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거인섬으로 (1)
한창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대마왕 키클로테스와 대마왕 바리스탄에게도 그 소문이 도착했는데, 그걸 알려 준 건 놀랍게도 본앰브로스였다.
본앰브로스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있지도 않은 혀를 찼다.
“완전 난장판을 만들었구먼, 난장판을.”
넓고 아무것도 없이 황량했던 사막 곳곳이 불타거나 뒤집혀 있었다.
사막이라서 다행이지, 도시나 마왕성이었다면 초토화되고도 남았을 상황이었다.
악마족 대마왕 키클로테스는 본앰브로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너희 둘이 한꺼번에 덤비기로 한 거냐? 그렇게 나온다면 제니칼도 나와 손을 잡을 텐데.”
“흥, 이미 손을 잡고 있는 걸 모를 줄 아느냐.”
바리스탄이 콧방귀를 뀌는데, 본앰브로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손을 잡기는 무슨. 제니칼 녀석, 아르칸에게 혼쭐이 났으니 한동안 몸 사릴 텐데? 주변의 반란을 막는 데만도 바쁠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 아르칸에게 혼쭐이 나다니?”
“그 말대로지 뭐. 아르칸이 마왕성으로 쳐들어온 제니칼을 쓰러트려서 쫓아냈거든. 이미 마계에 소문이 파다해.”
“그게 정말인가?”
바리스탄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안 그래도 제니칼이 대마왕성까지 움직여 아르칸 마왕성 지척까지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못 가서 초조해하던 참이었다.
최근 아르칸과 아르칸의 마왕성은 빠른 성장세를 보이긴 해도, 대마왕과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키클로테스가 빈틈만 보이면 얼른 이동문을 통해 아르칸 마왕성으로 순간 이동이라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제니칼을 막아 내다니.’
“맹랑한 녀석이지? 전에도 말했지만, 그런 자식이 있는 게 참 부럽단 말이지.”
그 칭찬에 바리스탄이 뿌듯해하는데 키클로테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쯧, 바리스탄. 내 경고하는데, 더는 네 자식을 밀어주지 마라.”
“그게 무슨 소리냐.”
“아르칸을 내세워 제니칼을 무너트리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세력을 먹어 치우려는 거 아니냐?”
“이상하군, 세력 다툼은 너도 권장하는 거 아니었나? 마인족끼리 피가 터지게 경쟁해야 강해진다고 말이야.”
“그건 우리 사대마왕이 건재하다는 전제하에서 한 이야기다. 균형이 깨져서 마계가 위험해지면…….”
키클로테스가 한창 열을 내며 설명하려는데, 본앰브로스가 쏘아붙였다.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하지?”
“뭐라고? 이 자식이…….”
열받은 키클로테스가 공격을 퍼붓자 본앰브로스가 로브째로 검은 재가 되어 버렸다.
“쯔쯧. 그놈의 성질머리하고는.”
그런데 곧바로 뒤에서 본앰브로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분명 검은 재로 흩어졌을 본앰브로스가 키클로테스의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난 거였다.
“분신인가? 장난질은 여전하군. 분신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해치워 주지.”
“진정 좀 해. 바리스탄에게 아르칸에 대해서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소리를 하는 것뿐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아르칸은 바리스탄의 특별한 지원이나 지시를 받은 게 아니라는 거지. 내 말이 맞지?”
“그렇다.”
바리스탄이 냉큼 대답했지만, 키클로테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믿든 안 믿든 네 자유지만. 사실이 그래.”
“…….”
본앰브로스의 말에 키클로테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을 믿지는 못하더라도,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인 건 확실했기 때문이다.
“흥, 돌아가겠다.”
그렇게 말한 키클로테스가 날개를 펼치며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바리스탄은 그런 키클로테스를 노려보다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드디어 벗어났군.”
“고마우면 마석이나 좀 주든가.”
“돈도 많은 녀석이……. 나중에 한 번 도와주지.”
“약속 지켜야 해? 그보다 빨리 대마왕성으로 돌아가. 아르칸이 대마왕성으로 가는 것 같으니까.”
“음, 그런가?”
본앰브로스의 말에 바리스탄은 씁쓸한 얼굴로 대꾸했다.
“아쉽게도 할 일이 있어서 못 보러 가겠군.”
“뭔데? 궁금한데?”
“네 비밀을 알려 준다면 나도 알려 주지. 너도 뭔가 몰래 하고 있는 게 있지 않나?”
“치. 됐다, 됐어. 그럼 간다.”
투덜거린 본앰브로스는 그대로 사라졌다.
마지막에 혼자 남은 바리스탄은 저 멀리 자신의 대마왕성 쪽을 바라본 뒤 마찬가지로 자취를 감췄다.
***
한편 마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 아르칸은 현재 자신의 마왕성을 나와 피용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거인섬으로, 거기 가기 전에 먼저 바리스탄 대마왕성으로 향했다.
가는 길인 만큼 잠깐 저택에 들러 부모님께 인사드리려고 한 거였다.
한편 바리스탄 대마왕성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지상 도시를 지키던 경비병들은 블랙 드래곤을 보자마자 기겁했다.
“하늘에 저 검은 건 뭐야? 설마 드래곤? 드래곤이 나타났다!!”
“뭐? 엇 정말이잖아! 그것도 가장 흉포하다는 블랙 드래곤이다!”
“젠장, 대장님께 보고해. 바리스탄 님은 안 계시지만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 내야 한다.”
바람의 정령 제피로스를 통해 그 소란을 들은 아르칸은 혀를 찼다.
‘이런,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저기서도 보이나 보네.’
주변에 장애물이라고는 딱히 없는 개활지인 데다, 경비병들이 주변에서 감시를 철저히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르칸은 제피로스를 통해 경비대에게 아르칸이니 놀랄 거 없다고 전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르칸 님이라고? 이봐, 저 블랙 드래곤, 아르칸 님이 타고 계신 거래.”
“우와! 제니칼을 물리쳤다더니 드래곤을 타고 다니시는구나.”
“멋지다! 아르칸 님 만세!”
“뭣들 해? 아르칸 님이 오셨다고 알려야지.”
심지어 종까지 때리면서 아르칸의 귀환을 외치자, 지상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쳐다볼 정도였다.
“이런, 괜히 더 소란스러워졌잖아.”
그때 지상 도시 상황을 듣던 제피로스가 말했다.
“다들 아르칸 님이 제니칼을 해치웠다고 아주 기뻐하는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영역이 맞닿아 있는 바리스탄 파벌과 제니칼 파벌은 아무래도 충돌이 잦다 보니 사이가 나빴다.
그런데 아르칸이 그 파벌의 수장인 제니칼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 셈이니 다들 기뻐하는 거였다.
“손이라도 흔들어 주시지요.”
그 말에 아르칸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금 모두가 아르칸을 연호하면서 손 흔들고 환호하는 중이었다.
이런 시선을 받는 건 어색했지만,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보면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보니 외면하기 힘들었다.
아르칸은 그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그러자 아이들이 뛸 듯이 기뻐했다.
아르칸은 그렇게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면서 저택에 도착했다.
이미 저택에까지 소식이 전해졌는지 어머니인 아네스가 나와서 맞았다.
“어서 오거라.”
“어머니, 저 왔습니다.”
“그래, 이야기는 들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티끌 하나 안 다쳤습니다. 저는 뒤에서 구경만 했거든요.”
“호홋. 그래그래, 어서 들어가자꾸나.”
아르칸의 농담에 아네스는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맞다. 모처럼 왔으니 이 어미가 해 주는 요리를 먹어야지. 마침 새롭게 개발한 게 있단다. 네 아버지도 같이 한입 하면 좋겠지만, 아직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구나.”
“그래요? 참, 어머니 요리도 좋지만, 제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선물?”
기대하는 눈빛을 한 아네스에게 아르칸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나뭇잎으로 감싼 무언가를 꺼냈다.
“이건?”
“과자예요. 한번 드셔 보세요.”
“나 입맛 까다로운데. 으음, 이거 별맛이 안 나는 거 같은…… 어?”
과자를 한 입 베어 물고 투덜거리던 아네스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나머지도 몽땅 입 안에 넣었다.
“……맛있구나. 내 입맛에 정말 딱 맞아.”
‘혹시나 했는데 이게 정답이었나?’
방금 아네스가 먹은 건, 아르칸이 승전 기념 축하 잔치 때 먹었던 엘프들이 만든 과자였다.
오웬도 심심하다고 할 만큼 아주 담백했는데, 평소 매운 요리를 즐겨 먹는 아네스의 입맛을 아는 이라면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 전, 아르칸은 엘프들이 만든 과자를 먹으며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아네스가 자극적인 요리를 하는 건, 엘프들이 만든 요리처럼 담백하지만 섬세한 맛을 원하는데 그런 요리를 못 먹어서라고 말이다.
이건 아네스가 마계에 정착한 엘프의 후손이라는 걸 바탕으로 짐작한 거였는데 딱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이 과자는 어디서 파는 거지? 자주 사 먹어야겠구나.”
“엘프들이 만들어 준 거예요.”
그 말에 아네스가 움찔하더니 과자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엘프들이 이걸 만들었다고?”
“네. 제 마왕성에 세계수를 심고, 엘프들이 세계수를 돌보면서 함께 지내고 있거든요.”
“오, 그래. 거기 오크들도 드나들고 있지 않으냐?”
“네.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지내더군요.”
“그렇구나…….”
그렇게 말한 아네스는 입을 닫고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슬쩍 아르칸에게 물었다.
“혹시 이 어미의 비밀을 알고 있니?”
“네, 어쩌다 보니 정령술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쓸 수 있게 됐나 알아보다 알게 됐어요.”
“……그렇구나. 앗, 정령술??”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아네스는 문득 아르칸이 정령술을 쓸 수 있다는 말에 살짝 놀란 듯했다.
“한번 볼 수 있니?”
“물론이죠.”
아르칸은 제피로스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불러냈다.
“아앗, 이게 정령이로구나.”
“크음.”
아네스는 신기한 듯 살펴봤지만, 제피로스는 그 시선도 탐탁지 않은 듯 헛기침을 했다.
“제피로스, 왜 그래?”
“아니야, 괜찮다. 우리 잘못이니까.”
“잘못이요?”
그렇게 말한 아네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선조 엘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래전 마신 대전으로 세계수를 잃은 엘프 중 일부는 마계에 정착하기로 했다. 문제는 정령들은 생명력 대신 마기가 가득한 마계에는 머무르기 힘들어했다는 거였다.
엘프들은 그런 정령들을 외면하고 마계에 정착해 버린 거였다.
“정령들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마계 엘프들을 꺼렸고, 정령술을 쓰지 못하게 된 거란다.”
“정령술을 못 쓰면 불편하지 않나요?”
“나야 처음부터 안 썼으니 모르지. 다만 네 할머니는 불편함 이전에 허전하다고 하셨지. 그래도 마음 편한 게 크다고 하셨지만. 그보다 바뀐 토양에 맞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요리며 과자며 만드는 방법을 다 잃어서 안타까워하셨어.”
“그랬군요…….”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을 들어 봤지만, 최소한 아르칸이 데리고 있는 엘프들과는 사정이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세계수.
덕분에 정령부터 함께할 수 있다 보니, 숲에서의 생활과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인제 와서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아르칸은 나머지 과자도 아네스에게 모두 드리고 거인섬으로 갈 거라고 전했다.
아네스는 아쉬워했지만, 아르칸이 가서 연락이 안 되는 센시아를 만나러 간 뒤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에 기분을 풀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걱정해 줬다.
“가는 길에 조심해라. 요즘 거인섬 쪽에 몬스터가 나타난다고 들었거든. 배도 못 다닌다더구나.”
“그거라면 문제없어요. 날아가면 되니까요.”
“아, 블랙 드래곤을 타고 왔다고 들었다. 한번 구경해 보고 싶은데? 같이 나가자꾸나.”
“네, 네.”
밖에 나가니까 피용이 정원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아르칸이 오는 걸 보고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아르칸을 보며 반겼다.
“피, 피! 아빠! 아빠!”
“아, 아빠?”
그 말에 아네스는 충격을 받았다.
아뿔싸.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