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거신의 시험 (3)
거인족들은 커다란 것을 숭상한다.
거인족 내부의 서열도 신체의 크기로 정해질 정도.
그런데 바로 앞의 센시아는 다른 거인족보다 서너 배는 더 커진 거였다.
“우와! 여태껏 저렇게 거대한 거인족은 처음 봐!”
“센시아가 저렇게까지 커지다니. 우리도 커질 수 있을까?”
“무리지. 아무리 먹어도 저만큼 커지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데…….”
거인족들이 감탄하는 와중에 누군가 중얼거렸다.
“거신님……. 거신님이야.”
그 말에 거인족들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소리쳤다.
“그러네! 거신님이 딱 저 정도로 크시지 않을까?”
“그렇다면 거신님의 재림??”
“하긴, 거신님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클 수가 있겠어.”
다들 호응하더니 양팔을 높이 들고 함성을 내질렀다.
“우오오오오오오옷!”
“저건 뭐 하는 겁니까?”
아르칸이 묻자 다른 거인족과 마찬가지로 양손을 들고 있던 토르움이 말했다.
“하늘처럼 거대한 거인족의 신께서 저희를 잘 볼 수 있도록 몸을 크게 보이도록 하는 거랍니다.”
한마디로 기도하는 자세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거신은 이 섬 그 자체인데. 다들 모르나 본데?’
지금 센시아가 크긴 해도 거신에 비하면 한참 작았다.
성장의 샘물 덕에 마심장이 3성급에서 5성급으로 오르고, 마력 공유로 드래곤과 용아병의 마력을 싹 긁어 더해 주긴 했지만, 7성급 정도였다.
‘아마 거신은 최소 9성급은 되겠지?’
그러는 사이, 센시아가 돌아왔다.
시험용 바위를 내려놓고 원래 크기로 돌아온 센시아는 당당하게 말했다.
“토르움 님, 저 통과한 거죠?”
“물론입니다.”
토르움은 센시아를 경외하는 눈으로 바라봤는데, 영문을 모르는 센시아는 의아한 얼굴이 됐다.
“토르움 님, 왜 갑자기 존댓말을…….”
“커진 모습을 보니 거신님이 재림한 게 틀림없습니다.”
“네?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런 거 아닌데, 오해예요. 이걸 어쩌면 좋지.”
센시아가 난처해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 휘말리지 않았던 거인족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센시아와 사사건건 부딪쳤던 우르겐이었다.
“통과라니요. 아닙니다, 토르움 님!”
“무슨 말이냐? 방금 보지 않았느냐.”
“보십시오. 지금은 다시 작아졌지 않습니까. 지금 다시 도전해 보라고 하면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에 토르움이 미간을 찌푸렸다.
“억지 부리지 마라. 대부분의 거인족도 한 번 하면 지쳐서 다시 못하지 않느냐.”
“하지만…….”
토르움의 설명에도 우르겐이 납득 못 하고 반박하려고 할 때였다.
머릿속으로 근엄한 목소리가 울렸다.
【센시아는 내 시험에 통과한 게 맞다.】
“이, 이 목소리는 거신님?”
“이럴 수가. 정말 거신님이야.”
“거신님이 우리를 보고 계셨다니!”
거인족들은 깜짝 놀라며 다시 양손을 위로 뻗었다.
한편 우르겐의 얼굴은 굳었다.
다른 이도 아닌 거신의 개입. 거기에 토를 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겨우 말한 우르겐은 그대로 어디론가 가 버렸다.
“저런 무례한 녀석이…….”
토르움을 비롯해 거인족들은 그 모습에 혀를 찼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아, 거신님의 말씀을 받들겠습니다.”
【한 가지 더. 센시아는 거인족이기는 하나 나의 재림은 아니다.】
“아, 알겠습니다.”
한편 그 이야기를 듣던 센시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의미를 눈치챈 아르칸은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거신이시여, 센시아를 거인족으로 인정하는 겁니까?”
【그렇다.】
그 대답을 들은 센시아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거신에게 거인족이라고 인정받은 거였다.
혼혈로서 항상 정체성에 의문을 품던 센시아로서는 이보다 기쁜 일은 없었다.
신의 재림이니 했던 거인족들의 오해도 풀렸을 뿐더러, 거신에게 직접 받은 인정.
거인족들은 거신의 인정을 받은 센시아를 조용히 축하해 줬다.
그렇게 거신의 시험이 일단락된 후, 성인식을 마무리하기 전에 센시아를 위한 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의 주인공인 센시아는 거인족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행복해 보였다.
아르칸이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슬쩍 옆으로 다가온 토르움이 고개를 숙였다.
“아르칸 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했습니다. 아르칸 님의 큰 뜻을 모르고 제가 괜한 오해를 했군요.”
“괜찮아. 센시아가 걱정되니 그런 거였을 텐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무슨 수를 쓰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센시아가 시험을 통과하도록 힘쓰신 거죠?”
“어.”
“그럴 거 같았습니다.”
“더 궁금한 건 없어? 어떻게 그렇게 커졌느냐 하는 거 같은?”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게 알려 주셔도 저한테 적용하기도 힘들 거 같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
군주의 권능에 대해서 알려 주기도 그렇고, 성장의 샘물 또한 센시아에게 준 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1인분의 절반도 못 미치는 양이었는데, 이건 마왕성에 돌아와서 몇 번의 실험 끝에 길리암이 적정량을 계산한 거였다.
‘하지만 다른 용도로 쓸데가 있지.’
그때 토르움이 물었다.
“그보다 아르칸 님이 궁금하신 건 없으십니까?”
“아, 있지. 아까 센시아와 우르겐이 싸울 때 배신자라고 하던데, 왜 그런지 알고 있어?”
“아……그건.”
토르움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 캐물을 생각까지는 없으니까.”
“아닙니다. 아르칸 님도 아시는 게 나을 거 같네요. 실은 우르겐과 센시아는 이부형제입니다.”
그 말에 아르칸은 움찔했다.
“이부형제라면…… 둘이 어머니가 같다고?”
“네. 그렇다고 해도 불륜은 아닙니다. 우르겐의 아버지와는 사별했으니까요.”
토르움은 그렇게 센시아의 사정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약하면 우르겐의 아버지가 죽은 뒤, 센시아의 어머니인 베르달린은 그 슬픔을 잊고자 거인섬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쯤, 임신한 채로 돌아와서 낳은 게 센시아라는 거였다.
이야기를 듣던 아르칸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센시아의 어머니는 우르겐을 내버려 두고 거인섬을 떠난 거야?”
“원래 함께 가려고 했는데, 우르겐의 집안에서 거인섬 밖으로 나갈 거면 두고 가라고 반대해서…….”
그쪽 집안도 이해가 갔다. 위험한 마계에 거인족 아이를 데리고 간다니, 두고 가라고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더 큰 문제는 베르달린이 출산 후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세상을 떠났다는 겁니다.”
“저런.”
아르칸은 우르겐이 왜 센시아를 잡아먹으려 드는지 이해가 갔다.
우르겐으로서는 어머니가 애를 배고 돌아온 것부터 배신감을 느꼈을 텐데, 또 센시아를 낳느라 돌아가셨으니 그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게 분명했다.
그 뒤로 우르겐 집안 쪽에서는 센시아에게 잘못은 없다며 센시아를 거둬서 키웠다고 했다.
우르겐은 어렸을 때는 센시아와 남매로 친하게 지냈지만, 머리가 조금 큰 뒤 사정을 듣고는 센시아와 크게 다퉜다고 했다.
그 뒤로 센시아는 따로 나와 살다가 마계로 떠났다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르칸이 물었다.
“혹시 센시아의 친부에 대해서 아나?”
“베르달린이 죽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요. 센시아도 모를 겁니다.”
“그렇군.”
어떤 의미로는 고아나 마찬가지.
아르칸은 그 기분을 알기에 센시아가 더욱 안쓰러웠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습니다.”
“응?”
“앞으로 거인 섬에는 오지 않을 듯한데, 부디 마왕님이 센시아를 가족이라고 여기시고 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싫은데?”
“네?”
“가족이라고 여겨 달라니, 이미 가족이거든.”
“아.”
순간 당황했던 토르움은 흐뭇한 얼굴이 됐다.
아르칸은 진심이었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던 아르칸의 부모님과 형제들도 가족이지만.
빙의한 후부터 함께했던 모든 이들이 이 세계의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센시아도 마찬가지.
‘피로 엮이진 않았지만, 권능으로 엮여 있긴 하니까.’
그때 토르움이 손을 들었다.
“어, 센시아. 인사는 다 드리고 온 거니?”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센시아가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그게…… 저는 선물을 받은 걸 보여 드리려고 왔는데…….”
센시아는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아르칸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러지? 오늘 여러모로 힘들어서 그러나.”
“아르칸 님이 이미 가족이라고 한 것에 감동한 거지요.”
“아. 뭘, 그런 걸 가지고.”
센시아가 감격했다는 말에 괜히 쑥스러웠던 아르칸은 뒤통수를 긁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우르겐이 없네?”
문득 축제가 너무 평화롭다 싶었더니, 우르겐과 그 일당이 안 보였다.
“뭐 어딘가에서 자기들끼리 구시렁거리고 있을 겁니다.”
토르움이 그렇게 대꾸하는데, 누군가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큰일 났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우르겐이 잡혀갔어요!”
‘뭐? 우르겐이 납치당했다고?’
그러고 보니 달려온 이들은 정말 우르겐과 붙어 다니던 거인족들이었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한 토르움과 원로들이 모였다.
토르움이 엄한 얼굴로 추궁했다.
“잡혀갔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그게…… 우르겐 녀석이 자기도 뭔가 대단한 걸 보여 주겠다고. ……레비아탄을 잡으러 갔습니다.”
“맙소사! 그게 사실이냐? 그런 미친 짓을 벌이다니.”
그 소리에 토르움뿐만 아니라, 거인족들 모두 경악했다.
그걸 본 아르칸이 물었다.
“레비아탄이 뭔가요?”
그 이름만으로 대충 어떤 몬스터인지 짐작이 가긴 했다.
그래도 소설에 언급되지도 않고, 아르칸의 기억에는 전혀 없는 이름이었기에 확인차 물은 거였다.
토르움이 아르칸이 건너온 바다 쪽을 가리켰다.
“저 바다를 지키는 몬스터입니다.”
다른 거인족 원로들도 한마디씩 했다.
“크라켄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 바다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죠.”
“원래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먼저 공격해 오는 일이 없는데, 바보 같은 짓을…….”
흥겨웠던 축제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 와중에 아르칸만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다의 주인이라, 크라켄을 잡고도 군주의 정복 스킬에 반응이 없었는데 잡아야 할 몬스터가 따로 있었구나.’
그때,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온 센시아가 불렀다.
“아르칸 님…….”
“응?”
“우르겐을 구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뜻밖이었다.
어차피 바다의 몬스터라고 해 봐야 현재 아르칸이 전력을 발휘하면 상대 못 할 몬스터도 아니다.
군주의 정복 스킬이 사용되는 것도 볼 겸 가볍게 잡으러 갈까 싶긴 했는데, 센시아가 먼저 부탁할 줄이야.
“그 녀석과 사이 나쁜 거 아니었어?”
“사실 저와 우르겐은 ……남매 사이거든요. 아버지는 다릅니다만…….”
“그런가? 그러면 도와주러 가자.”
아르칸이 시원스레 대답하자 센시아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입니까?”
“그럼, 센시아가 가족으로 여긴다면 내 가족이기도 하니까.”
그 말에 센시아가 다시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토르움은 그 말을 듣고 감탄했다.
“우르겐이 무례하게 굴어서 외면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대인이시군.”
“오오! 다들 들었지? 아르칸 님이 나서서 구해 주신단다.”
“대마왕 제니칼을 쓰러트리신 만큼 문제없을 거야.”
“이런 멋진 분을 망나니 마왕으로 몰다니 마인족 놈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거인족들마저 흥분해서 외쳤다.
‘이거 스킬 효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려고 했는데 뜻밖에 명예 회복도 하게 되는군.’
평소 싫어하던 대마왕 제니칼을 쓰러트린 것도 거인족들이 대단하게 받아들일 일이지만, 거인족을 위해 나선다는 건 그 이상으로 호감을 살 만한 일이었다.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거인족을 신하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다가 아르칸의 휘하에서 지내는 센시아의 이미지도 한층 좋아질 테니 1석3조의 효과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구해 주고 우르겐이 비는 모습까지 볼 수 있으면 1석4조인가?’
아르칸은 씩 웃으며 우르겐 일당의 안내를 받아 바다로 나섰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