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왕국의 이상한 수호룡 (2)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는 먼저 드래곤 피어를 날렸다.
아우리오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사방의 공기가 순식간에 아우리오스 쪽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폭발하듯 터졌다.
쨍그랑!
그 여파로 저택의 유리창이 모조리 깨져 나갔다. 아르칸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느꼈지만, 마룡의 가호 덕분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그 광경을 보면서 혀를 찼다.
‘왜 집안에 물건이 없는 줄 알겠다.’
용사는 여신의 가호가 사라진 상황이라 버거울까 싶었지만, 그래도 용사라고 오러를 활성화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 낸 듯했다.
아우리오스는 둘 다 무사한 걸 보고 살짝 놀란 얼굴이 됐다.
“호오, 제법이군. 자, 이제 너희 차례다. 공격해라.”
그 말에 용사가 당황한 듯 대꾸했다.
“아우리오스 님! 저희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 내게 부탁하려면 내 부탁부터 들어다오.”
그 말에 안색이 밝아진 용사가 말했다.
“뭡니까? 저희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건 들어드리겠습니다.”
“바로 나와 싸우는 거다. 그게 내 부탁이다.”
“아니, 이분이 정말.”
기가 찼는지 용사의 말문이 막혔다.
“내가 말했잖아, 이상한 분이라고.”
“쩝. 하는 수 없지, 싸우는 수밖에.”
그렇게 말한 용사는 검을 뽑았다.
아르칸도 아공간 주머니에서 피용과 나바리우스를 불렀다. 둘은 사람보다 조금 큰 드래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걸 본 아우리오스가 깜짝 놀랐다.
“아니, 드래곤들을 소환한 거냐?”
“아뇨. 아공간 주머니에서 있다가 나온 겁니다.”
“아공간 주머니에 생명체를 넣는다고? 그런 미친 짓은 시도할 만한 건 버네르가밖에 없을 텐데.”
수백 년 넘게 산 골드 드래곤답게 아는 듯했다.
‘혹시 이걸로 화제를 전환하면 안 싸우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려나?’
아르칸은 내심 기대하며 말했다.
“말씀대로 버네르가 님이 만든 아공간 주머니입니다. 거기다가 오랜만에 다른 드래곤을 만나니 반갑지 않으세요?”
그러면서 피용과 나바리우스에게도 눈치를 줬다.
“나는 피용! 만나서 반가워요!”
“아, 안녕. 블루 드래곤 나바리우스라고 한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혹시 내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나?”
피용과 나바리우스가 인사했다.
심지어 나바리우스는 예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골드 드래곤을 직접 보게 되어서인지 목소리까지 떨리는 듯했다.
“호오, 둘 다 못 보던 드래곤이군. 나도 반갑다. 그러니 어서 싸우자.”
“피?”
“엥?”
피용과 나바리우스는 황당했다. 한편 아우리오스는 더 대화하지 않겠다는 듯 본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눈부시도록 빛나는 황금빛 비늘을 가진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의 본모습은, 그 위용이 대단했다. 문제는 그 크기가 아주 크다 보니 커다란 저택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거였다.
아르칸은 박살 난 저택을 둘러보며 말했다.
“싸우는 건 좋은데, 이거 보상은 못 합니다.”
“괜찮다. 어차피 왕실에서 다시 만들어 놓을 테니까.”
“아…….”
그 대답에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럼 간다!”
골드 드래곤이 거대한 꼬리를 이쪽으로 휘둘렀다. 아르칸과 용사는 높이 점프해서 피했다.
“피잇! 아빠를 공격하다니.”
“안 되겠군. 일단 싸워야겠어. 피용아, 본래 크기로 돌아와.”
“알았어요! 나바리 삼촌!”
“나바리가 아니라 나바리우스라니까.”
“이름이 너무 길어서요.”
피용과 나바리우스는 티격태격하며 아우리오스에게 덤볐다.
피용은 본모습이라도 그 크기가 아우리오스의 절반도 못 됐기에,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덤비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긴 몸체의 나바리우스가 아우리오스에게 붙어서 움직임을 제한하자 그럭저럭 육탄전이 성립됐다.
거기에 정령들도 아우리오스를 압박하고, 용사도 오리할콘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두르고 꼬리를 노렸다.
“좋아, 좋아. 오랜만에 짜릿한걸.”
아우리오스는 신났는지 제대로 날뛰었다.
서로 물어뜯고, 할퀴고, 꼬리를 휘두르면서 몸을 부딪쳤다.
아주 박진감 넘치는 격투기 경기를 보는 듯했다.
“뭐 해? 너도 싸워야지.”
그렇게 말한 건, 용사가 아니라 아우리오스였다.
동시에 아우리오스 주변의 파이어 볼 수십여 개가 생성됐다.
파이어 볼은 모두 아르칸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노는 꼴을 못 보겠다는 말인가요?”
아르칸은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파이어 볼은 그대로 아르칸을 통과해 지면에서 대폭발을 연쇄적으로 일으켰다.
“환각? 설마 마룡 크세트카흐가 썼던 할루시네이션인가?”
“네, 정답입니다.”
어느새 아우리오스의 머리 바로 앞에 나타난 아르칸이 대답했다.
놀란 아우리오스가 눈을 크게 뜬 순간, 마탄이 작렬하면서 아우리오스의 머리가 슬쩍 들렸다.
“순수한 마력을 응집한 건가? 재미난 기술도 쓰는군.”
아우리오스가 흥미롭다는 눈빛이 됐다.
마력 공유를 쓰지 않고 아르칸이 가진 마력만으로 쐈기에, 아무래도 아우리오스를 상처 입힐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그래도 유효타를 가한 건 사실이니까. 이제 승부는 났다고 봐야겠지?’
아르칸과 같은 생각인지 모두 전투를 멈췄다.
아르칸은 아직 신기해하는 아우리오스에게 말했다.
“저희가 이겼죠? 그러니 이쯤 하시죠.”
“조금만 더. 네가 재미난 기술을 보여 줬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아르칸이 만류했지만, 아우리오스는 멈출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아우리오스는 크게 힘을 발휘해서 피용와 나바리우스를 떨쳐 내더니, 전신의 황금 비늘에서 내는 빛이 한층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피?”
“피용아, 위험하니 물러서라.”
나바리우스가 피용의 앞을 가로막으며 경계했다.
한편 그걸 본 용사가 아르칸을 불렀다.
“아르칸! 이건…….”
“그래, 이거 분명히 그건데…….”
아르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아우리오스를 노려봤다.
아우리오스의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악신이 소환될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다만 다른 건, 아우리오스는 이미 이 자리에 있다는 거였다.
‘설마 골드 드래곤이 악신 같은 걸 소환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아르칸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우리오스는 뭔가를 소환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용돌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아르칸을 비롯해 모두를 빨아들이려고 하는 거였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것도 되더군. 어때, 이건 버틸 수 있겠나?”
아우리오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르칸은 곧바로 외쳤다.
“나바리우스 님! 피용이 휘말리지 않게 잡아 주세요. 용사 너는 저 소용돌이를 공격해!”
“알았어.”
그사이 아르칸은 마력 뿔을 사용해 피용에게서 최대한 마력을 가져온 다음, 마탄을 발사하듯이 성검을 날렸다.
용사의 오러 블레이드가 소용돌이에 작렬한 뒤 성검이 꽂히자, 소용돌이가 균열을 일으키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파훼하다니 대단한걸? 역시 공격용으로 쓰긴 좋지 않군.”
아우리오스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젓자 흩어지던 소용돌이가 곧바로 사라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하지만 주위 풍경은 처음과 완전 딴판이었다.
저택이 박살 난 건 물론이며, 주변의 지면도 초토화되었다.
그걸 본 용사는 아연실색하며 아르칸에게 속삭였다.
“이건 이상한 정도가 아니잖아. 왕국의 수호룡 맞아?”
“딱히 수호룡이라서 마신 전쟁 때 싸운 건 아니긴 하지.”
마신이 이 세계에 나타났을 때, 아우리오스는 그에 대항해 싸웠다. 그걸 보고 왕국에서 수호룡이라고 모셨을 뿐.
원래부터 제멋대로였던 아우리오스는 그냥 싸우고 싶어서 싸웠고, 수호룡이라고 모시니까 대접받으며 지냈을 뿐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지내며 심심하다 못해 지금처럼 괴팍해진 거라고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원칙은 있는 게 다행이랄까.’
방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방적이면 재미가 없다고 서로 한 번씩 주고받으려고 한다.
그 때문에 수호룡으로 오래 대접받은 만큼 왕국을 지키는 데 도와주기도 했다.
‘문제는 워낙에 괴팍하다 보니 도움받더라도 꼭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만은 않는다는 거지만.’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 도움을 청했더니, 대홍수가 날 정도로 비를 오게 만들어 왕성이 떠내려갈 뻔한 적도 있고.
돌림병이 심각해 의견을 묻기 위해 찾아갔더니 태우면 된다며 마을을 통째로 태워 버린 적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마계로 쳐들어가 마왕을 공격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수호룡의 임무에 충실한다나.
그 때문에 소설 속에서 용사가 도움을 받기 위해 아우리오스를 찾아가 보려고 할 때, 국왕과 대귀족 모두가 말렸다.
‘지금은 마계에서 대대적으로 쳐들어온 매우 급한 상황이다 보니 허락한 거지.’
무엇보다 용사가 골드 드래곤에게 죽지는 않겠지만, 딱히 도움을 받을 거라고도 믿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아르칸은 문득 멍한 모습의 나바리우스를 보며 물었다.
“맞다, 나바리우스 님, 다른 드래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거 아니었나요?”
“아니, 별로 안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보다 좀 쉬고 싶군.”
나바리우스는 지친 목소리로 대꾸하더니 그대로 아공간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피. 피. 아빠. 나도 들어갈래.”
피용도 마찬가지로 나바리우스의 뒤를 따랐다.
그사이 처음 봤을 때처럼 긴 금발 중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아우리오스가 물었다.
“좋아, 오랜만에 재미있었어. 그럼 이제 이야기를 해 볼까? 나를 찾아온 목적이 뭐냐?”
“생명의 마석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예상 밖의 말에 아우리오스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위압적으로 물었다.
“혹시 악신을 강림시키려고 하는 건가?”
용사와 아르칸이 경계한 것처럼, 아우리오스도 악신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럴 리가요. 정령을 강화하는 데 쓰려고 하는 겁니다.”
“정령? 아, 그렇군. 이 정령들이라면 필요하겠군.”
아르칸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던 정령들을 보며 아우리오스가 마력을 거뒀다.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하려고 정령을 미리 불러 두기만 했었다.
“그나저나 의외군. 마왕군이 쳐들어오는 걸 막아 달라고 할 줄 알았다.”
아우리오스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정작 아르칸은 아우리오스가 마왕군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아르칸은 준비해 온 대로 말했다.
“전 반대로 제안드리고 싶은데요. 생명의 마석을 주시면, 마왕군을 막아 드리겠습니다.”
“호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동안 받은 게 있으니 왕국이 마왕군에 무너지는 건 막을 생각이시잖아요.”
“흐음, 그동안 받은 게 있으니까 안 움직일 수는 없긴 하지.”
“그런데 왔다 갔다 하면서 막는 거 생각보다 되게 귀찮거든요.”
“어, 그런가……? 확실히 귀찮긴 하겠어.”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아우리오스가 납득했다.
이렇게 찾아오는 걸 재미 삼아 상대하는 것과, 방어를 위해 움직이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긴 했다.
그때 아우리오스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걸 본 아르칸이 불길함을 느꼈을 때, 아우리오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희가 하는 거 구경하는 건 재밌겠는데? 따라다니면서 내킬 때는 싸우고.”
한마디로 같이 움직이겠다는 뜻이었다.
아르칸의 계획은 여기서 골드 드래곤을 상대하는 척하면서 마왕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거였다.
그런데 자신이 상대하기로 되어 있던 골드 드래곤이 갑자기 전장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아르칸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한번 저렇게 마음먹은 이상, 마음을 돌리긴 힘들 텐데…… 아.’
순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 하긴, 내가 억지 부렸으니 뭔가 조건이 있는 게 공평하지. 그래, 무슨 조건인가?”
“드래곤의 모습을 드러내지 마십시오. 싸워도 그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싸우는 겁니다. 드래곤 피어도 드래곤 브레스도 쓰지 말고요.”
“음, 재미없을 거 같은데.”
“아니요. 힘을 제한하고 싸운다. 오히려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래?”
아르칸의 말에 아우리오스가 관심을 보였다.
“네. 내가 이렇게 강한데 그걸 모르는 상대가 잘난 체하면서 날뛰는 걸 차분히 구경하다가 처치한 다음에 비웃어 주는 거죠.”
이른바 힘순찐. ‘드래곤이 힘을 숨김’이라는 작전이었다.
보통은 상상으로 그치지만 드래곤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오, 확실히. 재밌을 것 같군.”
그때 자신의 모습이 상상됐는지 아우리오스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