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아르칸 vs 대마왕 제니칼 (4)
‘젠장, 언제까지 버텨야 해?’
아르칸은 뒤편에서 제니칼을 노려보면서 투덜댔다.
치열한 전투 중에도 아르칸은 제니칼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봤다.
현재는 어느 한쪽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상막하의 상황.
아무래도 혼자서 여럿을 상대하는 제니칼이 먼저 지칠 거라 생각하고 기회를 노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지칠 기미가 안 보였다.
‘괜히 대마왕이 아니라는 건가.’
아르칸이 혀를 차는데, 마침 제니칼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제니칼의 눈빛이 의미심장한 게, 심상치가 않았다.
‘설마 지금인가?’
아르칸의 짐작대로 제니칼은 숨겨진 힘을 일깨웠다.
그 증거로 점점 상아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거였다.
일반적인 상아와 달리 마력이 담긴 상아. 저게 다 튀어나와 활성화되면 마력이 대폭 상승한다.
제니칼이 다른 대마왕들에게 승리를 자신하는 것도 이걸 믿고 있어서였다.
다만, 활성화되는 직후에는 빈틈이 생기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 뿔과 상아의 마력을 공명시켜 마력 폭발을 일으킨다.
소설 속 용사가 대마왕들에게 협공당할 때, 이 불의의 공격에 당하는 바람에 쉽게 위기에 빠졌었다.
하지만 아르칸은 오히려 이 마력 폭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력 폭발 직후, 제니칼은 잠깐 무방비해지기 때문이다.
즉, 이 공격을 막아 내기만 하면 승기를 잡은 거나 다름없었다.
‘무조건 막아 낸다.’
한참 뒤에 있던 아르칸이 앞으로 나오면서 외쳤다.
“다들 비켜!”
마심장이 4성밖에 안 되는 아르칸이 대마왕 제니칼의 일격을 막아서다니. 미친 짓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아르칸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바로 정령의 가호였다.
정령의 가호를 가지고 있으면 정령들이 위급할 시 도움을 준다.
정령이 드문 마계에서라면 물에 빠지는 걸 건져 준다든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걸 막아 준다는 식으로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대처해 주는 게 전부겠지만.
아르칸 마왕성에는 세계수가 있다.
당연히 정령들이 잔뜩 모여 있고, 그 모여 있는 정령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거기다가 세계수가 마정석에 심어져 마왕성에 연결되어 있기에, 세계수를 움직여 방어막을 펼치는 것도 가능했다.
“제피로스, 내가 공격당하기 직전에 세계수로 내 앞을 막아.”
어디에나 존재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제피로스에게 마정석을 조작하라고 조용히 지시한 아르칸은 마력 폭발에 대비했다.
그사이 커다란 상아를 완전히 불러낸 제니칼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내게 덤빈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그 순간 제니칼의 뿔과 상아가 떨리며 공명하더니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제니칼이 아르칸이 기다리던 마력 폭발을 사용한 거였다.
‘됐다.’
아르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가려는데, 그 앞에 뭔가가 나타나 가로막았다.
그걸 본 아르칸은 당황했다.
‘아니, 대체 왜??’
***
블랙 드래곤 피용은 코끼리 수인족 대마왕과 비슷한 덩치인 만큼 정면으로 맞붙고 있었다.
피용이 날개를 퍼덕이며 깨물려고 해도, 제니칼이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방해했다.
꼬리를 매섭게 휘둘러도 간단히 막혔다.
“피, 분해.”
반대로 제니칼이 기다란 코로 후려치는 건 간신히 막아 내는 게 전부였다.
옆에서 용사와 정령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자신의 장기인 드래곤 브레스를 쓸 수는 없었다.
열받는다고 아빠의 마왕성을 초토화할 수는 없었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아빠의 말에 따르면 저 코끼리 아줌마가 지쳐서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이 쓰러트릴 기회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코끼리 아줌마가 어느새 움직임을 멈추더니 어금니가 점점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평소라면 웃었겠지만, 지금 피용은 웃을 수가 없었다.
코끼리 아줌마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마력 변화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직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강대한 마력의 흐름이었다.
‘이건 위험해!’
피용이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깨달았을 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비켜!”
자신처럼 위험을 감지한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정작 아빠는 뒤로 피하기는커녕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설마 혼자 막으시려고? 안 돼!’
자신보다 약한 아빠가 나서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분명 죽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한 피용은 지면을 박차고 아르칸의 앞으로 뛰었다.
***
용사는 피용이 제니칼의 정면을 맡아 주고 있을 때, 좌·우측을 번갈아 파고들면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신출귀몰한 공격에 제니칼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문제는 새로 얻은 오리할콘검의 성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용사가 약해진 탓에 전보다 공격력이 낮다는 거였다.
이거로는 아무리 힘 있게 휘둘러도 제니칼의 두껍고 마력으로 보호되는 가죽에 생채기밖에 낼 수 없었다.
‘그래도 썩 나쁜 기분만은 아니군.’
강한 적을 상대로 동료들과 함께 싸우는데도 마음이 편했다.
그 동료라는 게 하필이면 마왕군인 게 문제였지만.
‘음?’
순간 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상치 않은 마력을 느낀 용사가 제니칼을 노려봤다.
전시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위험한 게 올 거라며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렸다.
“훗.”
이것도 혼자서 싸웠으면 몰랐을 텐데, 동료와 함께 싸우는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들 비켜!”
아르칸도 눈치챘는지 외쳤다. 그 소리에 용사는 아르칸을 슬쩍 봤다.
‘이것도 다 아르칸 녀석 덕분이야.’
이런 자신의 마음은 아르칸에게 들키면 절대로 안 된다.
‘들킨다면 아르칸을 죽여 버리는 수밖에 없지……. 음?’
용사는 의아했다.
다들 비키라고 경고했던 아르칸이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니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
약해진 지금의 자신으로서도 무사를 자신하기 어려울 정도.
‘설마 그걸 알고 자신의 몸으로 막으려는 건가?’
그러나 이대로 아르칸이 죽기를 내버려 두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젠장, 나 말고 다른 녀석에게 죽으면 절대 용서 못 해.”
용사는 혀를 차며 아르칸의 앞을 가로막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
제니칼을 상대하는 건, 피용과 용사가 전부는 아니었다.
성장의 샘물 덕에 6성급 마력을 가지게 된 백호 수인족 볼가와, 인공 마심장으로 5.5성급이라는 전성기 이상의 마력을 갖게 된 오웬도 있었다.
참고로 정령들은 전체적으로 전장을 보조했고, 그 외 나머지들은 제니칼의 부하를 상대했다.
어쨌든 이들도 아르칸의 지시대로 물러섰다가 아르칸이 나오는 걸 보고, 몸을 사리지 않고 아르칸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퍼엉!
굉음이 마력 폭발이 일어났다는 걸 알리는 것과 동시에 폭풍 같은 바람이 주변을 휩쓸었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칼날처럼 날아오는데, 거기에 휘말린 모두는 사지가 찢겨 나가는 듯했다.
오웬은 마력검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충격에 오랜만에 피를 토했고.
볼가는 순간, 실질적인 의미로 죽다가 살아났다. 처음으로 초월 부활을 쓰게 된 거였다.
용사는 다치기 전에 다행히 아르칸이 줬던 수호의 팔찌가 발동했다.
‘아, 이게 있었지.’
피용도 크게 다치진 않았다.
여럿이 아르칸을 지키겠다고 나선 덕분에 공격이 많이 약화한 거였다.
정령의 가호와 세계수를 동원해 막을 생각이었던 아르칸은 아차 싶었다.
다들 이렇게 반응하리라는 걸 미처 예상 못 한 거였다.
‘충성심이 높은 것도 문제라니…….’
심지어 제니칼의 부하들을 상대하던 부하 중에서도 아르칸이 위험에 처한 걸 보며 나서려고 했던 이도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한다고 나서는 것 자체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감성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지.’
제니칼의 특수 능력, 마력 상아가 안정을 찾기 전에 공격해야 했다.
“흥, 내 일격을 막다니 대단하군. 하지만 다들 느끼겠지만, 나는 이제 대마왕을 능가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르칸은 이죽거리는 제니칼을 향해 손바닥을 향하고 손을 쫙 뻗으며 마력 대포를 준비했다.
동시에 권능 스킬인 마력 뿔과 마력 공유로 다시 한번 마력을 모았다.
“마력을 모아 봐야 나한테는 상대가 안 된다.”
그걸 본 제니칼이 다시 한번 이죽거렸다.
그 말대로 이제 4성급 마력에 불과한 아르칸이, 강력한 신하들의 마력을 모두 긁어모은다고 해도 7성급에 겨우 도달할 정도.
그 정도라면 마심장 9성급에다가 마력 상아를 활성화해 9.5성급 마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한 제니칼로서는 가소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니칼이 간과한 게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아르칸의 마력 대포는 마력 연구자인 길리암이 개발한 마력복을 통해 위력을 높인 거라는 점.
두 번째는 아르칸이 제니칼 자신도 모르는 제니칼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거였다.
“잔소리 말고, 이거나 먹어!”
펑!
아르칸의 손바닥에서 거대한 마력 덩어리가 발사했다.
원거리 공격인지 몰랐던 제니칼은 순식간에 날아온 마력탄을 피하지 못했다.
마력탄이 노린 것은 상아.
마인족의 뿔과 달리, 상아에는 마력이 응집되어 있음에도 그 강도는 뿔에 못 미쳤다.
그 때문에 강한 충격에 못 버티고 터져 나갔다.
‘소설에서도 죽기 직전 용사의 저항에 상아가 부서져서 나뒹굴었지.’
지금처럼.
뻐억.
문자 그대로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제니칼의 상아가 부러져 나뒹굴었다.
동시에 극심한 통증을 버티지 못한 제니칼이 바닥에 엎어졌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코로 있는 힘껏 포효했다. 그 소리에 마왕성이 뒤흔들릴 정도.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진동에 다들 넘어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 했다.
그 와중에 아르칸이 외쳤다.
“엘사! 다른 쪽 상아를 베어 버려!”
“목을 치는 게 아니라?”
“상아!”
용사는 이해가 안 되는 듯 반문했지만, 아르칸은 상아를 치라고 재차 외쳤다.
결국, 용사는 아르칸의 뜻대로 반대편 상아도 공격해 잘라 냈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제니칼은 비명과 같은 포효를 한층 더 크게 터트렸다.
동시에 눈이 뒤집힌 게, 누가 봐도 치명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이제 최후의 일격만 남은 상황.
대마왕 제니칼의 부하들은 자신의 모시는 주군이 궁지에 몰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거산이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본 대마왕 제니칼의 부하들이 선택한 길은, 도망이었다.
***
‘휴, 천만다행이네.’
아르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몸을 날려 자신을 구한 걸 보고, 이를 따라서 제니칼 앞을 가로막고 구한다고 나섰으면 작전이 일그러질 뻔했다.
상아를 파괴하면 순간적으로 전투 불능에 빠지지만, 대마왕답게 금방 회복한다.
다시 대치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대마왕성에서 지원 병력을 더 부르거나. 아예 대마왕성을 더 끌고 와 마왕성 대결이라도 펼치면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아르칸으로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
통제실로 후퇴해 농성하는 거였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이동문으로 바리스탄 대마왕이 와서 도와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몇 명은 와서 지킬 줄 알았는데. 죄다 도망가다니.’
아르칸은 혀를 차면서도 새삼 자신을 위해 나서 준 이들이 고마웠다.
그때 용사가 앞으로 나섰다.
마왕 킬러답게 대마왕 제니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앗, 지금 죽이면 안 되는데.’
아르칸이 나서서 막으려고 할 때였다.
제니칼의 몸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