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마계 정벌 원정대 (4)
제니칼 대마왕성.
흥분한 부하들이 모두 싸우러 나갔지만, 대마왕 제니칼만은 대마왕성에 머물고 있었다.
만에 하나 적이 쳐들어오는 상황에 대비해 통제실에서 마정석을 지켜야 해서였다.
그때 대마왕성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걸 마정석이 알려 왔다.
“흐흐, 내 이럴 줄 알았지.”
제니칼은 혀를 차면서 마정석을 확인했다.
“침입자는 모두 셋. 아니, 넷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어쨌거나 소수인 거로 봐서는 적의 정예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마계 정벌 원정대에서 정예라고 하면 뻔했다.
“신용사와 졸개들이겠지.”
하지만 현재 제니칼은 아르칸에게 당한 상처를 모두 회복한 상황.
비록 마력을 증폭시키는 상아는 부서졌지만, 신용사와 그 부하들 정도야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거기다가 밖의 원정대를 초토화시킨 상황에서 자신이 신용사를 해치우고 나간다?
부하들이 승리의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며 찬양할 게 분명했다.
“크흐흐,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걸?”
마음이 조급해진 제니칼은 오히려 신용사 일행과 한시라도 빨리 싸우고 싶었다.
제니칼은 코끼리 코를 사용해 마정석을 조작했다.
1계층에서 통제실이 있는 9계층까지 바로 내려올 수 있도록 만든 거였다.
***
신용사는 가로막는 수인족들을 가볍게 베면서 제니칼 대마왕성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1계층이 비어 있는 걸 본 로버른이 안도하며 말했다.
“신용사 님 말씀대로 적들이 거의 안 보이는군요.”
“그런데 대마왕 제니칼도 없으면 어쩌죠?”
엘로디아가 묻자 신용사가 대꾸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마정석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곳에 있을 테니까.”
“마정석이요?”
“모르나? 하긴 아는 게 있을 리 없지.”
“…….”
신용사의 핀잔에 엘로디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대마왕성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그그그그그그.
몸을 낮춘 엘로디아는 불안한 듯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무, 무슨 일이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대마왕성을 조작하는 거 같은데, 이거 제니칼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나.”
로버른도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신용사마저도 긴장되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저 앞을 노려봤다.
잠시 후, 흔들림이 멈춘다 싶더니 바로 앞에 계단이 생겨났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원형 계단이 어느새 만들어져 있었다. 어찌나 깊은지, 바닥이 끝도 없이 보였다.
그걸 본 엘로디아가 말했다.
“여기로 내려오라는 걸까요?”
“그러게. 빨리 죽고 싶나 본데.”
“신용사 님, 함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죠.”
로버른이 경계했지만, 신용사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다른 방법은 무슨, 그냥 내려간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대마왕 제니칼의 손아귀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야. 빨리 싸우고 싶다는데 거기에 어울려 줘야지. 겁나면 따라오지 마.”
쏘아붙인 신용사는 계단 아래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놀란 엘로디아가 얼른 뒤를 쫓았다.
“신용사 님! 같이 가요!”
“앗, 성녀님까지……. 에잇, 젠장!”
경고하던 로버른도 결국 계단으로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한참을 내려가도 끝이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숨이 턱까지 차오른 엘로디아가 물었다.
“헉, 헉.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나요?”
“이제 3계층이니 아직 멀었다. 9계층까지 내려가야 하니까.”
“그, 그런.”
“신용사 님, 조금만 천천히 가죠. 급하게 가 봤자 지쳐서 제대로 싸우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나는 괜찮은데? 힘들면 천천히 오든가.”
신용사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지면이 흔들린다 싶더니 계단이 사라졌다. 아주 가파른 미끄럼틀이 되어 버린 거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악!”
“흠? 제니칼 이 자식이.”
엘로디아와 로버른은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고, 이것만큼은 신용사도 예상 못 했는지 마찬가지로 미끄러졌다.
점점 가속도가 붙는 걸 보고 위기감을 느낀 엘로디아가 물었다.
“이, 이거 어떻게 멈춰요?”
“잠시만요. 한번 멈춰 보겠습니다.”
로버른은 엘로디아를 붙잡고, 허리에서 단검을 꺼내 지면에 박았다.
팔에 엄청나게 과부하가 걸렸지만, 속도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신용사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려가 버렸다.
엘로디아는 그걸 보고 놀라 물었다.
“신용사 님은 어쩌려고요?”
“내 걱정은 말고 내려오기나 해.”
그렇게 대꾸한 신용사는 도리어 미끄럼틀이 된 계단을 박차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얼마 안 지나서 바닥이 보였다.
그런데 바닥에 사람 키만 한 가시가 잔뜩 있었다.
이대로 추락했다가는 저 가시에 찔려 즉사할 것 같았다.
“헛짓거리를 하다니.”
신용사는 코웃음을 치고는 성검을 아래로 휘둘러 가시를 박살 내고, 추락하는 방향을 바꿔 지면에 무사히 내려왔다.
“역시 이런 단순한 함정에는 안 당하네.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신용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앞을 노려보며 외쳤다.
“대마왕 제니칼! 장난은 끝이다.”
“그거야 이쪽이 할 말이지.”
제니칼은 성검을 휘두르는 신용사에게 대꾸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잠시 후.
겨우 아래로 내려온 엘로디아는 깜짝 놀랐다.
신용사와 대마왕 제니칼의 전투로 인해 사방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용사가 상처투성이였다.
“시, 신용사 님! 괜찮으세요?”
“이런 씨, 보면 몰라? 저 녀석 생각보다 강하잖아! 여신이 나한테 사기를 치다니.”
“사기라니, 그게 무슨 말이세요?”
신용사의 말에 충격받은 엘로디아가 눈을 껌뻑거리며 되물었다.
“여신이 나보고 마신을 쓰러트리라고 했잖아. 그러면 대마왕쯤은 쉽게 해치울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도리어 당하다니, 이거 완전 사기잖아.”
그 말에 로버른이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그것만 믿고 이렇게 무모하게 덤빈 겁니까?”
“아니, 당연한 거 아니야? 일대일로 붙어서 지는 게 말이 되냐고.”
신용사가 울분에 차서 따졌다. 제니칼은 그걸 보며 웃으며 재차 공격했다.
“흐흐, 내가 여신에게 보내 줄 테니까 가서 따지라고.”
“이 자식이.”
신용사는 이를 악물었지만, 이미 지쳐서 제니칼의 공격을 겨우 막아 내는 게 전부였다.
한편 투명화해서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아르칸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도 이렇게밖에 못 싸우다니.’
아르칸이 보기에 실제 여신이 내려 준 힘은 구용사나 신용사나 비슷했다.
구용사는 소설 속에서 홀로, 자식이 죽어 분노해서 총력을 다해 덤빈 바리스탄을 이겼다.
그런데 신용사는 대마왕 중에 제일 약체인 데다 아르칸에게 상아를 잃기까지 한 제니칼을 상대로도 애먹고 있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건 어디까지나 힘을 제대로 못 다루고 있어서였다.
‘너무 비효율적으로 싸우고 있어.’
신용사는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전시안에 오러 블레이드까지 마구 써 대고 있었다.
덕분에 금방 지친 데다, 틈도 컸다.
반면에 구용사의 전투는 낭비가 없었다.
전시안은 필요할 때만 썼고, 힘을 잘 갈무리한 오러 블레이드는 아주 예리했다.
신용사가 구용사에 비해 모자란 걸 확인한 아르칸은 내심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이러다가 제니칼이 이겨 버릴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내가 개입할 틈이 없잖아.’
원래 계획은 제니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 주고, 살려 주는 대가로 마신의 뿔을 넘겨받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제니칼이 이기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이렇게 된 이상, 도리어 신용사를 도와줘야 하나? 그랬다가 들키면 계획을 망치는 건 마찬가진데.’
난감해하는 와중에 다행히 구용사와 달리 신용사에게만 있는 게 하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왕국 제일검 로버른 경과 성녀 엘로디아였다.
“신용사 님, 뒤로 물러나세요!”
로버른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면서 신용사가 몸을 뺄 틈을 만들어 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엘로디아가 눈을 감고 기도하더니 찬란한 빛이 신용사를 감쌌다. 그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신용사의 상처는 감쪽같이 나아 있었다.
아르칸은 용사가 동료로 받아 주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둘의 능력을 직접 보고는 새삼 감탄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인걸? 역시 동료로 낙점될 만해.’
소설 속 용사도 이 둘과 함께 돌아다녔으면 훨씬 모험하는 데 수월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 신용사는 자신의 몸이 회복한 걸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진작 좀 도와주지.”
‘도와줘도 저러네. 말 좀 예쁘게 하지.’
아르칸은 신용사의 말에 황당해했다.
로버른과 엘로디아도 마찬가지인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짚고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이것들이, 방해하다니!”
신용사 외에는 만만하게 보고 있던 제니칼은 분노하면서 힘을 끌어올렸다.
코끼리 코를 부풀리더니 엘로디아에게 콧바람을 쐈다. 총알처럼 날아간 콧바람은 정확히 엘로디아의 어깨에 적중했다.
“꺅!”
“멍청하게 피하질 않고! 로버른, 비켜! 내가 다시 상대한다!”
신용사는 분노하면서 다시 제니칼에게 덤벼들었다.
그사이 로버른은 엘로디아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살펴보았다. 어깨는 완전히 박살 났는지 팔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성녀님,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신용사 님을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로버른은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들어 신용사와 제니칼이 싸우는 데 끼어들었다.
“크윽.”
제니칼은 그 기세에 놀라 주춤했다.
로버른은 왕국 제일검답게 확실히 강했다.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해도 신용사가 내보이는 빈틈을 착실하게 커버했다.
심지어 성녀도 다친 주제에 신용사와 로버른에게 축복의 기도로 강화시켰다.
확실히 일대일일 때보다 상대하기 버거웠지만, 제니칼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신용사가 멍청한 녀석이라 살았군.’
상처와 체력을 한 번에 회복한 신용사는 기세등등하게 덤볐다.
다만, 그만큼 더 거칠고 무모해 상대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 둘은 쉽게 못 잡겠지만, 신용사만이라면 어떻게 해칠 수 있을 거 같아.’
하지만 신중해야 했다.
어지간한 상처는 성녀가 또 회복시킬 테니까 가능한 한 일격에 치명상을 줄 필요가 있었다.
한편 제니칼이 여유롭게 공격을 막아 내자 초조해진 용사가 소리쳤다.
“젠장, 로버른! 좀 비키라니까! 방해되잖아!”
‘지금이다!’
제니칼은 신용사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이는 도중에 큰 빈틈이 생긴 걸 보고 코끼리 코를 뻗어 로버른을 후려친 뒤, 곧바로 신용사를 휘감았다.
“크억.”
“이 자식! 안 놔? 죽을래?”
신용사가 욕설을 내뱉으며 저항했지만, 제니칼은 전력을 다해 있는 힘껏 압박했다.
우두둑.
“으아아아악!”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신용사가 비명을 질렀다.
“신용사 님!”
놀란 로버른이 다친 와중에도 다시 공격해 신용사를 구해 냈다.
그러나 신용사는 처음 겪는 극한의 고통에 넋이 나가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성녀님, 신용사 님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제 온 힘을 다해서 회복시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로버른이 신용사를 내려놓고 제니칼 앞에 섰다.
신용사가 개차반이라고 해도 신용사가 죽어 버리면 끝장이었다.
“저런 녀석을 위해 목숨을 걸 생각이냐?”
“신용사 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 세계를 위해서다.”
로버른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온 힘을 끌어올렸다. 힘을 한계까지 끌어내자 오러 블레이드가 평소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얼핏 봤을 때도 신용사가 휘두르는 오러 블레이드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강력했다.
로버른은 강화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제니칼에게 덤볐다.
“이거 방심하면 안 되겠군.”
제니칼은 그렇게 말하면서 기세를 가다듬으며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 냈다.
전과 달리 상처가 나면서 피가 튀었지만, 제니칼을 꺾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퍽!
로버른은 결국 제니칼에게 얻어맞고 더는 일어서지 못했다.
그때였다.
“악!”
엘로디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신성력을 무리하게 발휘한 반작용이었다.
그 덕분에 신용사는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휴,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야.”
투덜거리는 신용사를 향해 엘로디아가 마지막 힘을 짜내 말했다.
“신용사 님, 저희 세계를 구해 주세요.”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별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그. 그런……. 크윽.”
온 힘을 다해 신용사를 회복시켰던 엘로디아는 그 말에 절망하며 쓰러졌다.
신용사는 그런 엘로디아를 슬쩍 보더니 제니칼을 노려봤다.
“그래도 저 녀석은 마음에 안 드니까 해치워 주지.”
“이런 거머리 같은 녀석이…….”
제니칼은 신용사가 또 회복한 걸 보고 경악했다.
따지고 보면 신용사와 벌써 세 번째 싸우게 된 상황.
그사이 목숨을 걸고 덤빈 로버른에게 제법 힘이 빠지기도 했었다.
그 결과, 이번에야말로 제니칼은 코끼리 코가 잘리고 그대로 가슴팍에 오러블레이드가 박혔다.
“크윽, 분하다.”
“흐흐흐흐, 어때? 내가 이겼지?”
신용사가 사악하게 웃으며 잘난 체했지만, 신용사가 이 마지막 전투에서 얻은 상처도 적지 않았다.
여기저기 얻어맞아 얼굴이 붓고 전신에서 피가 나왔다.
제니칼의 숨통을 끊을 힘도 남지 않았던 신용사는 오러 블레이드를 거두고 성검을 회수한 뒤, 그대로 뒤를 돌았다.
“어차피 내버려 두면 죽겠지. 이 녀석 부하들이 돌아오기 전에 나가야 해…….”
그렇게 중얼거린 신용사는 절뚝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제니칼은 점점 온몸이 굳는 걸 느끼며 분해했다.
‘젠장, 저딴 녀석한테 당하다니. 차라리 아르칸에게 죽는 게 낫지.’
그런 생각을 해서였을까?
자신이 만들어 둔 구멍을 통해 누군가 내려왔는데, 아르칸이었다.
아르칸은 쓰러져 있는 제니칼을 보며 화들짝 놀라 다가왔다.
“제, 제니칼 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