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용사보다 더 용사다운 (1)
아르칸의 메시지를 본 용사는 황당했다.
-‘다시 용사가 되는 거야.’라니. 금방 말했잖아. 새로운 성녀가 신탁을 받아 다른 용사를 찾아낼 거라고.
-괜찮아, 다 방법이 있으니까. 내게 맡겨 둬.
-내게 맡겨 두라니. 확실해?
-그럼. 여신이 신탁을 내려 다른 용사를 내세우는 것과 별개로 다들 너를 용사로서 인정하게 할 거야.
-어떻게?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고 무슨 방법인지 똑바로 말해.
궁금증을 참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용사에게 너무 중요한 이야기였다.
-미리 말해 주면 재미없는데.
-장난치지 말고.
-아, 알았어. 먼저 왕국 내의 악신을 추종하는 이교도들을 일망타진할 거야.
“아, 이교도 퇴치란 말이지.”
메시지를 본 용사는 납득했다.
셀레스티온 왕국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하면 마계의 마왕들이었지만, 내부의 가장 골칫덩이는 악신을 모시는 이교도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을 몰아낼 수 있다면 왕국이나 교단 측에서는 적어도 용사에 준하는 대우는 해 준다고 봐야 했다.
무엇보다 이교도들을 퇴치하는 건 용사로서도 바라마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마왕을 상대하는 게 최우선이었던 전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악신 말고라스나 악신 우르곤타르를 따르는 이교도들과 엮인 덕분에 그들이 끔찍하게도 인신 공양까지 하는 걸 알게 됐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쓸어버리고 싶었다.
‘그나저나 아르칸 녀석, 마왕 주제에 착한 일을 한단 말이지.’
용사가 기특하게 생각할 때, 아르칸으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이제 이해됐지? 그렇게 용사로 복귀하면 네가 해 줄 게 있어.
“해 줄 게 있다라……. 끝까지 뭔가 챙겨 간다는 말이지.”
용사는 구시렁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지.’
***
인간계 침공 개시일까지 아르칸은 매일매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먼저 마계에서 대대적으로 인간계 침공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인간계에 퍼트렸다.
안 그래도 마계 측의 반격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던 셀레스티온 왕국은 전전긍긍했다.
침공에 대비해 귀향한 병사들을 다시 모으고, 농민을 징집해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마계 측에 대항할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사와 성녀가 없다는 거였다.
성녀는 성녀 후보생이 여럿 있기에 어떻게든 되지만, 문제는 용사였다.
원래부터 용사를 찾고 있었지만, 더욱 총력을 기울여 사라진 용사를 찾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네. 이제 원정대가 출발하기 시작하기만 기다리면 되겠어.’
아르칸이 바람의 정령 제피로스의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오웬이 긴장한 얼굴로 들어왔다.
“아네스 님이 곧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피용이 어머니를 모시고 온 거였다.
이동문도 있었지만, 긴급할 때 쓴다는 원칙 때문에 쓰질 않았다.
그래도 초고속 비행기나 다름없는 피용 덕분에 아르칸 마왕성까지 모시는 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르칸은 곧장 입구로 나가서 어머니를 맞았다.
“어머니, 어서 오십시오.”
“그래, 환영해 줘서 고맙구나.”
아네스는 미소 지으며 말했지만, 얼굴색이 살짝 어두운 듯했다.
‘멀미라도 하신 걸까?’
아르칸이 걱정하는데, 오웬이 나섰다.
“아네스 님, 안내는 제가 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오웬.”
아네스는 미소 지으며 대답한 뒤, 오웬을 따라나섰다.
사실상 이 마왕성의 구축은 오웬이 다 한 거나 다름없기에 안내원으로서는 오웬이 제격이었다.
무엇보다 아르칸은 9계층으로 확장한 뒤에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둘러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문에 아르칸도 슬쩍 오웬의 뒤를 따라 설명을 들었다.
3계층까지는 접견실부터 식당, 휴게 시설 등 각종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공동 구역이었는데, 중간에 각종 편의 시설이 임시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설명으로는, 적 침공 시 이 임시 건물 중심으로 몇 개의 벽을 세우기만 하면 적을 분산시킬 수 있는 미로가 된다고 했다.
아르칸이 미로를 만든 걸 보고, 오웬이 구상한 걸 아바로스가 정밀하게 계산해 완성한 거라고 했다.
아르칸이 만든 걸 보고 참고했다는 말에, 아네스는 눈빛을 반짝이며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뿐, 계속되는 설명에 아네스는 지친 듯했다.
그만큼 마왕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안 되겠다 싶었던 아르칸이 끼어들었다.
“다른 건 나중에 천천히 살펴보고, 7계층으로 가지.”
“아, 그러는 게 좋겠군요. 7계층에는 엘프들의 거주 구역이니까요.”
오웬도 뒤늦게 아네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편 아네스는 엘프들의 거주 구역으로 간다는 말에 얼굴이 환해졌다.
세계수를 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세계수는 마왕성을 9계층으로 늘리자마자 곧장 9계층 끝까지 자랐다.
그 때문에 1계층에서부터 세계수를 볼 수 있긴 하지만, 이파리와 나뭇가지뿐.
제대로 몸통을 보려면 최소 6계층까지는 내려가야 했는데, 거긴 공방과 드워프들의 거주 구역이다 보니 어수선했다.
반면에 통제실의 마정석에 심어진 세계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8계층은 보물 창고로, 주변을 막아 놓아서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곧장 7계층으로 내려가는데 밝았던 아네스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마계 엘프 출신으로서 곧 인간계 엘프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어서였다.
인간계 엘프들이 배신자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으니까.
‘그쪽도 불편할 텐데, 괜히 왔나.’
안 그래도 오는 내내 불쑥불쑥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아르칸에게 신세 지는 만큼 자신에게 싫은 내색은 못 하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을 꺼림칙하게 여길 거라 짐작한 거였다.
그래도 아네스는 세계수를 보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아네스는 엘프들이 마계로 건너온 뒤에 태어났다.
다른 엘프들로부터 세계수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을 뿐,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세계수에 대해 상상만 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리는 듯했다.
아마 엘프 종족의 기원에 대한 그리움이 틀림없었다.
‘그래, 한 번만이니까…….’
아네스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7계층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엘프들이 여럿 보였다.
“아르칸 님, 오웬 님. 어서 오십시오.”
“아네스 님도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엘프들의 인사에 오웬이 소개했다.
“이쪽은 미네 님, 이 두 분은 리트, 리브 님이십니다.”
아네스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진심으로 환대하는 엘프들의 모습에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반갑게 맞아 줘서 고마워요.”
“고맙기는요. 세계수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해 주셔서 저희야말로 영광입니다.”
“사실 저희도 아네스 님을 뵙고 싶었어요.”
“야, 지금 그 말을 왜 해.”
“네?”
아네스가 의아해하는데, 오웬이 슬쩍 속삭였다.
“이들은 아르칸 님이 구한 엘프들인데, 아르칸 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아들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니.’
아네스는 새삼스레 엘프들을 하나둘 바라보고 있었다.
듣자 하니 아들이 여자를 데려오면 괜스레 빼앗긴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두 정령의 기운이 충만하게 느껴지는 덕분인지 하나같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오웬 님,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안내해도 될까요?”
“아무래도 그쪽이 낫겠지요.”
“그럼 아네스 님, 이쪽으로…….”
아네스는 미네의 안내를 받으며 뒤따라 걸어갔다.
7계층은 동굴처럼 삭막한 다른 계층과 달리 숲속 한가운데 같았는데, 그 자체로도 생명이 충만한 게 느껴졌다.
덕분에 그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세계수를 향해 갈 때마다 설렘이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시야에 세계수가 들어왔다.
아네스는 숨을 죽이고 세계수를 바라봤다.
그건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선 자신이 한없이 작고 미약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요람 속에 있는 듯 편안함에 절로 눈이 감겼다.
“아.”
아네스는 세계수가 내뿜는 생명력에 감탄성을 내뱉었다.
왜 부모님이며 주위의 엘프들이 세계수를 이야기할 때마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뭔지 모를 허전함에 눈을 떴다.
세계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왜 그런지 눈치챈 아네스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이유는 바로 정령들이 자신을 외면하고 있어서였다.
정령들은 아네스가 근처에 잇는 것조차 꺼림칙해서인지 세계수의 뒤편에 몰려 있었다.
그걸 본 엘프들도 당황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우리가 정령들을 버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정령들의 반응을 이해하는 아네스는 세계수를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는 애써 눈물을 삼켰다.
그때였다.
따스한 바람이 전신을 감쌌다. 놀라서 쳐다보니 바람의 정령이 나타나 있었다.
아르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중급 정령인 제피로스라고 해요.”
아네스는 몰랐지만, 제피로스는 아르칸의 신하였다.
호불호를 떠나 아르칸이 부르자 바로 나타난 거였다. 그래도 불호는 아닌지 다른 정령과 달리 아네스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아네스 님께도 아르칸 님처럼 뛰어난 정령 친화력이 느껴집니다.”
“그런가요.”
“아마 다른 정령들의 마음이 풀리면 정령과 소통할 수 있을 겁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네요.”
빙긋 웃으며 대답한 아네스는 아르칸에게 말했다.
“고맙다. 덕분에 정령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었어.”
“그 정도 가지고 뭘요. 그리고 정령들도 곧 마음을 열 거예요.”
아르칸은 머쓱해하면서도 어머니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아네스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기대하는 것도 죄를 짓는 거지. 차라리 마신님의 인정을 받는 게 빠를 거야.”
그 말에 아르칸은 대마왕의 회합의 일이 떠올랐다.
바리스탄이 마계 엘프들을 이번 인간계 원정에 참여시켜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키클로테스는 그래 봐야 마신의 인정을 못 받는다고 일축했다.
아르칸은 슬쩍 아네스에게 물었다.
“마신의 인정을 받으면 뭔가 다른가요?”
“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엘프들에게도 마심장이 생긴다고 해.”
“마심장이라…….”
확실히 마심장이 생기기만 하면 이점이 많았다.
마력을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왕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정령들의 외면을 받는 마계 엘프들의 처지로서는 종족을 번영하게 할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마왕성에 있는 엘프들을 어떻게 되는 거지?’
인간족에게 노예 취급 받고 마계로 넘어왔으니 마계 엘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유일한 차이점은 세계수 덕분에 정령들과 멀어지지 않는다는 것뿐.
‘그 차이가 아주 큰가 보네. 그렇다는 건 마계 엘프들의 마을에 세계수를 심는다면 정령들도 함께 지낼지도.’
다만 세계수의 씨앗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아르칸 마왕성에 세계수가 있다고 해도 열매까지 맺는 데는 한참 걸릴 게 분명했다.
‘그래도 엘프들은 상관없나.’
그때 한껏 애틋한 눈으로 세계수를 보듬던 아네스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럼 이만 돌아갈게.”
“네? 좀 더 계시지 않고요.”
“큰 전쟁을 앞두고 있는데 더 방해할 수 없지. 대마왕성에서 내가 할 일도 있고.”
하긴, 대마왕이 원정을 나가는데 그 부인인 어머니까지 자리를 비우기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네스는 세계수에 미련이 남는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아네스를 보며 아르칸이 말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세계수의 씨앗을 구하면 엘프 마을에 하나 심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정말이니?”
“정말이죠. 저 못 믿으세요?”
“믿지. 어찌 우리 아들을 못 믿을 수 있겠어?”
그 말에 아네스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어차피 엘프들의 수명은 길다.
오래 걸린다고 해도 다시 세계수의 씨앗을 구할 수 있다고만 하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아네스는 이곳에 올 때보다 한층 밝아진 얼굴이 되어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인간계 원정이 시작됐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