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아르칸 vs 대마왕 제니칼 (1)
의외였던 건 길리암이 연구실이 아니라 공방으로 아르칸을 불렀다는 거였다.
공방은 브롬이 돌아간 뒤 도린이 쓰고 있었는데, 길리암은 도린과도 잘 협력해서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내 무기도 도린의 도움을 받았겠지.’
예상대로 공방에 가니, 길리암과 도린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 밖이었던 건, 길리암이 내놓은 무기였다.
“이건 갑옷도 아닌 거 같고……. 옷 맞지?”
그건 흔히 갑옷을 거치할 때 쓰는 나무 토르소에 얹혀 있었는데, 아주 얇은 철판으로 만든 옷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길리암 특유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게, 길리암이 준비한 오리할콘 장비가 맞는 듯했다.
‘무기라기에 검이나 화살 같은 걸 만들 줄 알았는데…… 하다못해 갑옷도 아니고 옷이라니.’
아르칸이 당황하고 있자, 도린과 길리암이 권했다.
“그냥 옷이 아니라 마력복이라고 할까? 그렇게 보지만 말고 한번 입어 봐.”
“겉옷은 벗고 입으셔야 해요.”
“어.”
그 말대로 아르칸은 겉옷을 벗은 뒤, 마력옷을 입기 위해서 들었다가 살짝 놀랐다.
철판으로 되어 있기에 무거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주 가벼웠기 때문이다.
어색한 동작으로 마력복을 입었는데, 소매가 아주 길어 손가락 끝까지 덮을 지경이었다.
“이거 소매는 좀 잘라야겠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
길리암이 웃으며 말하는 것과 동시에 마력복에 새겨진 마법진에서 황금빛이 나왔다.
그 순간 마력복이 수축하더니 아르칸의 몸에 착 달라붙었다. 길었던 소매도 수축하더니 장갑처럼 변했다.
“신기한데? 마치 옷이 아니라 피부를 입은 느낌이야.”
“오리할콘 원석이 아주 부드러워서 그래.”
생각해 보니 용사의 후손들도 오리할콘을 구겨서 들고 있었다.
“어디 한번 힘을 써 보세요. 마력 발산 장갑이랑 같은 느낌으로요.”
“그래 볼까? 그럼…….”
아르칸은 바로 앞의 나무통을 보고는 검지와 엄지를 펼쳐 권총 모양으로 한 뒤, 앞으로 겨눴다.
“앗! 잠시만!”
도린이 깜짝 놀라며 아르칸을 잡았다.
“왜? 마력 조금만 사용할 거야.”
마탄 장갑을 자주 써 온 아르칸은 어느 정도 위력이 나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길리암도 심각한 얼굴로 경고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요. 어느 정도 효율이 나오는지 저도 정확히 계산이 안 되니까요.”
“저기 쏴, 저기.”
도린은 벽에 단단히 고정해 놓은 갑옷을 가리켰다.
“알았어.”
아르칸은 다시 권총 모양으로 손가락을 편 뒤, 갑옷을 향했다.
탕!
총알 소리와 함께 마탄이 발사됐다.
“오! 괜찮은데?”
그 결과를 본 아르칸은 감탄했다.
원래라면 피탄 흔적만 남을 정도의 마력을 담아 마탄을 날릴 생각이었는데, 갑옷을 완전히 꿰뚫은 거였다.
“호오, 예상보다 출력이 잘 나오네.”
도린도 놀란 기색이었다.
그때 노트에 뭔가를 쓰면서 계산하기 바빴던 길리암이 말했다.
“이번에는 저기에 전력으로 한번 쏴 보시겠어요?”
길리암이 가리킨 건 방패로, 위에 아주 작지만 마석이 달려 있었다.
이른바 마방패라는 것으로,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떡없고 심지어 마법이나 아주 미약한 오러 블레이드까지 한두 번은 막아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했다.
마력 석궁이면 모를까, 마력 발산 장갑을 사용해서는 전력으로 마탄을 날려도 흠집 하나 내긴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효율이 많이 높아졌으니 저기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건가?’
아르칸은 이번에는 길리암의 말대로 전력을 다해 보기로 했다.
전신의 마력을 손끝으로 최대한 모았다.
더 모을 수는 있었지만, 손끝이 점점 딱딱해지는 느낌이 들어 방출했다.
탕!
“헉! 이 정도일 줄이야.”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갑옷에 이어 마방패까지 꿰뚫는 데 성공한 거였다.
“정말 대단한데?”
“훗, 제가 좀 대단하죠. 도린이 잘 도와준 덕분에 만들 수 있었지만요.”
길리암이 잘난 체하더니 도린까지 칭찬했다.
어쨌거나 아르칸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지금도 이 정도 위력이지만, 신하를 더 늘려서 마력이 더 늘어나면 그 위력이 비례해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마력 공유로 부하들의 마력을 모으면 필살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마력을 더 모아서 쏠 수 있을 거 같은데…….’
“다른 연구도 생각 중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마석이랑 연구 자금이 많이 필요한데…….”
“물론 최대한 지원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 도린도 마찬가지야.”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헤헷.”
“이거 길리암 덕분에 가만히 있다가 덕을 보는군.”
도린도 기뻐했다.
“참, 마력복 벗어 주실래요? 방금 실험 결과를 토대로 조금 더 조정하려고요.”
“그래, 근데 그 전에 한 번 더 써보고 싶은데? ”
“방금 전력을 다하신 거 아닌가요?”
“다른 방식으로 한번 써 보려고.”
“네, 한번 해 보세요. 도린, 이건 어떻게 생각해?”
“어디 보자.”
아르칸이 다시 마방패 앞에 섰을 때, 길리암은 도린과 함께 종이에 뭔가 써 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 봐야지.’
아르칸은 검지 끝을 겨누는 대신, 손바닥을 펼쳤다.
손가락 끝으로는 전신의 마력을 모으기 힘드니, 손바닥으로 모아 보려는 거였다.
‘느낌 괜찮은데?’
짐작대로 손바닥으로 모으니 전신의 마력이 모이고도 조금 여유가 있었다.
‘맞다, 마력을 더 끌어올 데가 있지.’
아르칸은 이마의 뿔이 품고 있는 마력마저 끌어왔다. 그러자 손바닥의 마력이 넘쳐서 응축되는 게 느껴졌다.
거기에 반응했는지 마력복에서 황금빛 마법진이 빛났다.
‘이 정도가 한계인가?’
아르칸은 더 모으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 마력을 방출했다.
콰쾅!
난데없는 굉음에 이야기를 나누던 길리암과 도린이 화들짝 놀랐다.
“무, 뭐예요?”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마탄을 쏜 것뿐인데 저렇게 될 줄이야…….”
아르칸이 멋쩍어하며 대꾸했다.
마방패를 부수는 걸 넘어서 공방의 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훨씬 강한데?’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길리암의 물음에 아르칸은 자신이 전신의 마력뿐만 아니라, 뿔에 느껴지는 마력까지 끌어와 늘렸다고 설명했다.
“호오. 그렇군요. 방출 면을 늘려서 마력을 응축해서……. 뿔의 마력까지……. 앗!”
길리암은 그 설명을 흥미롭게 들으며 중얼거리더니 아르칸의 얼굴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그, 그게 뿔이…….”
“자네 뿔이 사라졌네.”
도린의 말에 이마를 만져 봤다가 깜짝 놀랐다.
정말 이마의 뿔이 만져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진정했다.
“괜찮아. 원래도 없었으니까.”
“그래요? 금방 뿔에서 마력을 끌어오셨다고 하는데, 정말 마력을 모은 게 사라져서 그런가 봐요.”
“그러면 마력이 회복되면 다시 생기려나.”
“그럴 가능성이 큰데, 장담은 못 하겠네요.”
“그렇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긴 했다.
아르칸은 완전히 날아가 버린 공방의 벽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라면 충분히 승산 있겠어.’
그때 트릴이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아르칸 님! 제니칼 마왕군이 영역 근처까지 넘어왔답니다.”
“벌써? 선전포고 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선발대가 인근에 대기하고 있었나?”
“아닙니다. 고블린의 보고에 따르면 대마왕성이 경계까지 이동해 온 거라고 합니다.”
“뭐라고? 대마왕성이?”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마왕성이 이동할 줄은 알았는데,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대마왕성까지 움직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어떡합니까?”
“흠. 예상 밖이긴 한데 작전은 변함없다. 나크룸에게 작전대로 하라고 전해.”
지시를 내린 아르칸은 마력복을 벗어 길리암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빨리 조정해 줘야 할 거 같아.”
“네, 알겠습니다.”
***
아르칸이 보고받은 것처럼 제니칼 대마왕성은 영역 경계까지 이동했다.
다만 바리스탄 영역으로 넘어오지는 않았는데, 그렇게까지 했다가는 바리스탄이 움직일지 몰라서였다.
‘내 계산대로라면 이 정도로는 움직이지 않아.’
아바로스가 정찰병들의 보고를 정리하며 씩 웃었다.
제니칼 대마왕성이 움직이기 전, 대마왕 키클로테스에게 연락해서 바리스탄 경계 쪽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대마왕 키클로테스는 그 요청에 응해 줘서 경계까지 대마왕성을 움직일 수 있었다.
영역을 넘진 않았지만, 근처로 이동한 것만으로도 원하는 효과는 충분히 얻고도 남았다.
심지어 인근의 바리스탄 파벌 마왕들은 은밀히 접촉해 자신의 마왕성만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해 왔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대마왕 제니칼에게 무참히 밟힐까 두려웠던 탓이다.
그러지 않더라도 대부분 마왕성은 문을 걸어 잠그고 폐쇄했다.
레오녹스가 쳐들어갈 때와 달리 방해를 하나도 받지 않게 된 거였다.
그 반응들을 보고하자, 대마왕 제니칼은 만족했다.
대마왕성에 있던 이들도 아바로스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걸 보고 감탄했다.
하지만 원정은 아바로스의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보고 끝에 대마왕 제니칼이 말한 거였다.
“다른 마왕성은 무시하더라도 한 군데는 꼭 밟아 두어야 할 곳이 있다.”
그건 최근 최초의 오크 마왕이 탄생해서 화제가 된 오크 로드 나크룸의 마왕성이었다.
아르칸이 마정석을 주고 마왕이 되게 해 줬을 정도로 아주 친밀했기에, 본보기를 보여 주기 제격이긴 했다.
하지만 아바로스는 그 공격에 찬성하진 않았다.
아직은 마왕성 랭킹에도 못 오를 정도로 약했다.
먼저 나서서 앞을 가로막지 않는 이상, 괜히 힘을 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찰병의 보고로는 다른 마왕들처럼 마왕성을 걸어 잠그고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부하들은 대마왕 제니칼의 말에 찬성했다.
이번 원정에서 뭐라도 성과를 내고 싶었던 거였다.
아바로스는 여전히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꼭 반대해야 할 명분도 없는 탓에 제니칼이 공격을 허가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오크 마왕을 치겠다고 나서는 와중에, 제니칼의 선택을 받은 건 마왕 블러드팽이었다.
블러드팽은 붉은 늑대 수인족 마왕으로, 일체의 무력은 레오녹스보다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마왕성 랭킹 58위. 현재의 아르칸보다 10위 이상 높다.
마음만 먹으면 오크 마왕성 물론, 아르칸 마왕성도 혼자 무너트리고도 남을 전력이 있다는 말이었다.
“크하하핫! 제니칼 님, 감사합니다. 단숨에 무너트려 보이겠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한 블러드팽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나크룸 마왕성으로 달려갔다.
“블러드팽 님! 마왕성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 왜 열려 있지?”
“저항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 아닐까요?”
“쯧, 나와서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봐줄 거 없다. 들어가서 모두 박살 내 버려!”
“워우우우우우우우우!”
블러드팽의 지시에 붉은 늑대 수인들은 기뻐하며 크게 하울링을 한 뒤, 마왕성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내부가 텅텅 비어 있는 게 아닌가?
“마왕님,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야, 어떻게 된 거냐.”
“혹시 도망친 거 아닐까요?”
그 말에 블러드팽이 폭소를 터트렸다.
“오크가 겁쟁이처럼 도망을 치다니!”
옆에 있던 부하들도 함께 한참 비웃다가 물었다.
“근데 어떡합니까?”
“하는 수 없지. 일단 통제실에 마정석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돈 될 만한 거나 좀 챙겨서 돌아가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블러드팽도 딱히 마정석을 남겨 놓고 갔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확인은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통제실로 내려가는데,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났다.
‘대체 무슨 냄새지?’
지독하지만, 맡아 본 적이 없는 냄새였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갑자기 저 안쪽에서부터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하, 함정이었나! 대체 어떻게?”
블러드팽은 기겁하면서도 의문을 품었다.
그로서는 평생 해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아르칸이 빈 마왕성에 기름을 뿌려 놓고, 불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한테 적이 들어오면 불을 지르라고 시킨 거였다.
아르칸은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속으로 웃었다.
‘계획대로야.’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