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용사보다 더 용사다운 (2)
온 마계가 인간계를 정복하기 위해 움직였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인간계 원정을 주장한 키클로테스 대마왕군.
60개의 팀이 대마왕 바리스탄의 영역을 지나 남하했다.
다른 대마왕들까지 원정에 나서는 만큼, 절반이 넘는 전력을 투입한 거였다.
이번에는 기필코 인간계를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최대 병력을 동원한 건 대마왕 본앰브로스의 언데드 군단.
아르칸의 지배하에 들어간 수인족 영역을 통해 남하했는데, 그 행렬이 어찌나 긴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대마왕 바리스탄은 크게 두 부대로 나눠, 정예는 본앰브로스를, 나머지는 키클로테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각.
아르칸은 이미 인간계로 넘어가 용사와 만나고 있었다.
***
왕국 수도 셀레스티아 부근의 산속.
아르칸과의 약속 장소에 앉아 있던 용사가 대뜸 입을 열었다.
“왔냐?”
“어, 어떻게 알았냐.”
투명화를 푼 아르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감으로.”
용사의 대답에 아르칸은 속으로 웃었다.
‘감은 무슨, 주기적으로 왔는지 확인했으면서.’
사실 아르칸은 온 지 조금 됐었다.
투명화하고 다가가는데, 대뜸 용사가 ‘왔냐.’라고 하길래 움찔했다.
그러나.
아르칸이 들킨 줄 알고 인사하기 전에 ‘아직인가…….’ 하고 중얼거리길래 감이 예리한 척하려고 한다는 걸 눈치챘다.
아마 카퓨 산맥 너머에서 엘프 자매를 구했을 때 아르칸이 엉뚱한 방향을 쳐다보며 용사더러 나오라고 한 걸 기억하고 자신은 다르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르칸은 거기에 어울려 주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놀란 척한 거였다.
‘그동안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드워프를 구해 준 보답이랄까.’
실제로 구해 준 드워프만 스물이 넘는다고 했다.
그때 용사가 말했다.
“그럼 장난은 이쯤하고.”
“장난?”
“이미 근처에서 내 모습 보고 있었잖아.”
“그것도 들켰었나?”
“반신반의했지만 네가 어색하게 놀라는 모습을 보니까 확신할 수 있었지.”
“이런.”
아르칸은 한 방 먹었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용사를 새삼스레 다시 봤다.
‘전시안을 잃고 나서 감각이 더 예민해진 모양이네.’
그때 용사가 저 앞의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보다 저기가 그 이교도들이 있다는 곳인가?”
“그래,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야. 왕국 내에서 제일 큰 이교도 집단이거든.”
아르칸은 미리 정령을 동원해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수집해 뒀다.
놀랍게도 이들은 왕국 내 남은, 규모가 좀 된다는 이교도 집단들을 모두 흡수했다.
최근 두 개의 이교도 집단이 털렸다는 소식에 결단을 내린 거였다.
‘덕분에 나는 편하게 됐지만.’
이들은 아르칸이 노리던 물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오랜 시간 수많은 희생자를 제물 삼아 그 생명력을 응집해 놓은 생명의 마석이었다.
여러 이교도 집단이 가지고 있던 생명의 마석을 합쳤지만,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가 수백 년 동안 모아 온 것보다는 적었다.
그럼에도 중급 정령인 제피로스를 상급 정령으로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정령왕으로 만들려면 일단 상급 정령부터 되어야 하니까.’
그때 용사가 뜻밖의 말을 했다.
“전보다 강력한 악신이 등장한다면 쓰러트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
“왜 약한 소리야?”
“사실이니까. 무엇보다 이 검이 강력하긴 해도, 여신의 가호가 없으니 더 어려울 거야.”
용사가 허리에 매어 둔 오리할콘 검을 살짝 두들기며 말했다.
“하긴, 성 속성 검이 필요하지?”
아르칸은 대뜸 성검을 꺼내 용사에게 건넸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지만, 이것마저 받고 약한 소리를 할 수 없겠군.”
용사는 오랜만에 손에 쥔 성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다가, 허리에 찬 오리할콘 검을 풀어 아르칸에게 내밀었다.
“자, 받아.”
“이건 왜? 도린이 너 쓰라고 만들어 준 건데.”
“그냥 성검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 일단 잠시 맡아 둬.”
“고지식한 녀석.”
아르칸은 그렇게 말했지만, 일단 검을 받아 허리에 찼다.
그걸 본 용사가 앞장서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자.”
“아니, 벌써 힘 뺄 필요는 없지. 어차피 죽어라 덤빌 텐데, 쉽게 가자고.”
아르칸은 그러면서 작게 폴리모프해 어깨 위에 앉아 있던 피용에게 말했다.
“가라, 피용! 드래곤 브레스다.”
“피! 알았어.”
피용은 대답하자마자 즉시 허공에 떠오르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해츨링에서 본모습인 블랙 드래곤이 된 피용은 동굴 쪽으로 날아가더니, 곧바로 드래곤 브레스를 동굴 입구에 쏘아 넣었다.
시커먼 불꽃은 동굴을 순식간에 까맣게 태워 버리고 새까만 연기가 동굴 입구를 비롯해 산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비상 통로마저 한 번에 소탕한 거였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생각지도 못했는지 용사가 얼빠진 얼굴을 했다.
그런 용사에게 아르칸이 경고했다.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게 끝이 아니니까.”
그 말에 용사가 흠칫하며 동굴 입구를 노려봤다.
아르칸의 말대로 하늘에서 시커먼 연기가 뭉치더니, 이내 거대한 어둠이 하늘을 장악했다.
그리고 섬뜩한 핏빛 안광을 가진 눈이 한가운데 나타났다.
그 붉은 눈은 피용을 노려보며 분노를 토했다.
【감히 내 신실한 추종자들을 공격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그때 푸른빛이 붉은 눈을 향해 쏘아져 갔다.
용사가 곧바로 악신을 노리며 덤벼든 거였다.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역시 용사야!”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한 거였다.
아르칸도 곧장 공격할 준비를 했다.
마왕이나 마족 부하들은 가능하면 노출시키지 않는 게 좋은 상황이라, 데리고 온 부하들은 전부 꺼낼 수는 없지만.
아르칸에게는 피용 말고도 충분히 강한 부하들이 있었다.
“인간계에 들어왔으니 너희도 힘 좀 써야지.”
아르칸의 말에 불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와 물의 상급 정령 나이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 그래도 언제 불러 주나 했습니다. 저런 부정한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으니 모조리 불태워 버리겠습니다.”
“이 세계의 생명력을 훔쳐 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지.”
“잘 오셨습니다. 모두 공격하십시오.”
제피로스의 말에 두 상급 정령들은 움찔했지만, 이내 힘을 한껏 발휘해 악신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으억, 이것들이…….】
성검의 오러 블레이드에 공격당한 악신은 괴로운 듯 비명을 토해 냈다. 게다가 이어진 정령들의 공격에 순식간에 어둠이 절반 가까이 사라졌다.
“피! 아빠, 이대로 가면 이길 거 같아요!”
“방심하지 말고 어서 공격해.”
아르칸은 독려하면서도 내심 긴장했다.
‘다른 세력을 흡수했다더니만, 생각보다 더 강한데?’
용사의 힘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그 공격을 맞고도 소멸하기는커녕 크게 타격을 입지 않은 듯했다.
상급 정령 둘이 동시에 몰아쳤는데도 하늘을 뒤덮은 어둠을 겨우 절반만 몰아냈을 뿐.
악신이 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한 통로인 소용돌이는 보이지도 않았다.
아르칸의 걱정대로 피용이 뒤늦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악신의 어둠은 금방 원래대로 회복했다.
오히려 검은 덩어리들이 피용을 비롯해 용사와 정령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흐흐, 나를 상대하려 한 걸 후회하게 해 주마.】
검은 덩어리를 피하고 막아 내는 데 급급한 걸 보며 악신이 비웃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부하들도 꺼내야 하나? 아니면, 일단 후퇴해서 재정비해?’
차원의 소용돌이로부터 힘을 받아 오는 악신은 언제 지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 때문에 한 번에 최대 화력으로 공격하는 게 최우선.
그래도 용사가 있으면 무난히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적이 강했다.
현재는 호각이었지만, 이쪽 편이 먼저 지칠 건 분명해 보였다. 그 전에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다 불러내면 화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을까?’
그때 허리에 걸린 오리할콘 검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라면 될지도 몰라. 뒷수습은 나중에 하고 일단은 전력을 동원해서 잡을 수 있을 때 잡자. ’
그렇게 결정을 내린 아르칸이 아공간 주머니 속에 있는 부하들을 모조리 꺼내려 마음먹었을 때였다.
“이 사악한 존재여, 물러나라!”
앳된 여인의 외침과 함께 섬광이 하늘에서 터졌다.
파앗.
모든 것을 새하얗게 만드는 그 빛은 놀랍게도 눈이 부시지도 않고, 도리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건 신성력…… 그나저나 목소리가 익숙한데? 아니,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어찌나 강력한 신성력이었는지 악신의 어둠 한가운데를 크게 흩트려 놓았다. 덕분에 그 너머로 거대한 블랙홀 같은 소용돌이가 보였다.
아르칸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정령들은 소용돌이를 감추지 못하게 막아. 용사!”
“가고 있어.”
용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오러 블레이드를 내뿜는 성검을 들고 뛰어올랐다.
【크윽, 어림없다.】
그러나 오러 블레이드의 끝이 소용돌이에 닿기 직전에 악신의 어둠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칫, 얕군.”
용사는 혀를 차면서 자신을 달라붙는 어둠을 떨쳐 내며 물러났다.
“용사님, 한 번 더 갈게요.”
여인이 그렇게 외치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한 손에는 신성한 빛을 품은 스태프를, 다른 손의 손목에는 날개 모양의 팔찌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거기에 목걸이와 머리에 쓴 화관의 장식까지 동시에 새하얀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아까보다 한층 더 강력한 신성력이 몰아치며 악신의 어둠을 일순간 몰아냈다.
“이번에는 반드시!”
안 그래도 다시 한번 기회를 노리고 있던 용사는 신성력이 발동하자마자 뛰어올랐다.
덕분에 어둠이 물러나고 소용돌이를 노출하는 그 직후 오러 블레이드를 꽂아 넣었다.
“해치웠다……가 아니야?”
용사의 공격에 소용돌이가 소멸하기는커녕 살짝 주춤했을 뿐, 멈추지도 않았다.
“이럴 수가.”
자신의 힘이 안 먹힌 걸 본 용사가 경악하고 있을 때, 뒤에서 아르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물러나.”
움찔한 용사가 곧바로 물러났을 때, 강렬한 마력이 그 옆을 지나쳐 소용돌이에 작렬했다.
“이, 이건.”
소용돌이에 박힌 걸 본 용사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아까 아르칸에게 줬던 오리할콘 검이었기 때문이다.
소용돌이는 오리할콘 검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갈라지더니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필멸자에게 이런 힘이! 으아아악!】
악신은 믿기지 않는 듯 발악했지만, 자신의 어둠과 함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이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악신을 추방하는 데 성공한 거였다.
“제피로스, 저거 챙겨 와.”
“알겠습니다.”
제피로스는 아르칸의 지시대로 허공에서 떨어지는 검은 유리 조각을 집어 왔다.
악신이 소멸한 뒤 보상으로 나오는 차원의 조각이었다.
‘됐다! 벌써 세 개째야!’
차원의 조각은 마신의 힘을 억누르는 효과를 지닌 것으로, 마신을 상대할 때 필수적이었다. 이교도를 노린 건 이걸 얻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 이교도는 여러 조직을 합친 덕분인지 악신도 훨씬 강력했다. 이번에 얻은 차원의 조각은 그 효과가 더 뛰어날 게 분명했다.
‘1.5개분? 아니 두 개분은 되겠지.’
당장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르칸이 신성력을 발휘한 여인 쪽을 바라봤다. 여인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주변에 하얀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 일곱 명과 함께였다.
‘저 여자가 새로운 성녀인가? 설마 차원의 조각에 대해 알고 달라고 하면 곤란한데……. 어?’
아르칸은 순간 놀랐다. 여인의 얼굴이 낯익다 했더니 아는 얼굴이 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예전에 마석열차에서 이교도에게 납치된 걸 구하며 인연을 맺게 된 성녀 후보생 엘리시아였다.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다 했네. 설마 성녀가 된 건가?’
아르칸이 반가워하면서 다가가는데, 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달려와서 엘리시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냐, 넌.”
“성녀님께 가까이 오지 마라.”
“정체를 밝혀라.”
“앗, 성기사님들. 저기, 이분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엘리시아가 당황하면서 말했지만, 성기사들은 물러설 기미가 안 보였다.
그때 뒤늦게 온 용사가 말했다.
“검을 내려 주세요. 이 녀석은 제 동료입니다.”
“앗, 용사님?”
성기사 중 몇몇은 용사를 만난 적 있는지 바로 알아봤다.
“그보다 종적을 감추셨다더니, 악신을 퇴치하는 데 힘쓰고 계셨군요.”
용사가 이교도를 퇴치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성기사들은 감탄하는 듯했다.
‘이걸로 주가를 올리면 용사로 복귀하기 어렵지 않겠지.’
아르칸이 계획대로 되고 있다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용사가 아르칸의 팔을 슬쩍 잡아 내밀며 말하는 거 아닌가.
“다 이 녀석 덕분입니다. 저보다 더 용사다운 녀석이죠.”
‘어, 뭐라고?’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