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대마왕들의 회합 (2)
골드 드래곤을 블랙 드래곤으로 상대한다는 말은 아르칸의 예상대로 통했다.
“그러고 보니 블랙 드래곤을 데리고 다녔지.”
“확실히 드래곤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겠지.”
바리스탄과 본앰브로스가 납득하자, 키클로테스도 인정하면서도 아르칸에게 주의를 줬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나한테 연락해. 잘못해서 원정대를 위태롭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대충 합의는 된 거 같고. 구체적인 건 실무자들끼리 이야기하는 거로 하지.”
키클로테스가 이대로 회합을 끝내려고 할 때, 아르칸이 말했다.
“저 할 말이 남았는데요?”
“……뭐냐?”
“이번 원정에서 저희가 아우리오스를 막는 대신, 저희 쪽에서는 병력을 따로 안 보내겠습니다.”
“뭐라고?”
“아니, 합리적인 것 같긴 해. 아르칸이 아우리오스를 막으러 다니면서 수인족들까지 통제하긴 어려워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게다가 인간족 쪽은 용사도 없겠다,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을 거 같은데?”
“흠, 알겠다. 대신 인간계를 직접 점령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영토 분배에 불리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도록.”
“지금 영역만으로도 정신없는걸요.”
아르칸은 너스레를 떨면서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어차피 원정대가 인간계를 점령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지만, 대놓고 분배 때 불이익을 준다고 말하는 게 못마땅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이렇게 대화하고 있지만, 키클로테스가 어머니를 공격해 죽일 뻔했던 일을 잊은 건 아니었다.
‘너는 나중에 꼭 대가를 치르게 해 준다.’
“그럼 이것으로 회합은 마치지. 거행은 열흘 뒤니까 다들 늦지 않도록. 특히 본앰브로스 네 녀석은 최대한 빨리 출발해.”
“아, 잔소리 안 해도 안 늦을 거야. 그보다 아르칸…….”
“시체 말이죠? 인간족 시체라면 쓸모없으니 챙겨 놨다가 드리겠습니다.”
“크, 역시 눈치 빠르단 말이지. 들었지? 언데드 군단을 만들 소재도 구했으니 늦을 일 없을 거야.”
“그럼 이걸로 회합을 끝내겠다.”
“잠깐.”
바리스탄이 입을 열었다.
회합 내내 별다른 말이 없던 바리스탄이었기에 다들 조용히 하며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우리 파벌 소속으로 엘프들도 참전해도 괜찮겠나.”
여기서 말하는 엘프들은 마신 전쟁 때 마계 쪽으로 투항한 엘프들.
바리스탄의 아내이자 아르칸의 어머니, 아네스도 그 엘프의 후손이었는데, 그들을 위해서 물어본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 엘프들은 정령들을 외면하고 생존을 위해 마계에 투항하면서 정령술을 못 쓰게 됐다는 거였다
정령술의 유용함을 생각하면 힘이 반 토막 난 거나 마찬가지. 덕분에 마계에서 입지도 좋지 않았다.
그걸 이번 원정에서 활약해서 만회하려는 계획인 듯했다.
키클로테스가 비웃었다.
“크흐흣. 별 도움이 안 되지 않나, 힘도 없는데? 참여한 것만으로는 마신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나도 엘프들은 굳이 필요한가 싶은데. 차라리 아르칸 마왕성에 있는 엘프들이면 모를까.”
“……알겠다.”
본앰브로스마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바리스탄이 체념했다.
그 침울한 분위기에 아르칸은 도와주고 싶었지만, 막상 도와주기 애매했다.
부자 관계인 아르칸이 나서서 편들어 줘 봤자 참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정작 아르칸은 마왕군을 막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더 할 말이 없으면 이만 가겠다.”
키클로테스는 그 말을 끝으로 퇴장했는지 비석의 불이 꺼졌다.
이어서 본앰브로스가 말했다.
“맞아. 아르칸, 대마왕이 된 걸 축하해 주는 걸 잊었네. 아니, 축하할 일은 아닌가? 고생길이 훤하거든.”
“감사합니다. 참, 통과 경로는 저희 쪽에서 정한 대로 오셨으면 합니다만.”
언데드 군단이 이동하면서 내뿜는 죽음의 마기는 주변 환경을 오염시킨다.
수인족 영역도 기본적으로 마계라 마기가 가득하긴 했지만, 그나마 있는 수풀이나 하천마저 언데드 군단이 지나가면 못 쓰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알았어. 언데드 소재도 받기로 했는데 그 정도는 들어줘야지. 그럼 연락해 줘.”
본앰브로스도 퇴장하면서 비석의 불빛이 꺼졌다.
아르칸은 바리스탄의 의식이 들어 있는 비석을 바라봤다.
뭔가 이야기할 게 있어서 남아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아르칸, 대마왕이 된 걸 축하한다. 정말 자랑스럽구나.”
진심 어린 아버지로부터의 인정.
비록 빙의된 몸이라고 하지만 순간 밀려오는 감격에 가슴이 먹먹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비석 속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눈앞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몰랐다.
‘바리스탄도 바로 앞에서는 이런 말을 쉽게 안 했을 테지만.’
아르칸은 애써 괜찮은 척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아직 순위 갱신은 안 되었지만요.”
“아, 지금은 5위까지 순위가 고정되어 있긴 하지만. 영역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사대마왕들이 꼭 그 순위는 아니었다. 악마족들의 순위가 더 높았지.”
악마족들이 하나하나 강하기에 마왕성 랭킹 순위 상위권에 많이 포진되어 있다고 들었긴 했는데, 바리스탄의 말에 따르면 대마왕보다 약간 모자란 정도로 강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는 정말 강하니까 조심하거라.”
“알겠습니다. 아버지도 무사하십시오.”
“네가 걱정을 다 해 주다니……. 참, 아네스가 네 마왕성을 한번 구경하고 싶다는군. 아마 세계수를 직접 보고 싶은 모양이야.”
“그래요? 원정 시작 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자꾸나.”
“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마.”
그 후 바리스탄의 의식이 들어 있던 비석의 불이 꺼졌다.
아르칸은 불이 꺼진 비석들을 다시 한번 차례대로 보고 원래대로 돌아왔다.
***
아르칸이 돌아오니 통제실 앞을 지키기로 했던 오웬 외에도 아바로스와 데시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회합의 결과가 궁금했던 모양.
아르칸은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
“인간계로 원정 가기로 결정됐다.”
“역시 그렇게 됐군요.”
오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밖에 아바로스나 데시무스도 그럴 거라 짐작한 듯 그렇게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르칸의 다음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딱히 원정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대마왕 본앰브로스에게 건넬 인간족 시체와, 언데드 군단이 지나갈 길만 준비하면 된다.”
“설마 저희만 원정에서 빠지는 겁니까?”
“키클로테스 대마왕이 그러실 분이 아닌데.”
오웬과 아바로스는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우리는 별동대로 아우리오스를 상대하기로 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차라리 키클로테스 대마왕에게 맡기는 게 나을 텐데, 적어도 바리스탄 님이나요.”
“괜찮아. 우리한테 피용이 있잖아.”
“음, 피용도 강하지만 조심해야 할 텐데요.”
“오웬 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드래곤은 오래 살수록 강하다는데, 아우리오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드래곤이니까요.”
“안 그래도 더 대비는 할 생각이긴 했어. 나바리우스도 부르면 되겠지.”
나바리우스는 거인섬 인근의 바다에 사는 블루 드래곤. 피용을 아끼기도 하고 다른 드래곤을 만나고 싶어 하기도 했으니 도와달라고 하면 나설 게 분명했다.
“블루 드래곤까지 말입니까. 그거라면 충분하겠군요.”
“어쨌든 저희끼리 의논했던 건 거의 쓸모없게 됐군요.”
“그래? 어쨌든 그렇게 됐으니까. 언데드 군단의 이동 경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나 생각해 줘. 인간족 시체도 모으고.”
“아, 본앰브로스 님께서 협조해 주신다고 했습니까?”
“그래.”
“그게 가능하다니, 놀랍군요. 말씀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아바로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아르칸은 오웬에게 말했다.
“마왕성 정리는 어떻게 되어 가?”
갑자기 9계층으로 확 늘어난 만큼 구역 정리를 새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음, 아직 진행 중입니다. 혹시 의견 주실 거라도 있으십니까?”
“그게 아니라, 어머니가 마왕성에 방문하고 싶다고 하셔서 말이지. 조만간 모셔 오려고.”
그 말에 오웬은 아우리오스를 상대한다고 할 때보다 더 크게 놀란 듯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아직 정리할 게 많은데 큰일이군요.”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세계수를 보고 싶으신 모양이니까.”
“세계수입니까? 그쪽은 정리가 더 안 되어 있는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요. 어서 청소해야…….”
호들갑을 떠는 오웬을 말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불안해하면서 사라졌다.
그걸 보며 데시무스가 피식 웃었다.
“에이, 부담 가지지 말라고 하셔도 어떻게 부담을 안 가집니까. 상사의 어머니가 온다는데요.”
“그건 그런가.”
쓴웃음을 짓던 아르칸은 데시무스를 보고 물었다.
“참, 너도 갈래?”
“저도 정예로 취급해 주시는 겁니까? 하지만 드래곤과 싸우는 건 사양하고 싶습니다만.”
잔머리의 대가답게 어려운 싸움은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동안 수련 좀 안 했어? 이번에 복수할 기회인데.”
아르칸의 말에 데시무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데시무스는 자신을 배신하고 나락으로 떨어트린 노바스크 백작에게 언젠가는 복수할 거라며 마음속에 칼을 갈고 있었다.
아르칸은 안 그래도 밀리는 인간족을 가능한 한 공격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두 곳은 눈속임을 위해서라도 공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기왕 공격할 거 데시무스가 복수할 수 있게 판을 깔아 줄 생각이었다.
“복수할 준비는 언제든 되어 있습니다. 도와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러니 갈 준비나 해. 어차피 대부분은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가 있겠지만.”
“알겠습니다.”
***
‘아, 그렇지.’
부하들에게 통보한 아르칸은 마계에서 인간계로 침공할 거라는 정보를 알릴 인물이 하나 더 남았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구용사였다.
구용사는 드워프들이 인간들에게 탄압받고 처형당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드워프들을 구하러 인간계에 가 있었다.
아르칸은 세계수의 쌍잎을 꺼내 용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이 잘 지냈어? 거기 분위기는 어때?
-흥, 정령으로 다 파악하고 있으면서 뭘 묻나.
용사는 퉁명스레 대꾸했지만, 메시지로 그간의 상황을 보내긴 했다.
인간계는 신용사가 죽고 원정대가 돌아온 뒤,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드워프를 탄압하는 분위기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신용사의 유지를 이어 나가야 한다고 날뛰는 인간 우월주의자들이 많아 골치 아프다고 한다.
아르칸도 정령들에게 대충 보고받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이 너를 찾고 있을 텐데.
-모른 척하는 중이다. 어차피 죽은 성녀 대신 새로운 성녀가 신탁을 받으면 다른 용사를 찾아낼 테니까.
-성녀 안 죽었는데?
-정말?
-그래. 왕국 제일검인가 하는 녀석이랑 같이 내가 보호하고 있어. 둘 다 충격이 컸는지 아직 의식이 없지만.
-그런가……. 그래도 구해 줘서 고맙다.
-딱히 죽여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은 못 했어.
-흠, 그런가.
의외로 담담한 용사의 메시지를 받은 아르칸은 의아했다.
-무슨 일 있어? 예전이라면 살려서 돌려달라고 난리 쳤을 녀석이.
-……드워프들을 구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니까, 이런 녀석들을 구하려고 그 고생을 했나 싶더라고.
아무래도 현실을 보고 회의감이 든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렇게 느낄 만큼 이번에 인간족들이 심하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함께 싸웠던 드워프 종족을 배척하다니.
아르칸은 맞장구치는 대신에, 용사를 살살 달랬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도 있잖아. 평화롭게 만들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지.
-그러게, 어서 돌아가고 싶다.
-그 전에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뭔데?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
-열흘 뒤, 마계에서 인간계로 쳐들어갈 거야.
-뭐라고?? 정말이야?
-그래, 이미 결정됐어, 모든 사대마왕이 총출동한다.
-너는? 너도 쳐들어오는 거냐?
모든 사대마왕이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아직 대마왕이 됐다고 용사에게 말하진 않았다.
‘이거 내 입으로 말하기도 쑥스러운데…….’
무엇보다 대마왕이 됐다고 하기에는 용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인간계와 마계가 친하게 지내는 세계를 만들 거라며. 나한테 한 말은 거짓이었어?
-거짓말 아니야. 그러니 이번에 마계의 침공을 막아 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도와줘야 할 게 있어.
-뭔데? 뭐든지 할게.
회의감이 들면서도 위기라는 소리에 저런 말까지 하다니.
이런 걸 보면 괜히 용사가 소환된 게 아닌 것 같긴 했다.
그런 용사에게 아르칸이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용사가 되는 거야.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