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아르칸 vs 대마왕 제니칼 (5)
“뭐지? 어디로 갔어?”
“어떻게 된 거야?”
난데없이 제니칼이 사라지는 바람에 아르칸을 포함해 아르칸 마왕군은 물론, 제니칼의 부하들까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했다.
그때 혼자 침착하던 오웬이 잠깐 고민하더니 아르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동의 마석을 쓴 거 같습니다.”
“이동의 마석?”
“네, 본디 이동문을 제작할 때 쓰는 건데, 위기 시 탈출용으로도 쓰인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데…….”
심지어 소설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마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오웬 정도 되니까 아는 모양이었다.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데다 일회용에, 아무나 못 쓰는 희귀품이라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이동문처럼 장거리 이동도 불가능합니다.”
“설마, 대마왕 성을 이리로 끌고 온 것도?”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군요.”
“제니칼의 부하 중에 제법 신중한 녀석이 있나 보군.”
“아마 아바로스의 짓일 겁니다. 제니칼 파벌의 참모로 유명한 자이지요.”
오웬답게 다른 대마왕성의 인재도 파악하고 있던 모양.
‘참모로 유명하다고? 탐나는데?’
아르칸 마왕성만 유지할 게 아니라, 앞으로 세력을 늘려 나갈 걸 고려하면 필요한 인재기도 했다.
‘부하로 삼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지만.’
문제는, 그 뒤에 이어진 오웬의 말이었다.
“아까 제니칼이 마왕성 안에 들어왔을 때, 지나쳐서 안쪽으로 들어간 마족입니다. 뱀 수인족이죠.”
“뭐라고?”
아르칸은 그때 따로 빠졌던 제니칼의 부하들을 떠올렸다. 분명 뱀 수인족이 하나 있었다.
4계층에서 한참 헤매도록 미로로 만들어 뒀기에 가도록 내버려 둔 거였다.
대체로 단순한 수인족이 단시간에 그 미로를 뚫고 갈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참모급 두뇌를 가진 마족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젠장! 오웬, 여기 정리 부탁해. 나는 통제실로 가 보겠다!”
“괜찮으십니까?”
“일단은.”
아르칸은 그렇게 대꾸하고 마왕성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뒤를 용사가 따라왔다.
“무슨 일 있나?”
“아직 큰일이 생긴 건 아닌데, 혹시 모르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아르칸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제피로스에게 물었다.
“아래로 내려간 침입자는 지금 어디쯤 있나?”
“4계층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그사이 미궁을 절반 가까이 통과한 모양, 그래도 늦은 건 아니었다.
아르칸은 발걸음을 빨리해 아바로스를 쫓아갔다.
***
대마왕 제니칼이 눈을 떴을 때는, 대마왕성 통제실 안이었다.
“이곳으로 보내다니 아바로스 녀석, 처음부터 내 패배를 염두에 뒀던 건가…….”
제니칼은 입맛이 씁쓸했다.
자기가 발동한 회심의 일격을, 아르칸의 부하들이 앞장서서 막는 모습은 솔직히 조금 감탄했다.
몇몇은 부하로 받아들여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
그런데 뜻밖에도 아르칸의 공격에 상아가 부러지고 반대편 상아도 무려 오러 블레이드를 쓰는 엘프가 잘라 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황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왔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실망스러운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주군을 위해서 목숨 바쳐 막으려고 나왔던 아르칸의 부하들과 달리, 자신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도망치기 바쁜 거였다.
‘이런 괘씸한 일이…….’
분노한 제니칼은 벌떡 일어나 부하들을 혼쭐을 내 주고 싶었지만, 강력한 오러 블레이드를 쓰는 엘프가 다가오고 있었다.
당장은 저 녀석을 피해 목숨부터 부지하는 게 우선이었다.
‘젠장, 어서 코가 움직여야 할 텐데…….’
심지어 저 엘프는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자신을 찢어 죽이고 싶은 듯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엘프랑은 딱히 원한 관계도 없는데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대하는 것 같았다.
‘팔을 하나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도망치는 수밖에……. 아, 맞다!’
제니칼이 어느 정도 희생까지 결심했을 때, 아바로스가 자신에게 이동의 마석을 준 걸 깨달았다.
절대로 쓸 일 없다고 여긴 데다, 한창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이라 미처 그 존재를 까먹은 거였다.
평소라면 헛짓거리하지 말라고 혼냈을 테지만, 아르칸은 그래도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 무슨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 뒀을지 몰랐다.
그게 조금 걸려 받아 두기만 한 거였다.
‘근데 어디에 넣어 뒀더라.’
그때 엘프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니칼은 허겁지겁 품을 뒤져서 겨우 주머니를 찾아내, 그 안에 든 이동의 마석을 깨물었다.
콰직!
그 덕분에 여기로 도망쳐 올 수 있었다.
“휴, 오랜만에 진땀 뺐군.”
그때 제니칼이 통제실에 있는 걸 발견한 집사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제니칼 님? 아르칸 마왕성으로 가신 거 아닙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보면 모르나. 돌아왔지 않으냐.”
당황하는 집사에게 쏘아붙인 제니칼은 몸을 일으켜 옥좌에 앉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돼서였다.
이대로 다시 아르칸 마왕성으로 쳐들어가기도 꺼림칙했다.
쳐들어갈 병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대마왕성은 무려 9계층이나 됐다.
내부에는 마인족 병사급의 수인족이 8천 명 가까이 있고, 마족만 3백 명이 넘었다.
금방 쳐들어갔던 병력의 몇 배는 더 동원하고도 남았다.
다만 안에서 봤던 아르칸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아르칸의 부하들이 나서기 전에 아르칸 녀석이 뭔가 하려고 했어. 자신 있던 거로 봐서는 우습게 보면 안 돼.’
대마왕성의 병력을 빼기라도 하면 빈집 털이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적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금방 크게 혼쭐이 난 제니칼은 여느 때보다 신중해졌다.
무엇보다 다시 싸우러 가기에는 비장의 무기였던 상아가 부러진 게 너무 신경 쓰였다.
‘이렇게 타격을 입은 건 처음이라 회복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래도 그냥 둘 수도 없었다.
‘아니면, 최후의 수단으로 마왕성 대결을 시도해?’
마왕성을 움직여 다른 마왕성에 맞부딪쳐 연결한 다음 총력전을 펼치는 마왕성 대결!
이 대마왕성을 움직이면 결단코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자신이 그렇게 하면 아르칸의 아비인 대마왕 바리스탄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거였다.
대마왕 키클로테스에게 일부 영역을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직접 자신을 치러 올지도 몰랐다.
‘대체 어쩐다.’
고민하고 있을 때, 집사가 고민을 줄여 줄 소식을 전했다.
“맞다, 제니칼 님. 지금 남쪽 요새에 신용사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뭐라고? 정말이냐?”
“그것도 전과 달리 성검을 가지고 나타나서, 도저히 전처럼 막는 게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 그냥 둬서는 안 되겠군. 가자, 대마왕성을 이동한다.”
제니칼이 마정석을 조작하려는데, 집사가 물었다.
“지금 나가 있는 부하들은 어떡합니까? 아니, 어떻게 됐습니까?”
“모른다, 그딴 배은망덕한 녀석들 따윈.”
그렇게 쏘아붙인 제니칼은 아바로스를 떠올렸다.
자신이 도망칠 수 있도록 이동의 마석을 준비해 뒀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부하들과 달리 도망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마정석을 노리고 통제실로 향했다.
하지만 자신이 도망칠 때까지 아르칸이 멀쩡한 거로 봐서는 마정석을 확보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분명 통제실을 찾아 헤매다가 붙잡혔거나 죽었거나 했겠지.’
어느 쪽이라도 확실한 건 무능하다는 거였다.
‘애당초 여기까지 대마왕성을 이끌고 쳐들어오게 된 것도 그 녀석 탓이잖아.’
만약 아바로스가 대마왕성을 이끌고 오자고 제안하지 않았다면, 간부나 마왕들을 좀 보내고 말았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이런 개망신을 당할 일도 없었겠지.’
어느새 패배의 이유까지 아바로스에게 뒤집어씌운 제니칼은 살벌한 얼굴로 대꾸했다.
“신경 쓰지 말고 이동할 준비나 해. 곧 대마왕성을 움직인다.”
***
아르칸의 뒤를 따라오던 용사가 입을 열었다.
“아쉽게 됐군. 대마왕을 해치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용사의 바람과 달리, 아르칸은 이번에 대마왕 제니칼을 해치울 생각은 없었다.
안 그래도 제니칼이 도망치기 직전, 용사가 숨통을 끊으려는 거 막으려고 했던 참이니까.
왜 그런지 설명하려고 했던 아르칸은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저 앞에 아바로스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쪽에서도 알아보고 몸을 돌리더니 공격해 왔다.
“저건 마왕 아르칸?”
“겨우 엘프랑 둘이서 왔냐.”
“죽어라!”
“자, 잠시만. 기다려!”
아바로스가 말렸지만, 다들 아르칸을 해치워 공을 세우려고 눈이 뒤집힌 탓에 들어 먹질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르칸에게 닿기도 전에 바로 옆에 있는 엘프로 위장한 용사의 오러 블레이드에 쓰러졌다.
그것도 모두 단칼에 가로로 베여 넘어갔다.
그걸 본 아바로스가 혀를 내둘렀다.
“이런 강자가 엘프 중에 있다니 대단하군. 마치 용사 같다.”
그 말에 엘프로 위장한 용사가 찔려서 움찔했다.
‘설마 들킨 건가?’
정작 아바로스는 지나가는 말일 뿐인 듯 무심한 얼굴로 아르칸을 바라봤다.
“네가 여기 왔다는 건, 제니칼 님이 패배하신 건가…….”
“그렇지.”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바로스가 대뜸 말했다.
“마정석을 줄 테니, 제니칼 님의 시체를 넘겨다오.”
“시체? 제니칼은 도…….”
아르칸은 성급하게 말하려는 용사의 입을 막고 나섰다.
“마정석 몇 개나 줄 건데?”
“몇 개라니…….”
아바로스는 예상 못 한 질문인 듯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대마왕 제니칼의 시체를 건네받겠다면서 마정석 하나로 대신할 생각은 아니겠지?”
“내가 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조언은 어떠냐?”
“조언? 어디 해 봐. 듣고 판단하지.”
“지금 네가 제니칼 님을 해치웠다고 좋아하겠지만. 실제로는 좋은 일이 아니다.”
“왜? 제니칼이 무너지면 인간족들이 밀고 내려올 거라서? 제니칼의 영역은 난립하는 마왕들로 혼란해지고?”
“그걸 어떻게?”
아르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소설에서도 바리스탄이 죽고 난리였으니까.
그걸 피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책을 멀리하는 망나니라 들었는데, 제법 똑똑한데?”
“칭찬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소용없어.”
“내게 도움이 되는 게 없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그래? 그래도 뭔가 알려 주려고 했으니 나도 한 가지 정도는 알려 주지. 제니칼은 무사하다. 이동의 마석으로 도망쳤어.”
“뭐라고??”
화들짝 놀란 아바로스는 자신이 아르칸에게 한 방 먹었다는 걸 깨닫고는 슬쩍 째려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니칼이 이동의 마석에 대해 깜빡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적절하게 사용한 거였다.
“여차하면 이동의 마석으로 도망칠 수 있게 대마왕성을 끌고 오게 한 건 너였나?”
“그것 말고도 다른 이점도 있었지만, 염두에 둔 건 사실이다.”
“역시 그렇군.”
아르칸이 생각에 잠긴 걸 보고, 아바로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경고했다.
“한 가지 조언해 주자면 행여나 대마왕성을 쫓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대마왕성 안의 전력도 만만치 않게 강하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네 걱정이나 하는 게 어때?”
“죽일 생각인가? 여한이 없다. 죽여라.”
그 말에 용사가 나섰다.
“소원이라면 죽여 주마.”
“진정 좀 해.”
아르칸은 대뜸 나서는 용사를 말리며 아바로스에게 말했다.
“짐작했겠지만, 나는 피를 보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거든. 몸값만 받으면 돼.”
그 말에 아바로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정석을 주고 제니칼의 시체를 되찾으려고 한 만큼, 따로 마정석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정석을 원한다면 내 사람을 보내 마정석을 가지고 오라 하겠다.”
“그래도 되지만, 한번 시험해 보고 싶지 않나?”
“뭘 말이냐?”
미심쩍은 얼굴로 되묻는 아바로스에게 아르칸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말했다.
“이번에 네가 제니칼의 목숨을 구해 준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런 너를 구하기 위해서 마정석을 내주는지 궁금하지 않아?”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