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전투준비 (7)
“쯧, 오늘도 올 기미가 안 보이나?”
레오녹스가 비스듬하게 누워서 물었다.
이곳은 4계층 외곽의 감옥.
대마왕 제니칼의 심복이자 파벌 간부인 레오녹스와 수인족 마왕 셋, 이들에게 딸린 그 부하 마족들이 포로로 잡혀 있는 곳이었다.
두더지 수인족이 바닥에 옆얼굴을 대고 있다가 대답했다.
“네, 근처에 아르칸의 말소리는 물론이거니와 기척도 전혀 안 들립니다.”
레오녹스는 손톱을 우물우물 깨물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 슬슬 아르칸 녀석 귀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텐데.”
그러자 옆에 있던 곰 수인족 마왕 아크테아가 크게 하품을 하더니 말했다.
“그냥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럴 리가!”
레오녹스는 버럭 화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침팬지 수인족 마왕 란카리가 입을 열었다.
“나도 레오녹스 님 말씀에 동의해. 곧 제니칼 님이 쳐들어오신다는데 우리 도움 없이 막아지겠어?”
“웅얼웅얼.”
“아루나도 고블린 손이라도 필요할 때래.”
여우 수인조 마왕 아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란카리가 설명했다.
“그런데 왜 대체 안 찾아오는 거야? 아, 그렇군. 이거 내가 잘못 생각했다.”
대체 뭘 잘못 생각하는 거지?
난데없는 소리에 모두 레오녹스를 쳐다봤다.
“꼴에 마왕이라고 먼저 손 내밀기 창피하다 이거지. 망나니 마왕답지 않나?”
“아,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크테아가 납득하면서 묻자 레오녹스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아쉬운 건 아르칸이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초조해하다가 마지막에는 찾아올 거야.”
“그러면 이제 감청 그만해도 될까요?”
두더지 수인족이 물었지만, 레오녹스는 무시하며 말을 이어 갔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
“문제라니요?”
“그 성장의 샘물이라는 게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다. 여기저기 퍼 주다가 내 몫도 남기지 않고 다 써 버리면 어쩐단 말이냐.”
그 말에 다른 마왕들과 마족들도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여기서 들은 말에 따르면, 수인족은 어지간해서는 성장의 샘물 효과를 보는 상황.
자신들도 꼭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네.’
한편 바람의 정령, 제피로스를 통해 대화를 엿듣고 있던 아르칸은 기가 막혔다.
슬쩍 뒤를 본 아르칸은 먼저 레오녹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목소리에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잘 지내고 있나 봐?”
아르칸의 등장에 수인족 마왕들과 부하들이 깜짝 놀랐다.
레오녹스가 주장한 대로 정말 아르칸이 찾아와서였다.
같은 이유로 레오녹스의 얼굴도 밝아졌다.
하지만 레오녹스는 곧바로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대꾸했다.
“나야 잘 지내고 있지. 그쪽은 잘 못 지내는 거 같지만.”
“여기 있으면서도 이런저런 소식을 잘 듣는 모양이네.”
아르칸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두더지 수인족의 특성으로 엿듣는 건 미처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배신자가 내통하는 건 아니었다. 감각이 뛰어난 수인족인 데다, 엿듣는 데 특화된 특성을 가진 수인족 마족이 있었다.
무엇보다 성장의 샘물의 효과를 본 볼가와 나미라도 있으며, 세계수마저 대뜸 자라서 마왕성 한가운데 떡 하니 차지했다.
‘이래서야 성장의 샘물을 모르기도 힘들지.’
“그래서 무슨 용무인가? 아니, 가타부타 말하는 건 내 성미에 안 맞는군.”
대뜸 그렇게 말한 레오녹스는 아르칸에게 제안했다.
“성장의 샘물을 다오. 그러면 제니칼에 맞서 싸워 주지.”
“놀랍군. 제니칼 님에게 충성을 맹세한 거 아니었어? 심복이잖아.”
“흥. 충성? 심복? 그거 다 헛소리다. 서로 이용하는 관계일 뿐이지. 그 더러운 성질에 한번 시달려 보면 너도 깨달을걸. 충성할 만한 녀석인지 아닌지.”
“레오녹스!”
레오녹스가 이죽거리고 있을 때, 아르칸의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익숙한 목소리에 레오녹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듯했다.
“트릭시?? 네가 여긴 왜…….”
트릭시는 토끼 수인족으로 레오녹스와 같은 대마왕 제니칼의 심복.
이곳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제니칼 님은 자네가 잘 지내고 있냐고 보고 오라고 하셨는데, 감히 배신하다 못해 제니칼 님을 욕해?”
“그게 오해야……. 오해.”
레오녹스가 황급히 부정했지만, 트릭스는 자신의 크고 긴 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해는 무슨, 내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네. 자네 생각은 잘 알겠으니. 내 제니칼 님께 오해하지 않으시도록 똑똑히 전하겠네.”
“어이, 잠깐. 트릭시! 내 이야기 좀 들어 보라니까!”
한바탕 쏘아붙인 트릭시가 돌아가려는 걸, 레오녹스가 불렀지만.
트릭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렸다.
“젠장,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레오녹스가 혀를 찼다.
무엇보다 골치 아픈 건, 자신과 달리 저 녀석은 대마왕 제니칼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심복 중 하나라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인족 중에서 약하다고 비교적 무시당하는 토끼 수인족이었다.
그런데 제니칼 님의 눈에 띄어서 지금 위치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분명 돌아가서 시시콜콜 이를 게 분명했다.
‘그러면 제니칼은 나를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뛸 테지.’
안 그래도 큰일 났다 싶었는데,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르칸이 말했다.
“이러면 제니칼이 너를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뛸 거 같은데?”
마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한 것 같은 말에 레오녹스가 인상을 썼다.
“함정에 빠트리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무슨 소리야? 트릭시 님이 선전포고 하러 온 김에 포로를 만날 수 있냐고 묻길래 안내해 준 것뿐인데.”
“크윽.”
물론, 레오녹스의 말대로 함정에 빠트리려고 한 건 맞았다.
함정에 유인하기도 전에 자기가 알아서 다이빙해 버렸지만.
무엇보다 잔뜩 화를 내고 간 만큼, 제니칼에게 그대로 일러바쳐서 제니칼을 분노에 차게 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분명 무리하고 실수가 나오겠지.’
대마왕 제니칼을 어떻게 흔들까 고민하던 차에 레오녹스가 알아서 상황을 유도해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게 일거양득이지.’
그때 레오녹스가 말했다.
“……책임져라.”
“뭐라고?”
뜬금없는 소리에 자신의 귀를 의심한 아르칸이 되물었다.
“너 때문에 이렇게 궁지에 몰렸으니 책임지란 말이다.”
‘이런 억지를 부리다니.’
아르칸은 기가 막혔지만,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래, 책임져 줄게. 대신 내게 충성을 맹세해.”
“피의 계약을 하란 말인가?”
“당연하지. 돌아갈 길은 방금 네가 불태웠잖아.”
“……알겠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 녀석은 센 척하는 것과 달리 쉽게 굴복했다.
그런 와중에 욕심은 많지만.
“대신에 내게 성장의 샘물을 다오. 이제 네 부하이지 않느냐?”
‘군주라면 이런 욕심과 욕망도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겠지?’
아르칸은 추한 레오녹스의 모습이 못마땅했지만, 나무라는 대신 품에서 성장의 샘물을 꺼냈다.
“이거?”
“그래, 그거 말이다.”
“얼마 안 남아서 그냥은 못 주지. 이제 남은 건 세 명분밖에 없거든. 하는 거 보고 열심히 싸우는 녀석에게 줄 거야.”
그 말에 레오녹스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마왕들을 포함해 다른 수인들 모두 눈을 반짝였다.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말만 들어 보면, 자신에게 잠재력만 있다면 일개 마족도 마왕이 될 수 있는 상황.
거기다가 수인족은 대체로 근자감이 높기에 자신에게 숨겨진 잠재력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엇보다 남은 게 한 명분이 아니라, 세 명분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한 명을 뽑는다면 가망성이 매우 낮았지만, 못해도 세 명 안에는 들 자신이 있었다.
달라진 분위기를 보며 아르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열심히 싸울 거 같네.’
***
며칠 뒤.
제니칼 대마왕성은 완전히 뒤집혔다.
아르칸 마왕성에 선전포고 하고 돌아온 트릭시가 폭탄을 던졌기 때문이다.
“레오녹스 그 녀석이 감히 제니칼 님을 모욕했습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네! 성질이 더럽다고, 충성할 가치가 없다고 말입니다.”
트릭스의 말에 제니칼은 일단은 부정했다.
“내 심복인 레오녹스가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이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충성이니 심복이니 하는 거 다 헛소리라고 말입니다. 서로 이용하는 관계일 뿐이라나.”
“그, 그런…….”
제니칼은 충격을 받았는지 그 거대한 몸이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렸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예뻐해 줬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그걸 본 다른 부하들이 얼른 레오녹스를 성토했다.
“저런 빌어먹을 놈을 봤나. 제니칼 님이 용서하셔도 저는 용서 못 합니다.”
“제가 가서 가죽을 벗겨서 데려오겠습니다.”
“아르칸보다 더욱 괘씸한 녀석입니다.”
그 말에는 제니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르칸은 어찌 잘 빌면 목숨만은 부지시켜 줄 생각이었지만, 레오녹스는 절대 용서 못 한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니칼의 선언에 부하들은 큰 목소리로 찬동했다.
한편 점점 과열되는 분위기를 잠자코 지켜보던 아바로스는 난감했다.
안 그래도 제니칼 님은 즉흥적인데 이렇게 흥분해서는 일을 그르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혹시 마왕 아르칸이 이걸 의도한 건 아니겠지?’
아바로스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요즘 잘나간다고 해도 망나니 마왕으로 유명했던 아르칸이 그런 계략을 꾸몄다고는 믿기 어려워서였다.
무엇보다 아바로스는 아르칸이 어렸을 때 직접 본 적도 있었다.
바리스탄 대마왕성에서 대마왕들 간의 회합이 열렸을 때였는데, 어찌나 개차반이던지 막내가 아니었다면 대마왕 바리스탄 파벌의 미래가 암울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게 연기면 정말 기가 막힌 연기력이지.’
그때 제니칼이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아바로스!”
“아, 네, 대마왕님.”
“준비는 모두 끝났나?”
“아직……. 아니, 끝났습니다.”
그가 입안한 계획의 준비는 아직 조금 남았지만, 제니칼이 눈에 불을 켜고 묻는 바람에 준비가 끝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작전에 필수적인 준비는 이미 한참 전에 완료됐다는 거였다.
제니칼을 오래 모신 만큼 자주 변덕을 부리는 걸 아는 아바로스의 나름대로의 대응책이 빛을 발한 거였다.
“좋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다!”
제니칼은 그렇게 말하면서 옥좌의 양 팔걸이를 잡아당겼다.
옥좌가 그대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체구라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 보니 옥좌에 승강기 기능을 붙여 둔 거였다.
그 옥좌가 향하는 곳은 대마왕성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통제실.
마정석을 조종하기 위해서였다.
그걸 보며 아바로스가 외쳤다.
“츠츳, 다들 뭣들 하고 있어? 어서 전에 정해 준 위치로 가!”
“아, 맞다. 잘못하면 낀다면서.”
“어서 피해야 해. 근데 어디로 가지?”
뒤늦게 수인족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르겠으면 대피소로 들어가! ”
당황하는 수인족들을 보며 다시 외친 아바로스는 얼른 통제실로 뛰어 내려갔다.
도착하니 제니칼이 그 기다란 코로 한창 마정석을 조작 중이었다.
“왔나? 시작한다.”
“네.”
아바로스의 대답을 들은 제니칼이 재차 마정석을 조작하자, 주변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 난 건 아니었다.
대마왕성이 움직이고 있는 거였다.
마왕성은 생명체처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곳으로 이동도 가능했다.
마력 소모가 컸지만, 대마왕 성쯤 되면 그 마력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기에 그리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렇게 영역 경계까지 이동해서 아르칸 마왕성을 침공할 작정이었다.
이러면 보급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대마왕성의 병력을 마음껏 보내고 제니칼도 직접 나설 수 있으니 부담이 적었다.
이 대마왕성 이동 원정이야말로 아바로스가 제안하고 제니칼이 흥미롭다고 채택한 계획이었다.
“아르칸 기다려라! 내 반드시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
제니칼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 시각 아르칸은 길리암이 불렀다기에 잔뜩 기대하며 공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 오리할콘 무기가 드디어 완성된 모양이군.’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