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전투준비 (6)
“신참? 설마 우리 앞에서 고참 노릇을 하겠다는 건가?”
“흥,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
제피로스의 말에, 이그니스와 나이어드가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비록 먼저 아르칸과 계약했다고 해도 자신들은 엄연히 상급 정령.
반면에 제피로스는 중급 정령에 불과했다.
먼저 계약했다고 선임으로 인정받기에는 그 격차가 상당했다.
“건방진 게 아니라, 사실이니까요. 제가 등급이 낮다고 무시하시면 곤란합니다.”
제피로스가 이렇게 뻗댈 수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정령사와 정령 간의 계약 구조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잘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정령이 이 세계에서 힘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령사의 역량.
즉, 정령 친화력에 달렸다.
아르칸의 정령 친화력이 역대급으로 높은 8성이긴 해도, 현재 계약한 정령들에게 전력을 쓰게 해 주긴 어려웠다.
일반적으로는 중급 정령 하나와 계약하는 것만으로 정령술사들은 벅차 했고.
뛰어난 정령술사들도 중급 정령 두셋과 계약하긴 했지만, 상급 정령을 다수 계약한 사례는 없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정령 친화력 분배는 아르칸이 하지 않는 이상 선입선출이 원칙.
먼저 계약한 정령이 정령 친화력을 얼마나 차지할지 정하고, 남은 걸 그다음 계약한 정령이 차지했다.
이럴 거면 정령의 반지에 둔 채로 쓰는 게 좋지 않나 싶지만.
정령의 반지에 있는 채로는 전력을 장기간 발휘하기 힘들뿐더러, 힘을 쓴 뒤에 회복도 더뎠다.
두 상급 정령도 어떤 상황인지는 알았지만, 전혀 꿀리지 않았다.
“먼저 계약한 만큼 네가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도 네 멋대로 굴도록 아르칸이 내버려 두지 않을걸.”
그러나 여전히 제피로스는 자신만만했다.
“훗. 저와 아르칸 님은 단순한 계약자가 아닙니다. 권능으로 맺은 주종 관계죠. 어떤 정령과 계약해도 저부터 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믿을 수 없어. 가서 물어보자.”
정령들은 이미 자리를 떠난 아르칸을 다시 찾아갔다.
“제피로스를 우리 선임으로 삼는다는 게 사실인가?”
“지금 그게 중요해? 정말 나를 제쳐 두고 제피로스부터 밀어줄 거야?”
두 정령은 아르칸을 보자마자 격렬히 따졌다.
정령이 뭉쳐서 이지를 가지게 되면 하급에서 중급으로, 중급에서 상급 정령이 되는 걸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는 정령왕이 되는 게 모든 정령이 가진 본능이자 꿈.
이번에 정령의 반지에서 해방되어 8성급 정령 친화력을 가진 아르칸과 계약했는데, 후순위로 밀리면 정령력이 쌓이는 게 느려진다.
정작 아르칸은 왜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얼굴로 반문했다.
“내 권능이 군주의 권능인 거 알지? 신하인 제피로스가 강해질수록 나도 강해지니까 당연히 제피로스부터 밀어줘야지.”
“크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군.”
“그 신하인지 뭔지가 되면 될 거 아니야.”
“그게 쉽지 않거든.”
아르칸은 게티아를 보며 대답했다.
이그니스와 나이어드 둘의 호감도는 각각 51, 55.
100이 되려면 한참 더 노력해야 했다.
반면에 제피로스는 아르칸이 그토록 바라던 엘프들을 멜스크 후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준 일로 호감을 품어서 이미 신하가 된 상황.
“너희를 신하로 만드는 것보다 제피로스를 상급 정령으로 만드는 게 차라리 쉬울 거야. 그 후에는 정령왕으로 만들고.”
그 말에 이그나스와 나이어드가 놀라서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나?”
“똑똑히 들었어. 정령왕으로 만들 거라고 했지?”
“어, 나한테 방법이 있거든.”
“정말인가? 방법이 있다고?”
“말도 안 돼.”
“내 이름을 걸고, 맹세코 있어.”
아르칸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상급 정령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놀란 건 제피로스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힘을 실어 준다고는 했는데, 정령왕으로 만들 계획까지 하고 계셨다니.’
감격한 제피로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걸 본 상급 정령들은 깜짝 놀랐다.
정령이 고개를 숙이다니.
“봤지? 난 충성을 바칠 부하가 우선이야. 그래도 섭섭하게 하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진 말고. 그럼 난 다른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본다.”
그렇게 말한 아르칸은 그대로 가 버렸다.
어차피 신하로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강하게 나온 거였다.
아르칸이 사라진 뒤, 이그니스와 나이어드는 조용히 제피로스에게 말했다.
“어떻게 신하가 될 수 있는지 좀 알려 다오.”
“그래, 나도 궁금해. 부탁해.”
제피로스는 비싸게 굴지 않고 알려 줬다.
“호감도라고, 아르칸 님을 좋게 보는 마음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신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좋게 보는 마음이라…….”
“너는 어떻게 아르칸 님께 호감이 생겼는데?”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긴데, 아마 다 들으면 여러분들도 호감이 생기실 겁니다.”
제피로스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아르칸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약 이들이 아르칸 님의 신하가 되면 새로운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아르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
아르칸 마왕성 2계층.
아르칸에게 충성을 맹세한 수인족 마왕들과 그를 따르던 부하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이 수인족 마왕은 모두 셋.
마수를 조종하는 구미호 수인 나미라.
강렬한 독을 내뿜는 뱀 수인 베리나.
피를 다룬다고 해서 붉은 악몽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쥐 수인 아그나르.
원래 이웃해 있던 이 마왕들은 일신의 마력도 큰 차이가 없었고, 마왕성의 규모도 비슷했다.
그 때문인지 서로 다투는 것 없이 친하게 지냈었다.
특별한 고민 없이 함께 연합에 들어갔을 정도였다.
이 인연은 연합이 아르칸에게 패배해 그 부하로 들어갔을 때까지 이어졌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욱 돈독해졌다.
대마왕 제니칼이 아르칸의 부하가 되었다고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우정도 끝이 보이는 듯했다.
아르칸과 함께 대마왕 제니칼의 영역에 잠입한 나미라가 시리디움 정글 속 엘로라 마왕성에 고이 숨겨진 성장의 샘물에 들어간 탓이었다.
“성장의 샘물, 이거 효과가 정말 굉장해!”
나미라의 마심장은 4성에서 5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우 수인족이라고 하기에 민망했던 모습에서 꼬리가 아홉 개가 달린 구미호 수인이 되었다.
심지어 권능도 강화되어 마수 조종이 유혹으로 바뀌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환골탈태하면서 삼인조 중에서 독보적으로 강해진 거였다.
게다가 마왕성으로 돌아와서 그간 겪었던 모험 이야기를 어찌나 하는지.
베리나와 아그나르는 처음에는 흥미롭게 듣다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이야기에 진절머리 치며 피하게 됐다.
거기다가 자신의 권능 자랑도 계속하다 보니 눈꼴사나울 수밖에 없었다.
“츠츳. 나미라 안 보이지? 이제 숨 좀 쉬겠네.”
“나도 답답했지 뭐야? 만날 자기 이야기만 하고,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오늘도 나미라에게 시달린 두 마왕은 투덜거리며 한숨을 돌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부럽긴 했다.
“츠츳. 구미호가 되다니 대단하긴 해.”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아? 아르칸 님을 따라가 성장의 샘물의 효과를 봤으니.”
“나도 따라갈 걸 그랬네.”
“아르칸 님의 지명이었으니 어쩔 수 없잖아? 아닌가?”
“츠츳. 모르지. 나미라를 부르는 거 보고 우리는 안 불러서 다행이라고 했잖아.”
“하긴, 처음엔 위험하다고 생각했었지? 아르칸 님이랑 마주치면 같이 가자고 할지도 모른다고 피했었지…….”
아그나르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말끝을 흐렸다.
결과적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는데 놓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미련을 못 버린 그들은 아쉬워하며 말했다.
“츠츳, 성장의 샘물……. 우리한테 주시지는 않겠지?”
“나미라가 말했지 않아? 거기서 가져온 샘물 그리 많지 않다고 말이야.”
그렇게 베리나와 아그나르가 함께 시무룩하고 있을 때, 뒤에서 웬 목소리가 들렸다.
“성장의 샘물 줄 건데? 누가 안 준대?”
익숙한 목소리에 베리나와 아그나르가 고개를 휙 돌렸다.
거기에는 예상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
“츠츳, 아르칸 님!!”
“방금 그 말 정말이세요?”
“그럼, 내가 왜 거짓말하겠어?”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유리병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성장의 샘물이 든 유리병이었다.
“츠츳.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한테 성장의 샘물을 주시다니, 정말 믿기지 않네요!”
‘원래 줄 생각이었는데, 괜히 뜸을 들인 셈이 됐네.’
아르칸은 뛸 듯이 기뻐하는 둘을 보니 약간 미안했다.
곧 침공해 오는 대마왕 제니칼과 싸우려면 쓸 만한 전력은 모두 동원해야 했다.
당연히 부하들에게도 성장의 샘물을 줘서 전력을 강화할 작정이었다.
다만, 가져온 성장의 샘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누구에게 줄지 선별해야 했다.
제일 처음으로 줄 대상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로 아르칸 마왕성의 경비대장인 센시아.
문제는 센시아가 현재 부재중이라는 거였다.
센시아는 경비대장인 자신보다 강한 자들이 차례로 아르칸의 부하가 되는 걸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아르칸에게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여긴 거였다.
그렇게 고민하던 센시아는 거인의 진정한 힘을 일깨워 오겠다며 고향인 거인섬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성장의 샘물을 주고 싶어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아무래도 좀 더 기다려야 하나 보네.’
아르칸은 하는 수 없이 센시아 몫을 빼놓고, 다른 부하들에게 성장의 샘물을 나눠 줬다.
오크 로드인 나크룸은 아쉽게도 별다른 효과를 못 봤고, 트릴과 데시무스는 놀랍게도 거절했다.
자신들이 마셔도 딱히 크게 향상될 것 같지가 않다는 거였다.
솔릭은 기꺼워하면 마셨고, 마심장이 1등급 상승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해츨링인 피용을 드래곤으로 만들거나, 세계수를 순식간에 거대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크게 효과가 없었다.
그나마 효과가 있는 건 단번에 2등급이 올라간 볼가와 구미호가 되어 권능의 효율이 높아진 나미라 정도.
이렇다 보니 나머지 수인족 마왕 두 사람에게 성장의 샘물을 안 줄 이유가 없었다.
베리나와 아그나르는 아르칸에게서 성장의 샘물을 건네받아 냉큼 삼켰다.
먼저 변한 건 베리나의 몸이었다.
베리나의 상반신은 인간의 여성, 하반신은 뱀이었는데, 상반신마저 뱀의 비늘로 덮인 거였다.
하지만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부가 갑자기 벗겨지더니, 그 아래에 새로운 비늘이 나타난 거였다.
베리나는 뱀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이전 피부를 벗어 던졌다.
그 후, 그녀의 비늘은 더욱 단단해졌을 뿐만 아니라 체형도 조금 커졌다.
“츠츳, 확실히 강해진 거 같아.”
베리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뱀 혀를 내밀었다.
그 시각 아그나르도 변화를 마쳤다.
뿔이 커지면서 등에 박쥐와 같은 날개가 돋아났다. 거기에다가 기다란 꼬리가 생겨났는데, 그 끝은 화살촉 같았다.
그걸 본 베리나가 말했다.
“츠츳, 악마족 같네.”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 줄래?”
아그나르는 질색하면서도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변화된 모습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둘 다 확실히 강해진 거 같네. 축하해.”
“츠츳, 감사합니다.”
“아르칸 님이 정말 고맙다고 할까나?”
베리나와 아그나르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하지만 게티아로 확인한 보니 아쉽게도 둘 다 나미라처럼 마심장도 1등급밖에 오르지 않았고.
호감도도 꽤 오르긴 했지만, 신하가 되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아쉽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군.’
한편 아르칸의 원래 세계의 속담처럼,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아르칸 마왕성에 포로로 잡힌 대마왕 제니칼의 심복인 레오녹스와 수인족 마왕 삼인조였다.
“흐흐, 아르칸이 분명 성장의 샘물을 들고 우리를 찾아올 거야.”
너무 공공연하게 떠들어 대서 아르칸의 귀에도 그 이야기가 들어왔다. 아니, 아르칸더러 들으라고 시끄럽게 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르칸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내가 미쳤다고 걔들한테 성장의 샘물을 써?’
무시하려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대마왕 제니칼이 보낸 사신이 선전포고를 위해 아르칸 마왕성에 도착한 거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