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아르칸 vs 대마왕 제니칼 (3)
“젠장! 후퇴하라!”
레오녹스는 적이 물밀듯 밀려 들어오는 걸 보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달아났다.
이대로는 상대가 안 될 거라고 판단한 거였다.
‘이런, 예상보다 빠르네.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니야? ’
아르칸은 혀를 찼다.
레오녹스에게 슬슬 도망치라고 바람의 정령으로 명령을 내리려 했지만, 그 전에 도망치기 시작한 거였다.
‘크게 상관은 없지만.’
아르칸은 마정석을 조작해 마왕성 내부를 바꾸기 시작했다.
미리 여러 갈래의 미로로 만들어 둔 내부를 움직여 제니칼 마왕군의 병력을 분리한 거였다.
“레오녹스, 더 도망치지 말고 거기서 싸워.”
-아르칸 님? 하지만 적이…….
“거기로는 40명가량만 보냈다. 그 정도는 이길 수 있겠지?”
-흐흐, 맡겨 주십시오.
자신들의 숫자보다 적이 적다는 소식에 레오녹스는 순식간에 돌변해 전의를 불태웠다.
아르칸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른 팀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거기로 적이 갈 테니까, 전투준비 해.”
참고로 현재 아르칸 마왕군은 모두 다섯 개 조로 나누어져 있다.
레오녹스가 수인족 2조.
오크 로드 나크룸이 있는 오크조.
엘프 미네가 이끌지만, 용사가 엘프로 위장해 함께 움직이는 엘프조.
나미라, 베리나, 아그나르 수인족 삼인방의 수인족 1조.
오웬과 볼가가 이끄는 마왕성 경비대조.
아르칸은 마정석으로 보면서 미궁 통로를 움직여 대마왕 제니칼의 병력이 미궁에서 헤매도록 조작하는 한편.
레오녹스에게 상대하게 했던 것처럼, 적당히 병력을 쪼개서 조별로 보냈다.
만일의 사태에는 미궁 내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정령들은 보내기 위해 대기시켰다.
각 조는 선전했다.
일단 아르칸이 최대한 상대할 만한 숫자랑 싸우게 유도한 덕분이었다.
덕분에 이쪽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제니칼 마왕군의 수는 빠르게 줄여 나갈 수 있었다.
보통은 이런 작전을 펼치고 싶어도 못 한다.
마왕성 내부를 이렇게 계속 바꾸는 데는 마력 소모가 극심한 데다, 통제실에서 병력을 지휘하기도 어려우니까.
이번에 아버지인 대마왕 바리스탄으로 지원받은 마석 덕분에 마력 소모를 무시하고 마음껏 조종할 수 있었고.
중급 바람의 정령 제피로스가 무전기 역할을 해 준 덕분에 명령을 내리고 대답을 듣기가 아주 쉬웠다.
반면에 마왕성 내부로 들어간 병력이 복잡한 미궁에 진입하는 바람에 하나둘 연락이 안 된다는 보고를 받은 아바로스는 등골이 서늘했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아무래도 수상쩍습니다. 물러나서 전력을 정비할 수 있게 후퇴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래? 후퇴하라고 해. 나는 들어간다. 아니, 내가 들어가서 후퇴하라고 하지.”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아바로스가 기겁하자 제니칼이 피식 웃었다.
“위험하다고, 이 내가?”
그 말에 아바로스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긴,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대마왕 제니칼이 나선다면 혼자서도 아르칸 마왕성을 초토화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여기서 힘을 너무 빼시면, 다른 대마왕을 상대하기 힘들 겁니다. 직접 나서실 필요 없이, 전력을 재정비하고 다시 공격하면 충분히 함락시키고도 남습니다.”
“반대로 부하들의 피해가 크겠지. 그렇다면 내가 얼른 해치우는 게 낫다. 내 마력은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니까.”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제니칼이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았다.
‘하긴 그게 안 됐다면, 대마왕이 되지도 못했겠지.’
아바로스는 내심 감탄하면서도 말했다.
“그러면 저도 들어가서 아예 통제실을 공략하겠습니다.”
“그래. 내 뒤를 따라와라.”
제니칼은 그렇게 말하면서 막사를 박차고 나와 아르칸 마왕성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아바로스는 이곳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마족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그 뒤를 따라갔다.
마왕성 안에 들어간 대마왕 제니칼은 발을 쿵! 하고 굴렀다.
그러자 마왕성이 지진이 난 것처럼 크게 뒤흔들렸다.
한창 싸우던 이들은 순간 놀라 전투를 멈출 정도였다.
“여기 대마왕 제니칼이 왔다! 마왕 아르칸은 피하지 말고 나와 싸우자!”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제피로스의 도움이 없더라도 제일 아래, 지하 5계층 통제실에 있는 아르칸에게 까지 닿았다.
“예상대로 직접 나섰군.”
아르칸은 계획대로 적당히 맞장구쳐 주기 위해서 마정석을 조작했다.
대마왕 제니칼이 있는 1계층을 아주 크게 늘린 거였다.
주변을 살펴본 제니칼이 만족스러워했다.
“흐음. 망나니인 줄만 알았는데, 나름대로 예의를 아는 녀석인가.”
제니칼이 만족스러워하는 와중에 뒤늦게 따라 들어 온 아바로스가 말했다.
“제니칼 님, 조심하십시오. 이제까지는 설마설마했는데, 마왕 아르칸은 정말 보통이 아닌 거 같습니다. 어쩌면 그간 망나니 마왕으로 불렸던 것도 위장일지도요.”
“그런가. 알겠다. ”
“빈말이 아닙니다. 무슨 수를 숨겨 놨는지 모릅니다.”
“명심하지.”
제니칼의 반응에 아바로스는 살짝 놀랐다. 자신이 아는 제니칼이라면 잔소리를 듣기 싫다며 투덜거리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진지해야 할 상황인가.’
그렇게 짐작한 아바로스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제니칼 님, 이거 받아 주십시오.”
“뭔가?”
아바로스가 준 건 작은 주머니였다.
“만에 하나 위험에 처하시면 이 안에 든 걸 먹으십시오.”
기다란 코로 주머니를 받아 와 그 안을 본 제니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미리 염두에 둔 건가?”
“네, 화내실까 봐 미리 말은 안 했습니다만…….”
“알았다. 쓸 일은 없겠지만 들고는 있지.”
제니칼이 작은 주머니를 품에 넣는 걸 본 아바로스는 병사들을 이끌고 제니칼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제니칼 님, 부디 무탈하시길.’
***
“음, 제니칼뿐만 아니라 병력이 더 들어왔잖아. 통제실을 노리려는 건가?”
마정석을 지켜보면 아르칸이 턱을 쓰다듬었다.
현재 마왕성 내부로 들어왔던 제니칼 마왕군은 대마왕 제니칼이 왔다는 말에 전투를 포기하고 제니칼에게 합류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제니칼 뒤를 따라온 병력이 제니칼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간 거였다.
일종의 별동대 같았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아르칸은 마정석의 점을 보며 말했다.
상대는 대답할 리 없었지만, 아르칸도 대답을 들을 여유는 없었다.
이제 바로 대마왕 제니칼을 상대하기 위해서 통제실을 나섰기 때문이다.
***
“제니칼 님! 오셨군요!”
“그래, 내가 왔다! 내가 저 녀석들을 해치워 주마!”
마족 트릭시의 외침에 제니칼이 나섰다.
후퇴하는 제니칼 마왕군을 쫓아온 레오녹스가 이끄는 수인족 2조는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제니칼이 발을 구르자 죄다 넘어지고, 휘두른 기다란 코에 맞기라도 하면 신체가 터져 나갔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투력.
‘젠장, 언제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레오녹스가 혀를 찼다. 트릭시만은 이번 기회에 해치우겠다고 도망치는 걸 쫓아 나왔다가 날벼락을 맞은 거였다.
‘안 되겠다, 도망쳐야지.’
“레오녹스! 어딜 가느냐!”
레오녹스가 내빼려는 걸 발견한 제니칼이 소리쳤지만, 레오녹스는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붙잡혔다가는 험한 꼴을 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딜.”
제니칼의 기다란 코가 더욱 늘어나더니 그대로 레오녹스를 휘감았다.
“크아앗!”
레오녹스가 빠져나가려고 온 힘을 썼지만, 마력까지 동원해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한 레오녹스는 언제 저항했었냐는 듯이 실없이 웃었다.
“헤헷. 제니칼 님, 오셨습니까.”
“이런 뻔뻔한 녀석. 나를 배신하고도 살 생각이었냐?”
“배신하고 싶어 한 건 아닙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이해해 주십시오.”
“그래, 이해해 주마.”
“저, 정말입니까?”
놀란 레오녹스가 되물었지만, 제니칼은 차가운 얼굴로 대꾸하면서 코에 힘을 줬다.
“그래. 이해하지만, 너를 일벌백계할 수밖에 없는 나도 이해해 다오.”
“네? 안 됩니다. 지금은 아르칸 녀석과 계약 때문에 안 되지만, 그 녀석을 죽이면 다시 충성을 다하겠…… 크으윽.”
레오녹스는 끝까지 애원했지만, 제니칼은 그 말을 듣는 대신 더욱 힘을 줬다.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버티던 레오녹스는 이내 풍선처럼 터져 나갔다.
그 피를 뒤집어쓴 제니칼이 말했다.
“배신자는 죽인다.”
“배신자는 죽인다!”
트릭시가 환호하며 따라 하자 다른 부하들도 목소리 높여 동조했다.
한편 레오녹스가 처참하게 죽는 꼴을 보고 경악한 수인족 마왕들과 부하들은, 제니칼이 외치는 소리에 얼굴이 사색이 됐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음.”
제니칼이 입을 다물고 마왕성 안쪽을 노려봤다.
그 시선 끝에는 이쪽으로 걸어오는 엘프가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엘프는 오른손에 오러 블레이드를 들고 있었다.
엘프로 위장한 용사였다.
원래 용사의 힘이라면 혼자서 제니칼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여신이 용사 자격을 신용사에게 주면서 힘을 거둬 가고, 성검도 반납하는 바람에 전투력이 반감됐다.
그나마 도린이 만들어 준 성검보다 강한 오리할콘 검이 있기에 8성급에 준하는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용사의 뒤로 블랙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블랙 드래곤 피용도 마심장 8급. 그 육신의 힘까지 따지면 제니칼도 쉽게 우위를 점하기 힘들었다.
그 밖에도 볼가와 오웬을 비롯해 나미라와 아그나르, 베리나와 같은 수인족 마왕들과 중상급 정령들까지 출동했다.
제니칼을 상대하기 위해 정예 대부분을 총동원한 거였다.
나머지도 뒤에 있었는데, 제니칼의 부하들을 상대하게 할 작정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제니칼에게 타격을 주지 못해서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르칸이 나왔다.
아르칸은 사뭇 진지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제니칼에게 말했다.
“대마왕 제니칼 님. 이쯤 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물러가시지요.”
“나를 막아 낸 거로 네 이름만 날리고? 거절한다. 원래라면 혼쭐만 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널 죽이고 이 마왕성의 마정석까지 갖겠다.”
제법 위협적인 전력을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대마왕에게는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괜히 대마왕이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아르칸도 어디까지나 예의상 권했을 뿐, 가능하면 이 자리에서 잡고 싶었다.
대마왕성에 쳐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끌어들여 싸우도록 만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아르칸은 모든 전력을 총동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심은 세계수의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었다.
‘긴말할 거 없다.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해!’
“뿌우우우우우우! 나를 따르라!”
제니칼이 그렇게 말하면서 코를 수직으로 세워 울었다.
그 소리에 제니칼의 부하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제니칼이 육중한 몸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아르칸은 권능, 군주의 깃발을 사용한 뒤 부하들에게 외쳤다.
“공격!”
그러자 용사부터 모든 부하가 일제히 제니칼 마왕군에 달려들었다.
두 마왕군의 대격돌이 시작된 거였다.
잠시 후.
아르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준비했는데도 막상막하라니…….’
대마왕 제니칼은 예상외로 너무 강했다.
그동안 준비했던 게 하나라도 모자랐으면 터무니없이 밀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 내게는 비장의 카드가 있지.’
문제는 제니칼도 여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 때문에 아르칸은 적재적소에 쓰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전투를 주시하고 있었다.
정작 제니칼도 당황하는 중이었다.
‘저 망나니 마왕이라는 아르칸의 부하들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자신이 전력을 발휘한 게 아니라고 해도, 이 정도로 선전할 거라고는 예상 못 한 참이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나.’
아까 아바로스가 경고한 게 떠올랐다.
보통이 아닌 것 같다고, 망나니 마왕이라 불렸던 것도 위장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혹시 바리스탄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
제니칼은 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
그동안 보였던 망나니 모습은 주위를 방심시키려는 위장이고, 실제로는 현 마계의 구도를 깰 힘을 모은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거였다.
어쩌면 대마왕 키클로테스도 그걸 알기에 자신을 위해 협력해 준 걸지도 몰랐다.
‘이렇게 된 이상, 아르칸만은 내가 데려간다.’
결심한 대마왕 제니칼은 자신의 숨겨진 힘을 꺼내기 위해 집중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