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4
14화 고블린의 침공 (3)
“센시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르칸이 센시아의 등에 대고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막고 있을 테니, 구조를 요청하세요.”
그 방법은 이미 고려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사이에 다들 지쳐 나가떨어질 거라고 예상한 만큼, 센시아도 살해당할 게 분명했다.
“이러지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괜찮습니다. 고블린은 저를 해치지 못합니다.”
“아, 맞다. 아까 못 보셨어요? 그 토르카라는 녀석의 몽둥이에도 끄덕하지 않았잖습니까.”
“하긴 그렇지. 걱정할 거 없겠네.”
트릴의 말에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이 못 해친다고? 모르는 소리!’
센시아가 금방 한 말은 우리가 걱정할까 봐 하는 소리에 불과했다.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수천 마리의 고블린에게 끊임없이 공격당하면 버틸 수가 없었다.
독이며 불이며 갖은 수단을 다 써서 공격할 테니까.
더군다나 고블린 왕은 오크를 혼자서 이겼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어서 무시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평소의 센시아라면 오크가 몇 마리나 덤벼도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큭, 이것들이.”
센시아가 화를 내며 움찔거리는 거로 봐서는 고블린들이 공격을 시작한 모양.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아르칸은 마왕성의 주인인 만큼 최후까지 결사 항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센시아라면 혼자서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잠깐 뜸을 들이던 센시아가 입을 열었다.
“……아르칸 님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나를? 대체 왜?”
아르칸이 묻는 동안 건너편이 다시 조금 소란스러웠다.
‘하긴, 이런 걸 물은 때가 아닌가. 그보다 어떻게 모두를 구할지 생각해야 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데, 센시아가 대뜸 뭐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기억하십니까?”
“응? 무슨 말이야? 그보다 고블린들은 어때? 공격이 멈췄어?”
“일단은요. 조금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공격이 안 먹히자 방법을 궁리하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기억 안 나십니까?”
“응?”
“저더러 귀엽다고 하셨는데, 기억 안 나시나요?”
‘그랬나? 아.’
안 그래도 최근 센시아를 다시 영입하자고 할 때, 그 기억을 떠올린 적 있었다.
그때 아르칸은 센시아의 거대한 체구를 보고 조롱하기 위해 반어법으로 귀엽다고 한 거였다.
‘그런데 그건 왜 묻지?’
“기억 안 나시나 보군요.”
“아니야, 기억나.”
센시아가 자신의 목숨을 건 상황에서 꺼낸 이야기를 모르겠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간 쌓인 앙금을 풀고 후련하게 최후를 맞이하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유일했어요, 저한테 귀엽다고 말해 준 사람은…….”
“……??”
아르칸은 이해가 안 갔다.
‘설마 그 말 때문에 소설에서는 아르칸의 복수를 하겠다고 용사에게 덤볐다가 죽고, 지금 여기서는 목숨까지 건 거야?’
기억 속에서 봤던 충격받은 표정은 마냥 싫다는 표현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핫. 그런 거였나.”
아르칸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왜 아르칸에게 호감을 느낀 걸까? 고민했던 자신이 우스웠던 탓이었다.
그 웃음을 오해했는지 센시아가 퉁명스레 말했다.
“알아요, 그때 좋은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바보가 아니니까.”
‘설마 기분 상했나?’
“그래도 누군가가 귀엽다고 해 준 게 처음이었거든요.”
“아…….”
그제야 센시아가 왜 저러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센시아는 거인족과 마인족의 혼혈.
안타깝게도 어느 쪽에서도 반기지 않았다.
커다란 애물단지나 마찬가지였으니, 누구 하나 귀엽다고 해 줬을 리가 없었다.
센시아는 빈말, 거짓말이라도 귀엽다는 말을 꼭 한번 듣고 싶었던 거였다.
그걸 생각하니 안쓰럽지만, 귀엽다는 소리에 내심 좋아한 그 마음이 귀엽게 느껴지긴 했다.
‘결과적으로 아르칸이 맞는 말을 한 셈인가.’
“이런 덩치가 귀엽다는 말에 미련을 갖다니 징그럽죠?”
“징그럽다니? 오히려 깜찍하지.”
쿵!
마왕성이 뒤흔들렸다.
아르칸의 말에 깜짝 놀란 센시아가 머리를 들다가 부딪힌 결과였다.
“까, 깜찍하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놀라기는. 앗! 지금이라면 혹시?’
그 반응에 웃던 아르칸의 머릿속에 한 가지 희망이 떠올랐다.
아르칸은 곧바로 게티아를 펼쳐서 확인했다.
‘역시나 호감도가 100이 됐어.’
[호감도 : 100] [대상을 신하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 [군주의 권능을 사용해 센시아를 신하로 임명하시겠습니까?]아르칸은 곧바로 신하로 임명했다.
[센시아가 새로운 신하로 임명됐습니다.]이어서 새로운, 그리고 아르칸이 예상했던 메시지가 떴다.
[권능 레벨이 1이 되었습니다.] [권능 스킬, 군주의 위엄이 해금되었습니다.]‘군주의 위엄?’
[군주의 위엄] [군주가 위엄을 드러내면, 신하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몸을 낮춰 예를 표합니다.] [군주의 위엄은 신하뿐만 아니라, 군주보다 격이 낮은 존재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무릎을 꿇리는 스킬.
1레벨 스킬답게 하찮다면 하찮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쓸 만해.’
그때 다소 기운 빠진 센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마당에 놀리신 건 아닌 거 같고, 이제 최후라고 위로해 주신 거죠? 안 그래도 고블린들이 독이 잔뜩 묻은 녹슨 단검을 준비 중이네요.”
“평소와 달리 말수가 는 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야? 마지막 아닌데.”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잠깐, 근데 마지막이 아니라니요?”
“당장 내가 구해 줄 거거든. 그러니 몸 좀 줄여 봐.”
“……정말인가요?”
“그럼, 내가 왜 거짓말하겠어?”
“……알겠습니다.”
센시아가 대답하자마자 체구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은 여전히 입구 앞쪽을 새까맣게 둘러싸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정체불명의 시커먼 액체가 묻은 단검이나 횃불을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독만 쓰는 게 아니라, 불로 지지려 한 듯했다.
‘센시아 녀석, 저 공격을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다니.’
다행히 공격하려고 다가오던 고블린들은 막상 센시아의 덩치가 작아지기 시작하자 주춤했다.
‘지금이다.’
아르칸은 센시아를 지나쳐 앞으로 나서면서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군주의 위엄 스킬을 쓴다고 생각하며 근엄하게 외쳤다.
“꿇어라!”
마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면서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이렇게 나약할 수가.’
탄식이 나왔지만, 다행히 권능은 제대로 발휘된 모양.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는가 싶더니, 저 앞에 있던 고블린들이 하나둘 엎드리기 시작한 거였다.
군주의 위엄 설명에는 신하 외에 격이 낮은 존재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되어 있다.
아무리 아르칸이 약하다고 해도 상대는 고블린. 충분히 먹히고도 남았다.
“우와! 어떻게 한 건가요!”
“이것도 마법인가.”
“조용히.”
놀라는 병사들을 오웬이 조용히 시켰다.
오웬과 센시아는 군주의 위엄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생각했더니 정말 영향을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다음인데…….’
지금은 홀드처럼 완전히 묶어 놓은 게 아니라, 공격을 잠깐 멈춘 것에 불과했다. 이쪽이 공격이라도 하면 생명의 위협을 느껴 풀릴 게 분명했다.
그랬다가는 몇 명 해치우지도 못하고 전과 같은 상황이 될 뿐이었다.
어차피 아르칸의 목표는 고블린을 이용해 먹는 것, 무리해서 해치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저 녀석이 있는 한 무리겠지.’
아르칸은 고블린 왕 토카를 내려다봤다.
자식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죽일 생각은 없으니 그만하자고 해도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분명 사생결단을 내려고 할 테니, 사생결단을 내주는 수밖에 없겠지.’
방침을 정한 아르칸이 지시를 내렸다.
“센시아, 고블린들이 움직이기 전에 저 녀석부터 해치웠으면 하는데.”
“알겠습니다.”
아르칸의 의도를 간파한 센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대검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센시아가 움직이기 전에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고블린 왕 토카가 군주의 위엄 스킬의 압박을 이겨 내고 몸을 일으킨 거였다.
“케륵! 다들 왜 이러고 있어? 어서 일어나서 공격해!”
‘젠장! 저 녀석한테도 통하나 했더니 금방 풀리다니.’
“아르칸 님, 어떡할까요?”
“홀드 마법으로 잡을 테니, 공격해. 아, 잠깐만.”
지시를 내렸던 아르칸이 다급히 제지했다.
토카가 일어나 난리 치자 고블린들도 하나둘 정신 차리고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거였다.
“케륵? 방금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왜 무릎을 꿇었지?”
“케르르, 금방은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어. 소름 끼치네.”
일어난 고블린들 때문에 단번에 토카를 노리긴 어려워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토가가 싸우라고 아무리 난리 쳐도 고블린들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라는 거였다.
“케르르, 이게 진정한 마왕의 힘인가.”
“역시 마왕에 대항하면 안 돼.”
“도, 도망치자.”
“이, 이 자식들이. 젠장!”
고블린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걸 본 토카는 화를 내면서도 이대로는 못 싸우겠다고 여겼는지 마찬가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걸 신호로 고블린들도 본격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덕분에 고블린들은 그대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깔려 죽은 녀석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럴 수가, 그대로 도망칠 줄이야…….’
아르칸은 황당한 나머지 입을 벌리고 지켜보기만 했다.
나머지 부하들도 마찬가지.
그나마 센시아만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제 곧 최후가 다가온다고 생각하고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인제 와서 아르칸의 얼굴을 보자니 너무 창피해서였다.
뒤늦게 그걸 본 아르칸도 센시아의 새빨개진 귀를 보며 왜 그런지 눈치챘다.
‘일단 모르는 척해 줘야겠군.’
안 그래도 정신을 차린 부하들은 모두 기뻐하며 아르칸을 찬양하느라 소란스러웠다.
“아르칸 님이 저 수많은 고블린을 물리치셨다!”
“아르칸 님 만세!”
“이번에는 죽는 줄 알았는데, 아르칸 님 덕분에 살았어!”
“아르칸 님도 한마디 하시죠.”
오웬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아르칸이 말했다.
“모두 고생 많았다.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해 줄 테니 많이 먹고 푹 쉬도록!”
“우와아!”
“아르칸 님이 한턱내신다고 한 거 맞아?”
“오랜만에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야지.”
병사들과 하인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오웬의 표정이 어두운 게 아닌가?
‘이거 자금 사정이 나쁜데 물어보지도 않고 괜히 기분 냈나?’
아르칸은 미안해하면서 물었다.
“오웬, 표정이 왜 안 좋아? 혹시 돈이 모자라?”
“돈은 문제없습니다만, 아르칸 님이 걱정되는군요.”
오웬의 표정이 왜 어두웠는지 깨달은 아르칸이 피식 웃었다.
“술은 입에도 안 댈 테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마.”
“아.”
그제야 오웬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르칸에 빙의한 뒤 꽤 술은 마신 적 없지만, 술에 찌들어 망나니짓하던 아르칸의 모습이 아직 어른거리는 모양이었다.
‘하긴 망나니짓을 한 지가 훨씬 오래됐으니 아직 걱정될 만도 하지.’
그날 저녁. 아르칸 마왕성에서 작은 연회가 열렸다.
저렴한 고기와 말린 과일에 싸구려 술이었지만, 다들 잔뜩 먹고 마시며, 흥겹게 웃고 떠들어 댔다.
하나같이 즐거운 모습들.
아르칸은 훈훈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원래 세계에서는 혼자 지내느라 몰랐는데, 내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노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센시아를 바라봤다.
병사들과 조용히 어울리던 센시아는 아르칸과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푹 숙이더니 돌아가 버렸다.
‘창피함이 가시려면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한가 보네.’
그때 오웬과 트릴이 다가왔다.
“아르칸 님, 정말 술을 끊으셨군요. 이런 자리에서도 술을 안 마시다니.”
“크, 대단하십니다. 저도 금주해 볼까 생각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아차, 근데 술 말고 앞에 아무것도 없잖습니까. 제가 뭐라도 가져오겠습니다.”
“아니야. 많이 먹어서 쉬는 거야.”
“아.”
그제야 트릴이 움직임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근데 고블린들이 생각보다 많던데, 어떻게 다 잡을지 걱정이네요. 의뢰 보수도 더 받아야 할 거 같고.”
“흠, 오늘처럼 싸우면 언젠가는 다 잡을 걸세. 보수는 확실히 더 요구해야 할 것 같군.”
둘의 대화에 아르칸이 슬쩍 끼어들었다.
“초를 치는 거 같아서 미안하지만, 앞으로 더 긴장하긴 해야 할 거야. 저 녀석들, 아직 최후의 수단은 안 썼거든.”
“최후의 수단이라 하심은?”
“세틱, 마약을 복용한 채 덤빌 거야.”
“……!”
아르칸의 말에 오웬과 트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