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왕국의 이상한 수호룡 (1)
“셀레니아!!”
용사가 벌떡 일어나서 여신을 불렀다.
용사는 여신에 의해 이 세계로 끌려왔다.
갑자기 소환되어 어리둥절해하는 와중,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지상으로 내팽개쳐졌다.
그 후로는 직접 이야기하기는커녕, 신탁이랍시고 성녀를 통해 건네는 말을 듣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답답했던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비록 빙의이긴 하지만 여신이 나타났다.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청 떨어지겠다. 진정해. 이 몸에 그리 오래 있지는 못하니까.”
엘로디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앙칼졌다. 심지어 눈매도 신경질적으로 틀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르칸은 충격을 받았다.
‘저게 여신?’
여신답지 않은 여신을 보고 당황한 건 아르칸만이 아니었다.
엘리시아도 어찌할 줄 몰랐다.
“상상했던 여신님과 너무 다른 모습이에요.”
그 말에 성녀가 찌릿하며 엘리시아를 노려봤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미안해.”
“앗!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엘리시아는 곧바로 엎드려 빌었다.
성직자로서는 불경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천벌을 내려도 달게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말만 들어 봐서는 지금 천벌을 날릴 만한 여유는 없어 보인다만.’
반면 용사는 이런 여신의 언행이 익숙한 듯, 딱히 놀라지 않고 오히려 다가가 따졌다.
“다른 용사를 불러왔으면 나는 집으로 돌려보내 줘야지!”
“내 마음대로 됐으면 진작에 보내 줬지. 전부터 말했잖아. 이 세계의 평화를 되찾기 전에는 무리라고.”
“끙, 근데 왜 신용사를 따로 소환한 거야?”
“그건 미안하게 됐어. 그 정도로 문제 있는 녀석인 줄은 몰랐거든.”
여신은 미안해하며 눈을 깔았지만, 아르칸으로서는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안했다면 소환하기 전에 신탁을 내려서라도 양해를 구하고 사과했겠지.’
당시에는 아무 말도 없이 용사의 직위를 박탈하고도 별다른 신탁을 내리지도 않았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한 거였다.
지금 당장은 국왕처럼 아쉬우니까 숙이고 있는 데 불과했다.
‘그나저나 신의 힘도 무한정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닌가 보네.’
하긴, 그게 됐다면 용사를 소환할 필요 없이 천벌을 내리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또 새로운 용사를 불러올 거야?”
“그것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말이지. 미안하지만, 다시 네가 용사가 되어 줘야겠어.”
용사는 여신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짐작한 듯 곧바로 요구했다.
“그러면 전시안과 가호는? 마왕과 싸우려면 힘이라도 다시 줘야 할 거 아니야?”
“당연히 줄 거야. 근데 그거 다시 부여할 신력이 부족해. 이제 이교도들을 퇴치한 걸 대대적으로 알리면 좀 모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그 말을 들은 아르칸이 여신의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조금 더 짐작할 수 있었다.
‘신력이라……. 이교도를 언급한 걸 보면 아무래도 추종자가 많아야 힘을 더 발휘할 수 있나 보네.’
뒤늦게 소환된 신용사가 인간 우월주의자처럼 굴면서 다른 이종족을 탄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여신을 믿는 건 인간족뿐, 엘프와 드워프들은 믿지 않았다.
실제로 마신 전쟁 이후 아인종들의 입지가 줄어들고 인간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여신의 교세가 한창 커졌을 때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마계와 대치 상태가 길어지다 보니, 여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 모양이었다.
그때 엘리시아가 물었다.
“여신님, 그런데 엘로디아 님은 대체 어떻게 되신 건가요?”
“아, 얘? 신성력을 너무 끌어다 써서 그래. 너도 얘처럼 죽지 않으려면 조심해.”
여신의 대답에 섬뜩함을 느낀 엘리시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확인했다.
“그, 그렇다면? 설마 돌아가신…….”
“그래, 이미 죽었어. 신력이 모이면 잠깐 강신하려고 숨만 붙여 놓은 거야.”
“그, 그런.”
대수롭지 않아 하는 여신과 달리 큰 충격을 받은 엘리시아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용사도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여신을 바라보다가 내뱉듯이 말했다.
“쯧, 할 말 다 끝났으면 돌아가.”
“내가 너한테 잔소리 들으려고 온 줄 알아? 내 볼일은 이쪽에 있거든.”
그렇게 말한 여신은 엘리시아를 부축하던 아르칸에게로 향했다.
“나?”
“그래. 너에게 할 말이 있었거든. 너에 관해 신탁을 내릴 수도 없었으니까. 이런 수를 쓰는 수밖에.”
“……아르칸 님이 왜요?”
“이 녀석, 용사처럼 이 세계의 존재는 아니거든.”
“네? 뭐라고요?”
놀란 엘리시아와 달리, 잠자코 대화를 듣던 아르칸은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
‘역시 내 정체를 아는 모양이군.’
빙의한 후 아르칸은 자신을 이 몸에 빙의시킨 작가와 용사를 이 세계로 소환한 여신의 존재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와 여신이 동일인(?)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신탁을 통해서라도 중간에 나한테 뭔가 메시지를 전달했겠지.’
그런데 아르칸이 마계와 인간계를 넘나들며 용사와 관계를 맺고, 심지어 성녀 후보생을 신하로 삼았을 때도 여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불쾌할 수도 있는데 경고도 딱히 없었던 거였다.
그걸 본 아르칸은 자신의 존재를 알지만 모른 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최소한 작가와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라는 거겠지.’
아르칸이 어느 정도 눈치챈 듯하자 여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녀석의 전언이다. 네 계획을 성공시킨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는군.”
“그렇다는 건?”
“그래, 그 몸으로 쭉 지낼 수 있게 해 준다니까 해내기나 하래.”
어차피 원래 세계에는 미련이 없으니, 빙의한 김에 이 세계에서 마왕 아르칸으로 계속 살아간다.
그 목표를 가지고 용사를 도와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작가와 협상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심 부담스러웠는데, 여신에게 대답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럼 전할 말은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겠다.”
그렇게 말한 여신의 목소리가 뚝 하고 끊기자마자 성녀 엘로디아의 몸이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빛무리가 흩어지는 듯한 그 모습은 얼핏 보면 시선을 뺏길 만큼 아름다웠지만, 여신이 마지막까지 이용해 먹은 결과라고 하면 섬뜩하게도 느껴졌다.
“아, 성녀님.”
놀란 엘리시아가 뒤늦게 엘로디아를 안으려고 했지만, 이미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뒤였다.
성녀 엘로디아가 소멸한 거였다.
엘리시아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아르칸과 용사는 그 모습을 착잡한 얼굴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여신이 돌아가고 성녀가 소멸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었다.
바로 왕국 제일검 로버른 경이었다.
한참 눈물을 흘리던 엘리시아는 눈물을 닦고 일어서더니, 두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쳤다.
그러고는 로버른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그걸 본 용사가 말렸다.
“피곤할 텐데 다음에 치료하시죠.”
“괜찮습니다. 로버른 경이라도 살려야죠.”
“근데 정말 무리할 필요 없어. 어차피 살려도 다시 가둬 둬야 할 테니까.”
로버른은 신용사와 함께 제니칼 대마왕성에 잠입했다가 전사했다고 알려진 상황.
치료해서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곧바로 내보낼 수는 없다.
엘로디아 역시 무사히 정신을 차렸다고 할지라도 다시 가둬 둘 생각이었으니까.
“아, 그래도요.”
“그래, 그래야 네가 마음이 편하면 그렇게 해. 너무 이 상태로 오래 둬도 안 좋긴 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아르칸의 허락이 떨어지자, 엘리시아는 신성력을 발휘했다. 치유의 기적을 담은 빛이 로버른을 비추자 이내 로버른이 얕은 신음을 내뱉으면서 눈을 떴다.
“크음.”
“로버른 님, 정신이 드십니까?”
용사가 물었지만, 오랫동안 정신을 잃은 탓인지 멍한 눈빛이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엘리시아가 다시 치유의 기적을 하고서야 겨우 의식이 돌아왔다.
“어, 여긴 어디? 어? 용사 님?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로버른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진 용사가 아르칸을 쳐다봤다.
아르칸이 작게 한숨 내쉬며 말했다.
“여긴 왕성 안입니다. 로버른 경은 대마왕성에 잠입했다가 다쳐서 의식을 잃으셨어요. 기억 안 나시나요?”
“맞다, 그랬죠. 아, 신용사 님은요? 성녀님은 무사하신가요?”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럴 수가……. 그런데 저는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설마 용사 님이 구해 주신 겁니까?”
“아니, 제가 구했습니다. 치료는 여기 새로운 성녀님이 해 주셨고요.”
“앗, 그러고 보니 엘리시아 님? 성녀라니…….”
“이야기가 길어요. 그보다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습니까…….”
복합한 표정의 엘리시아를 본 로버른은 말꼬리를 흐리다가 뒤늦게 자신을 구해 준 은인에게 제대로 인사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성함이…….”
“아르칸이라고 합니다.”
“아르칸 님, 저를 어떻게 구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전쟁 후 시체 더미에서 발견했습니다. 전 전쟁 통을 따라다니는 상인이거든요.”
아르칸의 말에 로버른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인간족의 존망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에서도 돈벌이에 집착한다며 경멸하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생명의 은인이니만큼 만족하실 정도로 보답하겠습니다.”
구해 주고 어디에 쓸까 했는데 다행히 몸값은 받게 생겼다.
무엇보다 해명이 잘 먹힌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다시 가둬 둬야 했을 뻔했는데.’
아르칸의 표정을 읽었는지 용사와 엘리시아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어서 돌아가야…… 윽.”
몸을 일으키려던 로버른이 다시 의식을 잃었다.
엘리시아가 얼른 살펴보곤 말했다.
“아직 회복이 덜 되어서인 것 같아요. 조금 쉬시면 회복하실 거예요.”
“그래, 일단 여기에 넣어 두자.”
아르칸은 로버른을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두고 용아병더러 돌보라고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결국, 다시 가두게 됐잖아.’
***
다음 날.
용사 일행이 수호룡을 찾아간다는 말에 귀족파의 귀족들이 모였다.
“이거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번 원정 실패로 기껏 왕당파의 기세가 꺾였는데, 손쉽게 막아 내면 다시 반전될 거 아닙니까.”
그 말에 매그누스 공작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내버려 둬. 어차피 수호룡은 설득 못 할 테니까. 우리도 몰래 몇 번이나 접촉했다가 실패하고 다 시체가 되어 돌아왔잖아.”
“하긴 그랬었죠.”
‘모두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고? 좀 더 조심해야겠네.’
한편 제피로스를 통해 귀족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은 아르칸이 중얼거렸다.
골드 드래곤 성격이 나쁘다는 걸 알았지만, 귀족까지 마구 죽일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미 대비는 되어 있다.
피용더러 블루 드래곤 나바리우스를 데려오라고 해, 같이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아르칸은 마차 안. 용사와 함께 수호룡이 있다는 남쪽의 거대한 산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출입 허락을 맡은 건 이 입구 외에는 몇 겹이나 마법이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설명으로는 침입자를 막아 수호룡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수호룡이 나오는 걸 감지해 나오면 바로 도망치기 위해서가 틀림없었다.
그렇게 별 제지 없이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넓은 공터에 아공간 주머니에 있는 것처럼 거대한 저택이 보였다.
“저기가 수호룡이 사는 곳인가 본데.”
“들어가 보자.”
아르칸과 용사는 마차에서 내려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설마 안 계신가? 어, 문이 열려 있잖아.”
용사는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놀랍게도 커다란 저택과 대비되게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에 금발을 치렁치렁하게 기른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아우리오스 님?”
“그래, 내가 아우리오스다. 내 집에 온 걸 환영한다.”
미리 서신을 보낸 만큼 인간으로 폴리모프해서 용사 일행이 오길 기다리고 있던 모양.
환한 얼굴로 맞이하는 걸 본 용사가 속삭였다.
“네 말과 달리 별로 이상한 분은 아닌 거 같은데.”
아르칸이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주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때 아우리오스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환영의 뜻으로 죽여 주지.”
그 말과 어마어마한 살기를 내뿜는 아우리오스를 보며 용사가 기겁하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상한 분 맞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