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용사보다 더 용사다운 (3)
용사의 말에 깜짝 놀란 성기사들이 아르칸을 다시 봤다.
다른 이도 아니고, 용사 님이 자신보다 용사답다고 인정한 거였기 때문이다.
“곱상한 게 딱히 용사처럼 보이진 않는데.”
“잔머리는 잘 굴릴 거 같긴 해.”
“아니야, 방금 악신을 퇴치하는 데 같이 있었잖아. 하긴, 뭔가 능력이 있으니까 용사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거겠지. 마법사인가?”
놀란 성기사들이 수군거리던 와중에 한 성기사가 아는 체했다.
“마법사? 아, 혹시 예전에도 이교도에게서 성녀님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졌던 그 마법사님이신가요?”
“네, 저분이 그때 저를 구해 주신 분이세요!”
엘리시아가 맞장구치자 성기사들이 감탄성을 내뱉었다.
“아아, 그분이셨구나.”
“그때도 악신을 퇴치하셨다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군요.”
“아르칸 님이라고 하셨죠. 만나서 영광입니다.”
아무래도 당시 이야기가 성기사들에게는 널리 퍼진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르칸 님?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인데……. 아 맞다!”
‘아니, 성기사가 어디서 내 이름을 들었지? 설마 마계 원정대에 왔었나?’
아르칸은 순간 뜨끔했다.
그때 아르칸은 자신이 신용사를 죽였다고 이름을 내세우긴 했다.
하지만 그 전투에 참여했던 수인족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기에 말을 안 할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최대한 부정하는 수밖에. 그게 아니면…….’
그때 성기사가 한 걸음 다가와서 물었다.
“예전에 악덕 상인이 식량 사재기하는 바람에 마을에 식량이 바닥났을 때, 무료로 식량을 나눠 주신 적 있지 않으십니까?”
“아, 그런 적이 있긴 하죠.”
그때도 이름을 아르칸으로 쓰긴 했었다.
“역시나.”
성기사가 환하게 웃으며 아르칸의 손을 맞잡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뒤늦게 제 부모님이 굶고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아르칸 님 덕분에 허기를 면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인연이 있다니 여신께서 인도하심입니다.”
“정말 용사 님이 극찬하실 만도 하군요.”
성기사들은 대부분 서민 출신이라더니, 다른 성기사들도 이 사연에 공감하는지 한층 더 호의적인 분위기가 됐다.
아르칸은 한술 더 떠 겸손하게 말했다.
“누가 굶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겠습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오오, 이렇게 자애로우실 때가.”
“용사가 아니라, 성자님이라고 해도 될 거 같습니다.”
‘그 일로 떼돈을 벌어 놓고서는.’
용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아르칸을 쳐다봤지만, 덕분에 많은 이를 구한 건 사실이기에 딴죽을 걸지는 않았다.
그때 한 성기사가 자신 없이 말했다.
“어……, 근데 원정대에 다녀왔던 친구 말로는 신용사를 해친 마왕의 이름이 아르칸인가, 카르안인가 뭐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습니다만.”
그러자 아르칸에게 부모님이 도움을 받았던 성기사가 버럭 화냈다.
“뭐라고? 마왕? 지금 아르칸 님을 모욕하는 거냐!”
“다른 이름이거나, 같은 이름이라도 동명이인 아닐까? 아주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렇게 독특한 이름도 아니잖아.”
“무엇보다 용사 님이 마왕을 동료로 삼을 리 없잖아.”
“그 신용사 님의 목숨을 앗아 갔다는 마왕은 아르칸 님처럼 미남이 아니라 분명 아주 못생기고 무시무시하게 생겼을 거야!”
다른 성기사들도 함께 화를 내자, 처음 의문을 제기한 성기사가 물러났다.
“누가 그렇대? 그냥 생각나서 해 본 말이야.”
‘휴, 다행히 안 들키겠네. 이래서 평소에 착한 일을 하고 다녀야 한다니까.’
아르칸이 안도하는데, 엘리시아가 끼어들었다.
“꼭 그렇다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성기사도 이해가 안 됐는지 넌지시 되물었다.
“그 아르칸이라는 마왕을 직접 본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못생겼거나 무시무시하게 생겼다고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서요.”
아르칸은 엘리시아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편들어 주는 건 좋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해?’
“아, 뭐 직접 안 본 건 사실이죠.”
“마왕이라고 할지라도 편견을 가지면 안 되긴 하죠.”
“저희로서는 쉽게 도달하기 힘든 경지 같지만요.”
다행히 성기사들은 농담이라고 여겼는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르칸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덕분에 살았습니다만.”
“아, 최근 이교도가 다른 이교도들을 흡수해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요. 더 커지기 전에 해치우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늦게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기사 정도 되면 대부분 미약하게나마 오러 블레이드를 쓸 수 있는 데다, 신성력으로 자신의 신체를 강화할 수도 있다.
이들이 일곱이나 나서면 어지간한 이교도 집단은 손쉽게 토벌하고도 남았다.
엘리시아도 성녀가 되어서인지 전보다 신성력이 한층 강해진 데다, 신성력이 깃든 온갖 성물을 가지고 온 듯했다.
악신이 나타났어도 성기사들과 함께 계속 몰아쳤으면 퇴치하는 게 가능해 보였다.
‘그랬다가는 이번에 노리고 있던 차원의 조각이나 생명의 마석은 손에 넣기 어려웠겠지.’
그때 성기사들이 용사에게 제안했다.
“용사 님, 저희와 함께 돌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모두가 용사 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교도도 퇴치했으니 이제 돌아가셔도 되지 않습니까? 국왕님도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아르칸도 거기에 한마디 보탰다.
“그래, 돌아가.”
지금 분위기 속에서 돌아가면 용사의 지위를 되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당장 아르칸의 신하인 성녀 엘리시아가 편을 들어 줄 테고, 성기사들도 호의적인 분위기였으니까.
“가서 할 일은 내가 알려 줄게.”
아르칸이 이어서 속삭이는데, 용사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아르칸, 너도 함께 가야지. 우리는 동료잖아.”
성기사들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르칸을 쳐다봤다.
“동료를 안 두는 용사 님이 동료로 인정하는 분이라니.”
“아르칸 님 정도는 되어야지 동료로 삼으시는구나.”
그때 엘리시아마저 끼어들었다.
“용사 님, 저는요? 저도 동료로 받아 주실 거죠?”
용사는 움찔했지만,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르칸이 함께 가면요. 아니면, 예전처럼 혼자 다니는 수밖에요.”
그 말을 들은 아르칸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을 끌어들여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 거 같은데, 용사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
‘어차피 몰래 따라갈 생각이었는데, 대놓고 같이 가자고 해도 상관없거든.’
특히 용사의 동료로 인정받는 상황이라면 딱히 곤란할 일도 없긴 했다.
“좋아. 함께 가자고.”
“어, 어?”
아르칸이 시원스레 대답하자 도리어 용사가 당황했다.
그렇게 왕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성기사 하나가 중얼거렸다.
“근데 아까 분명 악신과 별개로 뭔가 시커먼 게 날아다니고 있었던 거 같은데. 다들 못 봤어?”
“본 거 같은데, 최근 목격됐다는 블랙 드래곤 아니었어?”
“하늘이 어두워져서 구분이 어려웠지만, 분명 뭔가 있었는데. 용사 님, 아르칸 님, 뭐 못 보셨나요?”
멀리서 피용을 본 모양이었다.
용사가 당황하며 아르칸의 눈치를 보는데, 아르칸이 너스레를 떨었다.
“악신이 내뿜던 어둠을 착각한 게 아닐까요? 커다란 덩어리가 하나 있었거든요. 여기 성녀님의 신성력에 소멸했지만요.”
“아, 그렇군요.”
“하긴, 그 커다란 게 갑자기 사라질 리가 없지.”
누군가 나타난 걸 보고 할루시네이션으로 피용을 투명화한 해 둔 상태라, 성기사들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그럼 이제 이야기는 다 된 거 같으니, 용사 님과 아르칸 님을 모시고 돌아가자고.”
“그나저나 이교도의 은신처는 어쩌지?”
한 성기사의 물음에 다들 은신처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아직도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피용이 쓴 드래곤 브레스의 결과였다.
아르칸이 얼른 변명했다.
“악신이 나타나면서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저래서야 근처에 가기도 힘들 거 같은데, 신전에 보고해서 나중에 잠잠해지면 내부를 살펴보라고 해야겠군요.”
“그럼 이제 돌아가죠. 용사 님, 아르칸 님. 저기에 저희가 타고 온 말과 마차가 있으니 함께 가시죠.”
“알겠습니다.”
아르칸이 대답하고는 용사에게 먼저 가라고 눈치를 줬다.
용사가 성기사의 뒤를 따라가는 걸 보며, 아르칸은 몰래 용아병을 소환해 투명화한 뒤 지시를 내렸다.
“저기 안에서 생명의 마석을 찾아와.”
“알겠습니다.”
투명화한 용아병이 사라지는 걸 본 아르칸은 다시 용사의 뒤를 따랐다.
***
아르칸과 용사는 마차를 타고 셀레스티아 왕국으로 향했다.
이 마차는 본래 말을 못 타는 성녀를 위한 것으로, 성기사들이 모두 말을 타고 마차를 호위하듯 에워쌌다. 덕분에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마차가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아르칸이 입을 열었다.
“맞다, 엘리시아. 성녀가 된 걸 축하해. 고생 많았겠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리 어렵진 않았어요.”
“그래?”
“성녀님이 마계 원정대에 참가했다가 전사하셨다는 말을 듣고 다들 안 하려고 난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거든요.”
“아.”
확실히 평화로운 시대라 성녀로 추앙받기만 하면 모를까.
당장 마계에서 침공해 오는 상황, 거기에 대항해 싸워야 하니 두려울 만도 했다.
“그럼 넌? 말만 들어 봐서는 일부러 성녀가 된 거 같은데.”
아르칸의 말에 엘리시아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중얼거렸다.
“……성녀가 되면 아르칸 님께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그 말에 기특하면서도 ‘겁도 없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덕분에 바로 도움이 됐어. 근데 천벌 받는 거 아니야?”
“헤헷, 지금 보면 멀쩡하잖아요. 사실 그걸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어요. 아르칸 님이 마왕인 걸 다른 사람에게 숨기고 있는 제가, 성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요.”
“그래서 아무런 문제는 없는 거야?”
“그게 좀 애매하긴 해요. 신전에서 성녀로 임명된 후 성녀의 힘을 손에 넣었는데, 신탁은 한 번도 못 받았거든요.”
“그렇구나. ”
옆에서 듣고 있던 용사가 끼어들었다.
“성녀 엘로디아 님이 살아 있다고 알려 주지 그래?”
“아르칸 님, 정말인가요?”
“어, 그 왕국 제일검이라는 기사랑 같이 내가 데리고 있어. 살아 있다기에는 아직 의식이 안 돌아왔지만.”
“……그래요. 음, 제가 한번 살펴봐도 될까요?”
“어차피 한참 달릴 거 같은데, 지금 들어가서 볼래?”
“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본 용사가 기겁했다.
“그러다가 성기사가 찾으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여기 위장으로 하나 더 세워 두면 되니까.”
아르칸은 곧장 할루시네이션으로 성녀의 모습을 만들었다.
“쩝, 정말 편리하군.”
“용사 님,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엘리시아가 웃으며 대답하자 용사로서는 더 말릴 수 없었다.
아르칸이 엘리시아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자 용사가 물었다.
“갑자기 같이 움직이게 되어서 안 난감해?”
“잠깐 놀라긴 했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몰래 따라가서 볼 생각이었으니까.”
“치, 재미없게.”
“네가 재미를 다 찾다니 별일이네.”
아르칸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자, 용사가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인간계로 온 김에 드워프들도 데려가.”
“아, 그래야지.”
용사가 드워프들을 구하긴 했지만, 데리고 마계로 오긴 힘들었다. 그 때문에 비밀 은신처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성검 가져가. 잘 썼다.”
“네가 들고 있어도 되는데.”
“아니, 마계 측에 있을 성검을 내가 들고 다녀도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아, 그래서 안 보이게 숨긴 건가. 눈치 빠른데.”
아르칸은 웃으며 성검을 챙기고 대신 오리할콘 검을 넘겨줬다.
그러고 있으려니 엘리시아가 나왔다.
“이 안에는 제 신성력이 전혀 발휘가 안 되네요.”
“그래?”
마력은 마심장을 동력원으로 하지만, 신성력은 여신의 힘을 빌리는 차이 때문인 거 같았다.
“어쨌든, 나중에 둘 다 직접 꺼내서 살펴봐야겠네.”
얼마 뒤, 왕국 수도 셀레스티아에 도착한 아르칸은 곧바로 왕성으로 불려 가 국왕을 알현하게 됐다.
‘지금 상황이 급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나 보네. 이러면 이야기가 쉽겠어.’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