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새로운 대마왕성의 주인 (1)
제니칼 대마왕성 밖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수인족들은 미치듯이 덤벼들었지만, 원정대는 악을 쓰며 버텼다.
“야! 물러서면 다 죽는다! 절대로 밀리면 안 돼!”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내서 싸워!”
“조금만 버티면 끝난다! 끝난다고!”
지휘관들이 목소리 높여 독려할 수 있는 건, 신용사과 왕국 제일검, 성녀님이 대마왕을 퇴치하러 대마왕성에 잠입했다는 사실을 알아서였다.
무섭고 지쳤던 병사들도 그 이야기를 듣고 일말의 용기를 짜내서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
“신용사 님이라면 반드시 해치울 거야.”
“그러면 집에 돌아갈 수 있어.”
“조금만 힘내서 버티자.”
신용사가 대마왕을 쓰러트린다는 확신도, 대마왕이 쓰러졌을 때 수인족들이 전투를 그만둔다는 근거도 없었지만.
병사들은 그것만 믿고 필사적으로 싸울 뿐이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싸운 것 같았는데도, 수인족들에게는 지친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 거야?”
“아직인가, 신용사 님은?”
“설마 대마왕에게 당한 건 아니겠지?”
원정대의 모두가 희망을 잃어 가던 그 순간, 수인족들이 달라진 걸 감지했다.
“어, 저것들 왜 저래?”
“뭔가 이상한데.”
“움직임이 둔해졌어!”
희번덕거리던 눈빛으로 시퍼런 칼날도 무서워하지 않고 덤비던 수인족들이 주춤하고 있었다.
일부 수인족은 공격을 멈추더니 눈치를 보며 물러서기까지 했다.
이미 지쳐 있었던 원정대는 난데없는 변화에 한숨 돌렸다.
동시에 왜 저런 변화가 생겼는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설마 신용사 님이 해낸 건가?’
‘대마왕을 쓰러트리신 게 틀림없어.’
‘저것들도 그걸 알고 물러나는 걸 거야.’
그때였다.
저 멀리서 웬 청년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마왕 제니칼 님이 돌아가셨다. 신용사가 대마왕성에 잠입해 살해했다.
마계 측의 인물이 말하는 거였지만, 원정대로서는 상관없었다.
기대하던 희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신용사 님이 해낸 거였어.”
“대마왕을 쓰러트리다니! 정말 대단해. 신용사 님 만세!”
“신용사 님 만세! 왕국 제일검 만세! 성녀님 만세!”
원정대의 모두가 기뻐하면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반면, 절망적인 소식에 수인족들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내뱉는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낮지만 의미심장한 목소리에 원정대는 곧바로 함성을 가라앉혔다. 저 ‘하지만’이라는 말에 불길함을 느낀 거였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현실이 됐다.
-나 마왕 아르칸이 대마왕 제니칼 님의 원수를 갚았다. 그리고 제니칼 님의 유지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원수를 갚았다고 했지?”
“그렇다는 건 신용사 님도 죽었다는 건가?”
“이럴 수가, 다 끝장이야.”
원정대는 절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용사가 기껏 대마왕을 해치웠더니, 그 신용사는 살해당하고 새로 대마왕이 되겠다는 마왕이 나타난 거였다.
희망이라고는 조금 없는 상황.
그때 아르칸이 말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전부 나가라. 이후에도 내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으면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
그 말에 절망하던 모두의 귀가 쫑긋했다.
한마디로 이곳에서 벗어날 기회를 준다는 의미.
“어, 어서 도망치자!”
“야, 아직 시간 있으니까 뒤에서부터 빠지게 기다려.”
“머뭇거리다가 마음 바뀌면 어쩌려고. 조금이라도 빨리 도망쳐야 해.”
원정대는 곧바로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휘관도 통제하지 않고 무작정 철수하는 바람에 넘어져 다치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
한편 수인족은 원정대가 철수하는 걸 바라보면서 수군거렸다.
“방금 들었지? 제니칼 님이 돌아가셨다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보다 인간족들 저렇게 돌아가게 내버려 둬도 되는 거야?”
“맞아. 저렇게 무방비로 도망치는데.”
“알아서 해.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까.”
“하긴, 인간족들 해쳐서 얻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들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원정대를 추격하지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인간족이 쳐들어와서 맞서 싸웠을 뿐이지, 인간족을 해친다고 얻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이 전투에 참여했던 수인족 마왕들과 제니칼 대마왕성의 간부들, 그리고 자신의 힘에 자신 있는 수인족들은 제니칼 대마왕성으로 향했다.
아르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
수인족들이 찾아오는 걸 예상한 아르칸은 9계층, 통제실 앞 넓은 공동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제니칼과 신용사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곳.
아르칸은 둘이 싸웠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제니칼의 시신 조금 옆에 용사의 시신을 뒀다.
단, 제니칼의 시신 아래는 나무판을 받쳐 둬서 마왕성에 흡수되는 걸 막았다.
제니칼은 마왕성에 흡수시켜도 된다고 했지만, 대마왕 정도 되면 흡수시키는 데도 한참 걸린다.
무작정 여기서 흡수시키면 보호하기 어려운 데다, 이곳의 마정석은 나중에 분리할 테니까 흡수시키기에는 아까웠다.
잠시 후.
9계층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르칸을 찾아온 수인족들이 잔뜩 몰려온 거였다.
그들은 처음에는 시신들이 놓여 있는 걸 보고 움찔했다.
그들은 진정이 되자 먼저 제니칼의 시신에 경의를 표하고, 옆에 있는 신용사의 시신에 침을 뱉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제니칼 님이 당하다니.”
“가장 강한 수인족으로 존경받던 분이셨는데.”
“분명 치사하게 이겼을 게 분명해.”
분해하는 수인족에게 아르칸이 다가가서 말했다.
“제니칼 님의 말에 따르면 신용사는 자신보다 약해서 쓰러트렸는데, 몇 번이나 신용사가 회복해서 억울하게 졌다는군.”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제니칼 님이 이딴 놈에게 당할 리가 없지.”
“이 비겁한 놈, 잘 죽었다!”
다들 한마디씩 하는 와중에 기린 수인족이 말했다.
“그나저나 은근슬쩍 제니칼 님의 장례식을 주관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어림없다.”
“맞아. 제니칼 님의 유지를 잇는다고 했지? 누구 허락을 받고?”
“너는 바리스탄의 자식 아니냐. 너희 영역으로 가서 놀지 그래?”
“망나니 마왕이 대마왕이 된다고? 어림도 없지.”
기린 수인족의 말에 다른 수인족들도 와르르 불만을 토해 냈다.
그걸 본 아르칸이 제니칼과 한 계약서를 꺼냈다.
“잔소리하지 말고 이거나 봐. 제니칼 님의 부탁으로 쓴 피의 계약서니까.”
아르칸은 부탁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항의하던 수인족들은 그걸 보고 말문이 막혔다.
제니칼이 부탁을 강제하기 위해 계약서까지 썼을 줄은 생각도 못 한 거였다.
아니, 욕심이 많은 만큼 의심도 많은 제니칼이라면 아르칸이 자기 사후에 입을 닦고 모른 척할 걸 대비해서 계약서를 쓰고도 남긴 했다.
“계약서대로 복수하고, 시신까지 지키고 있거든. 그러니 마신의 뿔과 이 대마왕성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말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수인족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기린 수인족이 나섰다.
“그 계약은 제니칼 님과의 계약. 돌아가셨으니 무효 아닌가?”
“어, 그렇게 되나?”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몇몇 수인족이 동조하려는 걸 보고 아르칸이 계약서를 흔들었다.
“감히 제니칼 님의 유지를 무시하는 건가? 무시할 거면 무효라고 해도 되고.”
“……하긴, 무효가 중요한 게 아니긴 하지. 저건 어디까지나 제니칼 님의 뜻이라는 걸 확인해 주는 게 목적이니까.”
“제니칼 님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야 의지를 존중해야지.”
다른 수인족들이 아르칸의 말에 동조하자 기린 수인족이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무시하다니, 그럴 생각은 없었다.”
아르칸은 자신의 작전이 통하는 걸 보고 내심 제니칼의 평가를 상향했다.
‘생각보다 제니칼의 평판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네. 역시 대마왕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제니칼이 조금도 존경받지 못했다면, 죽은 걸 보고 오히려 잘됐다고 떠들고 말았을 게 분명했다.
생전의 계약서를 내민다? ‘어쩌라고.’ 하면서 비웃어 넘겼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어도 대처할 방법이 있긴 했지만, 귀찮았을 텐데 잘됐네.’
그때였다.
“말장난은 그만!”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자 근처에 있던 수인족들이 움찔하면서 물러났다.
그 벌어진 틈으로 나타난 건 근육질의 멧돼지 수인족이었다.
이마에 난 뿔은 아주 뭉툭했는데 이마의 반을 덮을 정도로 굵고 커다란 게 아주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거기다가 제니칼의 상아처럼 두 개의 엄니에도 마력이 맴돌고 있는 듯했다.
수인족 사이에서는 유명한지, 그들은 멧돼지 수인족을 보며 수군거렸다.
“마왕 굴로루스?”
“굴로루스라면 이제 마왕성 랭킹 34위던가. 아니, 작년에 29위까지 올라갔잖아.”
“근데 여기서 싸우고 있었나? 아까 못 봤는데.”
“금방 도착했나 봐.”
‘굴로루스라…….’
아르칸도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는 마왕성 랭커였다.
‘그래 봤자 이제 별로 무섭지도 않지만.’
굴로루스는 자신 있게 다가와서 아르칸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지금 이 대마왕성의 주인이라고 주장하겠다는 거군?”
“그래.”
아르칸의 대답에 걸려들었다는 듯 굴로루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더니 가지고 온 전투 도끼로 아르칸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대마왕성의 주인에게 도전하겠다. 그건 상관없겠지?”
계약은 인정하되 힘으로 이 대마왕성을 뺏겠다는 소리였다.
어차피 아르칸도 이 계약서만 보여 준다고 다 포기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결투 신청을 받아들이지.”
“흐흐, 그럼 당장 여기서 결정짓자고. 다들 뭐 해? 어서 비켜!”
굴로루스가 외치자 수인족들은 멀찍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커다란 원형 결투장이 만들어졌다.
그때, 아까부터 끼어들었던 기린 수인족이 말했다.
“결투하는 건 좋지만, 제니칼 님의 시신 바로 옆에서 하는 건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만.”
“어차피 상대가 안 될 테니 상관없겠지만, 조심하긴 해야지.”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공간 주머니에 제니칼의 시신을 조심스레 넣었다.
“상대가 안 된다는 것치고는 시간을 너무 끄는 거 아니냐?”
굴로루스의 말에 기린 수인족이 말했다.
“금방 끝나니 조금만 참을성을 가지게.”
“흥.”
그렇게 제니칼의 시신을 넣고 나자 굴로루스가 전투 도끼를 들어 올렸다.
“다 끝났으면 어서 시작하자고.”
“잠깐만, 하나만 더 준비하고.”
“뭐 또?”
굴로루스가 짜증을 냈지만, 아르칸은 무시하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뭐야? 해츨링 아니야? 해츨링 따위는 내 상대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나온 해츨링을 보며 비웃던 굴로루스는 말을 끝까지 못 하고 삼켰다.
해츨링이 어느새 거대한 블랙 드래곤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용이 폴리모프를 해제하고 본모습을 드러낸 거였다.
“피용아, 이 녀석 좀 상대해 줄래?”
“피이, 알았어! 재밌겠다.”
굴로루스는 블랙 드래곤이 자신을 보며 웃는 걸 보며 섬뜩함을 느꼈다.
“자, 잠깐. 네가 싸우는 거 아니었나?”
“대신 싸울 부하가 있는데 내가 왜 나서?”
그 말에 할 말이 없긴 했다.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군. 다음에 보지.”
그렇게 말한 굴로루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아르칸이라면 모르겠지만, 블랙 드래곤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던 거였다.
“바쁘다면 하는 수 없지. 혹시 또 도전할 사람? 아무도 없어?”
아르칸이 물었지만, 다들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수인족들이 과격하고 즉흥적이라고 해도, 블랙 드래곤의 위용을 직접 보고도 겁 없이 덤빌 만큼 무모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의가 없으면 앞으로 내가 이 대마왕성의 주인이다?”
그때 대표로 기린 수인족이 말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의 충성을 받는 건 별개의 문제다.”
“잘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대마왕이라고 멋대로 굴 생각은 없으니까. 특별히 바뀌는 것도 없을 거야.”
아르칸의 말에 기린 수인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수인족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중심은 필요한 상황. 억지만 부리지 않는다면 아르칸에게 협조할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기린 수인족은 이후 아르칸의 행보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뀌는 게 없다더니……. 너무 많이 바뀌잖아? 좋게 바뀌니 할 말은 없지만.’
기린 수인족의 감상처럼 수인족 영역의 수인족들은 대만족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