라……. 괜찮군. 익숙한(?) 이름이라 기억하기도 쉽고. 그거로 하지.”
용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아르칸은 자신이 제안한 이름이 통과된 기쁨보다, 용사가 만족해하는 모습이 도리어 불안했다.
‘설마 쟤 작명 센스랑 내 작명 센스랑 비슷한 건 아니겠지?’
***
아르칸은 이제 엘프로 위장한 용사, 엘사를 데리고 마왕성에 들어갔다.
새로운 엘프가 왔지만 원래 마왕성에 있던 마인족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엘프들을 잘 구분하지 못해 새로운 엘프인지도 몰랐다.
엘프들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엘프 마을 외에도 대륙 곳곳에 남아 있는 엘프가 없는 건 아니기에 아르칸이 또 어딘가에서 고생하는 엘프를 거두어들였나 여길 뿐이었다.
다만, 용사와 안면이 있는 리브와 리트 자매에게는 따로 불러서 놀라지 말고 용사를 도와달라고 했다.
두 자매는 비밀 임무가 생겼다며 기뻐했다.
한편 용사는 자신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엘프들에게 적당히 대답하면서도 주변을 살펴봤다.
‘마왕성 같지 않군.’
엘프들이 대다수 머문다는 이 4계층의 중앙에는 세계수가 있고. 그 주위로 지은 집들도 하나같이 나무와 커다란 이파리로 만들어졌다.
그 때문에 얼핏 보면 울창한 숲속 한가운데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1계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보니 세계수가 중심에 계속 있는데, 엘프들은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세계수를 돌보고 있었다.
마인족은 물론이거니와 오크들과도 거리낌 없이 지내고 있었다.
한마디로 공존하고 있는 거였다.
‘이런 게 가능하다니.’
용사는 놀라면서도 아르칸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처음 자신을 만났을 때, 아르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마신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줘. 내가 마계의 정점에 서서 마인족을 장악하면 인간족들과도 평화롭게 지내도록 만들게.
마냥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진심으로 이뤄 낼 작정이었던 모양이었다.
‘기대해 봐도 좋을지도…….’
엘사는 이렇게 된 이상, 진심으로 아르칸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쉽군. 조금만 일찍 아르칸을 믿었다면 더 많이 도와줬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용사 자격도 잃고 성검까지 반납해 전보다 약해진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린이 자신을 위해 오리할콘으로 무기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는 거였다.
성검과 같은 소재인 오리할콘으로 만든 무기라면, 성검에는 못 미치더라도 꽤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용사가 멍하게 있으려니 아르칸이 불렀다.
“다 둘러봤어?”
“대충은. 내 생각했던 것보다 다들 훨씬 잘 지내는 거 같군.”
“내 말대로지? 그보다 따라와. 도린에게 가야지. 무기가 다 완성됐대.”
“어, 정말?”
용사는 자신을 위한 새로운 무기가 완성되었다는 말에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느끼며 아르칸의 뒤를 쫓았다.
또 뭔가를 만드는지 한창 바빠 보이는 도린은 아르칸과 용사를 보자마자 웃는 얼굴로 반겼다.
“아르칸 님, 어서 오십시오. 용사님도 오랜만입니다.”
“이런 곳에서 뵐 줄은 몰랐네요. 얼굴이 좋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용사도 반가워하면서 인사했다. 그때 도린의 눈이 커졌다.
“아, 용사님. 귀가?”
용사의 귀가 엘프처럼 길어진 걸 눈치챈 모양.
아르칸이 웃으며 설명했다.
“놀랄 거 없어. 아무래도 정체를 감출 필요가 있어서 말이지.”
“아, 그래? 근데 기왕 위장하실 거면 드워프로 위장하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어?”
“아…….”
생각지도 못한 말에 아르칸과 용사는 차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서로 얼굴만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용사의 체형을 생각하면 뿔만 달면 되는 마인족이나, 귀만 늘리면 되는 엘프로 위장하는 게 편했다.
드워프로 위장한다는 건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나마 임기응변에 능한 아르칸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드워프도 나쁘지 않았겠네. 이미 바꾸기에는 조금 늦었지만. 다음에는 고려해 볼게.”
“하는 수 없지. 괜찮아. 그보다 그걸 꺼내 와야겠군.”
도린은 그냥 해 본 말인 듯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안쪽에서 기다란 상자를 가지고 왔다.
그 안에는 검이 들어 있었다.
“이게 제가 용사님을 위해 만든 검입니다.”
푹신한 천 위에 놓여 있는 검은 성검과 달리 투박해 보였다.
거친 암석의 표면 같은 검날은 그 자체로 강인함이 느껴졌는데, 왠지 모르게 무뚝뚝한 용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정말 용사를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아르칸이 감탄했다.
용사도 그 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간신히 입을 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한번 들어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제 이건 용사님의 검입니다.”
그 말에 조용히 검을 집어 든 용사는 검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오러를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성검과 같이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점은 거친 검날에 황금색 선이 나타났다는 거였다.
길리암이 새긴 마법진이 빛나는 거였다.
한편 오러 블레이드를 활성화한 용사가 눈을 크게 떴다.
“이 검, 성검보다 성능이 좋은데요?”
“그래?”
“어, 이것 봐. 힘을 조금만 썼는데도 이렇게 오러 블레이드가 나타나잖아.”
“어, 어, 위험해.”
희소식에 놀라 물어본 아르칸은 용사가 검을 휘두르는데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걸 본 용사가 피식 웃었다.
“놀라기는.”
“맨날 죽인다는 녀석이 검을 휘두르니까 그렇지.”
용사는 아르칸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도린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도린 님, 고맙습니다. 정말 마음에 드네요. 성능도 좋지만, 제 검인 것처럼 손에 딱 맞습니다.”
용사의 칭찬에 도린이 만족한 듯 씩 웃으며 말했다.
“사실 예전에 성검 들고 다니실 때 손자국을 봤거든요. 파지법을 고려해서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어떻게 쥐는지까지 미리 계산해서 만들었다니, 괜히 드워프가 장인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네…….”
“헤헷.”
아르칸의 감탄에 도린이 멋쩍은지 뒤통수를 긁었다.
“보니까 길리암도 꽤 힘을 쓴 거 같은데.”
“응, 성능이 강화된 건 그분 덕분이지. 나도 마냥 도움만 받은 거 아니지만.”
그 대답에 아르칸은 길리암이 만들고 있다는 자신의 무기가 더욱 기대됐다.
‘대체 어떤 무기가 나오려나.’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 길리암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라면 자신이 관여한 무기라면서 잘난 체하고도 남았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길리암은?”
“아, 아직 자고 계실 거야. 밤새도록 작업하셨거든.”
그 말에 용사는 아직 무기가 완성 안 됐다는 걸 눈치챘다.
“그럼 길리암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고, 우리는 이만 가 볼게.”
“우리? 어디 갈 데 있어?”
“어. 급한 건 아닌데, 그 검 제대로 한번 써 보고 싶지 않아?”
“마침 해치울 녀석이 있나 보네?”
아르칸의 반문에 용사가 살기 어린 눈빛을 했다.
“해치우다니, 살벌한 소리 그만하고 따라와 봐.”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고 앞장서자, 용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쫓았다.
아르칸이 들어간 곳은 5계층의 자신의 방이었다.
방이라고 해도 안쪽에 침실과 별도로 손님을 조용히 맞이할 수 있도록 응접실로 꾸며 둔 곳이었다.
용사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네 방인가? 생각보다 검소한데?”
그 말대로 응접실이라고 해도 테이블과 소파 정도뿐, 별다른 장식이 없었다.
그간 들어가 봤던 귀족들의 방은 온갖 귀금속과 금붙이로 장식되어 있었다. 더 사치를 부리면 동상이나 조각, 특이한 그림까지 걸려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 유일하게 있는 장식이라고는 벽에 걸려 있는 태피스트리뿐이었다.
“너무 어수선한 건 싫어서 그래.”
“저기 그려져 있는 건 네 가족인가?”
“응.”
용사가 태피스트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아르칸이 쑥스러워하며 대꾸했다.
용사를 데려올 줄 알았으면 치웠을 텐데, 깜빡한 거였다.
사실 저 태피스트리는 아버지 바리스탄이 어머니에게 생일 선물로 준 것과 비슷한 마도구.
아르칸이 갖고 싶다는 말에 오웬이 어딘가에서 구해 온 거로, 그 가치는 어지간한 성 하나에 필적했다.
골드로 따지면 귀족들의 장식보다 훨씬 비싼 거였다.
그 가치를 모르는 용사는 태피스트리를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더니 아르칸에게 물었다.
“근데 아무도 없는데?”
“지금 부를 거야. 나와. 이그니스, 나이어드.”
아르칸이 반지를 내밀며 말하자 상급 불의 정령 이그니스와 상급 물의 정령 나이어드가 나왔다.
자발적으로 따르고 있기에 멜스크 후작이나 엘프왕처럼 반지를 문지를 필요도 없었다.
“반지에서 해방시켜 준다더니, 용사를 시켜서 반지를 부술 작정이었나 보군.”
“확실히 용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그사이 아르칸은 반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자, 들었지? 성검으로 이걸 부숴 주면 돼.”
“검을 제대로 써 보라는 게 이 이야기였나?”
“어, 멜스크 후작이 가지고 있던 정령의 반지인데 여기에 이 정령들이 봉인되어 있거든. 이것 때문에 엘프왕의 후예라고 망상까지 생긴 거야.”
“당장 부숴 주지.”
못마땅해하던 용사는 멜스크 후작이 관련되었다는 말에 곧바로 의욕을 보였다.
“전력을 다해야 할 거야. 드래곤도 못 부술 정도 단단하다니까.”
“어디 한번 해 보면 알겠지.”
부우우웅.
용사는 단숨에 오러 블레이드를 꺼내 휘둘렀다.
그러자 정령의 반지가 그대로 박살 났다.
“오오, 드디어.”
“500년은 더 있어야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해방될 줄이야.”
이그니스와 나이어드는 아주 기뻐했다.
“좋아하기 전에 나랑 계약부터 해야지.”
“알겠다. 그러기로 약속한 거였으니까.”
“네가 살아야 얼마나 오래 살겠어?”
이그니스와 나이어드는 순순히 계약에 응했다.
아르칸 손등에 새겨진 정령의 가호가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그걸 본 용사가 기막혀했다.
“뭐야, 또 너 좋은 일 시키는 거였나?”
“정령들한테도 좋은 거야. 못 들었어? 500년 동안 갇혀 있는 것보다 나도 도와주는 게 낫지.”
“하긴, 그나저나 마왕이 정령도 쓸 수 있었나?”
아르칸은 의외로 용사가 바로 납득하는 게 의아했지만, 이어진 질문에는 답하기 곤란해 돌려보냈다.
“어쩌다 보니……. 그보다 그럼 돌아가서 쉬고 있어. 나는 따로 할 일이 있거든.”
“많이 바쁜가 보군.”
실제로 많이 바쁘긴 했다.
제니칼이 쳐들어오기 전에 준비할 게 더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아르칸과 제일 먼저 계약한 제피로스는 금방 계약한 이그니스와 나이어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신참이 들어왔군요.”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