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아르칸 vs 대마왕 제니칼 (2)
작전을 성공시킨 아르칸이 속으로 웃기만 한 건, 옆에 이번 작전을 위해 마왕성을 내놓은 오크 로드 나크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정석은 가지고 나왔지만, 마력 손실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전투를 피한 것 때문에 용감하지 못하다며 오크로서 자존심이 상했을 게 분명했다.
아르칸은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 첫 마왕성인 만큼 지키고 싶었을 텐데.”
“크취익! 신경 쓸 필요 없다. 이번 전쟁의 지휘관은 아르칸! 지휘관의 말에 따랐을 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나크룸은 진심으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승리를 위해서 작전상 후퇴하는 건 용맹한 거랑 관계없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그래도 이번 전쟁이 끝나면 새로 마왕성을 육성하는 데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앞으로 더욱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텐데, 그 대비기도 했다.
그때 나크룸이 말했다.
“대신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확실히 이 전쟁부터 이기는 게 먼저였다.
“물론, 그럴 생각이야.”
그렇게 대답한 아르칸은 몸을 돌렸다.
“그럼 다음 작전을 준비하러 가 볼까?”
***
그 시각 나크룸 마왕성 안은 난리였다.
불길이 미리 뿌려 놓은 기름을 타고 붉은 늑대 수인족 마왕 블러드팽과 그 부하들을 덮쳤기 때문이다.
“젠장, 후퇴다! 다들 어서 나가!”
다급히 외친 블러드팽은 자신을 덮쳐 오는 불길을 뚫고 달렸지만, 부하 중 대부분 불길에 잡혀 쓰러졌다.
그나마 강인한 수인족이라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빠져나왔지만, 문제는 털에 잔뜩 불이 붙은 채라는 거였다.
“크아아악!”
“뭐 해! 어서 불을 꺼라! 아직 탈출하려면 좀 더 가야 한다!”
겨우 2계층으로 올라온 블러드팽은 비명을 지르는 부하를 다그쳤다.
“안 됩니다, 불이 안 꺼져요!”
“뭐라고?”
놀란 블러드팽은 부하들의 털에 붙은 불을 손바닥으로 쳐 봤지만 꺼지지 않았다.
수인족의 털은 일반적인 동물과 다르다.
털이 품고 있는 마력 덕분에 어지간한 갑옷보다 단단하고 내열 방한 효과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불이 붙더라도 쉽게 꺼지는 편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거 보통 불이 아니다.’
단순히 골탕 먹는 수준의 함정이라고 여겼던 블러드팽은 위기감을 느꼈다.
“안 되겠다. 일단 나가, 다들 나가!”
블러드팽은 그렇게 외치면서 가장 먼저 내빼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나머지 부하들이 허둥대며 그 뒤를 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마왕성이 3계층에 불과해서 금방 나올 수 있었다는 거였다.
밖으로 나온 블러드팽은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핏빛처럼 붉어 상대를 위협하던 붉은 털은 검게 그을리고 먼지를 뒤집어써 볼품없었다.
무엇보다 화상의 통증이 엄습해 왔다.
그래도 명색이 마왕, 아프다는 티를 낼 수 없어서 참아 냈다.
‘조금만 지나면 회복될 테니까 조금만 참자.’
블러드팽은 주변을 둘러봤다.
부하들은 공포와 고통에 짓눌린 얼굴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화상이 심한지 앓는 소리를 냈다. 조용한 건 그대로 기절한 녀석들과, 어떻게 밖으로 나오긴 했으나 결국 숨이 끊어진 녀석들뿐이었다.
안에서 그대로 타 죽은 부하들도 있을 게 분명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전투 한 번 못 해 본 채 패배한 거였다.
그때 마족 부하가 다가와 말했다.
“마왕님, 이대로 있을 게 아니라 본대에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무슨 소리냐, 우리는 아직 건재하다. 작은 함정에 빠진 것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들 많이 다쳤긴 해도 붉은 늑대 수인족. 살아 있기만 하면 뛰어난 재생력이 회복시켜 줄 터였다.
당장 블러드팽만 해도 화상의 통증이 조금씩 완화되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자신 있게 나섰는데 지원을 요청했다가는 한심하다며 제니칼 님께 혼쭐이 날지도 몰랐다.
부하도 그런 사정을 알기에 다시 말했다.
“대마왕 제니칼 님께 지원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다른 마왕님이나 하다못해 간부들에게라도 도움을 청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임무를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가 아니라 나중에라도 성과를 낼 만한 임무를 맡으려면 전력을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해야 한다니까요.”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 좀 듣지 그래?”
“스노우펄,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블러드팽이 인상을 쓰며 쏘아붙였다.
스노우펄은 흰 늑대 수인족 마왕으로, 마왕성 랭킹도 무려 56위나 됐다.
마왕성 랭킹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보니 라이벌 관계였다.
“그보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마왕성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 걸 보고 아바로스가 보내서 왔지.”
“그 녀석이 쓸데없는 짓을…….”
이를 가는데, 스노우펄이 자신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쓸데없는 짓이라니 아바로스가 섭섭해하겠는데? 이렇게 화상약과 회복 포션도 내줬는데 말이지.”
그걸 본 블러드팽의 눈이 번쩍 뜨였다.
빨리 전력을 회복하려면 저것들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받아. 난 너를 대신해서 아르칸 마왕성을 치러 가야 하니까.”
“좋아. 얼른 회복해서 도와주지. 그리고 말이야, 마왕성 안에서 난 불이 있지…….”
“됐어, 네 도움 따윈 필요 없으니까. 얌전히 짜져 있어.”
스노우펄은 그렇게 말하고는 부하들과 함께 가 버렸다.
자신들을 덮친 불이 심상치 않다고 전해 주려던 블러드팽은 황당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내 도움 따윈 필요 없다 이거지? 어디 한번 골탕 먹어 봐라.”
***
반면 스노우펄도 블러드팽을 보며 혀를 찼다.
“쯧, 블러드팽 녀석. 한심하기는.”
“마왕님, 출발 준비 끝났습니다.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우리는 이대로 아르칸 마왕성으로 달려간다!”
스노우펄의 단호한 말에 부하가 걱정했다.
“금방처럼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조심해야 하지 않습니까?”
“걱정할 거 없다. 이제 다른 마왕성도 없으니 함정이라고 해 봐야 얼마나 대단한 함정을 준비했겠느냐.”
스노우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예상과 달리 함정 때문에 피해가 컸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마수들이 미친 듯이 덤비질 않나.
구덩이 함정에 빠졌더니 수없이 많은 독사와 흡혈박쥐가 있어서 애를 먹었다.
‘이건 분명 먼저 항복한 수인족 마왕들의 작품이 틀림없어. 절대로 가만 안 두겠다.’
이를 갈면서 함정에서 겨우 벗어났더니, 수십 명의 엘프와 마주친 게 아닌가.
‘마계에 이 많은 엘프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더욱 놀라운 일은 어지간해서는 마족을 보면 도망치기 바빴던 평화주의자 엘프들이 감히 공격해 왔다는 거였다.
“이것들이 미쳤나. 다 쓸어버려.”
난데없는 전투가 벌어졌지만, 함정을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이쪽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신나게 싸우던 스노우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엘프들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성가시게 정령까지 동원할 뿐만 아니라, 한 엘프는 오러 블레이드까지 썼는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했다.
그 덕분에 마족 여럿이 죽고, 스노우펄도 중상을 입고 도망쳐 간신히 목숨만 부지할 수 있었다.
“대체 저 엘프들은 어디서 온 거지? 저 카퓨 산맥에서 넘어온 건가? 아르칸 이 자식은 이런 엘프들이 자기 근처에 자리 잡을 동안 대체 뭘 한 거야?”
영문을 모르는 스노우펄은 아르칸의 탓을 하며 원망했다.
우연하게도 적절한 원망의 대상이긴 했지만.
한편 블러드팽보다 타격이 컸던 스노우펄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대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
“이것들이 자신만만하게 나가더니 꼴좋구나.”
제니칼이 차가운 얼굴로 블러드팽과 스노우펄을 쏘아봤다.
두 마왕은 움찔했다.
아무래도 50위권인 마왕인 만큼 쉽게 죽이진 않겠지만, 또 어떤 성질을 부릴지 몰라서였다.
일이 심각해지기 전에 아바로스가 나섰다.
“두 마왕의 잘못이 아니라, 아르칸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잘못 판단한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아르칸은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이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를 위해 안배해 둔 게 많을 테지요. 아마 빠르게 오르고 있던 랭킹도 그런 것들이 효과를 냈던 게 틀림없습니다.”
“음. 그런가?”
“이곳이라면 보는 눈도 적을 테니 몰래 힘을 기르기 좋지 않습니까? 두 마왕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확실히 그런 거 같긴 하군. 역시 지금 싹을 밟아 두러 오길 잘했어.”
제니칼이 납득하자 블러드팽과 스노우펄이 안도했다.
실은 둘 다 정면으로 싸운 게 아니라, 근거가 부족했지만.
제니칼한테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니칼은 몸이 근질거리는지 비비 꼬며 물었다.
“그보다 이제 내가 나서도 되겠나?”
바로 직접 나서서 싸우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기껏 대마왕성까지 여기까지 끌어왔으면서 아바로스는 제니칼의 출정을 최근까지 막았다.
대마왕 바리스탄이 나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바로스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네. 이제 제니칼 님이 나서 주실 때입니다. 현재 바리스탄 대마왕은 키클로테스 대마왕과 상대하는 중, 이동문을 고려해도 단숨에 오긴 어려울 겁니다.”
제니칼은 그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언젠가 바리스탄 녀석과도 한판 붙어서 내가 더 강하다는 걸 가르쳐 줘야 할 텐데. 둘 다 대마왕이다 보니 마음 놓고 싸울 방법이 없단 말이야.”
“붙는 방법이야 있지요.”
“뭐냐?”
“이번에 아르칸을 잡아다가 바리스탄더러 붙자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바로스의 말에 제니칼이 폭소를 터트렸다.
“크하핫! 그러면 되겠군. 역시 넌 머리가 좋단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럼 어디 한번 움직여 볼까?”
그렇게 말한 대마왕 제니칼이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
“모두 내 뒤를 따라와라!”
대마왕성 밖으로 나온 제니칼이 앞장서며 외쳤다.
그러자 아까와 판이하게 다른 전개가 펼쳐졌다.
마수들은 제니칼을 보자마자 겁먹고 움츠리며 덤빌 엄두도 못 냈고, 함정은 그대로 밟아서 무너트렸다.
이 근처에 있다던 엘프들은 숨어 버렸는지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블러드팽과 스노우펄은 그 광경에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애먹은 걸 이렇게 쉽게 돌파하시다니요.”
“역시 제니칼 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훗, 별거 아니다.”
기다란 코를 훔친 제니칼이 다시 앞장섰다.
그 뒤로도 거침없이 아르칸 마왕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왕성 문이 특이하군.”
제니칼의 말대로 마왕성 문은 마력을 얼마나 소모해서 만드느냐에 따라 돌이나 강철로 이뤄진다.
그런데 아르칸 마왕성의 문은 그냥 나무 문도 아니고, 거대한 나무줄기가 엉켜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블러드팽이 나서더니 마왕성 문을 공격했다.
6성급 마심장을 가진 수인족 마왕답게 매서운 발톱으로 문을 할퀴었다.
그런데 꼼짝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뭐 해? 장난칠 때가 아니다. 못 하겠으면 나와.”
스노우펄이 기회다 싶었는지 끼어들어서 발톱을 휘둘렀지만, 마찬가지로 문을 뚫는 데는 실패했다.
그걸 본 제니칼이 질타했다.
“그것도 못 하더니, 문도 내가 열어 줘야겠느냐.”
“아,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황급히 대답한 두 마왕은 이번에는 힘을 합쳐 동시에 문을 공격했다.
그러자 겨우 문이 부서져 내렸다.
“잘 보셨죠?”
“……저희가 해냈습니다.”
두 마왕은 그 말을 끝으로 나가떨어졌다.
아바로스는 그 둘을 보며 의아했다.
‘아무리 함정에 당했었다고 해도 저 정도 되는 마왕들이 이 정도로 지치다니, 대체 문에 어떤 장치가 되어 있길래…….’
한편 제니칼은 마왕들에게는 시선도 두지 않고 외쳤다.
“자, 문이 열렸다. 돌격!”
“돌격!”
대마왕성의 간부인 토끼 수인족 트릭시가 따라 외치며 부하들을 이끌고 마왕성 안으로 들어갔다.
저 안쪽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건, 같은 대마왕성 간부였던 사자 수인족 레오녹스와 수인족 마왕들이었다.
“배신한다고 하더니, 정말 제니칼 님 앞을 가로막는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인제 와서 더 변명하진 않겠다.”
그렇게 두 마족과 부하들이 싸우는 옆으로 제니칼 마왕군이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한편 아르칸은 통제실에서 그 광경을 보며 다음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