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드워프 왕국의 몰락 (1)
제피로스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성검을 받고 정식으로 용사가 된 신용사는 곧장 멜스크 후작가로 갔다고 한다.
멜스크 후작은 엘프왕의 후손을 자처하며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엘프들을 모아 정령 기사단까지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택에 끔찍한 불이 났을 때, 멜스크 후작은 침입자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지하 감옥 입구에서 침입자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난데없이 나타난 블랙 드래곤에 의해 처참하게 사망하고 말았단다.
그 말을 들으며 아르칸은 생각했다.
‘피용을 부른 건 나지만.’
계획했던 대로 인간계 쪽에서는 갑자기 블랙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여기는 듯했다.
동시에 정령 기사단도 깡그리 사라졌지만, 멜스크 후작가에서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당장 블랙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혼란에 빠진 영지민들을 진정시키고, 멜스크 후작의 장례를 치르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던 와중에 신용사가 멜스크 후작가를 방문한 거였다.
멜스크 후작가에서는 신용사가 블랙 드래곤을 해치우기 위해 그 단서를 찾으러 온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신용사는 엘프들이 어디 있는지 찾다가, 하나도 없다는 소식에 노골적으로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고서 돌아가기 전에 멜스크 후작가의 모든 이를 불러서 물었다고 한다.
혹시 정말 엘프왕의 후손이냐고.
그 말에 모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멜스크 후작이 고인이 되어서 하는 말이지만, 전혀 아니라고.
그렇게 믿던 건 멜스크 후작뿐이었다고 말이다.
그 대답을 들은 신용사는 다행이라고 말하며 멜스크 후작가를 떠났다고 했다.
멜스크 후작가의 사람들은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의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신용사가 멜스크 후작가를 떠나기 직전,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드워프 왕국에서 사신과 선물을 보내온 거였다.
현재 신용사는 왕국 제일검이라고 하는 로버른 경과 성녀 엘로디아와 함께 다니고 있었다.
기존 용사와 달리 동료를 데리고 있는 걸 본 드워프 왕국 측에서 자기 종족도 동료로 삼아 달라고 말하기 위해 접촉한 거였다.
그러나 신용사는 자신을 찾아온 드워프를 곧바로 베어 버렸다.
“어딜 더러운 드워프 따위가 내 동료가 되려고!”
옆에 있던 동료들은 그 막말에 경악했다.
‘용사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하지만 신용사가 그 뒤에 한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어차피 엘프왕을 자처하는 미치광이와 엘프들을 해치운 다음에는 드워프들을 쓸어버릴 차례였는데 잘됐군.”
“드워프를 쓸어버린다니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진정하시죠. 드워프와 엘프들을 마신 전쟁 이전부터 저희 인간들의 아군이었습니다.”
엘로디아와 로버른이 말렸지만, 신용사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군은 무슨, 몬스터 주제에.”
“몬스터?”
“그래. 운 좋게 우리 쪽에 붙었을 뿐이지, 몬스터와 다를 게 뭐가 있나. 오히려 우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현혹한다는 점에서는 더욱 질이 나쁘다. 인간의 미래를 위해서는 몬스터들을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
결의에 찬 목소리로 신용사가 외쳤다.
신용사는 심각한 인간 우월주의자였다.
제피로스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르칸은 기가 찼다.
‘여신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용사를 내치고 신용사를 데려온 거야?’
원래 용사, 이제 구용사가 된 용사는 답답한 면이 있긴 해도 엘프나 드워프들이 위기에 처하면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소설에서는 대마왕을 해치우기도 해서 조금만 도와주면 마신까지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신용사처럼 인간 외에는 모두 적으로 돌릴 거라면, 구용사처럼 동료로 안 받아들이는 것보다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로버른 경과 성녀 엘로디아는 그래도 신용사를 말렸습니다. 소용없었지만요.”
***
로버른 경이 달래듯 말했다.
“드워프와 엘프들이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굳이 신용사님이 손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엘프들은 이미 왕국 내에서는 노예로 거래될 뿐이며, 드워프 왕국도 조약으로 철저히 통제 중입니다.”
“그래, 그건 잘하고 있더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여신의 뜻을 거스를 생각이냐.”
신용사는 답답했는지 로버른의 말을 끊었다.
그 소리에 가만히 있던 성녀 엘로디아가 물었다.
“여신의 뜻……. 정말인가요?”
“그래, 그게 아니라면 내가 왜 용사가 됐겠나?”
“…….”
그 말에 엘로디아는 할 말이 없었다.
여신의 신탁으로 구용사에게 성검을 받아 이 신용사에게 전달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만약 신용사가 하려는 게 여신의 뜻이 아니라면, 여신이 신탁을 내렸을 게 분명했다.
“내키지 않으면 안 도와줘도 된다. 방해나 하지 말도록.”
그렇게 말한 신용사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로버른이 엘로디아에게 말했다.
“이거 멜스크 후작가분들은 운이 좋았던 거군요.”
“그게 무슨 소리죠?”
“엘프의 후예라고 주장했으면 이 드워프처럼 됐을 테니까요.”
“…….”
그 말에 엘로디아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 드워프를 내려다봤다.
멜스크 후작가 쪽 사람들이 엘프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으면 모두 이 드워프처럼 참혹하게 살해당했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러나 거기에 안도하기에는 신용사는 더욱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로버른 경, 신용사님을 막아야 해요.”
“어떻게요? 저는 못 막습니다. 성녀님이 막으실 겁니까? 어떻게요?”
“아.”
엘로디아는 그제야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걸 깨닫고 주저앉았다.
여신에게 소환되어 그 힘을 받은 이를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엘로디아는 문득 구용사를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구용사가 있긴 했지만, 그 힘을 잃은 이상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현재 구용사의 행방을 몰랐다.
성녀가 신용사에게 소개해 주려고 찾아갔을 때, 자취를 감췄다.
그 탓에 잠깐 소란이 있었지만, 신용사는 내버려 두라고 했다.
아무래도 용사직을 박탈당한 구용사 처지에서는 기분이 안 좋을 만도 해서, 그 뒤로 찾지 않았다.
하지만 신용사를 막는 걸 떠나, 구용사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용사님 어디 갔어요……. 제발 돌아와 주세요.’
***
아르칸은 제피로스에게 들은 이야기를 용사와 도린을 불러 전달했다.
신용사가 드워프 왕국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이다.
용사와 도린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정말이냐?”
“그런 소리는 어디서 들은 거야?”
확실히 믿기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었다.
신용사가 마왕성도 아니고, 드워프도 몬스터라며 드워프 왕국을 공격하다니.
안 그래도 왕국은 불공정한 조약과 무지막지한 술 공급으로 드워프 왕국을 길들이는 중.
그러는 걸 넘어서 박살 내 버린다니, 어디 가서 말해도 거짓말 말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이야기였다.
“제피로스가 알려 준 거야. 설마 정령이 거짓말을 하겠어?”
그 말에 용사와 도린은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이 펄쩍 뛰었다.
“정말이면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가서 막아야지.”
“나도 돌아갈 거야.”
아르칸도 거기에 호응하며 말했다.
“그래야지. 어서 가자!”
“아르칸 너도?”
도린이 움찔했다.
안 그래도 신용사가 드워프는 몬스터에 불과하다면서 공격하는데, 마왕과 함께 나타난다?
신용사의 논리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 설마 내가 이 꼴로 가겠어? 내가 가야 한시라도 빨리 갈 수 있잖아.”
“아, 그렇지. 고맙다.”
도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저 녀석이 아무런 이득 없이 먼저 나설 리는 없고,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같은데…….’
용사는 허공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는 아르칸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
아르칸과 용사, 도린.
이 세 사람은 블랙 드래곤 피용을 타고 초고속으로 날아갔다.
도린은 평소라면 무섭다고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겠지만, 드워프 왕국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리에 초조했던지 아득바득 드래곤에 매달려 있었다.
얼마 뒤, 저 멀리 칼더 산맥 끝의 드워프 왕국이 자그맣게 보이기 시작했다.
곳곳에 시커멓게 피어오르는 연기에 가까이 가니, 이미 공격당해 파괴된 듯 왕성 주위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타 있었다.
거기다가 사방에 참혹하게 살해당한 드워프의 시체가 가득했다.
도린은 그 처참한 상황에 울부짖었다.
“으윽, 이럴 수가……!”
“젠장, 한발 늦었나?”
용사가 주먹을 꽉 쥐며 분해했다.
그때 아르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진정해. 한발 늦었긴 했는데, 아직 살아 있는 드워프들이 있으니까.”
“정말이냐?”
“살아 있는 드워프들이 있다고?”
“그래, 광산 통로 안에 숨어 있어.”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며 피용에게서 내린 뒤, 예전에 들렀던 광산 통로로 향했다.
저 안쪽 깊숙한 곳에는 셋이 모두 가 본 적이 있는 공동이 있었다.
리젠라이트를 발견하고 락트롤이 나타났던 곳으로, 거기에 가니 신용사의 공격에 살아남은 드워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도린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드워프 왕국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절대로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용사만 해도 혼자서 마왕성을 함락시키고, 대마왕도 쓰러트릴 정도로 강했다.
그보다 약한 드워프 왕국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함락되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령들에게 명령해, 신용사의 눈을 속이고 최대한 많은 드워프를 살려서 숨기라고 했어.”
“전시안으로 찾았을 텐데? 안 들켰어?”
용사의 우려대로 실제로 신용사는 드워프를 하나도 남기지 않기 위해 전시안으로 샅샅이 뒤졌다.
“정령들이 적극적으로 숨긴 덕분에 눈치 못 채고 돌아간 거 같아. 아무래도 전시안으로 정령들을 보긴 했을 텐데, 정령들이 자신을 방해할 거라고는 예상 못 한 거겠지.”
그렇게 말한 아르칸은 도린을 돌아봤다.
“하지만 네 부모님과 형제들은 모두 돌아가셨어. 너무 늦었어. 살아남은 드워프도 이들이 다고.”
“…….”
그 말에 도린은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하루아침에 부모 형제를 모두 잃게 된 셈이니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그 때문인지 드워프들도 도린을 보고도 쉽사리 반기지 못했다.
하지만 도린은 이내 의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가. 하는 수 없지. 혹시 브롬은?”
브롬의 도린의 절친으로, 인공장기를 연구하는 전문가였다.
“크게 다쳐서 의식은 아직 없지만, 구하긴 했어.”
“그래? 다행이로군. 고맙다.”
도린은 감사를 표하긴 했지만,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멍한 얼굴이었다.
그런 도린에게 아르칸이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떡할 건데?”
“어떡하다니?”
“계속 여기서 숨어 살 수는 없을 거 아니야? 드워프들이 어떻게 할지 네가 결정해야지.”
“근데 그걸 왜 나한테…… 아.”
아르칸의 말에 대꾸하던 도린은 순간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국왕인 아버지와 왕자들이 모조리 사망했다.
그렇다는 건 차기 드워프 국왕으로서 남은 백성들을 이끌 책임이 생긴 거였다.
문제는 아르칸의 말처럼, 여기서 계속 숨어 살 수도 없고, 또 왕국을 세웠다가는 신용사가 다시 와서 박살 낼지도 몰랐다.
‘대체 어떡하면 좋지…….’
고심하고 있는데, 아르칸이 말했다.
“갈 곳 없으면 카퓨 산맥으로 가면 될 거야. 거기서 자리 잡으면 이웃이 되니, 신용사가 쳐들어오면 막아 줄게.”
“고맙다.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용사가 한마디 했다.
“이 녀석, 무슨 꿍꿍인가 했더니. 드워프 왕국을 네 마왕성 옆으로 옮기려고 한 거냐?”
“서로 좋은 거 아니야? 신용사가 저렇게 나온 이상, 조약이고 뭐고 이제 인간들과 교류도 힘들 텐데 멀리 떨어져 살아야지.”
“하긴…….”
핀잔을 주던 용사도 씁쓸한 얼굴로 납득했다.
자신이 봐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런 용사의 모습을 바라보던 도린이 말했다.
“잠시 상의 좀 할게.”
“어, 그래야지.”
도린은 드워프들에게 다가가 슬픈 얼굴로 인사를 나눈 뒤,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상의를 마친 뒤 하는 말은 아르칸의 예상 밖이었다.
“저희는 카퓨 산맥으로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그보다 갑자기 웬 존댓말?’
아르칸이 의아해하는데, 도린이 아르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왕 아르칸 님,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