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왕국의 이상한 수호룡 (3)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와 이야기를 마무리한 아르칸은 다시 왕성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아우리오스를 설득하기는커녕 공격당하고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워낙 종잡으실 수 없는 분이라 고생만 하고 왔군.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일세. 자네들이라면 무사할 줄 알았어.”
국왕은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는지 아쉬워하지도 않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 병사가 들어오더니 알렸다.
“국경에서 마왕군과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마계의 침공이 시작된 거였다.
“그래? 어느 쪽인가? 동쪽인가? 서쪽인가?”
“동쪽입니다. 언데드 군단이 평야를 넘어와서 성을 공격 중이라고 합니다.”
“벌써? 요새는? 평야의 요새는 두 개 다 우리가 점령하고 있지 않으냐.”
“……그게,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순식간에 함락 아니, 붕괴했다고 합니다.”
붕괴라는 말에 국왕이 아연실색했다.
이쪽에서 그렇게 대규모로 침공했을 때도 요새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보다 쳐들어오는 적이 훨씬 많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이번에는 기사가 나타나 국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는 라이오트 백작이 보낸 기사 케이프라 합니다. 곧 마왕군이 성을 공격할 것 같으니 지원군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케이프는 아주 다급하게 말했지만, 정작 국왕은 옆의 신하에게 물었다.
“라이오트 백작의 성이 어디에 있지?”
“서쪽의 카퓨 산맥 너머에 있습니다.”
“뭐라고? 거기에도 적이 왔다는 말이냐? 그보다 거긴 토돌 백작이 지키고 있을 텐데.”
“지금은 칼로우 백작의 성입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어쨌든 그쪽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나?”
국왕의 물음에 케이프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이미 함락이 된 듯합니다.”
“그럴 수가…….”
국왕이 난감해하는데, 또 다른 전령이 나타나서 고했다.
“힐즈 백작의 성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적이 끝도 없이 많다고 합니다.”
평야가 있던 동쪽 방면이었다.
언데드 군단답게 계속해서 규모를 키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어지는 비보에 국왕이 용사와 아르칸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용사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바로 지원하러 가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우리도 어서 빨리 준비해서 지원군을 보내겠네. 그런데 어디로 갈 생각인가?”
용사가 대답하지 않고 아르칸을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아르칸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많이 밀리는 쪽부터 도와야죠.”
“아, 그렇지. 그게 합리적이지. 그럼 동부의 언데드 군단부터 막으러 가겠군.”
“네, 그러겠습니다.”
아르칸의 대답에 모두 안도하는 분위기가 됐다.
용사와 그 일행이 도와주러 가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고 믿어서였다.
하지만 그 분위기에 웃을 수만은 없는 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라이오트 백작 휘하의 기사 케이프 경이었다.
“전하, 라이오트 백작님의 성은 어떻게 합니까?”
“그쪽은 지원대를 보낼 테니까 걱정하지 말게. 그보다 용사와 아르칸은 어서 출발하도록.”
국왕이 근엄하게 어명을 내렸다.
그러나 아르칸은 어명대로 바로 출발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챙길 건 챙기고 가야지.’
***
왕성을 나서기 전 아르칸은 왕국의 보물 창고에 들렀다.
물론 투명화한 상태였다.
저 안에는 엄청난 황금은 물론, 갖은 보석과 회귀한 물건들이 잔뜩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걸 지키기 위해 갖은 방어 마법이 걸려 있다는 거였다.
‘아무래도 조용히 들어가서 챙겨 나오긴 힘들겠지.’
힘으로 얻을 수는 있겠지만, 용사의 일행으로 되어 있는 이상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곳에 온 것은 따로 노리는 게 있어서였다.
바로 보물 창고 입구 근처에 있는 수납함에 든 것들이었다.
아르칸은 정령을 이용해 자물쇠를 풀었다. 문을 열자 빼곡히 쌓인 회복 포션과 성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물쇠로 잠가 두긴 했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쓰기 위해 마법진 밖에다 모아 둔 거였다.
그 숫자는 어림잡아도 몇백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회복 포션과 성수가 있음에도 용사한테는 안 썼다는 거지.’
심지어 마계에서 대규모로 쳐들어오는데도 꼭꼭 숨겨 두고 있었다.
‘내가 잘 써 주지.’
아르칸은 첫째 줄의 회복 포션과 성수만 남겨 두고, 모조리 아공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러고 난 아르칸은 동부 어디로 갈지 지도를 펼쳤다.
‘노바스크 백작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지?’
예정대로 이참에 데시무스가 복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참이었다.
마침 노바스크 백작의 성은 동부 지역, 언데드 군단의 진격로 중 하나에 위치해 있었다.
‘예상보다 진격이 빠르던데, 바로 움직여야겠어.’
언데드인 만큼 이동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쉬지 않고 움직여 그 속도를 만회하고도 남았다.
‘그 전에 용사와 아우리오스를 잠시 떨궈 둬야겠네.’
함께 갔다가는 방해할 게 틀림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우리오스가 오랜만의 바깥나들이에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렸다는 거였다.
특히 마석열차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마법의 종주라 일컬어지는 드래곤인 만큼, 마석을 이용한 엔진을 제작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고 했다.
그래도 실제로 이렇게 대규모로 움직이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던 모양이었다.
현재는 용사와 성녀 엘리시아에게 안내하라고 맡겨 둔 상황이었다.
참고로 엘리시아에게는 아우리오스의 정체를 알려 줬는데, 깜짝 놀라면서 정중하게 예우를 갖췄다.
걱정인 건 아우리오스는 물론, 용사나 엘리시아도 세상 물정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거였다.
셋만 붙여 놓기에는 불안했지만, 딱히 맡길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용사나 성녀를 등쳐 먹는 녀석은 없겠지.’
아르칸은 제피로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 달라고 말한 뒤, 왕성을 나섰다.
목적지는 노바스크 백작령.
데시무스를 배신하고 그 용병단을 몰살했을 뿐만 아니라, 고향 마을까지 깡그리 불태웠던 노바스크 백작과 그의 딸 마리엘을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
“휴우. 내 처지가 어떻게 이렇게 됐지.”
마리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블랙마켓에서 가산을 탕진한 마리엘이었지만, 어찌어찌 셀커크 공작가에 시집가는 데는 성공했다.
마음의 선물이랍시고 하녀들을 들들 볶아 뜨개질해 준 게 먹힌 거였다.
셀커크 공작가에서의 생활은 천국 같았다.
돈 걱정 없이 보석과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할 수 있었고, 향기로운 차와 달콤한 과자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남편인 셀커크 공작은 늙은 데다 뚱보라 마음에 안 들었지만, 오히려 자신만 바라보며 살 것 같아서 조금 안심되기도 했다.
블랙마켓에서 데시무스가 살아 있는 걸 본 탓에 조금 찜찜하긴 해도, 블랙마켓의 투기장에서 우승해 봤자 노예 신분. 더군다나 마계에 있으니 나타날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평생토록 행복할 것 같았던 결혼 생활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국을 맞았다.
자신만 바라보고 살 것 같았던 셀커크 공작이 바람을 피운 거였다.
마리엘의 아버지 노바스크 백작만 해도 젊은 하인들과 놀아나는 걸 봤기에, 마리엘도 언젠가는 닥칠 일이라고는 여겼다.
그러나 그것도 최소한 수년 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마리엘이 셀커크가에 자리를 잡은 뒤의 일.
결혼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됐을 때, 셀커크 공작은 주변의 귀족과 바람을 피웠다.
열받은 마리엘은 맞바람을 피웠다.
그 대상은 자신의 호위를 위해 함께 온 렌돌프 경이였다.
수없이 많은 셀커크가의 눈이 있는 곳이니만큼 바로 들켰다.
렌돌프 경은 처형당하고, 자신은 이렇게 처가로 쫓겨 오게 되었다.
마리엘은 너무나도 억울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다시 셀커크가로 돌아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거였다.
어떻게 화해해야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난리가 났다.
신용사가 새로운 용사가 된 후, 대대적으로 마계를 침공하러 간다는 거였다. 셀커크 공작도 거기에 참가한다고 바빴다.
‘젠장, 이래서야 언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아니지, 이혼한 것도 아닌데 차라리 남편이 전사하는 게 더 나을지도.’
내심 기도했지만, 여신은 마리엘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셀커크 공작이 무사히 귀환한 거였다.
마리엘은 몰랐지만, 애당초 안전하게 후방에 있던 터라 전사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쉬워하는 와중에 이번에는 반대로 마계에서 침공해 온다는 게 아닌가.
그것도 끔찍한 언데드 군단이 몰려오고 있다고 했다.
화들짝 놀란 노바스크 백작은 마리엘을 닦달해 셀커크 공작에게 지원군 요청의 서신을 보내라고 했다.
마리엘도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서신을 보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지원군을 안 보내면 나를 데려갈 사람이라도 보내야 할 거 아니야.’
마리엘은 바깥을 보며 투덜댔다.
언제 셀커크 공작가에서 사람이 올까 싶어 시간 날 때마다 지켜봤지만, 도저히 올 기미가 안 보였다.
그때 노바스크 백작이 나타났다.
“딸아, 또 여기서 기다리는 중이니?”
“……네. 오늘도 연락이 없죠?”
“그래, 그러니까 네가 처신을 똑바로 했어야지.”
“처신은 무슨 처신이요. 그 사람이 절 먼저 망신 줬다고요. 저도 그 사람 망신도 줄 수 있는 거죠.”
“그래도 네가 참았어야지. 렌돌프 그 녀석도 참…….”
“잔소리하실 거면 그만 가세요.”
“알았다. 너도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선물을 준비하거나, 서신이라도 좀 더 써서 보내든가 하거라. 몬스터가 무서워 죽겠으니 지원군을 빨리 보내 달라고 말이다.”
“아, 알았어요.”
그때였다. 병사 하나가 달려와서 소리쳤다.
“백작님! 언데드 군단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버, 벌써?”
놀란 노바스크 백작과 마리엘이 북쪽을 바라봤다.
정말로 검은 안개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좀비와 스켈레톤들이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다른 부대는 뭣들 하느냐!”
“이미 잘못된 게 아닌지…….”
자신 없는 병사의 말에 혀를 찬 노바스크 백작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에잇, 일단 성벽을 걸어 잠가라! 성벽만 믿고 버티고 있으면 포기하고 돌아갈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노바스크 백작의 장담과 달리, 언데드 군단은 성벽이 있든 말든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수천 마리의 언데드 몬스터가 성벽에 달라붙자 기겁한 병사들은 떼어 낼 엄두도 못 냈다.
그대로 언데드 몬스터가 성벽을 넘어오자 다들 도망치기 바빴다.
성이 허무하게 함락당하는 걸 보며 노바스크 백작이 경악했다.
“이, 이럴 수가…….”
“아빠! 어떻게 해요? 어떻게 좀 해 봐요!”
“조용히 좀…… 으어헉!”
절망한 마리엘이 발악하듯 비명을 지르는 걸 보고 타박하던 노바스크 백작이 화들짝 놀랐다.
언데드 몬스터들의 주의를 끌었는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어서였다.
“꺄악!”
마리엘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뭐 해? 도망쳐야지!”
“하, 하지만 다리에 힘이……”
노바스크 백작이 소리치며 마리엘을 잡아끌려고 했지만, 마리엘은 벌벌 떨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언데드 몬스터들은 점점 접근했다.
썩어 가는 시체의 몸을 가진 좀비, 더러운 뼈다귀가 달그락거리며 다가오는 스켈레톤.
하늘을 날아다니며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는 레이쓰까지.
이대로라면 참혹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듯했다.
노바스크 백작과 마리엘이 죽음의 공포 속에 벌벌 떨고 있는 순간.
누군가가 둘의 앞을 가로막고 검을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작렬하더니 다가오는 언데드 몬스터 수십을 베어 버린 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내의 뒤에서 수십의 병사들이 나타나 언데드 몬스터와 싸우기 시작한 게 아닌가?
그걸 본 노바스크 백작은 감동했다.
“도, 도와줘서 고맙네.”
셀커크 공작의 지원군이 드디어 도착했다고 여긴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병사들은 지금껏 본 적 없을 정도로 잘 싸웠고, 먼저 나타난 사내는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정도의 강자.
‘차라리 마리엘을 이혼시키고, 이자와 결혼시키는 것도 고려해 볼 법하군.’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마저 했다.
셀커크 공작은 난리를 피울 테지만, 이런 시대에서는 강자와 손잡는 게 최우선이었다.
‘진작 데시무스라도 데리고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괜히 파혼하는 바람에.’
속으로 후회하며 입맛을 다신 노바스크 백작이 말했다.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그보다 여기 우리 딸인데 인사하게나. ……헉!”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던 노바스크 백작은 숨이 멎는 듯했다.
그는 바로 데시무스였기 때문이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