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대마왕들의 회합 (1)
아르칸 마왕성이 대마왕성 흡수를 마쳤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건 대마왕 키클로테스의 사신이었다.
사신은 오웬처럼 정장을 차려입은 악마족이었는데, 아르칸을 보자마자 정중히 인사했다.
“저는 대마왕 키클로테스 님을 모시는 네불론이라고 합니다. 대마왕 아르칸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마왕? 그런 호칭을 붙이기에는 아직 섣부른 거 같은데.”
“그럴 리가요. 이렇게 대마왕의 회합에 초대받으셨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한 네불론은 작은 상자를 내밀어 뚜껑을 열었다. 거기에는 주먹만 한 마석이 들어 있었다.
아르칸은 예전에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영혼석?”
“비슷하지만 아닙니다. 대마왕들의 회합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장이라고 할까요? 본앰브로스 님이 특별히 만드신 겁니다.”
‘초대장이 마석일 필요가 있나? 그보다 이렇게 바로 대마왕으로 인정해 주는 건가? 마왕성 랭킹도 갱신하지 않았는데?’
여러 가지 의문이 동시에 떠오르는데, 오웬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대가 왔다는 건, 키클로테스 님이 소집한 회합이겠군요.”
“그렇습니다.”
“회합은 소집하는 대마왕이 이렇게 초대장을 준비합니다. 또 초대장이라고 해도 직접 어딜 가는 건 아닙니다. 통제실의 마정석을 사용하여 의식만 회의실로 간다고 하지요.”
아르칸은 생각지도 못하게 바로 대마왕으로 인정받고 회합에 참석하게 됐다.
소설에도 나오지 않고 아르칸의 기억에도 없어 난감하던 차에, 대마왕 바리스탄 대마왕을 모셨던 오웬이 눈치껏 나서서 설명해 준 거였다.
‘하긴, 대마왕들이 직접 모여서 이야기하기는 아무래도 힘들겠지.’
이해는 됐지만, 살짝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분명 의식만 간다고 했는데, 아르칸은 현실에서는 평범한 인간인 빙의자였다.
이 신체의 주인이었던 아르칸은 영혼석의 붕괴로 소멸했다. 그 일부를 다시 흡수하긴 했지만, 기억만 떠올릴 수 있을 뿐이지 의식이 남아 있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초대장을 써서 의식만 회의장으로 갔다가 빙의 전 아르칸의 모습 그대로라면 아주 곤란했다.
아르칸이 오웬에게 슬쩍 물었다.
“의식만 간다고 했지? 뭔가 단정한 옷이라도 입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나?”
“아, 어차피 외형은 안 나오니까 상관없습니다.”
다행이었다.
아르칸이 안도하고 있는데, 오웬이 네불론에게 물었다.
“그래서 안건은 뭡니까? 키클로테스 님도 우리 사정을 뻔히 아실 텐데, 너무 급하게 회합을 여는 거 같습니다만.”
“그만큼 급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인간계 침공을 논의해야 하니까요.”
“예? 인간계 침공을 논의할 거라는 말입니까?”
“네, 침공을 받았으니 반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최대한 빨리요.”
놀라서 묻는 오웬에게 네불론이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확실히 절호의 기회긴 하지.”
“역시 대마왕님이십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오늘 밤에 오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알겠다.”
정체를 들키는 것만 아니라면, 아르칸이 빠질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인간계 침공 논의에 내가 빠지면 안 되지.’
아르칸의 대답을 들은 네불론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정중하게 인사한 뒤 순식간에 사라졌다.
“순간 이동?”
“네. 그래서 아주 긴급한 연락일 때만 나서는 녀석인데, 인간계 침공이라니…….”
오웬은 아무래도 걱정되는 듯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직 여기는 한창 수인족 영역을 안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
대뜸 인간계를 침공하겠다고 움직이기에는 골치 아픈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오웬을 안심시킨 아르칸은 밤이 되길 기다렸다.
약속 시각이 되었을 때, 통제실에 앉아 마정석에 초대장을 올려놓았다.
그게 마정석에 흡수되는 순간, 아르칸은 의식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검은 공간에 놓인 작은 원반 위였다.
그 원반에는 비석과 같은 게 놓여 있었는데 모두 초록색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나도 저런 모습인가? 들킬 일은 없겠네.’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좌측의 비석에서 불쾌한 듯한 음성이 들렸다.
“흠? 이질적인 기운이 들어왔다. 설마 이곳에 침입자가 있을 줄이야.”
동시에 비석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금방이라도 아르칸을 공격할 것처럼 위협했다.
‘이질적인 기운? 모습이 안 보인다고 안심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심지어 이 상태로도 싸울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나섰다.
“키클로테스! 아르칸과 사이가 나쁜 건 알겠지만, 사정 알면서 괜한 트집 잡지 마라.”
대마왕 본앰브로스였다.
본앰브로스의 말에 키클로테스가 황당해했다.
“트집이라니…….”
“아르칸이 순수 마족이 아니라고 그러는 거잖아. 그래도 아르칸은 여기 바리스탄의 자랑스러운 자식이자, 제니칼을 대신해 수인족 영역을 차지한 대마왕이다!”
순수 마족이 아니라는 말은, 바리스탄의 아내이자 아르칸의 어머니인 아네스가 엘프인 걸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때문에 아르칸은 마력은 없었지만, 성장의 샘물에서 강력한 정령 친화력을 개화할 수 있었다.
“크흠.”
바리스탄도 불쾌한 듯 헛기침을 했다.
“아니, 그것과는 다른데…… 아니, 그것 때문인가?”
순식간에 곤란해진 키클로테스는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의심이 확실한 것도 아니긴 했다.
그때 바리스탄이 말했다.
“아마 아르칸인지 몰라서 그랬겠지. 아르칸, 너도 왔으면 가만히 있지 말고 인사해야지. 말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된다.”
“아,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랬습니다. 키클로테스 님, 저는 개의치 않으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흠, 흠. 아니야. 미안하네. 그럼 가타부타 할 거 없이 본론부터 꺼내겠네.”
아르칸이 먼저 시치미를 떼며 말하자 키클로테스도 더 따지기 어려운 듯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인간계 침공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
오웬이 통제실을 나오는 걸 본 아바로스가 물었다.
“아르칸 님은 회합에 들어가셨습니까?”
“그렇다네. 나오실 때까지 통제실로는 아무도 못 들어가니 그리 알게.”
오웬이 단호하게 말하며 입구를 막았다.
그때 함께 온 데시무스가 물었다.
“그보다 인간계를 침공할 거라던데, 정말입니까?”
데시무스는 볼가와 같이 블랫마켓의 노예 출신으로, 본래 이름을 날리던 인간족 용병인 만큼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거였다.
“지금 그걸 이야기하러 가신 거니 조만간 결론이 나올 걸세.”
“볼 것도 없이 침공하기로 결론 날 겁니다. 지금처럼 절호의 기회는 없으니까요.”
오웬의 대답에 아바로스가 단호히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오웬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셀레스티온 왕국에서 보낸 마계 정벌 원정대는 마계 전역에 쳐들어오지도 못했고, 수인족 영역에서 막아 냈다.
덕분에 다른 세 대마왕의 전력 손실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심지어 사망한 수인족 대마왕 제니칼의 공석도 아르칸이 차지해 혼란을 수습하는 중.
반면에 인간족 측의 피해는 극심했다.
먼저 가장 강한 전력인 신용사가 사망했다.
왕국 제일검과 성녀도 아르칸이 생포했지만, 신용사와 함께 전사한 거로 알려져 있었다.
거기다가 이번 전쟁으로 반드시 마계를 밀어 버리겠다며 무작정 돌격하는 바람에 기사와 병사들의 피해도 극심한 상황.
조금만 생각하면 아바로스의 말처럼 마계 측으로서는 절호의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데시무스도 그걸 잘 알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그래도 지금 인간족 원정을 가는 건 저희로서는 그다지 환영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수인족 영역도 아직 정리가 안 되었고요.”
그 말에 아바로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볼가 님을 새 마왕으로 앉힌 건 아르칸 님의 절묘한 한 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의외군. 자네가 실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오웬이 그럴 만도 한 게, 아바로스는 원래 제니칼 대마왕의 심복 중에서도 영역을 관리하는 데 애썼던 참모.
수인족 영역 내의 일에서는 빠삭했다.
아르칸 쪽에 전향한 만큼, 수인족 영역 관리를 맡길 겸 마왕으로 임명할 걸 기대할 만한 인재였기 때문이다.
“저는 제 그릇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마왕을 하고 싶었다면 진작에 마왕이 됐을 겁니다.”
실제로 아바로스는 마정석을 하나 들고 있어서 몸값으로 내기도 했었다.
“그보다 현재 제니칼 님 치하에서 빛을 못 보던 수인족들이 볼가 님에게 많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적절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죠. 아르칸 님이 마신이 되었을 때 수인족 영역 담당으로 삼기에 그보다 더할 인재는 없을 겁니다.”
“마신이라…….”
그 말에 오웬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감히 마신의 자리를 넘보겠느냐고 타박했겠지만.
아르칸은 반지하로 튀어나와 망할 것 같았던 마왕성을 벌써 9계층, 아니 마음만 먹으면 10계층도 가능한 대마왕성으로 이뤄 냈다.
마신에 도전하는 것도 꿈만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 인간계 침공이 결정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 건지는 아르칸 님이 따로 생각해 두신 게 있는 거 같은데. 짐작 가는 게 있나?”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겠군요.”
오웬의 물음에 아바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키클로테스는 앞서 나온 논조와 거의 같은 논리로 인간계 침공을 주장했다.
지금이 인간계를 침공해 셀레스티온 왕국을 정복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르칸은 난감했다.
그건 아바로스나 오웬이 말했듯이 수인족 영역을 아직 완전히 장악 못 해서만은 아니었다.
만약 이대로 마계가 인간계까지 완전히 정복하면 용사가 난리 칠 게 분명해서였다.
‘잠깐, 마계 쪽이 다 정복하는 것도 평화로워진 거라고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니야. 그건 아니야.’
아르칸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떨쳐 냈다.
아무래도 마왕이다 보니 사고방식이 마계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지금만 봐도 마왕끼리 마왕성 랭킹까지 만들어 끊임없이 싸우는데, 마계 쪽이 다 정복한다고 해서 평화로워질 리가 없지.’
무엇보다 아르칸이 이 세계에 남기 위해 작가와 협상하려면 용사가 평화를 지키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걸 어떻게 막는담.’
아르칸이 고민하고 있을 때, 본앰브로스가 말했다.
“우리가 유리한 건 확실하지만, 아우리오스는 어떻게 상대할 생각인가?”
“하긴, 아우리오스에 대한 대책이 가장 중요하지.”
바리스탄도 말했다.
‘아우리오스라니 그게 뭐지? 처음 들어 보는데.’
소설 속에서는 용사가 주로 마계에서 활동해서 인간계에 뭐가 있는지, 대마왕들이 뭘 말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행히 원래 아르칸의 기억이 떠올랐다.
‘왕국을 수호하고 있는 고룡,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라…….’
이 세계에 몇 남지 않은 드래곤 중에 골드 드래곤이 있다는 건 아르칸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왕국의 수호룡이었다니.
‘그러니까 왕국을 쳐들어가면 찾을 필요 없이 고룡을 만날 수 있단 말이지? 잘됐네?’
골드 드래곤의 성격이 괴팍한 건 소설 속에서도 유명하지만, 만날 필요는 있었다.
바로 골드 드래곤이 정령을 정령왕으로 승급시킬 수 있는 생명의 마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신님이 아닌 이상, 해치우는 건 불가능하지. 그래도 대마왕급이 나서면 우리가 인간계를 정복하는 동안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야.”
키클로테스의 말에 아르칸이 나섰다.
“아우리오스는 제가 맡겠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로 아주 강력한 존재다.”
“네 마력도 제법이지만, 무리야.”
“그래, 괜히 나섰다가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우리까지 곤란해진다.”
아버지인 바리스탄부터, 본앰브로스, 심지어 키클로테스까지 만류했다.
하지만 아우리오스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던 아르칸은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상대할 건지는 말할 수 없으니 다른 이유를 대야 하겠지만, 그 이유도 생각해 뒀다.
“이에는 이, 용에는 용. 블랙 드래곤으로 막을 생각입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